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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인 척 그녀와 마주친 순간 그녀의 불안한 듯 흔들리는 시선에 원재는 괜히 숨이 탁탁 막혔다. 왜 이 여자에게 관심을 갖게 됐느냐는 물음은 그 순간 이미 쓸모없는 것이 되어버렸다. 왠지 품에 안아서 보듬어 주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웠으니까. 하긴 따지고 보면 그런 생각이 드는 것도 이상한 일이었다. 한채희, 그녀는 절대 연약해 보이는 스타일의 여자는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뭐랄까, 좀 도도하고 당당해 보이는 세련된 이미지? 그런 여자가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시선으로 자신을 봤을 때 원재는 날카로운 송곳이 자신을 콕콕 찌르는 듯해 가슴이 따끔따끔 아파왔었다. 빌어먹게도 그녀는 이미 결혼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중요한 건 그거였다. 그녀는 결혼을 했다는 것. 그런데, 왜 자신의 시선이 그녀에게 자꾸만 가 닿는지 모를 노릇이었다. 빌어먹을. 핸들을 주먹으로 내리친 원재가 기어이 급브레이크까지 밟아 버렸다. 끼이익- 귓가에 울리는 소리가 끔찍할까, 강혜원이 끔찍할까 하는 생각을 접으며 원재가 차에서 내려섰다. 여기가 사실 어디인지 모르겠다. 신호가 파란불이면 방향에 상관없이 무조건 밟았던 것이다. 그래봤자 대한민국 하늘 아래. 그러니까 어디든 상관없다는 의미였다.
‘오자마자 유서준이랑 한 판 뜨더라. 누구 덕에.’
‘물론 한채희의 패. 불쌍한 한채희지, 뭐. 멍이나 안 들려나 몰라.’
원재가 한숨을 터뜨렸다. 주머니를 더듬어 빼어 문 담배에 불을 붙여 깊게 흠뻑 빨아들이고 난 뒤에야 숨통이 좀 트이는 느낌. 사실 지금 원재는 미치기 일보 직전에 도달해 있었다. 호기심은 충족시켜줘야 하는데 그러질 못하고 있으니 어쩌면 아직까지 미치지 않은 게 이상한 일일지 모른다.
한두 번 정도 더 담배를 취하던 원재가 아직 빨갛게 끝을 태우고 있는 담뱃불을 꺼 담뱃갑 속에 집어넣었다. 그리고 이번엔 휴대폰을 손에 쥐고 폴더를 괜스레 열었다 닫는다. 그리고 무한 반복. 그러다 재빨리 전화부를 검색한다. 그리고 찾아낸 이름은 기어코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한채희. 메시지를 보내려다 도로 탁, 폴더를 덮었다.
‘괜찮을까?’
괜히 원재는 가슴이 까맣게 타들어가는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을 휴대폰을 쥐고 있는데, 부르르 스스로 진동을 한다. 화면에 선명하게 떠오른 발신인을 눈으로 읽어낸 원재가 서둘러 통화버튼을 눌렀다.
-너 지금 무덤 파냐?
수화기 건너편, 곱지 않은 유인영의 목소리는 상관이 없었다.
“한채희는…… 괜찮아?”
지금 원재에게 중요한 건 한채희의 안부였다.
-그만해.
“괜찮은지 먼저 말해.”
-너랑 상관없는 일이니까, 신경 끄고 앞으로 자중해. 이 바람돌아.
“나 죽는 꼴 보고 싶어?”
밋밋한 목소리로 동문서답만 이어가는 인영에게 결국 원재가 소리를 질렀다.
-그러시던가.
유인영은 끝까지 밋밋하기만 했다.
“딱 그것만 알려줘, 유인영.”
결국 애걸하게 되는 건 그래서 그가 된다.
-보기 안 좋으니까 그만하자, 명원재. 이거 경고 아냐, 친구로서 충고하는 거야. 집에나 들어가고. 끊는다.
냉정하게 전화는 뚝 끊겨버렸다.
빌어먹을, 빌어먹을, 빌어먹을.
원재는 애꿎은 타이어만 발로 뻥 뻥 뻥 차고 말았다.
