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14




문을 열고 나타난 영주님의 모습을 보면서, 예나는 한 발 앞으로 나갔다. 그리고 멈춰 섰다. 분명히 처음과 같은 모습이었지만 같지 않은 모습이었다. 고작 엿새밖에 되지 않는 시간이 흘렀지만 예나는 영주님이 망토를 벗어 다친 자신을 덮고 안아 올리는 것을 보았고, 퉁명스럽게 불을 때워 주는 것을 보았고, 팔에서 피를 흘리면서 자기 대신 칼을 맞는 것을 보았고, 창백한 달빛 아래에서 무방비한 얼굴로 입 맞추는 것을 보았고, 상처 입은 맨 얼굴을 보았다. 그리고 지금 이곳에 서서 예나를 바라보는 얼굴을 보았다. 영주님은 그렇게도 여러 얼굴을 보이며 변해 왔다. 정확하게 말하면 예나가 변했다고 해야 할 것이었다. 영주님은 그 사이에 변했을 리가 없었으니까. 그저 이 사람은 예나가 처음 생각했던 것 같은 사람이 아니었다. 그뿐이었다. 변한 건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 가슴이 아팠다. 심장에 묵직한 추를 달아서 내려놓은 것처럼.


“들어와.”


여전히 무뚝뚝하게 말을 던지며 영주님이 문에서 비켜섰을 때 예나는, 이제는 그 말투가 특별히 자신을 미워하거나 하찮게 여겨서 그런 게 아님을 아는데도 왜 눈을 찌르듯 아픈지 알 수가 없었다.


“저는 그럼 점검을 하러 이만.”


루치안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태도로 뒤에서 인사했다. 그리고 경쾌한 몸짓으로 뒤돌아서 멀어졌다. 예나는 붙잡지도 못하고, 손도 내밀지 못하고 그저 루치안의 뒷모습을 보았다.


“안 들어올 텐가?”


“네? 아, 아, 네.”


놀라서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가, 문 밖으로 내다보는 영주님과 눈이 딱 마주쳐 버렸다. 목이 아팠다. 숨이 턱까지 차 버린 듯했다. 예나는 목깃이 답답한 척 만지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방에 들어가자마자 예나가 느낀 것은, 구조가 많이 바뀌었다는 것이었다. 바로 어제저녁에 자신이 훼손하고 깨뜨린 것들이 깨끗이 치워져 있는 건 물론이고, 그 외에 왼쪽에 있던 가구가 오른쪽으로 가 있는 등 배치가 많이 달라졌다.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이전에는 최대한 넓어 보이고 탁 트인 느낌을 주려고 했던 배치였는데 이제는 폐쇄적이고 공간과 공간 사이의 구분을 명확하게 지으려고 한 듯한 배치였다. 마치 영주님의 응접실과 침실을 분리한 것 같은…….


“네가 지낼 곳은 저 안이다.”


“네에에?!”


마침 그것이 이상하다고 보는 참에 영주님이 손가락으로 가리키자 두 배로 놀라 버렸다.


“저, 저, 저 안이오? 지지지지지지내다니?!”


“아무것도 듣지 못한 건가? 설명은 오면서 끝내놓으라고 했는데.”


“아, 그건.”


분명히 그런 걸 할 수도 있는 시간이었겠지만, 그보다 훨씬 원론적인 이야기를, 정확히는 예나의 질문에 답하느라 루치안은 영주님이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조차 끝에 겨우 가르쳐 주었다.


“제가 이것저것 질문하다 보니 놓쳤나 봐요.”


“별건 아니다. 넌 오늘부터 연회가 끝나고 저 자식들이 모두 나갈 때까지 여기서 지낸다. 그게 끝이야.”


“아, 네. 그렇…… 네에에?!”


“똑같은 말을 다시 해야 하는 건가?”


“아뇨, 못 알아들어서 그런 게 아니라, 그저…….”


서둘러 고개를 젓다가 예나는 스스로가 우스워지고 말았다. 가슴이 아프고 심장이 무겁고, 감상적인 기분이 되었던 것이 우스웠다. 아무리 가끔 딴 모습을 보인다 해도, 사실은 친절하고 다정한 사람일지 몰라도, 영주님은 기본적으로, 독단적으로 너무 앞서 나가서 언제나 사람을 놀랬다. 그 앞에 서면 이제까지 하던 생각은 날아가 버리고, 영주님이 하는 지시에 반응하기 급급하다. 그것이 너무 영주님다워서, 요 이틀에 걸친 혼란이 정리되는 느낌이었다. 분명 그것은 현실이었을 테지만, 그때에만 유효한 일시적인 현실이었을 것이고, 지금 이것이 일상일 것이다.


