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1.




서윤주의 첫 직장이었다.


“그럼, 내일부터 나오실래요? 형이 봐야 하지만, 그냥 저보고 마음대로 구하라고 했거든요. 시급은 삼천이구요, 그……. 몇 달 있으면 올려 준다고 그랬던 것 같은데……. 아무튼, 9시까지 오시면 되요. 문은 원래 10시에 여는데, 장사하기 전에 준비해야 하니까.”


사실은 직장이라고 말하기에는 조금 부끄러운 감이 있었다. 우선 연봉제, 월급제도 아닌 시급제이지 않은가. 시급 삼천 원짜리 카페 서빙 아르바이트가 25살 서윤주의 첫 직장이었다. 25살이라는 나이에 조금 부끄럽긴 하지만 할 일없이 빈둥거리는 식충이 백수보다는 백배정도 나았다.


테이블 맞은편에 앉아 열심히 설명해주고 있는 아줌마 파마머리를 한 남자애는 윤주보다 더 어려 보였다. 기껏해야 스물 둘? 셋?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이마를 덮고 눈까지 내려오는 파마머리 사이로 보이는 남자애의 눈동자가 착해보였다. 


“전에 하던 애는 아침부터 3시까지 했었거든요. 시간 조절은 어느 정도는 가능하니까 그건 내일 형이랑 상의하면 되구요. 별로 손님이 많은 게 아니라서 아르바이트는 시간마다 2명씩이고, 형도 거의 매일 가게에 나오니까 특별히 힘든 일은 없어요.”


“예…….”


윤주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한 번도 해본 적은 없지만 이깟 서빙 아르바이트가 힘들면 얼마나 힘들겠나 싶었다. 손님도 별로 없어 보이고.


“그리고 보건증 끊어 와야 하거든요. 그거 내일 갖고 오시면 되고……. 또……. 뭐있지? 아무튼, 내일 형이 자세하게 설명 해줄 거예요.”


얜, 도대체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말투가 어눌했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 형이 어떻고, 저렇고 하는 걸로 봐서 그 형이라는 사람이 사장인 모양이었다.


이 애가 형이라고 그러는 걸로 봐서 사장이 되게 젊은가보네. 


“그럼 저는 내일 올게요.”


남자애가 해야 할 말은 다했는지 복실한 머리만 긁적이고 있자 윤주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남자애가 윤주를 따라서 일어났다.


“예. 그러세요. 저기, 이름이랑 연락처 좀…….”


윤주는 메모지에 이름과 휴대폰 연락처를 적어준 후 카페를 나왔다. 카페 문을 여는데 풍경이 달려있지 않아 약간 핀트가 어긋나는 것 같은 약간 나무 쓸리는 소리만 들렸다.


밖에 나와 힐끗 간판을 올려다보았다. 테이블이 놓인 창가 위로는 빈 공간만이 덩그러니 있었다. 주변 상가의 요란하고 커다란 간판들과는 동떨어진 모습이었다. 이 카페의 유일한 간판은 입구 문 옆에 매달린 작은 서양식 그림 간판뿐이었다. 동그란 모양 안에 커피 잔이 그러져 있었고, 재미있게도 커피 잔 위로 뜨거운 커피 김 대신 높은음자리표가 그려져 있었다. 그림 밑에 흘림체로 ‘cafe wish'라고 적혀있었다. 바람이 불어와 간판이 살짝 흔들렸다.


윤주는 천천히 간판에서 눈을 돌리고 골목길을 걸어 나와 전철역으로 갔다. 무심코 개찰구에 교통카드를 찍는데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가 발길을 붙들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윤주의 뒤로 사람들이 밀려 있어서 줄을 빠져나와 빈 공간으로 몸을 피했다. 가방을 열어 지갑을 꺼낼 참이었다. 크로스로 매고 있는 짙은 갈색의 가죽가방은 워낙 작은 사이즈라서 휴대폰과 지갑, 립글로스, 파우더케이스만 들어 있는데도 꽤 빵빵해보였다.


그녀는 백수인 자신의 처지를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남들 다 있는 카드 한 장 없었다. 교통카드도 선불기능만 있는 것으로 사용했다. 일정한 수입이 없는데 나중에 청구되는 카드와 후불제는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아서 처음부터 아예 만들 생각도 하지 않았다.


윤주는 전철을 기다리는 동안 친구인 경애에게 전화를 걸었다.


“경애야. 나, 윤주. 전화해도 돼?”


[어. 괜찮아. 얘기해.]


