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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영주님은 예나의 손을 잡더니 다시 잠깐 미소를 지었다.
“왜 그러세요?”
“걱정이 되어서.”
“뭐가요?”
물어도 영주님은 금방 대답해 주지 않았다. 예나는 먼저 안주인 노릇을 하라고 해 놓고서 이제 와서 제대로 그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의심하는 건 아닌가 생각하며 영주님을 지그시 올려다보았다. 그러나 영주님은 그런 눈길은 아랑곳않고 네이트에게 손을 내밀어 무언가를 받았다. 예나는 그것에 두 개의 구멍이 아몬드형으로 뚫린 것을 보았다. 깃털과 금줄이 달린 화려한 가면이었다. 원래도 다가가기 힘든 인상이었는데, 흰 장갑을 끼고 가면까지 쓰자 그야말로 꽁꽁 싸매고 누군가 자신을 꿰뚫어보길 거부하는 모양이 되었다. 영주님이 맨살을 드러낸 곳은 코 아래쪽부터 목까지뿐이었다.
“가면은 왜 쓰는 건가요?”
“이젠 서로 얼굴 보기도 지겨워서.”
“에?”
“얼굴을 가리면 조금 낫지 않을까 싶어서 언젠가부터 연회에서는 가면을 쓰지. 그래 봤자 다들 취향이 드러나니까 빤히 알아볼 수는 있지만, 서로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랄까.”
“배려라고요? 그렇게 보기 싫은 거예요?”
영주님은 가면 아래로 입술만 조금 곡선을 그리며 웃어 보일 뿐이었다. 예나는 다시금 말하지 않는 영주님의 말을 알아들었다. 말로 표현하기 싫을 정도로 영주님은 그들을 싫어했다. 다시는 그 얼굴을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경멸하고 멸시했다. 하지만 그래도 그들은 이 세상에 남은 영주님의 몇 안 되는 동족이며, 같은 죄를 지은 자들이다. 그들과 계속 이렇듯 부대끼는 것조차 벌 중 하나인 것이라고, 영주님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예나는 고개를 저었다. 독심술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영주님이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고 속단할 수는 없었다. 다만 몹시 가능성이 높은 추측이라고 해야 할 것이었다.
하지만 그 추측이 맞다면, 조금이라도 그 지루하고 편치 않은 자리에서 보탬이 되지는 못할망정 짐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다시금 영주님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같이 들었다. 바보 같다는 생각과 함께 궁금증도 들었다. 그렇게 싫으면서 어째서 계속 그들과 만남을 유지하는 것일까? 오즈리크에게는 죽여 달라고 하면서,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런 말을 하지 않을까? 왜 그렇게 혼자서만 모든 걸 기억하고 안으로 삭히는 바보가 되어 버렸을까?
예나는 자신의 손을 잡고 에스코트하는 영주님의 옆 얼굴을 바라보았다. 가면에 가려서 보이지는 않지만, 끝없는 깊이로 일렁거릴 눈동자와 거기 새겨진 그림자를,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머릿속에 새긴 듯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그 눈을 보았다. 예나는 그렇게 보이지 않는 눈을 보며 물을 수 없는 물음을 물었다.
있잖아요.
오즈리크란 사람을 사랑했어요?
“너나 걱정해라.”
순간적으로 예나는 뜨끔했다.
설마 영주님이 좀 전에 내가 하던 생각을 눈치 챈 건 아닐까? 영주님은 밤이니까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잖아. 그럼 언제부터 내 생각을 읽고 있었을까? 설마 언제나? 가능성 있어. 언제나 내가 무슨 말을 하려고만 하면 한 발 앞서서 이상한 말을 하잖아. 그럼 설마 내가 자기를 좋아하는 것도 알고 있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영주님은 혼자서 방정을 떨고 있는 예나의 예상과 전혀 달리, 어찌 보면 슬프고 어찌 보면 다정한 눈으로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에겐 가면이 없으니까. 숨을 곳도 없다. 늙고 요사스러운 것들에게 홀리지 않도록 조심해.”
예나는 잠시 놀라서 아무 말도 못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영주님이 퉁명스럽게 비꼬거나 화나는 말을 섞지 않고 진지하게 걱정해 주는 말은 처음 듣는 것 같았다. 갑자기 가슴이 벅차고 기뻐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예나는 재빨리 숨을 가다듬고는 영주님의 손을 놓았다. 그리고 영주님이 이상하다는 눈으로 보는 앞에서 휘황찬란한 드레스 자락을 양손으로 붙잡고 한 바퀴 돌아 보였다.
“전 이거면 돼요.”
“무슨 뜻이냐?”