서류를 책상 위에 내팽개치듯 탁 던져버린 서준은 갑갑하게 목을 조이고 있는 타이를 잡아끌었다. 책상 위에 던진 서류에는 김희주의 지난 5년간의 행적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특이할 건 없었다. 단지 경제적으로 여유가 전혀 없었다는 것 외엔.
‘넙죽 받더구나. 못난 놈, 제 가치를 땅에 떨어뜨리기나 하고.’
액수는 모른다, 듣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그녀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수표를 건네받았다는 건 사실이었다. 유서준이 아는 한 어머니 민 여사는 없는 얘기를 만들어 내는 등의 거짓말은 절대 하지 않으시는 분이니까. 그가 그 사실을 확신하는 건 민 여사가 거짓말은 하는 것도 듣는 것도 치를 떨게 싫어한다는 사실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었다. 오죽하면 집에는 학교에서 야영을 간다고 하고 친구 녀석 세 명과 여행을 갔던 사실이 들통 났을 때 무려 석 달이나 자신과 말을 섞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을까. 그런 민 여사에게 아무리 선의라고 하더라도 거짓말은 그저 거짓말일 뿐이었다.
어쨌건 대체 그 돈은 어쩌고 이렇게 산거냐는 궁금증이 머릿속을 어지럽혔다. 얼마인 진 몰라도 금액이 꽤 컸을 테니 그렇게 경제적으로 어렵진 않았을 텐데 말이다. 아니 적어도 지금 방 한 칸짜리 월세는 면하고 있을 수 있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이 서준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자신이 모르는 무언가가 김희주에게 있었을 거라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백지 수표’인 유서준을 마다하게 했을 일. 그게 뭘까? 그 당시 그냥 덮어버렸던 일이 그제야 서준을 쥐고 흔들었다.
“오빠!”
벌컥 문이 열림과 동시에 인영의 목소리가 사무실을 울렸다. 다시 무언가를 지시해야하나 말아야하나 서준이 생각을 고민거리로 만들어버리던 순간이었다.
“여기가 네 방이야? 그렇게 허락 없이 들어오게?”
서준이 의자를 오른쪽으로 약간 틀자 문을 닫고 있는 인영의 모습이 시선에 들어왔다.
“지나가던 길에 들렀어.”
자신의 타박에도 인영이 살갑게 군다. 피식. 서준이 알만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웃고 말았다. 유인영이 살갑게 굴어온다는 건 뭔가 바라는 게 있다는 뜻이다.
“놀이터냐, 여기가?”
“그게 아니라 나 부탁 있거든? 어라? 이게 뭐야?”
가까이 다가온 인영이 유서준이 막을 새도 없이 책상 위에 내던진 서류를 손에 들었다.
“너랑 상관없는 거야.”
서준이 팔을 뻗었으나 인영이 몸을 뒤로 슬쩍 피했다. 유인영의 시선은 서류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내 자리에서 일어서는 서준의 얼굴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이리 내, 유인영.”
“정말이네.”
혼자 중얼거리며 인영이 고개를 절레절레 내젓더니 이내 고개를 들어 서준을 직시한 순간, 서준이 서류를 빼앗았다.
“뭐가 정말이네야?”
“혜원이가 얼마 전에 김희주 봤다면서 좀 사정이 어려워 보이더라고 했었거든. 그 때 수표라도 그냥 갖고 있지, 어차피 받았던 거.”
서준이 한 쪽 눈썹만 살짝 치켜떴다. 그런 유서준을 응시하던 인영이 아아 하며 말을 이었다.
“내가 김희주에 대해 말하려고 했었는데, 오빠가 말 못하게 했었던 거 기억나?”
서준이 잠시 생각하는 듯 눈살을 찌푸리더니 이내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렴풋이 언젠가 김희주에 대해 무언가를 말하려던 인영의 입을 자신이 ‘이미 다 지난 일’이라며 막아버렸던 게 떠오른 모양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이어진 인영의 말에 서준은 한동안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 때 하려던 말이야. 김희주, 받았던 그 수표 도로 보내 왔었어, 집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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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짧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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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이 고고씡해주실 분 명단이 늘어나 즐거워요+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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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명절 되세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모두들 힘들게 사랑을 하니 마음이 안쓰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