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13




“당신들이…… 옛날부터 살아 왔다는 것…… 죽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더듬더듬 말하기 시작하자 네체르가 깃털처럼 가볍고 포근한 목소리로 말에 박차를 달아 주었다. 박차가 말 옆구리를 찌르듯이 그의 달콤한 목소리는 숨 막히는 살기가 되어 목을 찔렀다. 예나는 실제로 목을 졸리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신의…… 저주를 받아서, 당신들은…… 죽지 않거나 완전히 소멸할 수밖에…… 없다는 것.”


“호오. 그리고?”


“피를…… 마시면 소유물이 된다…… 정기적으로 마시지 않으면…… 돌이킬 수 없다.”


“계속해 보시오, 아가씨.”


제발 그만하라고 외치고 싶었다. 이렇게 살기가 넘쳐서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는데, 무엇을 더 생각하고 말하란 말인가? 그러나 상대는 전혀 봐 줄 사람이 아니었다. 예나가 숨이 막혀서 기침을 하려고 하자 다정하게 손수건까지 대 주면서 말을 더 시키는 종자였다.


“나는…… 곧 선택해야 할 거라고…… 인간으로서 기억이 지워지든지, 아니면 소유물이……되든지…….”


“아하.”


그리고 갑자기 살기가 순식간에 사라졌다. 너무 갑작스럽게 사라지자, 그 또한 목에 걸렸다. 예나는 주체할 수 없이 터져나오는 기침 때문에 배를 움켜잡고 주저앉았다.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등을 두드리는 네체르의 손길이 느껴지자, 오히려 토할 것 같았다.


죽일 듯이 누를 때는 언제고 이제 와서 무마하는 거야? 이미 당신이 어떤 작자인지 치가 떨리도록, 말 그대로 정말로 치가 떨리도록 웅변한 주제에.


“재미있군요. 아직도 분노할 수 있다니. 그대는 용기가 있는 여인인 것 같소. 아니면 겁 없는 멍청이거나.”


예나는 흠칫 놀라서 네체르를 올려다보려다가 간신히 자신을 막았다. 그는 상대의 감정을 읽을 줄 아는 듯했다. 감정을 숨기지 못하는 얼굴을 보여 주어서 그에게 확신까지 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선택이라.”


등을 쓰다듬던 네체르의 손이 어깨를 타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너무나 매끄럽고 소리없이 움직여서인지, 아니면 감정적인 이유인지 모르지만 마치 뱀이 타고 오르는 것 같은 기분에 예나는 다시 소름이 돋았다. 그의 손은 거침없이 어깨에서 목으로 올라왔고, 자신만만하고 확고하게 예나의 얼굴에 정착했다. 네 손가락을 고정시키듯이 귀 쪽에 걸친 채, 네체르의 엄지손가락이 예나의 턱을 들어 올렸다. 예나는 재갈을 물려 끌려가는 말을 연상하며 억지로 얼굴을 들어 네체르를 보았다.


“선택은 항상 어려운 일이오. 하지만 사치스러운 일이기도 하지. 그대 같은 아가씨가 어려운 일에 부딪혀 고민하는 것은 하등 쓸데없는 시간 낭비라오.”


네체르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예나는 자신이 고개를 돌리지도, 위아래로 피하지도 못하도록 목이 완전히 고정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네체르가 천천히, 아주 천천히 허리를 굽혀 앉으며 예나와 눈높이를 맞췄다.


“그러니 내가 그대의 고민을 덜어 드리겠소.”


다시금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미소를 지어 보이며 네체르가 말했다. 팔꿈치만큼 거리가 떨어져 있던 그의 얼굴이 천천히 다가오더니, 멈췄다. 그리고 다시 천천히, 기어가는 느낌이 들 만큼 천천히 고개를 기울였다. 예나는 턱 바로 아래쪽에 그의 차가운 숨결이 다가오는 걸 느끼면서 다시 몸서리를 쳐야 했다. 그러나 목 위로는 조금도 움직일 수가 없었다.


숨결만 같은 자리에서 맴돌아, 뭘 하려는 건가 잔뜩 긴장하던 예나가 잠깐 긴장을 푼 찰나, 차가운 입술이 목에 닿았다.