“이렇게 화려하고 멋진 드레스, 처음 입어 보거든요. 말로만 들었지 연회의 안주인이란 것도, 아니 연회란 것 자체도 처음 보는 거고요. 이제까지 살던 대로 살았으면 평생 못해 봤을 역할에, 평생 못 입어 봤을 옷이잖아요. 그래서 꼭 딴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에요. 가면의 역할이 그런 거 아니에요? 쓰면 자기가 가려지고 그래서 다른 사람이 된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거. 그러니까 전 굳이 가면 쓸 필요 없어요.”
“그런 건가.”
“그런 거예요. 게다가 제가 숨을 필요가 뭐가 있어요? 숨어야 할 사람들은 마음에 거리끼는 게 있는 사람들이라고요. 전 그런 것도 없으니까 당당해요.”
영주님은 드레스에 어울리지 않게, 가슴을 두드리며 씩씩하게 말하는 예나를 아무 말 없이 그대로 바라보았다. 가면 뒤로 조금 드러나는 눈빛은 알아들을 수 없었지만, 아주 자세히 봐야만 알 수 있을 정도로 입꼬리가 올라가 있는 걸 보면 웃고 있는 것 같았다. 잠깐 그렇게 웃는 듯 마는 듯하던 영주님은 고개를 저으면서 다시 예나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나는 다시 에스코트받는 자세로 돌아가 몸짓을 우아하게 가다듬으면서도 입으로는 투덜거렸다.
“뭐예요, 그 절레절레는? 구제불능이라거나 생각이 없다거나 뭐 그렇게 생각하신 거죠?”
“아니다.”
“정말요?”
“정말로.”
“그럼 무슨 뜻인데요?”
“누굴 닮은 것 같았는데…… 생각해 보면 그리 닮지 않은 것도 같고 해서.”
“누군데요?”
“비밀이다.”
“뭐예요, 치사해!”
“쉿.”
영주님이 너무나 진지하게 손가락을 입에 대서 예나는 자기도 모르게 입을 막고 말았다. 그렇게 자기 목소리가 컸나 싶었다.
영주님은 역시 어쩔 수 없다고, 아무리 교육을 받아도 예나 같은 여자애는 얌전히 있질 못한다고 생각하겠지. 어쩌면 놀릴지도 몰라.
하지만 예나가 눈치를 보며 올려다본 영주님의 얼굴은 가면으로 덮여 있어서 표정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아까처럼 마음을 읽을 수도 없었다. 어떻게 보면 가면이 눈빛을 가려 주어서 다행이었지만, 어떻게 보면 불안하기도 했다. 어떤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으니까.
그제야 예나는 영주님의 걱정이 어떤 뜻인지 알았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세월을 살아와서 속에 무엇을 담고 있는지 그냥 봐도 모를 사람들이 가면까지 쓰고 있으면, 정말로 속을 알기가 어려울 터였다. 밤들이 가면 속에서 무슨 생각을 하면서 자신을 어떤 눈으로 보고 있을지 신경 쓰다 보면 행동 하나도 허투루 할 수 없을 터였다.
어느 새 도착한 대연회장 문 앞에서 영주님이 말했다.
“진짜로, 들어간다.”
“자, 잠깐만요.”
예나는 황급히 영주님의 팔을 잡고 그 자리에 멈춰 섰다. 그리고 심호흡을 하면서 어깨를 폈다. 스스로 주문을 외우듯이 혼잣말을 중얼거리면서.
자신이 한 말 정도는 지켜야지, 예나. 넌 연회의 안주인이야! 네 드레스는 쓸데없이 화려한 게 아니라 그에 걸맞은 태도를 보여야만 할, 너의 시험대야! 네가 실수하면 드레스가 너의 올가미이자 족쇄가 될 거야!
아니, 아냐.
그렇게 배우긴 했지만 지금 내게 필요한 건 으름장이 아니라 자신감이야. 긴장하면 오히려 실수만 하다가, 가면 쓴 무서운 밤들에게 잡아먹힐 거야. 어디까지나 나답게, 예나답게 할 수밖에 없어.
“이제 됐어요.”
