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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처구니가 이슈넬 산맥 너머로 날아간 듯 한 표정은 그만 둬 오라버니."
캐롤린이 차를 따르며 말했다. 드물게 날씨가 좋았고 드물게 캐롤린과 펜릴의 여유 시간이 난 오후, 두 사람은 약속이나 한 듯 서궁의 제이스와 차를 마시기 위해 왔던 것이다.
"무슨 일 있어?"
푹신한 러그 체어에 앉은 제이스의 창백한 얼굴이 우아하게 차를 따르고 있는 캐롤린에게 가 닿았다. 캐롤린은 동생에게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네가 직접 오라버니한테 물어 보렴. 나는 정말 어처구니가 이슈넬 산맥 너머로 날아가서 대답 못해주겠다."
"무슨 일이야 형?"
몸이 약해 항시 서궁에 주치의와 웅크려 있는 제이스는 그런 사정 때문인지 호기심이 많았다. 어쩌다 오는 손님들에게 바깥 동태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는 펜릴은 여동생을 죽일 듯 노려보았지만, 무시하듯 동생에게 과자를 권하는 캐롤린과 눈앞의 과자는 잊고 자신을 향해 눈을 빛내는 병약한 남동생의 눈빛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다.
"청혼했는데 거절당했어."
잠시 침묵
"농담이겠지? 형 정도면 일등. 아니 특등 신랑감인데. 신체 건강하지, 뒷배경 탄탄하지, 지위도 있지, 재력도 있지. 게다가 형은 어머니를 닮아서 미남이잖아. 도대체 이런 특상급 신랑감을 거절한 사람이 누구야?"
"아키텐."
또 잠시 침묵
"날씨 좋네 누나. 오늘은 상태도 좋아서 산책도 할 수 있을 것 같아. 같이 나갈까?"
"같이 나가는 건 좋지만 현실을 도피해선 안돼요. 미안하지만 어처구니가 이슈넬 산맥에 넘어간 우리 오라버님께서 정말로 아키 언니한테 청혼을 했거든."
제이스는 누이를, 그리고 형을 차례로 돌아보았다.
"진짜?"
"진짜. 지금 한 42번째 퇴짜를 맞고 어처구니가 이슈넬 산맥에 넘어간 얼굴을 하고 있는 거야."
제이스는 형을 유심히 살폈다. 정말 어처구니가 이슈넬 산맥에 넘어간 것 같은 멍한 얼굴이다. 그리고 캐롤린으로 말할 것 같으면 없는 소리를 지어서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렇지만 믿어지지 않았다. 나가면 아무나 골라잡아서 결혼할 수 있을 형이, 하필이면 고른 사람이 나가면 아무나 골라잡을 수 있는. 그래서 유일하게 자신과 결혼할 수 없는 여자라는게 말이다.
아키텐 유스타니아가 누군가? 황실의 친인척이기 이전에 크레이안 문관 계보에 한 획을 긋고 있는 유스타니아가의 수장이다. 솔직히 말해서 황가에 본격적으로 대립하려고 한다면 가장 위협적인 가문일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가문의 수장이 그렇게 순순히 '황태자의 신부가 되겠어요' 하겠냔 말이다. 가문을 통째로 황가에 넘겨준다는 이야기와 같은데.
"진심... 은 아니겠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의 남동생을 바라보며 펜릴은 쓰게 웃었다.
"글쎄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자신조차 알 수 없다는 편이 맞았다.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촌의 결혼식 날, 역시 가장 친한 친구이자 사촌의 모습이 자신에게 강렬하게 와 닿았고, 그는 청혼을 했다. 그 누구도, 청혼을 한 그 자신도 이해할 수 없었던 청혼을.
그리고 계산을 했다. 얼음의 심장을 가졌다는 소문의 사촌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재기 넘치는 사촌은 그의 청혼을 장난으로 치부해서 말끔하게 상황을 정리했고 그 반응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거의 일치했다.
그 이후로 그는 계속 티 나게 청혼을 넣었고, 그녀는 계속 무시하고 있었다. 이것은 그가 예측했던 상황과 100% 일치하는 것이고 때문에 그런가 보다. 라고 받아들여야 했다.
하지만 이 뭔가. 정말 캐롤린의 표현대로 '어처구니가 이슈넬 산맥에 넘어갈 것 같은' 기분은 무엇일까?
모든 것은 그가 예측한 대로 순조롭게 돌아가고 있었다. 결혼에 대한 압박을 넣던 늙은이들은 잠시 조용해졌다. 딸의 신상명세를 은근슬쩍 흘리던 귀족들의 졸렬한 수법도 수그러들었다. 그가 생각한대로 주변은 조용해졌다. 그렇다면 그가 노리던 대로 마음의 평화를 찾는 게 정상이었다.
그런데 마음의 평화가 아니라 그조차도 알 수 없는 이 심란함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거란 말인가?
"진심이라면 응원해줄게. 그렇지만 그게 아니라면 아키 누나나 형이나 양쪽 다 불쌍해."
불쌍할 것까진 없었지만 조금 미안하긴 했다. 18년간 서로를 알아왔던 두 사람이니만큼, 아키는 이것이 자신이 하는 최후의 발악이자 응석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자신의 귀찮은 공세를 받아주는 것도 어느 정도 불쌍하게 생각해서일수도...
"그거야!"
"오라버니. 티 테이블을 세게 내려치지 마세요. 차가 쏟아졌다구요."
투덜거리는 여동생의 말을 무시하고 펜릴은 결론을 내렸다. 결국 자존심 문제라고. 자존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