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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 늦었네.

지욱과의 약속시간이 30분정도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거울속에 대충 파우더로 피부 유분기만 제거해 놓은
아직 어려보이는 여자가 보인다.
대학 3학년이 되도록 화장품이라고는 파우더와 눈썹펜슬. 싸구려 립글로스 뿐이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하고 대학1학년이 되던해.
선물로 몇가지 화장품들을 받아 신기한마음에 몇번 써봤지만,
한달도 못되서 구석에 처박아 버렸다.
내 얼굴이 도화진가 ...

중성을 넘어 약간 지성끼가 도는 칙칙한 얼굴에 파우더만 대충
찍어 발라주면 못봐줄 정돈 아니다.
태어날때부터 쥐잡아 먹은듯 시뻘건 입술이 마음에 안든다.
튀는건 딱. 질색이야.
거울을 보며 립글로스만 대충 한번 긋고 서둘러 집밖을 빠져나왔다.



3시 07분.
분명 저사람. 5분도 전에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겠지. 
아무리 봐도 예쁠리 없는 나를 그저 마냥 좋아죽는 사람. 
저만치 앉아서 함다은. 나를 기다리는 그를 바라본다.

길어야 2년이다. 하는 생각이 들면서 피식_ 자조섞인 웃음이 나왔다.

 

아직도 별 문제없이 지욱과 사귀고 있는 내가 신기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건 아프기만 한 거라는 결론만 남긴채
온몸이 찢기는 듯한 고통으로 끝난 내 첫사랑.
다시는 B형따위. 그인간이랑 비슷하게 생긴 뒤통수 조차도 쳐다보지 않겠어. 라며 결심했던 ..
지금도 아릿아릿 한 내 첫사랑...
예쁘게 보이려고 죽어도 하기싫었던 눈화장까지 하고 나간 자리에서
마스카라가 시커먼 물이 되어 흐르게 만들었던. 내 첫사랑...
 
그인간을 마음속에서 파내면서 , 다시는 내가 더많이 좋아하는 사람과는 사귀지 않겠다고 수만번은 더 다짐했었다.


순간, 저기 앉아 있는 지욱이 O형이라는 사실이 너무 감사했다.
그인간이랑은 전혀 다르게 눈매도 선한 사람.

다른사람에게는 딱 부러지고 정확한 사람이,
(내 앞에서도 물론 그러려고 노력했다)
내 눈에는 한없이 무너지는게 보이는것도 즐거웠고.
대외적으로 수려한 외모 , 밝은 성격과
똑똑한 머리덕에 리더쉽도 제법 있어
남자친구로 두기에는 솔직히 과분했다.

겉으로 보기엔, 내가 그사람을 쫄랑쫄랑 따라다니는것처럼 보일테지..


아.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왠지 저기앉은 정지욱이 멋있어 보인다.
어쩌면_ 이사람. 오래오래 만나질지도...



"오빠. 근데 나 왜 좋아해?"
옆자리에 턱- 하고 앉자마자 대뜸 물어본다.

"예뻐서."
"어디가?"
"통통하게 오른 젖살, 화장기 없는 얼굴, 애같은 옷차림 빼고 전부"
"뭐야~~ 그럼 예쁜데가 어딨어 !!!"

뜬금없고, 어쩌면 굉장히 냉소적으로 던진 질문에 
지욱은 별걸 다 물어 본다는 듯한 표정으로 
내 머리를 쓰윽- 쓰다듬으며 대수롭지 않은듯 대답했다.


모르긴 몰라도 연애 꽤나 해봤을법한 남자들의 말투.
지가 날 죽자고 쫒아 다녀서 연애에 골인 했는데도.
늘 이런식이다.
하늘같은 여자친구를 귀여운 여동생쯤으로 취급하는 태도.

몸이 달떠 있는게 눈에 뻔히 보이는데도,
침착하게. 아무렇지 않은듯.

게다가 저 말은_
난 널 사랑하지만 방금 내가 말했던 부분들은 좀 고쳐줬으면
좋겠어. 라는 뜻이다.

재수없어.

.아 남자친군데 이말은 좀 심했나 ...?



정지욱은 그랬다.


예의 그 성격이 연애사에도 녹녹히 묻어나오곤 했다.
또, 늘 자기가 친오빠라도 되는냥.
한없이 잔소리를 늘어놓고 , 내 보호자 처럼 행동했다.


애교로 장사를 해도 될정도로 속에 징글징글하고 촌티나는
발음도 불분명한 여우새끼를 100마리는 넘게 담고있는 여자들이라면
껌뻑 죽어 넘어갈 그런 적당히 무뚝뚝한 지욱의 행동들이

왠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멋있는 사람이라는건 알겠는데.
숨기지 못해 어쩔줄 몰라하는 표정을 솔직히 드러내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철저히 눈빛까지 속이든가.
사랑하는 여자앞에서 자존심을 지켜내는 남자.
그 잘난 머리로 사랑을 하는 남자.
옛날부터 매력없었다.

그런남자는,
두근거림이 없다.
분명 신경써서 날리는 미소와 손짓인데도
저런 절제됨이 싫다.

사랑한다면 카X라떼 처럼.
아니 사랑한다면 불같이 온 마음을 쏟아 내어놓는게 사랑이다. 

남의 단점과 마음에 안드는 부분들을 탁 까발려서 이야기를 하는게 사랑이냐고, 대놓고 나는 섹시한 여자가 좋더라. 라는 말을 하고나서 사랑한다 말하면
듣는사람 퍽이나 기분 좋겠다고. 톡 쏘아 붙이고 싶다.


하지만 ..

귀찮다.
그냥 그 손짓에 머리를 맡기고,
그 웃음에 같이 웃어준다.

열심히 숨겨봤자 눈에 다 보이기때문에
날 얼만큼 사랑하는지 안다.
편하고... 따뜻한 사람이다.



그렇게 오늘도 나른한 주말이 지나간다 .


//

"솔 도레미레 솔 파미레미 도 라솔라파 미레 ~ ♪"
지욱의 핸드폰이 울린다.
아. 짜증스럽다. 차라리 보컬이 들어간 노래를 벨소리로 해놓지..
가사로도 안가려지는 저런 피아노곡은 계이름이 다 들린다.
한때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해야겠다던 음악.
그렇게 좋아서 시작한 내 전공.

첫사랑이 깨지고 음악에도 시큰둥해 져버렸나 보다.
왜이렇게 아직도 그사람을 못잊니. 거지같애 함다은.


조용하게 벨소리를 따라부르는 날 지긋이 바라보면서
눈이 마주치자 샐쭉 웃던 지욱이 전화를 받는다.


"여보세요"

"임마 !! 연락좀 하고 살아라 !! 살아는 있냐 ??"

나른하고 조용하던 우리의 주말을 확 깨어놓는..
수화기 너머로도 충분히 다 들리는 크고 시원시원한 목소리.

피식 웃으면서 통화를 하는 지욱을 바라보다가 창문너머
조그맣게 지나가는 사람들을 무심한 눈으로 훓었다.


아....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사람.
그사람이다. 윤태환.



댓글 '3'

위니

2006.11.13 21:31:32

친구의 친구를 사랑햇네...그것인가요...여주가 힘들까 걱정이됩니다..건필하세요 ^ ^

Junk

2006.11.13 21:59:41

슬픈 이야기가 될 것 같아 두렵습니다. 끝까지 건필하시길! 그리고 등업해드렸답니다.

2006.11.14 01:10:58

감사합니다 ^^ 사실 써놓고 글을 내릴까말까 무진장 고민했는데,
열심히 써봐야 겠어요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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