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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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공기에 몸이 절로 움츠리게 된다. 예은은 차가워진 손을 비볐다. 잠시 손이 따뜻해지는가 싶더니 도로 차가워진다. 추워. 생각에 예은의 걸음이 좀 더 빨라진다. 100미터 앞 버스정류장이 보이자 버릇처럼 예은이 힐끗 뒤를 돌아본다. 저 멀리 녹색 버스가 한 대 보였다. 몇 번 버스인지를 확인하자마자 예은이 걸음을 좀 더 빨리했다. 점점 더 가까이 다가오는 버스를 보고도 뛰지 않은 건 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꽤 많았기 때문이었다. 먼저 온 사람들이 타는 동안이면 정류장에 충분히 도착할 것이었다.


버스는 만원이었다. 예은은 간신히 하나 남은 버스 손잡이를 꼭 움켜쥐며 버스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는 몸에 최대한 힘을 주고 흔들리지 않기 위해 버텼다. 잠실대교를 지나 잠실역 앞에 버스가 정차하면 우르르 사람들이 내릴 것이고 버스는 거의 텅 빈 채 청담역까지 갈 것이다. 그러면 편하게 앉을 수 있었다. 그렇게 빈 채로 목적지까지 가면 좋으련만 버스는 청담역을 세 차례에 걸쳐 정차하며 우르르 몰려 타는 사람들로 금세 다시 꽉 차 버릴 것이다. 그래서 포스코 사거리에 도착하면 예은은 그 틈을 비집고 내려야 한다.


예은은 잠실대교 아래를 유유히 흐르고 있는 한강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앞으로 있을 일련의 일들에 대해 생각하다 저도 모르게 코를 찡긋했다. 그 ‘비집고 내려야 한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건 늘 겪는 일이지만 겪을 때마다 ‘오늘은 겪지 않았으면.’하는 일이기도 했다.


그래도 오늘은 평소와 다르다고 목적지에 도착해‘비집고’ 내리면서 예은은 생각했다. 그게 좀 미묘한 느낌이라 딱히 꼬집어 어떻게 다르다고 말하기는 어려웠지만 분명 어제와 다른 느낌이었다. 커피전문점과 농협 사이의 골목으로 걸음을 재촉하며 예은은 늘 보던 거리, 건물, 가로수가 새롭게 다가오는 걸 느꼈다. 꼭 새로운 직장에 처음 출근할 때의 설레는 기분이랄까?


예은은 살풋 웃음을 터뜨리며 사무실이 있는 건물 안, 엘리베이터 앞에 버튼을 누르고 멈춰 섰다. 엘리베이터 문에 약간 상기된 표정의 자신의 모습이 비춰졌다. 그리고 떠오르는 건, 그의 얼굴. 어제와 오늘을 맞이하는 예은의 감정을 변화시킨 매개체. 얼마만이더라? 예은은 속으로 셈하기 시작했다. 스물 둘에 헤어졌으니까…… 꼭 7년 만이었다. 평생, 못 볼 줄 알았던 그를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까지 나눌 수 있게 될 줄은 몰랐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이건 선물이었다. 그동안 열심히 잘 살아왔으니까 그에 대한 보상이라고 표현할 수 있는. 예은이 생각하는 선물은 받는 상대의 기분을 좋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기쁘게 받고 행복하게 웃고 즐거워해야 할 것. 그러니까 울 필요 없어. 마침 도착한 엘리베이터에 올라타며 예은이 생각했다. 


“좋은 아침!”


이미 출근한 직원들을 향해 예은이 밝게 인사를 건네며 검은색 니트 카디건을 의자에 걸치고 컴퓨터 전원을 켠 예은이 모니터 옆에 놓아둔 자그마한 탁상 액자를 들어올렸다. 리은이 예쁘게 웃고 있는 사진이었다. 예은은 긴 손가락으로 리은의 얼굴을 쓰다듬다가 그 아래 글귀를 버릇처럼 눈으로 읽기 시작했다.


“‘내 무덤에는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남게 하소서.’나는 이 구절이 맘에 와 닿더라. 뭔가 좀 있어 보이잖아. 특히 그리움만 소금처럼 하얗게. 아, 표현 죽인다. 어떻게 이런 표현을 생각해냈을까?”


입사동기인 연지의 목소리에 예은이 고개를 돌리니 그녀가 불쑥 종이컵을 내민다. 모락모락 김이 피어오르는 커피의 달큼한 향이 코끝을 스친다.


“고마워.”


예은이 액자를 내려놓고 종이컵을 받아들자 연지가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창가에 기대섰다. 그리고 자기 몫으로 타온 커피를 한 모금 들이켠다.