영주님은 이제까지 에스코트하던 예나의 손을 잡아끌더니 자기가 먼저 팔짱을 끼고 거기에 예나의 손을 얹어 버렸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을 대연회장의 거대한 양여닫이 문에 댔다. 살짝 대기만 했는데 그 거대한 문짝 사이가 벌어지며 소리도 없이 문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나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조금씩 드러나는 연회장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경쾌하지만 나른하고 방만한 느낌이 한껏 묻어나는 현악이 들려왔다. 꼭 박자를 맞추어 계산한 듯이 웃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있었다. 한 가지 색으로 얼마나 다양한 드레스가 나올 수 있는지, 한 가지 색으로 얼마나 다양한 가면을 만들 수 있는지 경쟁이라도 하듯 모두가 다른 모양이었다. 남자가 스무 명 정도, 그리고 여자가 다섯 명 정도밖에 되지 않아 길게 퍼지는 드레스를 입고 대개 어깨와 팔을 드러낸 여자들이 몹시 눈에 띄었다. 남자들도 그 다섯 여자를 중심으로 몰려 있어 더욱 그랬다.
하지만 영주님과 예나가 들어서자 남자고 여자고 가릴 것 없이 환호해서 예나는 깜짝 놀랐다. 게다가 몇몇 남자들은 앞으로 척척 걸어나오기까지 했다.
“새 안주인이다!”
“인간 여자다!”
“어리고 싱싱한걸? 한 번만 만져 봐도 될까?”
예나가 뭐라고 말하기도 전에 영주님이 한 손으로 망토를 잡아 예나 앞을 가렸다.
“안 돼.”
“이거 왜 이러시나, 안주인은 모두의 것이 아닌가? 설마 독점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그냥 손 한 번만 대 본대도.”
“안 돼. 손도 대지 마.”
“질투가 너무 심한 거 아냐?”
“수장답지 않은걸? 아량을 보이라고!”
“안 된다면 안 돼.”
“진짜 너무하잖아. 치사하다, 치사해.”
“수장답지 않긴 뭐가 답지 않아. 평소에도 저러잖아. 욕심쟁이라니까.”
그러나 영주님은 꼼짝도 하지 않았고, 예나는 영주님의 망토 뒤에서 살짝 웃었다. ‘늙고 요사스러운’ 것들의 대화 치고는 너무 어린애 같고 귀여웠다. 하지만 그 웃음은 시끌벅적한 틈을 뚫고 들어온 목소리 때문에 사라졌다. 낮지만 잘 들리고, 직선적이지만 풍부한 목소리. 잊을 수 없는 네체르의 목소리.
“인사도 하지 않고 얼굴을 숨긴 안주인이라면 자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감싸지만 말고 앞으로 내밀어 주는 게 오히려 도리일 듯한데요, 주인장?”
그렇게 시끄럽던 주변이 조용히 가라앉고, 여전히 들려오는 현악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영주님의 주위에 몰려 와 떠들던 각양각색의 가면들도 침묵했다. 검은 비단에 흰 털을 빠짐없이 두른 복장으로 가면과 망토를 장식해 매우 따뜻해 보이는 차림새를 한 네체르가 홀 한가운데 서서 웃음 짓고 있었다. 그의 옆에는 불안한 입매로 지팡이를 짚고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자가 하나 붙어 있었다. 아마도 세르자크일 터였다. 그 둘은 여자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몰려 있는 밤들 사이에서 마치 영주님에 대항하는 한 쌍처럼 바로 마주 보는 방향에 서서 영주님과 예나를 보고 있었다. 영주님이 쓴 가면은 코 위쪽을 모두 가리는 타입인 반면, 네체르의 가면은 한쪽만을 가리고 있어 드러난 한쪽 눈에 잔인한 장난기가 반짝이는 것이 아주 잘 보였다. 예나는 뻔히 알 텐데도 저런 소리를 하면서 도발하는 네체르가 너무 미워서 영주님의 망토를 휙 젖혔다. 그리고 한마디 쏘아붙이려는 찰나 영주님이 다시 선수를 쳤다.
“안주인에게 자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를 주인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이겠다. 이의 있나?”
예나는 다시 영주님 뒤로 숨어 버렸다. 무서워서가 아니라 웃음이 나오는 걸 숨기기 위해서였다. 이전에 세르자크를 처음 만났을 때 영주님이 이런 식으로 막아 줬을 때에는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두 번 보니 우습고 귀여웠다. 도대체가 영주님은 수장씩이나 되면서 정치나 물러서기 같은 건 하나도 할 줄 모르는 것처럼 언제나 고자세에 시비 거는 듯한 태도다. 정말로 실력이 없었다면 죽어도 여러 번 죽었을 것 같다.
“이의야 많지만, 지금 하신 말씀의 내용에 대한 이의가 아니라 요령부득 안하무인인 당신에 대한 이의로군요.”