“그저, 좀 놀라고, 음.”


어떻게 말해야 좋을까. 일단은 지금 뭐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건지 파악부터 하는 게 옳겠지?


“그러니까 지금 저 보고 영주님 방에서 머물라고요?”


“그래.”


“설마 첫날 하신 농담이 진담이었던 건 아니겠죠?”


“무슨 농담?”


“침대 데우기……요.”


“이제 먼저 입에 담는 걸 보니 진담으로 전환해도 되겠군.”


“안 돼요!”


“쳇.”


예나는 다시 한 번 어안이벙벙해졌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었지? 저번에 비밀 나눠 먹기 때처럼 영주님과 농담 따먹기로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이 되어 버렸다. 그때는 놀리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쳇 하고 미련 없이 고개 돌리는 걸 보니 영주님이 자신과 놀아 준 거였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모르고 그때는 말 한마디에 발끈해서 이 방을 다 휘저어 놓았었다는 생각을 하니, 갑자기 영주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부끄러웠다.


하지만 이제 와서 사과할 수도 없고, 일단 지금 급한 것은 영주님과 방을 같이 써야 한다는 난감한 상황이다. 예나는 나름대로 머리를 짜내면서 이 상황을 바꿀 방법이 없을까 생각했다.


“음, 꼭 그래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루치안이랑 같이 있으면 영주님이랑 같이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들었는데요.”


“그러면 루치안과는 한 방을 써도 된다는 건가?”


“그건 아니에요! 하지만 옆방 정도만 되어도 되지 않을까요?”


“루치안은 바쁘다. 널 전담하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아. 부담 주지 마라.”


“그것도 그렇겠네……. 아! 그러면 아예 성 밖으로 나가는 건요? 그게 가장 안전하지 않을까요?”


“상대가 세르자크였다면 그 정도로 괜찮았겠지. 하지만 네체르의 주의를 끈 이상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그가 너에게 말하지 않던가? 손에 넣고자 한 것은 반드시 넣는다고? 이제까지 네체르가 그 말을 지키지 못한 건 단 한 번뿐이지. 헤아릴 수 없는 그 세월 동안 단 한 번.”


예나는 영주님의 말과, 좀 전에 당한 네체르의 기억에 합동공격을 당한 것처럼 가슴이 쓰렸다. 루치안이 웬만한 걸 다 이야기한 건 사실이고, 영주님도 그 사실을 알고 이렇게 스스럼없이 헤아릴 수 없는 세월 운운 하는 것일 테지만, 아직 예나는 그 사실들을 씹어서 소화하지 못했다. 그럴 만한 시간도 없었다. 그런 와중에 불가사의하고 저항할 수 없는 힘을 보이면서 네체르가 그런 식으로 예나를 농락했고, 영주님은 마치 처음부터 그런 사실을 알았던 사람 대하듯이 너무 태연하다. 조금만 더 배려해 주었으면 좋았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자 심술이 돋았다.


“그럼 기억까지 지우고 멀리 보내 주세요! 제가 선택하면 되는 문제라고 하셨잖아요? 선택할게요!”


“늦었어. 말했다시피 네체르는 그 정도로 포기하지 않는다. 그리고, 그 녀석 때문에 마구 선택할 필요는 없어.”


“마구 한 선택인지 아닌지 영주님이 어떻게 알아요? 여기 와서 좋았던 일은 없고 온통 기분 나쁘고 무섭고 불쾌한 일뿐인데!”


“정말인가?”


“정말이고말고요!”


정말이냐고 묻는 영주님의 목소리가 귀에서 들린 것이 아니라 자기 머리에서 들려온 것 같아서 예나는 더욱 악을 쓰고 절박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영주님이 곧바로 반응하지 않고 침묵을 지키자, 조용한 그 시간에 비례해서 자신감이 줄어들었다.


정말이야? 여기가 나쁠 건 또 없잖아. 모두들 친절하고, 관심을 보여 주고, 음식도 잠자리도 옷도 부족하지 않아.


루치안이 한 이야기도 못 들었어? 그건 그 사람들한테 네가 필요하기 때문이야. 음식보다 잠자리보다 옷보다 더 중요한 게 같이 사는 사람들이잖아. 그 사람들이 너에게 익숙해졌을 때 어떻게 변할지 어떻게 알아? 백 년이 넘는 세월을 네가 상상이나 해 봤어?


