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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그무트 로우 gigmut low]


나이: 2063년생. 27살.


학력: 세계 연합대학교 공과대학 우주공학 졸업 동대학원 석, 박사


2087년 3월-2088년 2월 화성기지 근무


최연소 우주 스테이션 함장


저서: 우주 스테이션의 물리학적 분석에 관한 고찰 1,2


우주 스테이션의 전략적 분석에 관한 고찰


 


“정말 나무랄 데가 없는 프로필이네. 거기다 최연소 함장! 이런 사람이 주위에 있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얼굴까지 빠지지가 않잖아. 이런 남자들만 있으면 나 같은 애는 어떻게 살라구.”


함께 보고 있던 랑고가 혀를 내둘렀다. 달도 동의한다는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적을 알아야 백전불태(白戰不殆)라지만 이거야 원. 알고 나니 기만 죽는 게 아는 게 병이란 말이 떠오르며 후회의 감정이 몰아쳤다. 더구나 이런 간단한 프로필로는 로우함장의 약점 같은 건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눈물을 머금으며 ‘고급정보-1000 우주화’를 클릭했다. 뾰로롱. 소리와 함께 화면이 다른 화면으로 넘어갔다.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샌프란시스코 출생. 부 프란츠 로우, 모 스잔 할런은 2074년 2차 우주전쟁으로 사망. 우주 스테이션의 기술적 진보에 한 획을 그은 스벤 로우의 손자.


우주 연합군의 소령 지위를 갖고 있음.


스타 워즈 9(우주전쟁 rpg 시뮬레이션 게임) 마니아. 한국 김치 마니아(한국음식을 매우 좋아함). 신장: 189cm 체중 79kg 티셔츠 XL 허리 30 신발 300을 신음.


 


“뭐야. 달랑 이거면서 1000우주화를 받아먹은 거야?”


달은 달랑 세 줄의 헐렁한 정보에 화가 나 컴퓨터 자판을 신경질적으로 중얼거렸다. 속은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를테면 사람들에게 밝히기 싫은 약점 같은 게 한 두 가지 정도는 있어줘도 되는 거 아니냐구. 이를테면 우주무좀이 있다거나, 그 긴 머리가 대머리라거나 하는 것 정도는 말이야.


“그런데 달, 대체 왜 일하려는 거야. 핑크 우주복 산 걸로 엄마가 용돈 끊겠대?”


“우리 엄마가 그렇게 쪼잔한 사람인 줄 알아?”


“그럼 대체 왜? 먹는 것만 좋아하고 공부하기 싫어하는 너처럼 게으른 애가 매점을 하겠다는 거야? 레가 할머니 말처럼 힘든 일이야.”


“도와줄 거 아니면 신경 끄시지.”


랑고의 냉혹한 평가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달은 차갑게 말한 후(그녀는 뒤끝이 있었다) 핸드폰에 로우 함장의 정보를 입력하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다시 스페이스 로모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함장의 동선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했다. 무조건 정보를 하나라도 얻는 게 중요했다. 그렇게 레가할머니와 약속한 일주일의 아침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헉헉. 숨을 몰아쉬며 달은 로우 함장을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홈페이지에는 함장의 동선은 나와 있지 않았다. 덕분에 하루 종일 함장실로 의료실로 기계실로 쫓아다녔지만 낭패였다. 발에 모터라도 단 건지 동에 번쩍 서에 번쩍이었다. 덕분에 하루가 아무 소득 없이 지나갔고 달은 하는 수 없이 새로운 계획을 짜야 했다. 첫 번째 계획은 무조건 찐드기처럼 달라붙는다, 였는데 만날 수 없으므로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여기 로우 함장님 계신가요?”


“함장님께선 방금 지나가셨는데.”


“어디로 가신다는 말은 못 들으셨어요?”


“저중력실을 지나서 물류국과 기술국을 돌아보신다고 하던 걸.”


“함장님은?”


“달, 한 발 늦었어. 방금 지나가셨거든. 얼른 쫓아가 봐.”


“킥. 이런. 또 한 발 늦었는데. 좀 더 서둘러 보라구.”