“흡!”


예나는 자기도 모르게 숨을 들이쉬었다. 루치안이 부은 눈을 가라앉히려고 얼음을 대었을 때보다 더 차갑고 건조했고, 너무 차가워서 덴 것처럼 뜨겁기까지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머리카락이 쭈뼛 서도록 만드는 그 살기. 검고 더러운 것이 침입해 들어오는 듯한 느낌. 예나는 몸이 굳었다가 다음 순간 토하듯이 소리쳤다.


“싫어! 놔! 이 괴물! 놔아아아아악!”


“고마운 마음은 솔직히 표현하는 게 좋소, 아가씨.”


네체르는 기분 나쁘지도 않은 듯 태연한 말투로 말하더니 턱을 지나 아예 입술을 덮쳐 왔다. 뜨거울 정도로 차가운 그 입술보다 더 메마른 질감의 혀가 강제로 예나의 입술을 벌렸다. 예나는 입을 다물려고, 그 기분 나쁜 혀를 깨물어 버리려고 했지만 온 얼굴이 얼어붙은 듯 도무지 움직이질 않았다.


차라리 얼어붙었다면 좋았을 것을. 네체르가 입 속을 훑는 그 촉감마저 모를 정도로 얼어 버렸으면 좋았을 것을. 네체르는 예나의 몸을 완전히 손아귀에 넣고 아주 약간, 예나가 싫어하면서 몸서리를 치고 거부하는 눈빛을 보이는 정도의 자유만 남겨 놓은 채로 그 상황을 즐겼다. 그러면서 여유롭게 예나의 얼굴과 입 안을 점검하듯 혀를 움직였다. 비록 남자가 여자에게 입을 맞추는 것처럼 보이는 상황이지만 실제로 네체르는 예나를 가축처럼 점검하고 있었다. 적어도 예나는 그렇게 느꼈다. 어디 상한 곳이 없는지 꾹꾹 찔러 보다가, 곧 자기 것이라는 낙인을 찍고 목에 줄을 채워 갈 것이다. 네체르가 입을 떼고 다시 웃으면서 예나를 내려다보았을 때, 그때가 바로 그렇게 하는 순간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네체르가 멈췄다. 그리고 예나도 모르게 흘러나온 눈물이 뺨을 흘러 턱을 지나 떨어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예나에게서 물러나더니 웃었다.


“이런, 이 집 주인이 인내심 없고 고상하지 못하단 걸 잊을 뻔했군. 오늘은 이 정도로 할까.”


예나는 다시 기침을 터뜨렸다. 사실은 마음껏 울음을 터뜨리고 싶었지만, 네체르가 보는 앞에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자에게 즐거워할 수 있는 여지를 더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기침으로 대신했다.


네체르는 가소롭다는 듯이 잠시 허공을 보면서 웃고 있다가, 일어났다.


“자신이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시오, 아가씨?”


예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도 대답을 굳이 바란 건 아닌 듯했다.


“오늘부터 운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도 좋소. 내가 한 번 손에 넣고자 했을 때 빠져나가는 건 흔한 일이 아니거든. 비록 그것이 아주 잠시의 유예일지라도.”


그리고 그는 다시 한 번 웃으면서 예나의 손을 잡아끌어 손등에 입맞추고 다정하게 두드렸다.


“조만간 다시 보길 고대하겠소.”


네체르가 뒤돌아서는 걸 보고서야 예나는 고개를 들었다. 그는 흔들림 없이 유연하게 걸어 가고 있는데, 당사자도 아닌 세르자크가 괜히 이쪽을 훔쳐보다가 예나와 눈이 마주치자 기겁을 하고 놀랐다. 눈물을 흘리면서 죽일 듯이 노려보는 눈길을 덤태기 써서 그런 것 같았다. 괜히 네체르를 부르면서 뒤따라가는 꼴이 한심하고 얄미웠다.


“예나! 예나, 괜찮아?!”


“괜찮습니까?!”


“예나!”


갑자기 뒤쪽 주방 문이 열리고, 앞과 옆에 있던 문이 동시에 열리면서 파울, 미오리타, 레이낙스, 다미엘, 네이트, 소네틴이 한꺼번에 뛰어나왔다.