아무리 숨긴다고 해도 이렇게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 생활한 지가 며칠인데. 너무나 자연스럽게 습관이 된 생활 방식 때문에, 거기 끼질 못해서 좌절할 정도로 자연스러웠잖아. 그러니까 이 사람들이 평소랑 다르게 속이고 있는 건 아니야.


네 사람 보는 눈이 얼마나 정확하다고 생각하는 거야? 게다가 양보해서 모두 좋은 사람들이라고 치자. 지금 넌 아주 위험하다고. 네가 기분 나쁜 일만 겪었다고 해서 영주님이 내보내 주기만 한다면, 그걸로 목적은 이룬 거 아닌가? 어차피 기억도 다 지워질 텐데.


하지만 그건 싫어.


예나는 자기 안에서 울려 퍼지는 강한 목소리에 놀랐다. 하지만 곧 수긍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언제나 예나 안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있었지만, 그리고 이성적이고 냉소적인 목소리가  대개는 힘이 더 셌지만, 정말 중요한 일 앞에서는 솔직하고 감정이 앞서는 목소리가 이기곤 했다. 그리고 지금이 그런 때다.


기억을 지워 버리고 싶진 않다. 분명히 기분 나쁘고 불쾌하고 무서운 일들을 당했던 건 사실이지만, 좋았던 기억까지 없애야 한다면 그 나쁜 기억 또한 같이 껴안을 테다.


그렇게 결심하고 얼굴을 들었을 때 영주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예나는 자기가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말할 필요가 없음을 깨달았다. 영주님은 예나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을 이었다.


“이 방은 내 영역이다. 이 성이 모두 그렇지만 특히 이곳에 내 허락 없이 들어오는 자는 내게 죽겠다고 각오한 자이고, 그렇게 된다, 반드시.”


약간 몸서리가 쳐졌지만 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맙습니다. 생각해 주셔서.”


“이전에 말했듯이, 너는 내 소유물이고, 최종적으로 선택할 때까지 내 책임과 보호하에 있다.”


다시 웃음이 나왔다. 평소 같았으면 참았겠지만, 이것저것 많은 일을 당하고, 잠깐이지만 심각하게 고민을 했던 터라 참을 능력까지 바닥났는지, 입 밖으로 웃음이 새고 말았다. 일단 웃어 버리자, 웃음이 웃음을 불렀다. 예나는 가까운 소파에 털썩 앉아서는 소리를 죽여서 계속 웃었다. 배가 아파서 소파 손잡이를 부여잡아야 할 정도로 웃었다. 바로 앞에 영주님이 바닥에 털썩 앉아서 눈높이를 맞추었을 때까지.


“뭐가 그리 재밌나?”


“아하……하하, 그냥요, 영주님이…….”


“내가?”


예나는 다시 바로 대답을 못하고 한참을 웃었다. 평소 같으면 바로 앞에 영주님 얼굴이 다가와 있는 것만 봐도 웃음이 뚝 그쳤을 텐데, 무슨 배짱으로 이러나 스스로 걱정스러울 정도로 웃음이 멈추지 않았다. 역시 뭔가 잘못된 게 아닐까. 간신히 웃음을 멈추고 나서도,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넘어가려고 했을 텐데, 진지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늘은 정말 이상하다.


“전에 잠깐, 영주님이 사실은 낯을 가리거나 수줍음을 타는 사람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적이 있어요.”


“어째서?”


“지금처럼, 사실은 잘해 주지만 말씀은 무뚝뚝하게 하시니까요! 사람이 고맙다고 하면 별거 아니라고 하면 될 텐데. 미안하다고 하면 괜찮다고 하면 되고. 그런데 영주님은 꼭 무뚝뚝하게 말씀하세요. 지금 엄청 진지하게 ‘너는 내 소유물이고, 최종 선택 전까지 내 책임과 보호하에 있다.’라고 하신 건 실은 ‘널 생각해 주는 건 당연하다. 고마워하지 않아도 된다.’라고 말씀하고 싶으셨던 거 아니에요?”


그리고 예나는 겁도 없이 영주님의 눈을 똑바로 보았다. 영주님의 눈은 달빛 아래서 보던 것처럼 투명하고 일렁이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참 아름다웠다.


영주님은 잠시 고개를 꼬면서 입술을 뗐다가 다시 다물었다가,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더니 결국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겠군.”


“아하하하하! 영주님, 의외로…….”


“의외로 뭐?”