하루 종일 우주선의 직원들과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술래잡기를 하는 것도 아닌데 눈 감긴 술래처럼 하루 종일 함장을 찾아 뺑뺑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급한 일인가 했던 직원들은 나중에는 함장을 찾아대는 달을 보면 킥킥댈 정도였다. 그러던 중 함장을 찾아 역무실을 찾은 중에 두 번째 계획은 우연히 세워졌다.


 


“헤이, 레진. 함장님하고 저녁에 붙기로 했다며. 누구한테 거는 게 좋겠어. 당신 생각은 어때?


“요번 주는 초과 근무시간이 많아서 연습이 모자랐어. 더구나 우주 전쟁 시리즈라면 함장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잖아. 돈 잃기 싫으면 함장님께 거는 게 좋을 거야.”


역무원이 나누고 있던 이야기에 그녀는 귀를 쫑긋 세웠다.


“하긴. 함장님은 이 악물고 하더라. 이건 극비인데.”


레진은 좌우를 확인하고는 목소리를 죽였다.


“함장님이 우주 전쟁 때 우주 해적에게 부모를 잃었대. 그래서 우주 해적이라면 이를 간다더라구. 왜 저번에도 무기보안국에 갔을 때도 엄청 철두철미했잖아. 언제 전쟁이 일어나도 아무 문제가 없을 정도로 관리되잖아. 내 친구가 POT사에서 일하는데 거긴 이 정도는 아니라더라.”


극비? 1000우주화 짜리 정보가 제 값은 한 모양이네. 그런데 이 얘긴 1000우주화를 클릭하기 전에 알았다면 좋았을텐데. 쩝, 아쉬운 듯 혀를 차는 달이었다. 조용한 역무실에 그녀의 혀 차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구야?”


“아, 안녕하세요. 달이에요.”


“여긴 무슨 일?”


그녀가 무슨 말이라도 들었을까봐 잔뜩 긴장한 기색이 역력한 역무원이었다. 달은 아무 것도 못 들었다는 듯 아무 것도 몰라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뇌는 벌써 핑핑 돌아가고 있었다.


“뭐 함장님이 계신가 해서요.”


“보시다시피 안 계시다.”


“그런데, 레, 레진?”


그녀는 일부러 명찰을 확인하고는 입을 열었다.


“왜?”


“스페이스 워 게임은 언제부터 하는 건가요? 저도 걸어도 되나요?”


달의 표정은 아무 것도 모르다는 듯 청순한 얼굴이었다.


“무, 무슨 소리냐?”


“어쩌지, 던. 들었나보네.”


애써 부인하는 사람이 무색하게 간 작게 생긴 레진은 벌써 자포자기의 말투였다.


“우주게임부터 우주 전쟁까지요.”


“달 리, 이건 극비야. 너도 입 다물도록 해라. 어디 가서 절대 얘기하면 안 돼. 알겠지?”


“그럼요. 함장님 앞에선 절대 얘기하지 않을게요.”


달은 생글생글 웃으며 대답했고 두 사람의 얼굴은 순간 석고처럼 하얗게 질렸다. 달의 얘기하지 않는다, 는 말이 얘기할지도 몰라요 라고 들린 탓이었다.


“절대야, 절대. 알겠지?”


초조한 얼굴이 된 레진이 그녀의 손을 잡은 채 절절한 어조로 부탁했다. 거의 애걸에 가까운 말투였다. 달은 레진의 손을 꼭 잡으며 씨익, 웃었다. 순간 레진은 몸이 오싹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빙고.’


“네 그럴게요, 레진. 그런데 스페이스 워 게임은 어디에서 한다구요?”





“네가 여긴 웬일이지?”


“레진이 몸이 좋지 않다면서 저에게 양보하기로 했어요.”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걸 들은 레진이 피로한 얼굴을 해보이며 함장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런 레진의 모습을 보며 함장은 인상을 썼다.


쉬는 시간이라 그런 걸까. 로우 함장은 흑청색 머리를 제멋대로 풀어두고 있었다. 윤기 있게 흘러내리는 머리칼에 달은 정신을 뺏겼다. 한 번도 보지 못한 머리색이 매혹적이었다. 때문에 함장의 대답에는 한 템포 늦게 대답하게 되었다. 역무원 휴게실엔 대결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주변을 살피던 함장이 그녀의 팔을 끌고 밖으로 나왔다.


