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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락도 없이 웬 일이야?”
인영은 혜원이 찾아왔다는 소리에 막 2층에서 내려오던 참이었다. 소파에 앉아 휴대폰을 손에 쥔 채 무언가를 곰곰 생각하던 혜원은 인영의 목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방긋 웃으며 휴대폰을 가방에 넣었다.
“어머님들 오늘 모임이잖아.”
“그래서 심심해서 행차하셨다?”
인영의 비꼬는 말에 혜원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배시시 웃는다.
“넌 팔자 좋은 백수일지 몰라도 난 마감이거든?”
“그런다고 밥도 안 먹고 화장실도 안 가겠냐?”
혜원이 특유의 톡 쏘는 말투로 툭 내뱉는 말을 귓등으로 흘리며 인영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
“뭐, 밥은 먹어야지. 안 그래도 오늘 새언니가 별거별거 잔뜩 해놨거든.”
“잔뜩.”
어딘가에 악센트가 들어가야 할 말이 꽤나 단조롭게 들려왔다. 탓에 인영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 인영의 시선에 잡힌 혜원의 입가에 배부른 고양이의 앙큼한 미소가 괜히 신경을 긁어댔다.
“모임 장소 저번에 너희였으니까 이번엔 우리인 거 알지 않아?”
“아, 맞다. 그랬지.”
이제 생각났다는 듯 혜원이 말했지만 인영은 속지 않았다. 그러려면 좀 더 극적으로 말끝을 올렸어야 했다. 저렇게 일정한 톤으로 심드렁하게 말하는 게 아니라.
“강혜원, 바른대로 대. 어머님들 모임 오늘 우리 집이었던 거 빤히 알면서 왔다는 건 네가 오늘 모임 장소가 우리 집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는 말이잖아?”
인영이 평소답지 않게 꽤나 날카로운 어조로 물었다. 흥청망청 생활할 것 같은 혜원의 일상은 운동이다, 무슨 학원이다, 친구를 만난다며 아침 일찍 집에서 나와 밤늦게 돌아가는 걸로 끝난다. 그렇게 집에 붙어있는 시간은 없으면서도 어른들 모임날짜는 물론 돌아가는 순서까지 정확히 기억한다. 그렇다고 그런 자리를 좋아하냐면 그건 또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죽자고 싫어해 인영이 혜원에게 모임 있는 날 집에 오라고 하면 이 핑계 저 핑계로 또 잘도 빠져나가곤 했으니까. 그런 강혜원이 모임 있는 날 인영의 집에 연락도 없이 들이닥친 것이다. 그러니까 뭔가 인영은 모르는 게 있다는 말이다.
“왜 이리 날카로워?”
“바른대로 대라고. 넌 알았어, 오늘 모임 장소가 바뀌었다는 걸.”
인영이 단정 지었다.
“뭐 난 그저 호텔에서 제공하는 점심에 스파, 피부 관리 또 뭐가 있더라? 암튼 호텔 패키지 쿠폰이 오늘까지라고 엄마한테 귀띔했을 뿐이야.”
“그래서 급으로 어머님들 약속 장소 변경 된 거라고? 우리 새언니는 골탕 좀 먹고?”
“그 소스를 엄마가 사용할 줄 낸들 알았나?”
혜원이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라는 표정으로 활짝 웃었다.
“그래, 널 누가 말리니.”
인영이 두 손을 들었다.
“그래서 한채희는?”
“도시락 싸들고 오빠한테.”
“우리도 밥 먹자.”
혜원의 말에 인영이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30분 정도면 하던 거 마무리하고 넘길 수 있으니까 좀 참고 기다려.”
인영이 뒤도 안 보고 2층으로 올라가고 나자 혜원은 소파에 몸을 좀 더 파묻으며 가방에서 다시 휴대폰을 꺼냈다. 몇 번의 빠른 손놀림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꾹꾹 눌러대던 혜원의 입가에 알 수 없는 미소가 걸린 건 그녀가 다시 휴대폰을 가방 안에 넣고 난 뒤였다.
똑똑.