“아뇨, 아니에요.”


아무리 들뜬 것처럼 기분이 이상해도, 차마 귀엽다는 말을 영주님에게 대놓고 할 수는 없었다. 만약 그 말에 영주님이 화를 내면서 가 버리면, 이 들뜬 기분도, 애써 한 결심도 모두 망가질 것 같았다.


“난 이제 그들에게 가 봐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영주님이 가는 건 마찬가지였지만. 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영주님이 일어설 것에 대비해서 고개를 약간 들었다. 하지만 영주님은 움직이지 않았다. 예나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더니 손을 뻗어 목에 손을 댔다. 예나는 뜻하지 않은 아픔에 비명을 질렀다. 그저 손을 댔을 뿐인데도 갑자기 목덜미를 바늘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 느껴졌고 몹시 뜨거워졌다.


“네체르 짓이군.”


“아, 그러고 보니.”


예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기분 나쁜 작자가 처음에 입술을 댔던 자리였다. 갑자기 소름이 확 끼쳤다. 목이 이렇게 아프다면, 혀로 기분 나쁘게 휘저었던 입술과 입 속은 도대체 어떻게 됐을까? 그자가 무슨 짓을 한 걸까?


영주님은 천천히 예나의 얼굴을 돌리면서 살펴보더니 말했다.


“소독이라고 생각해라.”


“네? 자, 잠깐, 영주……!”


그게 어제였던가? 자정이 넘었을지도 모르니 오늘이었던가? 아니면 그보다 더 오랜 옛날이었던가?


바로 코가 닿도록 가까이 온 영주님의 얼굴을 보면서, 예나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서 방금 전에 했다가 잊어버렸던 생각을 다시 떠올렸다. 아팠다. 살이 타는 것처럼, 까진 살갗 위로 소금물을 뿌린 것처럼 아팠다. 예나는 네체르가 맨 처음 입술을 댔을 때처럼 비명을 지르고 싶었지만 영주님의 입술에 막혀서 소리를 내보낼 수가 없었다. 아파서, 밀어내려고 뻗은 팔도 영주님에게 잡혔다. 남은 수단으로 예나는 울음을 터뜨렸다. 그제야 영주님이 입술을 조금 떼고 속삭였다.


“쉬이…….”


“아파요…….”


“괜찮아. 곧 아프지 않을 거다.”


그리고 예나의 팔을 잡은 손이 움직여 팔꿈치를 만지고, 그 위로 올라가 어깨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다른 손이 눈가의 눈물을 닦으며 뺨을 미끄러져 내려갔다. 그 손길이 너무 조심스러워서 마치 그 몸짓으로 말을 걸어 오는 듯했다. 무서워하지 말라고, 긴장하지 말라고, 가만히 있으라고…… 눈을 감으라고. 예나는 눈물을 삼키고 숨을 들이쉬면서 눈을 감았다.


어제였던가? 오늘이었던가? 헤아릴 수 없는 옛날에 일어났던 일은 아닌가?


부드럽게 끌어당기는 혀의 감촉과 아픈 곳을 어루만지는 듯 다정한 입술, 그의 단단한 품에 의지하지 않으면 온몸이 녹아서 어딘가로 흘러가 버릴 것 같은 아찔함. 그의 입술은 뜨거웠다. 다음 순간에는 서늘했다. 예나는 자신이 내뿜는 숨이 뜨거워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자신이 좀 더 달라고, 물을 달라고 하듯이 당신을 달라고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의 입술이 예나의 입술이 아니라 온몸을 삼키고, 그의 혀가 입속이 아니라 머릿속을 헤집었다. 그의 입술이 살짝 물러나서 턱을 어루만지고 목에 난 상처를 감싸 안았을 때 그제야 예나는 자신이 어느 새 소파에 누워서 영주님을 올려다보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도 팔을 영주님의 목에 두르고, 떠나면 안 된다고 매달리면서.


“앗, 죄송해요!”


영주님은 화들짝 놀라면서 팔을 떼는 예나를 잠깐 내려다보더니 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뺨과 입술, 목을 쓰다듬었다. 자신이 그렇게 쓰다듬는 것이 얼마나 고문인지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이제 괜찮지?”


“네, 네.”


“나는 간다. 방 밖으로 나가지 마라.”


“네, 네.”


“괜찮은 거 맞아?”


“네, 네.”


“제니를 부를 테니까 어쨌든 나가지만 마. 알겠나?”


“네, 네.”