“무슨 꿍꿍이지?”


흑탄처럼 검은 눈이 의심에 차 그녀를 바라보았다. 하루 종일 자신을 찾아다닌다는 직원들의 말에 거의 피해 다니며 하루 종일 근무를 했다. 그로써는 그녀가 도대체 자신을 이렇게 귀찮게 할 일이 뭔가 싶다.


저도 몰래 한 걸음 뒤로 물러선 그녀는 졌다는 느낌이 들어 힘주어 한 발짝 앞으로 나갔다. 하지만 189나 되는 함장이었기에 170을 겨우 넘기는 그녀에게는 그래도 올려다보는 위치였다.


“도전을 받아주세요.”


“도전?”


“스페이스 워 9로 결판을 내자구요. 내가 이기면 하얀섬 매점을 제게 넘기시는 거예요?”


아, 그 이야기였어? 그는 이미 머릿속에서 지운 이야기를 하는 달을 새삼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난 이미 결정했고, 결정은 번복하지 않아. 새로운 경매에 관해서 서류를 작성중이야.”


“사람이 하고 싶은대로만 하고 살 수 있나요. 살다보면 가끔씩 의견을 수정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딱 그쪽 얘기군. 그렇게 하고 싶은대로만 살 순 없어. 포기할 건 포기할 줄 알아야지.”


“이번만큼은 그러고 싶지 않아요.......설마, 나한테 질 것 같아서 그런 건 아니죠?”


“훗.”


함장은 그 정도 도발쯤이야, 하는 느낌으로 코웃음을 치고는 돌아섰다. 그녀의 얕은 도발이 눈에 훤히 읽혔다. 그래서 그녀를 무시한 채 구석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던 레진을 불러 재꼈다.


“레진 버로, 꾀병 부리면 다음부터 안 끼워줄 거야. 얼른 준비하라고.”


“저, 그, 그게.”


레진은 대답하지 못한 채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할 수 있는 한 눈을 부릅뜨고는 레진을 째려보았다. 하기만 해 봐요, 당장 일러주겠어요! 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함장님, 아무래도 레진은 이만 쉬어야할 것 같군요. 그럼 즐거운 시간 되십시오. 저와 레진은 이만 사라지겠습니다.”


두 눈빛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던 레진이 입이라도 열까봐 걱정이 되었는지 곁에 있던 던이 레진을 데리고 부리나케 사라졌다.


“케지농, 500 우주화. 함장님, 달이랑 한 번 해보십시오. 아까 해봤더니 꽤 수준급이더라구요. 함장님에겐 안 되겠지만 레진보다야 훨씬 나은 수준이더라구요.”


꿈틀. 총무를 자청하여 내기장부를 정리하던 새무의 말에 로우 함장의 눈썹이 마음에 들지 않는 듯 꿈틀거렸다. 달은 이래도 안 하면 당신은 멍청이야 하는 눈빛으로 그를 쏘아봤다. 그는 달의 도발적인 시선 따위는 신경쓰이지 않았지만, 결국은 대답하고 말았다.


“좋아. 각오하라구.”


챙, 두 눈빛이 허공에서 강하게 부딪쳤다. 달은 비장한 눈빛으로 헬멧을 머리에 착용했다.


 


“몇 시간째라구?”


“다섯 시간째. 함장님은 칼 취침하시는 분이 잠도 잊은 채 저러고 계신거야.”


“근데 달도 꽤 하는 것 같지 않아. 우주 전쟁에선 함장님을 따라갈 사람이 없었는데 말야. 더구나 요번 시리즈는 더욱 고난이도라고 소문이 자자하잖아.”


“그러니까. 나도 몇 번 해보고서 어지러워서 그만 뒀거든. 그런데 진짜 저 두 사람 독하다. 어떻게 저걸 다섯 시간 째 하고 있냐.”


“어떤 의미에선 대단하지?”


“그래, 대단하다 대단해.”


‘다섯 시간 째 붙어 있는 당신들도 꽤 대단하거든.’