“커피는 또 다방커피가 예술이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예은이 자리에 앉아 핑글 의자를 돌려 연지를 마주보았다. 입사동기인 연지와 친해진 건 어쩌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나이도 같은데다 정글과도 같은 이 회사에서 처음 몇 달간 의지할 사람이라고는 달랑 둘 밖에 없었으니까.


“응, 특히 네가 직접 타주는 거.”
“어머, 타달라는 말보다 그게 더 무섭다.”


연지가 예쁘게 눈을 흘기며 웃는다. 그러면서 ‘미진, 오늘 화장 예쁜데? 남친 만나?’라며 후배에게 먼저 아는 척을 한다. ‘성우씨도 좋은 아침.’받은 인사를 싹싹하게 잘 돌려주기도 했다. 그래서 다가서기 좀 어렵다는 예은보다는 연지 쪽이 선후배들 사이에서 좀 더 인기가 있었고, 찾는 사람이 많았다. 게다가 키 크고, 늘씬해주기 까지 하시니 감사할 따름이라는 평까지 뒤따랐다.


“야!”


연지의 부름에 예은이 눈을 살짝 치뜨며 입만 벙긋 거렸다. 왜?


“어제 어땠어? 끝내주디? 우리 인생에 그런 인사들 보는 거 쉽지 않다, 너.”
“특별할 거 없던데?”


예은이 시큰둥하게 대꾸했다. 연지가 눈을 가늘게 뜬 채 예은을 향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보냈다.


“그 끝내주는 남자가 특별할 게 없다고? 하다못해 키는 죽이게 크더라고 해도 돼.”
“응, 키는 죽이게 크더라.”


예은이 쿡쿡 웃으며 던진 농담에 연지가 가볍게 꿀밤을 때렸다. ‘아야.’소리 내며 예은이 엄살을 부리자 연지가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장난하지 말고. 사진만 봐도 살 떨려 죽겠던데 그걸 실물로 봐 놓고 겨우 한다는 소리가 그거야? 야, 솔직히 그 정도면 엄친아 아니냐? 아니지, 보통의 엄마들이 그런 어마어마한 집안사람을 친구로 두진 않지. 업그레이드된 엄친아라고 해야 하나 그럼? 아, 진짜 불공평하다. 머리에 배경에 외모에 직업까지 뭐하나 빠지는 게 없니? 에잇, 성격이나 더러워라. 그래야 인간 같지.”
“성격 좋아. 모난 데 없이 깔끔해. 예의바르고 친절하고 상냥한 사람이야.”
“뭐야, 결국 외계인이라는 소리잖아. 근데, 너.”


연지의 투덜거림에 실실 웃고 있던 예은이 자신을 정색하며 부르는 목소리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입만 또 벙긋. 왜?


“되게 잘 아는 사람 말하는 거 같다? 특별할 거 없다더니 성격까지 파악하고. 길어도 30분 이상은 안 만났을 거면서.”


아차. 예은이 입술을 저도 모르게 꼭 깨물었다. 뭐 하나 허투루 흘려듣는 법이 없는 연지의 꼼꼼함이 유감없이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그건 예은이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야 한다는 뜻이 되기도 했다. 


“우리 하는 일이 그거잖아, 사람 상대하는 일. 빠르게 고객을 파악해야 일하기가 수월하지요.”


예은이 어물쩍 넘어갈 수 있을만한 대답을 늘어놓았다. 조금 의심하는 눈초리이긴 하지만 곧 연지가 고개를 끄덕거리며 수긍했다.


“근데 엄친딸도 외계인이디?”
“끈질기다, 김연지.”
“인정. 그러니까 외계인이더냐고.”
“그런 거 같더라.”
“하긴 유유상종이라잖아, 끼리끼리 놀더라.”


연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예은 선배, 차 실장님 호출!’이라는 예은의 곁에서 인사를 돌려받았던 성우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알았어.’ 대꾸하며 예은이 자리에서 일어서자 연지도 몸을 바로 세우며 들고 있던 종이컵을 휴지통에 톡 버린다.


“‘어제 어땠어?’ 이거 물어볼 거야, 아마.”


그리고 미아리에 돗자리를 깔 수 있을 것인지 시험을 해볼 요량인 지 생뚱맞은 예측을 해왔다. 예은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별 거 없던데요, 하지 뭐.”


‘으이그.’ 외마디를 남긴 채 연지가 실소를 흘리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저으며 앞장 서 걷는다. 연지의 자리는 팀장실로 가는 길목에 위치해 있어서 예은이 그 뒤를 따랐다.


“연지야.”


 예은이 부르자 연지가 우아하게 뒤를 돌아본다. 예은이 성큼 걸어 연지 옆에 붙어 걸음을 놀리자 연지도 그제야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오늘 외근?”
“오후에 잠깐.”
“점심 같이 하자.”
“그래, 이왕이면 저녁에 냉면에 소주는 어때?”
“리은이.”