조심스러운 노크소리에 보고 있던 서류에서 고개를 든 서준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점심때 바빠요?’라며 전화를 걸어왔던 채희가 벌써 온 모양이라는 생각 탓이었다. 가끔 밖에서 먹는 음식이 물릴 때 혹은 집에서 만든 무언가가 먹고 싶을 때 불쑥 전화를 걸어 도시락을 부탁했던 적은 있어도 채희가 스스로 도시락을 싸오겠다고 한 적은 없었다. 그녀가 자신의 의지로 먼저 움직였다는 것. 서준은 그게 좋았던 것이다.
“왔어?”
성큼 걸어가 사무실 문을 열었던 서준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미안, 누구 기다리고 있었던 거야?”
불안정하게 흔들리는 목소리. 서준의 시선이 차가워졌다.
“돌아가십시오.”
점심시간이라 비서실 직원들을 서준이 내보낸 참이었다. 점심을 먹는 동안 한채희와 단 둘이 있고 싶어서 쫓아냈다는 게 좀 더 정확한 설명이었다. 그걸 후회하게 될 일이 생길 줄은 그도 몰랐다.
“잠깐만. 잠깐이면 돼.”
서준이 어이없다는 시선으로 불청객을 쳐다봤다. 그리고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더니 결국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내저으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 뒤를 희주가 따랐다. 문을 살짝 열어둔 채.
“5분.”
서준이 소파에 털썩 주저앉으며 딱 잘랐다.
“시간 내줘서 고마워.”
희주가 조심스레 꺼낸 말을 흘려들으며 서준이 손목에 찬 시계를 확인했다. 35초 지났다.
“정말 어려운 부탁이란 건 알아. 해주고 싶지…… 않아 하는 것도 알아, 나. 하지만 정말 당신밖에 없어. 매달릴 곳이 당신밖에 없어.”
희주의 목소리는 처음부터 떨렸다. 딴에는 그걸 숨기려는 목적이었는지 천천히 띄엄띄엄 말을 건네 왔지만 서준의 예민한 청각은 놓치지 않았다. 그래서 중간에 희주의 눈에서 눈물이 흘렀을 때에도 서준은 놀랍지 않았다. ‘제발’이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은 희주의 부탁이 그래서 서준의 마음을 흔들리게 했다.
“할 말이라는 건 그게 전부입니까?”
하지만 넘어가지 않을 것이다. 서준이 다짐한다.
냉정한 서준의 말에 놀라 눈물이 멈춰버린 희주의 시선이 오롯이 서준을 향했다.
“서준…….”
“아직 남으셨다면.”
희주의 시선을 무심하게 받아내던 서준이 다시 한 번 시계를 힐끔거렸다.
“시간은 1분 40초가 남았습니다.”
그리고 희주는 쳐다보지도 않은 채 자신이 재고 있던 시간을 알려주었다.
“나……, 정말 당신밖에 기댈 데가 없어. 이번만……, 이번만 도와줘. 응? 나도 당신한테 이러는 거 죽기보다 싫은데……, 당신한테 이러는 거 정말 미안한데 나 좀 도와줘.”
희주가 서준의 앞에 또 다시 무릎을 꿇었다. 말이 끊어질 듯 이어진 건 그녀가 쏟아내는 눈물 탓이었다. 자신을 붙잡고 애원하는 희주를 보던 서준이 저도 모르게 주먹 쥔 손에 힘을 주었다. 짧은 손톱이 손바닥에 꽤 아프게 박혀오지만 서준은 그 아픔을 느낄 겨를이 없었다.
“김희주.”
그의 부름에 목메어 울던 희주가 고개를 들어올렸다. 여전히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고 있었다. 서준이 저도 모르게 손으로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그리고 눈물을 닦아주었다.
“그 아이……, 내 아이야?”
찰칵.
조용히 사무실 문이 닫혔지만 서준도, 희주도 알아차리지 못했다.
*
짧게 한 편 올리고.
주말 휴무할게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쟁여놔야지-_-a)
*
누구 아이일까요?ㅋㅋㅋ
(예전에 제 별명이 사악누리였었;;;)
*
사실, 저는 쓰다 보면 얘기가 처음 생각과 다른 방향으로 잘 튑니다;;
저번편에는 못된 시어머니였는데, 갑자기 튀어나온 혜원이 바톤터치 해버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