뒤늦게 소식을 듣고 달려온 랑고는 커다란 화면 앞에서 미친 듯이 게임을 하고 있는 둘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관중에 놀라 중얼거렸다. 달을 놀려 먹을 거리라도 하나 생길까 해서 쫓아왔지만 그에게는 시끄럽고 지루할 뿐이었다.


“피융, 피융. 휘이이이익, 콰과과광.”


요란한 효과음과 함께 서로의 우주선은 거의 만신창이었다. 20여대의 소부대로 시작한 우주선들은 이제 서로 한 대씩밖에 남지 않았다. 체력 게이지는 로우 함장(132/999)이 달(98/999)에 비해 약간 높았지만 그렇다고 달이 불리한 건 아니었다. 현재 로우 함장의 우주선 한 쪽은 달의 공격에 의한 데미지가 점점 커지는 중이었다. 5분, 아니 적어도 3분 안에는 결판이 날 상황이었다.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는 박빙의 상황이었다. 게임을 보고 있던 사람들이 드디어 결판이 나는구나, 하는 기대감으로 점점 몸을 앞으로 내밀었다. 슈우우웅. 서로가 서로에게 쏜 레이저 광선이 시시각각으로 서로에게 다가가고 있었다.


“삐요오오옹.”


그 때, 알 수 없는 효과음과 함께 화면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시뮬레이션 게임을 하고 있던 둘은 물론 방 안의 모든 사람들이 움직임을 멈추었다.


“함장님! 대체 여기서 뭐하고 계신 겁니까?”


부함장이었다. 뾰족한 턱만큼이나 뾰족한 성격이었다. 그가 투명한 안경알을 만지며 휴게실 안을 돌아보자 자유시간인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하나 둘 슬금슬금 사라지기 시작했다.


“부함장. 한가한가 보군. 상관의 취미생활까지 방해할 정도인 걸 보면.”


채 가라앉지 않은 함장의 목소리는 분노 때문에 더욱 쩌렁쩌렁했다. 이제 1분, 아니 30초만 있어도 결정이 날 판이었다. 그렇다면 맹랑하고 엉뚱한 저 아가씨의 코를 눌러줄 수 있었는데. 아니, 사실은 반반이었다. 오랜만에 호적수를 제대로 만난 기분이었기에 아쉬움이 더 컸다. 함선에서는 거의 탑에 들 정도의 실력이었다.


“함장님. 매뉴얼 12장 3조. 함선에서의 취침시간은 적어도 5시간 이상으로 한다. 잊으셨습니까. 제가 알기론 앞으로 5시간 후엔 함장님의 근무시간이 시작되는 걸로 기억합니다. 뭐, 근무시간에 취침에 하실 게 아니라면 지금 즉시 주무시는 게 좋겠죠?”


“자네가 지나친 과잉충성으로 오프(off)시키지 않았다면 난 이미 맘 편히 자고 있을 걸세. 앞으론, 오프 시키기 전에 게임 상황에 대해 한 번 더 살펴보고 끄도록. 알겠나?”


“네. 뭐, 그러도록 하죠.”


함장의 고함에 가까운 외침에 부함장은 흠, 하고 헛기침을 한 후 뒤돌아 재빨리 사라졌다. 한 편 달은, 헬멧도 채 벗지 못한 채 털썩 주저앉아 숨을 헉헉댔다.


억울하다. 잘하면 이길 수도 있었는데. 승률의 반반 정도였다. 처음의 열세에 비교하면 생각할 수 없을만큼 승리에 가까이 다가갔었는데. 그녀는 그녀의 복수 노트에 부함장 꼬메리오의 이름도 적어 넣었다.


그 때 커다란 손이 그녀의 눈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그 손을 잡고 힘껏 자리에서 일어섰다. 자신을 내려다보는 함장의 머리에 땀이 촉촉이 배어 있다. 그 모습은 묘하게 관능적이었다.달이 눈이 함장의 검은 동공 속에 빛나는 황금빛 눈과 마주친 순간, 불꽃이 파바박 튀었다. 알 수 없는 이상한 느낌에 그녀는 함장의 손을 떨쳐냈다.


“제법이군.”


“함장님두요.”


“어때? 이쯤에서 포기하는 게?”