그리고 네체르란 자도 이제까지 실력이 없었다면 미움 사서 여러 번 죽었을 것 같다. 지금 말에 이의가 없다는 뜻은 안주인도 자격이 없고 영주님을 주인으로 여기지도 않는다는 말을 돌려한 것에 지나지 않았다. 예나는 이번에야말로 앞으로 나서서 오만불손한 네체르에게 한마디 해 줘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영주님의 팔을 잡았다. 영주님도 곧바로 튀어나갈 것처럼 팽팽하게 몸을 긴장시키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그러나 예나는 짧은 순간 네체르의 한쪽 눈이 묘하게 번쩍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네체르가 무언가를 노리고 도발하고 있다는 생각이 머리를 갑자기 스쳤다. 그리고 카일라가 데려가서 보았던 광경도 떠올랐다.
‘미리 그곳에 갖다 놓기만 하면 된다고 하네. 그러면 알아서 반응할 거라고.’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유인하느냐인가…….’
잊을 뻔했다. 영주님 손에 죽은 자 말고 공범이 하나 더 있으며, 누군지도 모르는 그자는 멀쩡히 살아서 이 안에 있을 거라는 사실을. 그리고 누군가를 유인하기 위해서 기회만 노리고 있을 것이며, 그 누군가란 아마도 영주님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사실을. 영주님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고 해도 태도가 변할 것 같지는 않지만 말이지.’
언제나 똑같은 영주님의 옆모습을 흘긋 보면서 예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리고 영주님의 팔을 잡은 그대로 영주님에게 고개를 돌려 말했다.
“전 괜찮아요. 처음이라서 그렇지, 안주인이 해야 할 일이라면 뭐든지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부디.”
뒷말은 생략했지만 예나는 얼굴에 웃음을 띤 채 영주님을 올려다보며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부디 도발에 넘어가서 연회장을 뒤집어 놓는 짓 같은 건 하지 말라고, 참아 달라고. 영주님은 가면을 쓰고도 확연히 보일 만큼 흔들렸다. 무언가 이 상황과 상관없는 문제로 심하게 동요를 일으킨 것 같았다. 그러더니 예나의 손을 잡은 채로 앞으로 얼굴을 돌렸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연회장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의 자리는 10년 만의 집회를 마무리하는 자리이니 필요 이상으로 서로를 자극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여기 안주인에게 손도 대지 말라는 건 농담이지만, 경험이 없다는 것을 감안해서 필요 이상으로 괴롭히지는 마라. 그럼 모두들 즐거운 시간 되길 바란다.”
그리고 약간 영주님이 고개를 돌려서 예나를 보았다. 예나는 그 정도면 되었다는 듯이 웃어 보였다. 하지만 영주님은 아직도 뭔가 풀리지 않은 듯이 찬 바람을 풍기며 고개를 돌려 버렸다. 예나가 도대체 왜 그러는 건지 고민스러워하고 있을 때 누군가 바람을 넣는 소리가 들렸다.
“춤을 춰라, 춤을!”
“얼마 만의 새 파트너냐! 이리저리 보여 보라고!”
가만히 보니 몇 명이 고정적으로 바람을 잡고 있었다. 고정 바람잡이 옆에는 안 그런 척하면서도 부채 뒤에서 강렬한 시선을 보내고 있는 여자 밤이 하나씩 꼭 붙어 있었다. 아니, 고정 바람잡이가 꼭 여자 옆에 붙어 있다고 표현하는 게 더 옳겠지만. 예나는 자신을 곱지 않게 보는 것이 세르자크와 네체르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 연회장 전체에서, 연회장을 메운 밤들 전체에서 뭔가 이상하고 불균형한 점이 있는 느낌을 받았지만, 그게 무엇인지 정확히 꼬집어 말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눈썹을 찌푸리고 고개를 기울이는데, 갑자기 얼굴에 그림자가 지는 느낌이 들었다. 예나는 놀라서 비명을 내뱉으려다 간신히 참았다. 영주님이 얼굴을 가까이 댄 것이었다. 이 자세를 가지고 바람잡이들이 야유 섞인 환호를 보내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영주님이 한 말은 아주 간단했다.
“춤, 출 줄 아나?”
그럼 춤도 못 추면서 안주인 노릇할 수 있다고 그랬겠어요? 도대체 날 믿는 거예요, 안 믿는 거예요?!
잠깐 발끈하면서 목구멍까지 이런 말이 밀려 올라왔지만, 예나는 너무나 진지한 눈빛과 말투로 그런 걸 묻는 영주님에게 차마 그렇게 신경질을 낼 수가 없었다. 아니, 신경질을 내기는커녕 그렇게 다가온 얼굴에 가슴이 두근거리고 영주님이 귀여워서 참는 게 더 힘들었다. 예나는 짐짓 삐친 척 손을 내밀었다.
“누가 누구 발을 밟는지 보자고요.”
그리고 음악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