“다, 다들 어떻게?”


“사실 아까 네가 비명을 질러서, 다들 나가려고 했는데 문이 안 열렸어.”


“그쪽도? 우리도 창문이 닫혀서는 꼼짝도 안 하더라고.”


“뭐야, 다들 그랬던 거예요? 우리는 말들이 다 구석으로 도망가서 그거 달래느라고 애먹었어요.”


아마도 네체르의 짓일 것 같았다. 그래서 그렇게 아무도 지나가지 않고 텅 빈 것처럼 조용한 가운데 그런 짓을 당한 거구나. 그렇게 생각하자, 그리고 이렇게 사람들에게 둘러싸이자 갑자기 안심이 된 예나는 큰 소리로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으악, 운다!”


“손수건, 손수건!”


“여자가 그걸 우리한테 찾으면 어쩌라는 거야!”


“이건 바늘 꽂혀 있어서 안 된단 말이야!”


“울지 마세요, 예나. 저기, 저는 말 때문에 손이 더러워서…….”


수선을 떨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큰 소리로 한바탕 울고 있으려니 훨씬 기분이 나아졌다. 엄마라면 아마도 숙녀는 사람들 앞에서 울어선 안 된다고 했겠지만, 엄마도 이런 상황을 알면 아무 말하지 않고 안아 주셨을 거라 생각했다. 멋을 부린 것도 아니고, 생판 남도 아니고, 앞으로 가족처럼 지내야 할지도 모르는 사람들 앞인데. 그리고 이렇게 기분 나쁜 일을 당했는데.


결국 네이트가 바늘을 빼고 준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고, 사람들이 무슨 일이었냐고 묻는 말에 그냥 고개만 젓고 대답하지 않고 있을 때, 루치안이 왔다. 그리고 조용히 예나에게 손짓하자, 다른 사람들은 마치 그 손짓이 자기들을 향한 손짓인 것처럼 자연스럽게 각자의 일터로 흩어졌다. 네이트가 손수건은 가지라고 하면서 마지막으로 사라졌다. 모두가 자리를 비키고 나자 루치안이 먼저 예나 쪽으로 걸어왔다.


“정말 여러 번 울리는군요.”


루치안의 손이 잠깐 예나의 얼굴까지 올라왔다가 내려갔다. 자기도 모르게 눈물을 닦아 주려고 했다가 참은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도 루치안의 손이 다가왔을 때의 느낌이 네체르와는 어찌나 다른지, 더한 무례라도 참아낼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예나는 괜찮다는 듯이 웃어 주었다.


“솔직히,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습니다, 예나.”


“무엇을요?”


“바로 어제 선택의 시기는 대개 자기가 택하게 된다고 말씀드렸지요. 하지만 이런 상황이 될 줄은 몰랐군요. 이 성에 아직 주인이 정해지지 않은 인간이 있을 때에는 손님들이 탐을 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제 불찰입니다, 용서하십시오.”


그 말에 예나는 다시 한 번 몸서리를 쳤다.


‘그러니 내가 그대의 고민을 덜어 드리겠소.’


그리고 그 후의 감정하는 듯한 입맞춤. 그 의미는 역시 예나를 소유물로 만들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저는 별 잘난 것도 없는 인간인데, 어째서요?”


“일단 들어가시지요. 저랑 같이 있는 동안은 손님들도 건드리지 않을 겁니다.”


“왜요?”


“질문이 차곡차곡 쌓이는 기분인데요. 가면서 해 드릴 수 있는 만큼은 답해 드릴 테니 일단 움직여요, 어서.”


루치안은 양해를 구하듯 옆에 와서 예나의 팔을 잡았다. 그리고 끌고 가는 기분이 안 들도록 조심하면서 걷기 시작했다. 예나는 졸지에 루치안에게 팔짱을 끼인 채 걷기 시작했다.


“첫 번째 질문에 대한 답은…….”


본관에 들어가서 계단을 오르면서 루치안이 불쑥 말을 꺼냈다.