예은이 잠깐의 고민도 없이 툭 내뱉은 이름에 연지가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는다.


“어이구 내 팔자야. 하나 있는 동기가 애 엄마인 게 이럴 땐 증말 속상하더라. 근데, 리은이 잘 있어? 아, 고 깍쟁이 보고 싶다.”


예은이 이번에도 주저 없이 ‘보러 와.’라고 말을 건네니 리은이 보고 싶다, 몸부림치던 연지가 반색했다. 그러더니 ‘언제 갈까?’ ‘리은이 데리고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등등 혼자 계획을 세우느라 바빠한다. 그런 연지를 보며 예은은 조용히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연지의 말에 ‘아무 때나 편할 때 와.’ ‘ 뭐 먹으러 갈까?’등의 맞장구를 치는데 정작 머릿속을 뱅글뱅글 어지럽게 맴돌고 있는 말은 ‘유유상종이라잖아, 끼리끼리 놀더라.’였다.


자리로 돌아가는 연지와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진 예은이 가볍게 노크를 하고 실장실 안으로 들어섰다. 순간 원두커피의 진한 향이 예은의 코끝을 찔러왔다. 자신의 책상에서 서류에 코를 박고 있던 실장은 그 상태 그대로 손만 들어 올려 잠깐 기다려 달라는 제스처를 취한다. 탓에 예은이 차 실장의 책상 가까이까지 다가가야 하나? 고민하며 문 앞에 어색하게 서 있게 되고 민망한 시선은 실장실 안을 차분히 둘러본다.


실장이 앉아있는 등 뒤의 창문에서는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창문 앞에 놓인 실장의 책상은 사무용품과 책 몇 권, 결재할 서류철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사무실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건 일곱 명 정도 앉을 수 있는 회의 테이블. 예은이 알기로 실장은 대부분의 회의를 이 안에서 주재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 구석엔 자그마한 냉장고가 있었고 그 위에 커피메이커가 놓여있었다. 넓고 깨끗하고 정리가 잘 되어 있는 사무실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부드러웠다.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다 됐으니까 그 쪽에 잠깐 앉아서 기다려요.”


갑자기 들려온 실장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예은이 다시 시선을 책상으로 돌렸다. 하지만 예은의 눈에 들어온 실장은 여전히 서류에 코를 박고 있는 상태였다. 예은은 실장의 명령대로 얌전히 회의 테이블의 의자를 하나 빼내어 조심히 앉았다. 유리로 된 테이블에 무표정한 자신의 얼굴이 비춰졌고, 그 아래로 가지런히 모으고 있는 구두코가 보였다.


“커피 한 잔 할래요?”


물음에 예은의 시선이 다시 차민재 실장에게로 가 닿았다. 여전히 서류에 코를 박은 채 묻는 실장.


“아뇨, 방금 마셨습니다.”


예은의 목소리에 웃음기가 섞였다. 서류에 사인을 하며 민재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서류철을 덮고서야 시선을 예은에게로 둔 민재가 미안한 듯 씨익 웃는다. 딱히 잘생겼다고 하기 보다는 지적으로 생긴 남자였다. 부드럽게 웃는 모습이 언뜻 요새 나오는 커피 광고의 조인성을 닮았다며 여직원 몇 명은 연예인도 아닌 차민재를 향해 차민재 뽀에버를 외치기도 했다.


직원이 100명에 이르는 국내 제일의 웨딩 컨설팅 회사에서 실장을 맡고 있는 차민재 실장은 하나 웨딩의 오픈 멤버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단순한 오픈 멤버가 아니라 사장님과 동업으로 하나 웨딩을 오픈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업계 최초로 회사가 코스닥에 등록되기까지 회사를 성장시킨 사람이 차민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는 건 하나 웨딩의 직원이라면 누구나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다른 직원들이 애사심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 누구도 차 실장을 따를 순 없을 거라고 했다. 오죽하면 하나 웨딩에 뼈를 묻을 무한 애정을 갖고 있는 인간이라고 할까.


항간에는 그가 이렇게 회사를 성장시킨 이유는 자신이 갖고 있는 지분을 통해 부를 축적하려는 목적이라는 소문이 떠돌기도 했다. 그 소문에 따르면 그가 주식을 냉큼 팔아버리지 않은 건 회사를 좀 더 성장시켜서 주식시장까지 진출해 좀 더 그 부를 축적시킬 요량이라고까지 했다. 그 소문을 회식 자리에서 차민재 실장이 사장님과 다른 테이블에서 밀담을 나누는 모습을 보면서 들었던 예은은 그거야 본인 마음이지 않느냐는 의견을 냈었다. 그러자 곁에 있던 연지가 그는 그럴 자격도 충분하지 않느냐는 말을 덧붙여주며 지원사격을 했었다.