아직도 못 미더운 듯이 쳐다보는 영주님에게 예나는 손을 흔들어 주었다. 나름대로 잘 다녀오시라는 인사였는데, 영주님은 조금 더 표정이 이상해지면서 뒤돌아서 버렸다. 예나는 자기 얼굴이 그렇게 어색한가 만져 보았지만 만지는 걸로는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자기 얼굴이 몹시 뜨겁다는 것만 느꼈을 뿐이었다. 왠지 민망해서 뺨을 문지르다가, 예나는 고개를 푹 숙여 버렸다.


세 번의 입맞춤. 첫 번째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랑 착각하고 정신없는 상대와, 두 번째는 가축 품평하듯이 낙인 찍는 재수없는 악마와, 세 번째는 악마의 낙인을 소독하려는 지극히 사무적인 입맞춤, 사무적인…….


“이게 사무적이면 진짜 입맞춤은 뭐야?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난 뭐야? 사무적인 거에 이렇게 되면 난 어쩌냐고오. 난 몰라, 난 몰라, 나쁜 노…… 아니, 분. …… 분은 또 뭔데에에.”


그 후로도 몇 분이 지나도록 예나는 소파에 누운 채 혼자서 말하고 혼자서 부정하고 혼자서 열을 냈다가 혼자서 가라앉고 혼자서 되뇌었다. 아니라고, 아니라고. 말도 안 된다고. 영주님을 좋아하다니, 착각하지 말라고. 너한테 좋을 건 하나도 없고 상대는 널 아무렇게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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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뒷글로 찾아뵙는 건 또 오랜만인 것 같네요.
여기까지가 분량상 끝없는 밤의 절반 정도 지점입니다.
내용상 절반 지점은 아직 더 가야 하지만
이쯤에서 잠시 쉬는 게 좋을 것 같네요.
요새 회사 일도 너무 많아서 12시 이전에 퇴근하면 좋아할 정도인 데다
뒤쪽은 좀 더 많이 아웃라인을 다듬을 필요가 있어서요.

일주일, 어쩌면 그 이상 쉴지도 모르겠습니다.
일주일 후에 제깍 돌아올 수 있게 빌어 주세요.

다시 말씀드리지만 댓글은 저의 힘 *^^* (....)


댓글 '12'

tensa

2005.12.09 08:17:20

허억~ 제발 일주일로 충분하시기를..ㅠ.ㅠ
한창 이쁜 짓을 시작하고 있는 주인공들인데요..

위니

2005.12.09 08:38:57

작가님 건필하세요..기다릴꼐요

mirage

2005.12.09 08:44:00

허걱~
일주일로 충분하고도 남으셔야할텐데...
요기서 끊으심 아니되어요~~ㅜ.ㅜ

느질

2005.12.09 08:51:57

건강조심하시구요~ 빨리 돌아오셔야해요오오오~ >_<

나미사

2005.12.09 10:21:56

에고~ 일주일후에 꼭~돌아오세요....제가 빌어드릴께요^^

미르냥

2005.12.09 16:51:06

오호호. 소독. 제가 소독이란 단어에 바짝 모니터에 붙어서 열심히 읽고 흐믓~하게 내려오다가. 아니 이런.; ㅡㅜ 진정 절단 신공이십니다아아~. 이제. 방도 같이 쓰고, 모든 것이 오케바리인데. 일주일이 어서 지나가길 빕니다. 꼭, 꼭 일곱밤 지나고 오셔야해요.

Junk

2005.12.09 16:56:55

진짜, 여기서 끊으시다니...ㅠ_ㅠ

mehee

2005.12.10 19:46:48

기다립니다.

귀여운이

2005.12.12 22:19:56

이렇게 저를 달궈(?) 놓으시고 일주일이나!!!! 넘넘 보고싶습니다~~ 이런 저의 맘을 잊지 말아주시와요~~^^

귀연천사

2005.12.13 17:03:15

아.. 이렇게 독특하면서도 귀여움 가득한 캐릭터들이 산재해 있는 글이 있다니.. 정말 즐겁습니다.. 어서 담편 올려주시와요..

A

2005.12.13 19:51:22

왠지 모르게(...) 주인공 예나는 작가님을 닮았을 거란 생각이 마구마구 드는군요.
...............죄송합니다. (__);

자하

2005.12.21 18:24:38

이벤트 단편과 연말도 개의치 않는 연속야근에 다운입니다. 이벤트 단편 게시 기간이 지나고 꼭 돌아오겠습니다. 기다려 주 세요. ㅠ_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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