“어제 들은 거나 다름없습니다. 이 성의 사람들이 서로의 얼굴만 보면서 시간이 멈춘 채 살아서 새로운 바람이 필요하다면, 밤은 오죽하겠습니까.”


“밤도, 죽거나 미치지 않기 위해서?”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지요. 대개의 밤은 이미 미쳤습니다.”


다시 어제처럼 새벽이 된 것 같았다. 루치안은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뒤를 돌아보지 않고 이야기를 했고, 그 뒤를 따라 올라가던 예나는 루치안이 그 말을 한 순간 갑자기 잠깐 더 어두워진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착각일 것이었다. 원래도 그다지 밝은 곳이 아니었으니까.


“헤아릴 수 없는 세월을 살아오면서 밤은 대개 미치거나 소멸했습니다. 지금 남은 자들은 어지간히 독하거나 이미 삐뚤어지고 미친 채로 고정되어 버린 자들이지요. 영주님에게 화를 내셨었으니 영주님도 그런 축에 속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우리 주인님은 그나마 자신을 잘 다스리는 분입니다. 보통 사람과 다른 면이 없다고는 말 못하지만요.”


예나는 네체르와 세르자크를 생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루치안은 뒤돌아 있으니 보지 못할 테지만, 자신에게 하는 몸짓이기도 했으므로 상관없었다. 적어도 영주님은 미숙한 면을 보이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알고 가슴이 따뜻하다. 어쩌면 그래서…….


그래서 뭐?


예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언가 영주님에 대해서 적절한 말이 떠올랐다가 그게 무언지 미처 알아보기도 전에 사라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정말 머리를 꿰뚫는 섬광 같은 깨달음이었는데 바로 발바닥으로 빠져나가 버렸다. 아마도 다시 이와 비슷한 계기가 오지 않는 한 무엇인지 생각해 내기는 힘들 것 같았다.


“밤이 인간에게 약한 이유는 또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들이 받은 저주를 상기시킬 뿐만 아니라, 정말로 밤에게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이지요.”


“설마…… 피?”


‘인간의 피만이 살아도 살지 않은 그 생을 유지할 터이니, 그것마저 없어졌을 때에는 무로 돌아가리라!’


“어떻게 아셨습니까? 어제 제가 이야기했던가요?”


루치안이 놀란 눈으로 돌아보았다. 하지만 예나 자신도 똑같이 놀란 눈으로 마주 볼 수밖에 없었다. 처음 그 벽화를 봤을 때부터 과거에서 예나를 두드리던 목소리. 모든 것이 흐릿하고 두서없는 열두 살 때의 기억이라고밖에는 생각할 수 없었던 그 목소리. 그러니까 예나는 루치안에게서 설명을 듣기 전부터 밤이란 존재들이 무엇인지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뇨, 그냥 문득 든 생각이에요.”


“생각보다 날카로우시군요. 맞습니다. 불로불사의 저주를 받은 밤에게 떨어진 또 다른 저주는, 그 불로불사마저도 인간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었지요. 밤이 인간에게서 자기들의 정체를 숨긴 것은 그 이유도 컸습니다. 밤에게는 인간이 필요했으니까요.”


“인간이 밤의 존재를 알게 되면 곤란한 일이 많이 벌어질까요?”


“어쩌면 아무 일도 없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고, 몇 가지 골치 아픈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불로불사를 저주가 아니라 축복으로 생각하고 그 비밀을 훔치러 오는 자들이 생길 수 있지요. 그런 자들을 일일이 상대하기란 힘들고 귀찮은 일인데다, 그들을 죽여서 입을 막든, 원하는 대로 불로불사를 만들어 주든, 인간의 수가 줄어든다는 데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두 번째로는 반대로 적대하는 경우. 이 경우에도 인간이 아무리 몰려와도 밤이 꿀릴 건 없지만, 귀찮은 건 여전하고, 인간의 수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데에도 변함이 없지요.