항간 소문이야 어쨌건 서예은에게 차민재는 고마운 사람이었다. 낮에는 일을 해야 했던 시절에 예은이 간신히 시간을 낼 수 있었던 건 저녁에 몇 시간이었다. 탓에 연준을 만나기 전에 다녔던 주간에만 수업이 있던 학교에 복학을 하는 건 무리였던 예은은 타학교 야간으로 편입해서야 대학을 간신히 졸업할 수 있었다. 대학을 졸업하면 그래도 좀 더 나은 환경의 직장을 갖고 아이를 기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예은은 그런 무리수를 두었던 건데 세상은 그녀의 생각만큼 녹록한 곳이 못되었다. 보육원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천애 고아인데다 미혼모라는 사실은 예은이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사실을 가뿐히 지르밟을 수 있을 정도의 핸디캡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그냥 무너질 수 없어서 예은은 꾸준히 여러 회사에 이력서를 넣었다. 물론 기대 따위는 없었다. 여러 번의 경험이 그녀를 그렇게 만들었다. 그저 그녀는 ‘혹시나’하는 심정이었다. 그리고 그 혹시나 하는 심정에 응답을 해준 사람이 하나 웨딩의 차민재였다.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을 갖고도 예은은 최선을 다해 면접을 봤었다. 날카롭게 빛나는 시선의 차민재는 예은의 생각을 정확히 집어내어 물었었다. ‘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도 이 면접에 최선을 다하는 까닭이 뭡니까?’라고. ‘제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일 수도 있는데 허투루 했다가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요.’라고 또박또박 말했던 예은에게 그는 ‘내 결정에 나도 후회하고 싶지 않아요, 도와줄 수 있겠어요?’라며 합격 통보를 알려왔었다.


웨딩 컨설팅에 대해서는 아무런 경험도 없고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던 예은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했다. 모자라면 모자란 만큼 채우기 위해 흔한 표현으로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노력했다. 차민재가 자신이 내린 결정에 후회하도록 할 수 없었고, 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1년이 지난 어느 날 그가 말했다. ‘고마워요, 내 결정에 후회하지 않게 해줘서.’라고. 그리고 그 때서야 예은은 물어볼 수 있었다. 아무런 경험도 없고, 어떤 교육도 받지 않았던 자신을 왜 합격시켰는지.


“……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해요? 나 섭섭해지려고 하는데.”


부드러운 목소리에는 장난기가 다분히 섞여 있었다. 아차, 놀란 시선으로 예은이 어느새 맞은편에 앉아있는 민재를 쳐다봤다. 그리고 미안한 듯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죄송해요.”
“그럼 이제부턴 나한테만 집중해요.”


차민재의 진지한 목소리에 예은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민재가 터뜨린 부드러운 웃음소리가 공기 중에 확 퍼져나갔다.


“다른 건 아니고 어제 어땠는지 해서 불렀어요.”


민재의 청량한 목소리가 이어졌다.


“별 거 없었어요. 그냥 보통의 신랑, 신부.”
“그 결혼에 기대가 큰 거 알죠? 그거 사장님이 물어온 건이에요. 자세한 속사정 말하기는 그런데 아무튼 이 결혼 잘 되면 앞으로도 대박행진 이어질 거예요. 그러면 회사에도 좋은 거고. 물론 예은 씨 경력에도 분명 플러스 요인이 될 거고.”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무언의 압박 같은 느낌. 예은은 기계적으로 대답했다.


“그렇게 말해 줄 줄 알았어요. 그래서 예은 씨한테 맡긴 거고.” 


민재의 목소리는 맑고 청량했지만, 예은의 귀에는 무겁고 텁텁하게만 들려왔다. 예은은 희미하게 지어보이는 미소로 대답을 대신했다. 마주 웃어오는 민재의 눈매가 부드러워지고 시선은 그윽해진다. 그 시선을 고스란히 받아내며 예은은 일순 소름이 돋아버렸다. 예은에게 그를 꼭 결혼시켜야 하는 이유가 추가됐다. 생각하는 예은의 귓가로 언젠가 그가 했던 대답이 생경하게 들려왔다.


‘교육이야 받으면 되고 경험이야 쌓으면 되니까. 하겠다는 마음만 있다면 그건 언제든지 가능한 거니까. 한 가지 더. 예은 씨 신뢰할 수 있는 사람 같았어요, 내 눈에.’


댓글 '4'

은새

2009.02.04 12:36:15

아~~민재가 더 좋아지는디..그래도 남주는 아니겄쥬??

ssuny

2009.02.04 22:06:07

오 남주가 누군지 감을 못잡겠슴당
민재가 더 끌리는디용

ßong

2009.02.05 02:30:24

민재...가 조연같은데...

과연 기억을 찾을 수나 있을지....흐흐흨ㅋ

하늘지기

2009.07.14 16:12:07

민재..
멋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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