글 수 395


 그의 청혼도 아직 안 끝났는데 무책임하게 새 거 들고 와서 죄송합니다 (삐질 뷁만개...)
 그의 청혼은 이 글과 부탁 받은 다른 글이 다 되면 정리해서 올릴 생각입니다; 혹시 기다리셨던 분 계셨으면 넓은 마음으로 양해를... (굽실굽실...)



 1. 우리 가게에 오지 마세요.


 “단팥 페스트리 둘 3번 테이블. 딸기 페스트리 하나 살구 페스트리 셋 5번 테이블”
 “접수했어.”


 오븐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를 확인한 여자의 손길이 재빠르게 움직였다. 어느새 두껍고 긴 머그잔에서 따끈따끈한 김이 올라오는 아메리카노가 담겨져 나왔다.


 “페스트리는요?”


 오븐의 열기가 잠시 가라앉았는데도 여태 페스트리 접시가 안 나오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던 여자의 눈이, 주방과 카운터를 연결한 문틈에서 부들거리는 얼굴에 쏠렸다.


 “셰리?”


 급기야, 부들거리던 여릿한 얼굴이 문 너머로 사라지고 문이 불쾌한 금속성의 소리를 내며 흔들리자 여자가 카운터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두들기며 카운터 너머를 살폈다.


 북 카페 ‘Day By Day' 는 여느 때처럼 한가하기 그지없었다. 이렇게 날씨 좋은 겨울의 평일엔, 학교 근교에 사람이 모이지 않는 법이다. 때문에 개강 중이라면 최소한 너덧 테이블이 차 있을 가게에는 기껏해야 노트북을 끼고 앉아서 머리를 긁적이는 단골 한 사람과 처음 보는 남자 손님 한 사람만이 앉아있을 뿐이었다.


 “셰리?”


 여자가 카운터와 주방 사이의 문을 슬쩍 밀었다. 문이 잠긴 듯 밀어도 안쪽으로 밀리지 않았다. 여자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청바지에 있던 여분의 열쇠로 문을 연 그녀는 찡그린 인상을 펴지 않은 채 바깥과 연결된 주방의 뒷문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도망갔잖아.”


 뭐가 문제지?


 북 카페 매상에 상당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파티셰 셰리 - 본명은 정세영이지만, 이미 그 자신도 주변 사람들도 그를 정세영이라고 부르지 않은 지는 오래 되었다. - 는 땡땡이를 치기엔 너무나 자신의 일을 좋아했다. 가끔 사람 앞에서 부끄럼을 타서 주방 밖으로 나오는 일이 드물기는 하지만, 이렇게 부들부들 떨다가 주방을 나가는 일은 없었는데.


 “셰리?”


 여자가 주방의 뒷문을 열자 문 앞에 부들부들 떨고 있는 남자가 앉아있었다.


 “여기서 뭐해요?”
 “나... 나...”
 “셰리?”
 “사... 살려줘. 살려줘.”
 “네?”
 “세흔이. 잡으러...”


 부들부들 떨던 셰리는 그대로 기절해 버렸다.


 「쓰러져?」
 “병원에서는 별 이상 없댔어요. 그냥 신경성 발작 같다고 했는데, 혹시 아는 바 있어요?”
 「‘그건’ 더 이상 발병 안 하는 줄 알았는데, 혹시 빨간 머리에 성질 덩치 큰 아일랜드 아저씨가 왔다든가 하지 않았어?」


 나단이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


“‘그건’ 또 뭐예요?”
「신경성 발작. 셰리는 사람을 타잖아. 가끔 겁나는 사람이나 싫어하는 사람한테는 발작 증세가 있어.」
 “섬세하네요.”
 「그렇지?」
 “어련하시겠어요. 일단 가게는 이원씨가 잠시 맡아주기로 했는데, 오래 비워둘 수가 없어요. 그래서 말인데 일찍 퇴근해서 병원에 와 있어 줄 수 있어요? 나보다야 미스터 조가 낫지 않아요?“
 「알았어. 전화해 줘서 고마워 시원아.」
 “빨리 안정 시켜서 출근하게나 해 줘요. 우리 가게 밥줄이니까.“


