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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쳤네."
"황실에 대한 무례한 언동은 삼가줬으면 한다만."
아키텐이 차를 한 모금 마시며 간단히 논평했다. 마히르는 한치 흔들림도 없이 우아한 모습으로 차를 마시고 있는 쌍둥이 누이를 흘끔 바라보았다.
잘도, 이 바늘 끝도 들어가지 않을 것 같은 여자한테 청혼을 했다고, 마히르는 속으로 고개를 저으며 생각했다. 게다가 그 누구보다 더 아키텐을 잘 아는 펜릴이 아닌가.
황실의 일원 중 하나는 아카데미아 출신이어야 한다는 전통에 따르기 위해 펜릴이 자신의 아버지의 뒤를 이어 아카데미아에 입학했을 때의 나이는 열 한 살이었다. 그리고 집안의 전통과는 상관없이, 입학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던 유스타니아 가문의 쌍둥이가 아카데미아에 입학 한 것도 열 한 살 때의 일이었고.
황실의 전통에 먹칠을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던 펜릴과 아카데미아에 들어오자마자 교칙과 학문이라는 아카데미아의 환경에 젖어 열심히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던 아키텐이 죽이 맞게 된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가문과 그 영향력이나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무심했던 자신과 달리, 아키텐은 그 어린 나이에도 가문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으니 황실의 황자였던 펜릴과 마음이 맞았던 것도 당연했고.
때문에 18년간 우정을 지속할 수 있었던 거겠지. 이 까다로운 여자와 말이야.
'우정' 까지는 이해했다. 마음이 맞고, 처지가 비슷해서 서로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는 두 사람이었으니 우정이 싹트는 것은 숨 쉬는 것처럼 자연스러웠을 테니까. 그런데 누구보다 상대방의 상황과 위치를 이해해 거기서 우정이 싹튼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질 수 있을까?
펜릴은 모르겠지만, 아키는 그러기 힘들어.
마히르가 우아한 포즈로 차를 마시는 자신의 누이를 바라보며 속으로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자신은 자신의 반쪽인 이 쌍둥이 누이를 29년을 알아왔단 말이다. 겉으로 보는 것보다 차갑고 똑부러지지 않을지는 모르지만 남들보다 다정함이라든지 인간미가 좀 부족한건 사실이었다. 게다가 어떤 경우에든 자신의 감정보다는 전체적인 상황이나 이해를 생각하는 사람이라 황태자의 청혼에 대해서는 재고의 가치도 없다고 결론 내린게 분명했다.
그리고 알 수 없는 것은 사촌인 펜릴의 태도였다.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결혼에 회의적이었다. 그 특유의 상황을 빠져나오는 교묘함으로 결혼 압력을 요리조리 피해왔던 펜릴이었다. 그런 그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누이이자 유스타니아 가문의 가주에게 청혼을 해?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미친 짓이었다.
설마...
마히르는 인상을 찌푸렸다. 안 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을 펜릴이다. 그런 펜릴이 아키에게 청혼을 한 것은 결혼 압력에 대해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기 위해서가 아닐까?
그 누구도 펜릴이 유스타니아 공작과 결혼한다는 사실에 대해 믿지 않을 것이다. 다른 집안도 아니고 크레이안을 장악하고 있다는 개국 공신 3가문 중 하나의 가주가 아닌가. 게다가 이미 두 사람은 사촌간이었다. 그것은 이미 유스타니아 가문과 황가가 혈연으로 끈끈하게 맺어져 있음을 시사한다.
펜릴은 지금까지 교묘하게 결혼 압력을 피해왔지만 이제 한계에 다다랐을지도 몰랐다. 5년은 짧은 시간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만일 피할 수 없다면 배수진을 치면 될 일. 그 배수진으로 아키텐을 이용했을 것이라는 확신이 섰다.
현재 아키텐은 젊은 나이로 재무성에서 높은 직위를 차지하고 있을 뿐더러, 크레이안에서 가장 유서 깊고 큰 가문 중 하나인 유스타니아 가문의 가주였다. 그렇다는 것은 황가의 여인만큼이나 여러 가지 면에서 정점에 선 여자임을 뜻한다.
그런 여자에게 청혼을 했다는 것은 자신에게 어울리는 여자가 그런 여자다. 라는 것을 은연 중 시사 하는 것이라. 이쯤 되면 당분간은 청혼말을 넣는 귀족들이 납작해 질 것은 뻔한 일일 것이다.
그래야겠지.
마히르가 불편하게 상념을 눌렀다. 만에 하나라도 진심으로 청혼을 한 것이라면 펜릴은 상처받을 것이다. 그가 29년 동안 봐 온 그의 쌍둥이 누이는 자신의 책임을 뒤로 한 채 사랑을 찾아 갈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마히르."
"응?"
"꽃을 벌써 42개 째 돌려보내고 있어. 이번에 입궁하게 되면 황태자 저하께 이런 쓸데없는 일은 그만 두고 다음주에 있을 재무성의 월례회의에 꼭 좀 참석해 달라고 말씀드려주었으면 좋겠어."
"아. 응."
42개라. 어쩌면 진지할 지도 모르겠는데.
늦었습니다... (비록 아무도 기다려 주시지 않았을진 몰라도;)
다음 편도 한참 늦을 예정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