“무슨 소리예요. 금방 전까지 팽팽했다구요. 누가 이겨도 이상할 게 없는 판이었다는 건 함장님도 아실 거예요. 전 포기 안 해요. 게다가 함장님도 이대로 그만둔다면 찝찝할 걸요. 승부를 내야죠. 어때요? 내일 다시 하는 게?”


“좋아. 도전을 받아주지.”


쨍. 눈빛에 힘이 있었다면 서로를 상처 입힐 정도로 강렬한 두 눈빛이 허공에서 마주쳤다.


 


어느 날과 달리 평온한 일상이었다. 투명한 천창 위로 보이는 별들도 다른 때와 다름없이 빛나고 있었다. 점심을 먹은 후의 오후처럼 역무실 안은 나른했다. 직원들도 다른 날과 달리 한 마디도 없이 컴퓨터에 고개를 박고 있었다.


로우는 하품을 꾹 참으며 며칠 후에 있을 첫 도킹 예약을 살펴보고 있었다. 출발지는 마르스지구였고 운송물품은 함선의 자가발전에 필요한 연료원의 운송이었다. 함선 출항 보름 만에 처음 있는 도킹이었다. 그는 왠지 가슴이 벅차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이제야 제대로 우주함선다운 일을 하는 게 아닌가. 하지만 곧 인원을 확인하던 그의 얼굴이 확 구겨진다.


‘도슨.’


낯익은 이름에 그는 이를 갈았다. 반갑지 않은 얼굴을 한달만에 보게 되는 셈이었다. 그 순간 어디선가 들려온 커다란 소리가 정적을 깨트렸다.


“드르르러렁. 드르렁.”


덩달아 우탕당, 하는 소리와 함께 그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서 일을 보고 있던 던이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는 일이 발생했다. 순간 구겨졌던 로우의 인상이 한층 더 구겨졌다.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순간 꾸벅꾸벅 졸던 역무원들의 잠은 순식간에 달아났다.


“레진!”


함장의 호명은 레진에겐 불행이었고 다른 역무원들에게는 다행이었다. 레진은 손을 달달 떨기 시작했고, 다른 역무원들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즈넉했던 역무실 안이 순식간에 시베리아 벌판처럼 썰렁해졌다.


“네, 네, 함장님.”


“블랙으로 8잔, 되도록 빨리.”


“네, 네?”


금방이라도 호통이 날아올 것 같았던 레진은 뜻밖의 내용에 놀라 어버버하게 대답했다.


“못 알아들었나? 커피 말이야. 블랙으로 뽑아서 전부 돌리라구.”


“네? 네. 알겠습니다.”


레진이 귀신에라도 홀린 듯 사라졌고, 로우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레진을 제외한 6명의 직원들은 휴우,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자리에 앉았다. 그 때, 일침 같은 로우의 말이 그들의 귀에 날아들었다.


“오늘까지야. 내일부터 근무시간에 조는 사람은 당장 지구로 보내버리겠어.”


“그럼 제발 오늘 결판 좀 내주십시오. 자그마치 5000우주화나 걸었던 말이에요, 함장님. 잠을 자려고 해도 눈이 번쩍 뜨인다니까요.”


“그렇다니까요. 저도 3000우주화나 걸었어요. 함장님 제발 힘 좀 내주십시오. 네?”


눈치 없는 역무원들은 아우성을 쳤다. 어느 새 달과 로우 함장의 대결이 시작된 지 5일째였다. 요즘 스페이스 로모의 최대 관심사는 온통 달과 함장의 대결에 있었다. 그래서 아무리 히틀러보다도 무서운 함장이었지만 직원들은 휴게실로 몰려들었고, 내기의 판돈은 늘어나는 사람만큼 점점 불어나는 추세였다. (부함장의 잔소리 아닌 잔소리로 인해) 하루의 게임 시간은 3시간이었고 그 시간 동안 결말이 채 나지 않아 벌써 4일이나 끈 참이었다.


“그만. 거기까지. 이제 다들 일해.”


순간 싸늘한 음성이 역무실을 가득 채웠다. 차가운 눈이 자신을 일별할 때마다 직원들은 움츠려들었다. 하지만 정작 로우는 검은 눈동자를 빛내며 굳은 결심을 하고 있었다.