 수화기 너머로 쿡쿡거리는 소리가 들려오자 시원은 피식 웃으며 수화기를 내렸다. 급히 나오느라고 휴대폰도 가지고 나오지 못했다. 시계를 보니 어느새 5시 반. 슬슬 늦은 티타임의 단골들이 들어올 시간이 되었다.
 서둘러서 가게로 돌아오자, 가게 카운터를 지키고 서 있던 이원이 그녀를 향해 눈짓을 했다. 아까 창가 자리에서 아메리카노와 단팥 페스트리를 시켰던 정장 차림의 남자가 카운터에서 입구 쪽을 돌아보고 있었다.


 “사장님께 볼일 있으신 것 같은데요.”
 “무슨 일이시죠?”


 남자의 머리는 단정했고, 역시 반듯하게 정돈된 얼굴은 약간 앳되어 보였다. 아무리 봐도 20대 초반 이상으론 봐주기 힘든 얼굴이다. 그렇게 딱딱한 정장을 입고 있지만 않았다면 학생으로 보았을 외모였는데, 입 주위가 딱딱하고 눈가에 약간의 신경질적인 경련이 엿보이는데다가 내뱉는 말은 무례하고 짧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낯이 익었다.


 “정세영이라는 사람. 여기 있습니까?”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은근슬쩍 말 돌리려고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기서 봤다는 사람이 있으니까.”
 “정세영이라.”


 시원은 인상을 찡그렸다.


 누구지?


 그녀는 찬찬히, 최근 세 들어온 사람들을 헤아렸다. 4층의 그 날라리 같아 보이는 레게 파마 청년인가? 아니면 꼭대기 층 절반을 암실 용도로 빌린 사진작가라는 상당히 빈해보이는 인상의 미중년?


 “이 가게 뒷문에서 나오는 걸 봤다는 사람이 있단 말입니다. 그러니 시치미 떼지 말고...”


 셰리?


 가게 뒷문으로 나올만한 사람은 셰리와 스모크 정도였다. 하지만 스모크가 술병을 정리하는 것은 이른 새벽이라 웬만한 사람이 목격할 만한 시간은 못 될 거고, 그렇다면 셰리인가?


 “아니 그럴 게 아니라, 직접 형이 어디 있는지 봐야겠군요. 저쪽이 뒷문으로 연결 됩니까?”


 말릴 틈도 없이, 남자가 카운터를 돌아 들어와 주방으로 연결되는 통로 문을 거칠게 밀고 주방으로 들어섰다.


 “지금 뭐하시는 거죠?”
 “형. 나와!”
 “이거 보세요.”
 “이번엔 놓칠 생각 없어. 어서 나오지 못해?!”


 설마. 혹시?


 “나가요.”
 “빨리 나오지 않으면 가만 있지...”
 “나가라고 했어요! 나가지 않으면 불법 침입으로 경찰에 신고할 생각이에요!”


 바로 옆에서 들리는 강한 어조에, 남자는 시원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모처럼 진지한 표정으로 시원이 남자의 눈을 마주보았다.


 “불법 침입이라니. 동생이 형을 찾는데도 불법 침입이 성립합니까?”
 “이유를 세 가지 알려 드릴 테니, 이유를 듣는 데로 나가 주세요.”


 그녀가 검지 손가락을 세워보이며 말을 시작했다.


 “첫째. 이 가게 주인은 나에요. 그러니까 누가 들어와서 갑자기 카운터와 주방을 난입하면, 거기에 대해서 항의하고 쫓아낼 수 있는 권리가 있죠.
 둘째. 정세영이 누군지 전 몰라요. 가게 주인이 모르는 사람을 다짜고짜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 드리죠?
 마지막. 지금 당신은 저랑 초면이에요. 그 어떤 사람이 모르는 남자가 갑자기 들어와서 난동을 부리면 좋아할까요?“


 남자는 말문이 막힌 듯 했다.


 “정세영을 정말 모른다고?”
 “네. 몰라요.”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가 찾는 건 짐작 상 셰리일 듯 했지만, 셰리가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녀는 그 언젠가 셰리의 본명을 들은 것 같긴 했지만, 본명을 부르는 일이 없어서 잊어 버렸다.