대학동기인 경애는 졸업과 동시에 대기업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치고는 꽤 큰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고 있었다. 가끔 윤주가 전화라도 할라치면 회사일 때문에 통화가 불가능할 때도 있어서 전화를 걸면 항상 통화가 가능한지부터 물어보았다.


“물어볼게 있어서. 나 아르바이트 하거든.”


[무슨 아르바이트?]


“그냥 뭐……. 카페에서 서빙.”


윤주가 대학을 졸업하고 1년째 백수로 놀고 있는 건 다 아는 처지이지만, 근사한데 취직했다는 얘기가 아니라 서빙 아르바이트한다는 얘기를 하는데 괜히 자신도 모르게 기가 죽어버렸다.


[야. 나이가 몇인데 서빙 알바야? 그냥 취직이나 해. 이것저것 너무 따지지 말고 그냥 집에서 가깝고, 월급 제때 나오는 데로 들어가. 세상에 돈 안 되고, 힘만 드는 게 바로 알바야.]


“그냥 뭐……. 맨날 노는 것도 그렇고 해서 일단 뭐라도 좀 하려고. 알바하면서 직장 알아볼 거야. 내일부터 일하기로 했어.”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알바를 하겠다는 거야? 너, 알바 한 번도 안 해 봤잖아.]


뭔들 해봤겠는가. cafe wish에서의 아르바이트가 윤주에게는 첫 사회경험이었다.


“응. 그래서 전화했어. 보건증을 만들어 오라는데 보건증이 뭐야?”


휴대폰 건너편에서 경애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건강 확인증 같은 건데, 보건소에서 끊어줘. 수수료 쬐끔 들고. 음식 파는데서 아르바이트하려면 필요해. 그거.]


윤주는 자기 필요한 것만 챙기고 전화를 톡 끊기 미안해서 경애의 안부를 물었다. 경애의 일상도 그다지 특별한 것 같진 않았다. 몇 마디 더 이야기 하다가 경애가 다급하게 ‘나중에 내가 전화할게’그러고는 끊어버렸다.


윤주는 바로 집으로 가지 않고 동네 보건소를 찾았다. 윤주가 보건증을 만들러 왔다고 하자, 직원이 서류를 내밀었다. 서류에 기재할 수 있는 것은 다 적었지만, 일할 곳의 주소를 적는 빈 공간에서는 멈칫했다. 주소를 적어내야 할지 전혀 몰랐기에 미리 알아오지 않았다. 당장 내일부터 일하기로 했기 때문에 보건증을 오늘 만들지 않으며 곤란할 것도 같았다.


면접을 보기 전에 벌써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는지 알아보기 미리 전화를 해본 터라 휴대폰에 아직 카페 전화번호가 남아있었다. 윤주는 건물 내를 빠져나와 보건소 입구 계단에 서서 전화를 걸었다.


[어. 여보세요?]


어. 여보세요?


윤주는 순간 전화를 잘 못했나 싶었다. 가게 전화번호라면 뭔가 좀 더 상업적인 뉘앙스를 풍겨야 하는 것 아닌가?


“예. 저기……. 내일부터 아르바이트 하기로 했던 서윤주인데요.”


[아~ 얘기 들었어요.]


상대방의 목소리에서 반갑다는 기색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아까 면접을 보았던 파마머리 남자아이는 아닌 것 같았다. 좀 더 낮고 부드러운 음색이었다.


“보건증 만들려고 하는데요, 거기 주소를 알아야 해서요.”


[불러줄게요. 적을 수 있어요?]


윤주가 용건을 얘기 하자, 상대방도 별다른 이야기 없이 바로 대답해주었다. 윤주는 한쪽 어깨에 휴대폰을 끼고 벽에 종이를 대고 상대방이 불러주는 데로 적었다.


“다 적었어요. 고맙습니다.”


[하하하하하. 뭐가 고맙다는 건지.]


무심코 나온 고맙다는 윤주의 인사에 상대방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 하. 하. 하. 하. 음절이 하나씩 끊어지는 호쾌한 웃음소리였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그래요. 내일 9시까지 와요.]


수화기를 대고 있는 귓가가 간질거렸다. 전화를 끊기 전, ‘와요’라는 마지막 말 한 마디에 상대방의 낮은 음과 떨림이 여운처럼 남아서 잠시 동안 귓가를 맴돌았다.



댓글 '3'

Junk

2006.08.10 23:54:36

전화의 상대가 남주인가요?

파수꾼

2006.08.11 10:02:55

아무래도 사장이 남주일것 같은 예감.

하늘지기

2006.08.11 11:16:24

기타 치며 노래하는 원이 남주일 것 같다는..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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