결국 인간이 밤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결론이 나왔던 겁니다. 있는 듯 없는 듯, 옛날이야기에서만 가끔 왜곡해서 등장하는 존재로. 악마든 요정이든 흡혈귀든. 실제로는 흡혈귀란 말이 가장 어울리겠지만, 그렇다고 매일매일 한 명씩 잡아가야 할 정도로 필요한 것도 아니니까요. 실제로 지금까지 살아남을 정도로 오래된 밤들은 점점 더 인간의 피를 마시지 않고도 오래 버틸 수 있게 되었지요.“


“그런데도 제가 인간이라는 이유만으로 가지고 싶어 한단 말인가요?”


“새롭고 신선하고 피도 깨끗할 것 같은 인간이잖습니까.”


예나는 좌절했다. 저것은 바꿔 말하면 ‘어리고 싱싱하고 잡아도 비린내 안 날 것 같은 새끼양이잖습니까.’라고 해도 전혀 어색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가지게 된다면, 자기가 싫어하는 놈의 소유물을 가로채는 것일 테니 일석이조겠지요. 네체르 님은 영주님과 굉장히 사이가 좋지 않으시니까요. 거기에 더해서 어쩌면 가장 무서운 이유는…….”


“가장 무서운 이유?!”


“네체르 님이 예나를 마음에 들어 한다거나 하는 일이 벌어진다면, 그게 가장 무섭겠지요. 오늘 쉽게 물러난 걸 보면 아직은 집착하진 않는 것 같습니다만.”


“마음에 들어 해요? 집착? 하지만 그 사람, 곧 다시 보자고 했단 말이에요!”


한 단어 한 단어 들을 때마다 소름이 끼쳐서 견딜 수가 없었다. 예나는 자기도 모르게 루치안에게 매달리다시피 하면서 달려들었다. 그런데 어느새 계단이 끝나는 곳이었던 모양이다. 높이가 맞지 않아서 앞으로 넘어질 뻔한 예나를 부축하며 루치안이 웃었다.


“그래서 제가 온 거 아니겠습니까? 왜 저랑 같이 있으면 손님들이 건드리지 않는 거냐고 물으셨지요?”


“아, 네.”


“저에게는 원한다면 언제든지 영주님을 깨워서 부를 수 있는 작은 권한 또는 의무가 있기 때문이지요. 물론 언제나 영주님과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닙니다만. 저에게도 사생활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까, 루치안과 함께 있는 건 영주님이 직접 보호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뜻인 거군요.”


예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납득했다. 루치안이 웃으면서 한 말에 굳어 버릴 때까지.


“그렇지요. 이번에는 영주님도 직접 움직이시기로 하셨지만 말입니다.”


예나는 자기가 잘못 들었겠거니 생각했다. 하지만 잘 생각해 보니, 너무 심각한 이야기를 하면서 루치안만 보고 따라와서 몰랐지만, 방금 올라온 계단과, 계단을 올라와서 도착한 복도와, 복도 앞에 있는 문이 참으로 낯익었다. 아마도 최근에 많이 본 곳 같았는데…….


“서, 설마?!”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루치안을 돌아보는 순간, 문이 열렸다. 그리고 언젠가 처음 면접을 볼 때 뒤돈 의자에 앉아 있다가 일어났을 때처럼, 처음 사람들과 인사하기 전 홀에 혼자 있는 줄 알았다가 목소리를 들었을 때처럼, 여전히 검은 망토와 검은 옷으로 온몸을 감싼 영주님이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댓글 '9'

레조

2005.12.07 15:46:29

오호!!!!

소야

2005.12.07 18:44:48

오호~~~!!!

귀여운이

2005.12.08 00:01:53

영주님이 직접!! 아아~~

시즈

2005.12.08 01:05:13

바늘 꽂힌 손수건에서 웃고 말았습니다.^^(미안 예나양)
과연 이 다음에 무슨 일이?

위니

2005.12.08 12:10:28

영주님....어서,,,^^

Junk

2005.12.08 14:19:57

밤의 종족 사람들은 대개가 카리스마들...이로군요-ㅠ-

자하

2005.12.08 14:24:00

프롤로그를 보시면 인간을 매혹시킬 줄 아는 밤의 제왕이라고 칭하고 있죠~

Junk

2005.12.08 14:26:35

읽는동안 코피나서 미치는 줄...;;; 넘 야해요, 이 소설...

자하

2005.12.08 15:13:12

그, 그런 말 첨 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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