 “그러니 그만 나가주시죠.”


 남자가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인상을 찡그렸지만, 특별히 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그 무례한 남자는 그녀에게 명함을 한 장 내밀었다.


 “좀 더 확실하게 조사한 다음 다시 찾아 올 예정이니, 당신도 정세영씨를 발견하면 이리로 연락을.”
 “입이 짧으시네요. 정.세.흔.씨.”


 명백한 조롱의 어조로 시원이 말했다. 그도 말귀를 알아들었는지 찌푸린 인상이 더더욱 깊어지더니 그대로 몸을 돌려 가게 밖으로 나갔다.
 가게 밖으로 나가는 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원은 카운터에 행주질을 했다. 경기를 일으키며 기절한 셰리. 오만 난리를 치면서 주방을 뒤지던 정세흔이라는 남자.
 그제야 시원은, 그 무례한 침입자의 얼굴이 세영과 꽤 닮았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피식 웃었다. 아무래도 바람이 한 번 더 불 듯 했다.
 
 “명신 건설 정세흔?”


 따끈한 카페 라떼를 들고 병실에 찾아간 시원은 나단을 불러냈다.


 “네. 여기 명함.”


 나단은 그 젠틀한 얼굴에 인상을 썼다. 미간 사이에 주름이 지니 젊고 신사다운 얼굴이 38세라는 본래 나이로 보인다.


 “일이 좀... 곤란하게 됐는데.”
 “그거 써야 할 정도로?”
 “음. 일단 그 쪽에서 어느 선까지 아는지 모르니까.”


 나단이 병원 휴게실 의자에 앉아서 턱을 문지르며 생각에 잠겨 반 건성으로 중얼거렸다.


 “어느 선까지 아는지 모르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에요? 그거 셰리한테 물어보면...”
 “아직 안 깨어났어.”


 시원의 인상이 찡그려졌다.


 “잠자는 숲속의 공주군요.”
 “100년간 잠자도 그대로일걸. 게다가 그렇게 경기 일으킬 정도로 놀라면 당분간 깨어나지 않을 가능성도 있어.”
 “겁쟁이.”
 “그래도 괜찮아.”


 얼굴에 퍼지는 무한한 애정의 오오라에 시원의 눈이 아련해졌다.


 “그런 점, 엄청 부럽다는 거 알아요? 그러나 저러나 어떻게 하죠? 그 남자 내일 당장이라도 올 것처럼 펄펄 뛰고 나갔어요. 앳되어 보이는 얼굴답지 않게 성깔 있던데요. 난 도대체 영문을 모르겠고, 셰리는 일어나지도 않고. 당장 내일 가게는 열어야 한다고요. 아니, 못 열어도 할 말 없어. 셰리가 없으면 장사를 할 수 없으니까. 키스든 뭐든 해서 당장 깨워요.”


 나단이 쿡쿡 웃었다.


 “죽은 척이 소용없다는 걸 알게 되면, 일어나겠지. 어쨌든 오늘은 마누라 옆에서 밤 새야겠는데.”
 “그리고 깨워서 꼭 알아내요. 뭘 알아야 대비하죠.”
 “알았어.”
 “일어나면 셰리한테 안부 전해줘요.”

 휴게실 밖으로 멀어져가는 ‘아내’ 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단은 머리를 굴렸다.

 자. 이제 ‘마누라’ 를 깨워서 ‘아내’ 의 말을 전해야겠지. 그리고...
 어떻게 하지?


댓글 '4'

Junk

2009.02.27 21:19:19

엇, 씨엘님 오랜만입니다!!!

ciel

2009.02.27 21:22:58

예. 아직 안 죽었어요 -ㅂ-; 안 잊어버리셨다니 다행입니다... (굽실굽실;)

알렉스

2009.02.28 21:39:35

그의 청혼 너무 기다리고 있는 1人입니다 ;ㅅ;

ssuny

2009.03.04 20:09:08

재밌습니다 !
근데 남주가 세흔인가요
쫌 무레하긴 하네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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