‘이러다간 업무가 엉망이 되겠어. 오늘은 정말 결판을 내야겠군.’



“오, 이게 누군가, 헬멧양.”


“할머니. 할머니까지 그러기야.”


얼굴은 찌푸리며 달은 레가할머니의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할머니, 일주일만 연장시켜 주면 안 돼?”


“안 되지. 약속시간은 일주일이었잖아.”


“내일까지 결판이 안 날지도 모르니까 그렇지.”


달은 로우 함장보다 한가하다는 점을 이용해 부지런히 연습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그녀에게 대적할 만한 사람이 없었다. 랑고는 게임을 좋아하지만 게임치였고, 마땅한 사람들은 근무 중이었다. 그녀는 1인용으로 게임을 플레이하고 부지런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공지능은 보통의 수준이라 벌써 몇 번이나 깬 후였다.


때문에 그녀는 마음이 조급해졌다. 할머니와 약속한 일주일이 바로 내일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 이기지 못한다면 할머니와의 약속은 무산될 가능성이 컸다. 그녀의 마음이 불안해졌다. 처음에는 진심 반 장난 반이었지만 지금은 무엇보다도 하얀섬 매점이 욕심났고, 더욱이 함장에 대한 반감은 더욱 커져갔다.


“할머니 손자를 욕하긴 그렇지만, 할머니 손잔 정말 별로야. 이 예쁜 머리를 보고 겨우 하는 말이 헬멧이 뭐야.”


“꽤 그럴 듯한 별명 아니니.”


“에이. 말도 안 돼. 아무리 팔이 안으로 굽는다지만 할머니까지 이러기야.”


그녀의 머리 스타일은 말하자면 바가지머리였다. 눈썹 위로 5mm 쯤 올라간 앞머리는 눈썹을 따라 귀 부분으로 자연스레 내려가 동그랗게 말린 단발머리였다. 둘째 날, 게임이 결말이 나기도 전에 부함장에 의해 게임이 중지된 직후였다. 게임용 헬멧을 벗는 그녀를 보던 함장은 그녀를 보고 무표정하게 중얼거렸다.


“헬멧도 안 벗고 뭐하는 거야. 이런, 벗은 거였나?”


“뭐라구요?”


“헤어스타일이 딱 헬멧이군. 너무 비슷해서 안 벗은 줄 알았지 뭐야. 이런, 미안하게 됐군.”


정말 몰랐다는 듯 함장은 사과의 말을 중얼거렸지만 듣고 있던 사람들은 전부 웃음을 터트렸고, 그녀의 얼굴은 부끄러움과 분노 때문에 붉게 달아올랐다. 사람들은 그 다음 날로 그녀만 보면 헬멧이라고 불러대기 바빴다. 더욱이 믿고 있던 레가할머니까지 그렇게 불렀을 때 그녀는 가슴 저 깊은 곳에서부터 끓어오르는 분노감을 느꼈다. 치사한 인간. 밴뎅이. 좁쌀영감. 싸가지. 냉혈인간. 재수탱이.


“이크, 할머니 시간 다 됐다. 오늘 결판이 안 나면 할머니가 며칠 연장시켜 주는 거야. 알았지, 약속! 그럼 다 다녀올게.”


달은 폴짝 폴짝 뛰며 레가 할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멀어졌다. 이윽고 역무원용 휴게실 앞에 다다른 그녀는 멈춰서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오늘은 반드시 이겨야 해. 그래서 그 잘난 척 하는 코를 납작하게 해주는 거야. 찍소리도 못하게 해주자. 달. 최선을 다하는 거야. 알았지?”


그런 그녀의 눈빛이 로우에 대한 분노로 더욱 반짝였다.


댓글 '3'

Junk

2009.01.14 15:14:38

헉, 정말 오랜만이시네요. 로우가 남주죠?

하누리

2009.01.14 15:16:26

달이 이길거 같아요..ㅋㅋ

ssuny

2009.01.14 17:51:25

오 저 언제 오시나 기다렸서요~
쭉 오시길 부탁 드려요 *.*
달 이름 참 예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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