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소설
- 연재소설
벙어리 바이올린 - 프롤로그 N 01
[미움은 사랑으로도 치료가 가능하다.
하지만 사람들은 미움이라는 검은 열매에 중독되어
사랑이라는 이름을 잊고 사는 경우가 허다하다.]
프롤로그-
한 여자가 연두빛의 정장을 입고서 여러사람들의 인사를 받으며
톨게이트 속으로 사라졌다.
그녀의 이름 유수진. 이제 막 스물여덟이란 나이에 바이올린 하나로
세계를 감동시킬 인물 중에 한 사람이다.
그녀는 비행기가 이제 막 하늘로 접어들었을 때,
벌써부터 어스름하게 저녁 노을들이 내려진 하늘을 바라보면서 눈을 감았다.
뉴욕, 아름다운 도시이겠지만 그녀에게는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물들어 버린 슬픔의 도시였다.
열일곱살 이 후에 한국으로 건너 온 이후에는 다시는 뉴욕 땅만은 밟지
않겠다던 그녀가 친어머니 때문에 크나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01-
그녀는 몇 시간 전 호텔에 도착해 체크인을 마친 다음에 방에 짐들을
놓고서야 간단히 저녁을 때우고는 다시 방에서 뉴욕의 야경들을 감상했다.
열일곱살의 뉴욕 불빛들이 여전히 허공에서 흩날리듯 자신들을 뽐내고 있었다.
저 불빛 어딘가에 자신의 친어머니도 살고 있으리라.
지나간 세월의 장벽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일까?
그녀는 손에 친어머니의 주소가 담긴 쪽지를 꽉 움켜 잡았다.
간단한 청바지에 면티차림인 그녀는 자신의 친어머니가 살고있는 동네의
조용한 집들 사이에 우뚝섰다.
잠시 망설이는 눈빛이 그녀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으나 그녀는 다시
한번 용기를 내어서 아담한 현관문 옆의 초인종을 눌렀다.
‘띵동’
‘띵동’
‘띵동’
한 참이 지난 후에야 해가 한 낮이도록 가운을 입은 여자가
현관문을 열고서 수진을 바라보았다.
마르지도. 그렇다고 뚱뚱하다고 말 할수 없는 여자가 수진을 멀뚱히
바라보자 수진은 답답한 마음에 먼저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유수진이에요.”
“..... 수진이?”
여자는 놀란 기색으로 수진을 쳐다 보았지만 이내 진정한 듯한
눈빛으로 수진을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손짓했다.
“어쩐일이니? 한국에서...”
“그건...”
여자는 수진의 말을 딱 끊은 뒤에 자신의 말을 이어나갔다.
수진이 어떤 말을 하려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수진에게 기회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쟈스민 차가 있는데, 마실래?”
“주시면요.”
여자는 안도한 얼굴로 주방으로 향하더니 함참을 덜그락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잠시 뒤 여자는 이쁜 쟁반에 두 개의 찾잔과 쿠키들을 담은 바구니를
가지고 쇼파로 되돌아 왔다.
“마시렴.”
수진은 한 모금 마신 뒤에 여자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손가락 마디마디 마다 비싼 반지들과 가운 사이에서 빛을 내는 목걸이 까지..
수진이 생각했던 것 보다 그녀는 훨씬 더 잘 살고 있었다.
괜한 걱정을 했다는 듯 수진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앞에 있는
여자를 향해서 입을 열었다.
“유산금 남았나요?”
여자는 수진이 내뱉은 말을 듣고서 조금은 충격인 듯, 얼굴이 파리해졌다.
하지만 여기서 물러설 수진이 아니였다.
“남았나요?”
“미안하구나. 남은 게 없어...”
그녀는 마지 못해서 고개를 숙이고 변명거리를 찾는 듯 했다.
그런 그녀가 수진에게는 가소로움과 중오로 다가왔다.
이 자리에 한시라도 더 있으면 수진. 자신이 미쳐 버릴 것 같았기에
수진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여자의 눈도 자연히 수진의 모습을 따라서 움직였다.
“당신이 그러고는 사람이야?”
“.....”
“사람이냐고!! 미워. 아주 미워서 죽이고 싶어...”
“수진아....”
여자는 눈에 물방울들이 가득 차서 자신을 바라보는 수진의
이름을 불렀으나, 돌아오는 것은 수진의 날카로운 목소리 였다.
‘쾅 -’
수진은 그대로 여자의 집을 나와 호텔 쪽으로 마구 뛰었다.
수진이 막 집을 나간 뒤에 여자는 아직도 찾잔에서 식지 않은
쟈스민 차와 수진이 손도 대지 않은 쿠키 바구니를 바라보면서 지난
세월의 대가가 혹독 하다는 것에 대해서 가슴이 미어졌다.
친 딸. 자신의 친 딸이 다 커서 찾아와서 자신을 원망하는 눈빛이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었다.
“내일 오전 비행기로 예약해 주세요.”
수진. 자신이 이제 더 이상 뉴욕에 머물 이유가 사라졌다.
수진은 내일 오전 비행기로 떠나기로 하고. 아직도 환한 낮이건만
그녀는 침대에 누웠다.
잠을 자고 싶었다. 피곤했다.
이 현실을 잊고 싶었다. 일종의 도피라도. 그 도피가 잠이라고 해도 자고 싶었다.
그 만큼 그녀는 힘들었다.
‘수진아. 우리 수진이 엄마가 사랑하는 거 알지?’
‘응, 알아.’
‘이쁜 내 딸... 엄마가 잠시만 여행 다녀올께.’
‘엄마! 엄마!’
“헉헉-”
악몽이였다.
수진의 꿈 속에는 자신과 엄마가 보였다.
열 여섯 한창 감수성 예민한 나이에 엄마는 젊은 남자와 바람이 나서
아빠와 이혼도 해주지 않고서 수진과 동생 유진이를 버렸었다.
열 일곱 나이에 그렇게 수진은 새엄마라는 새 가족과 함께
뉴욕에서 한국으로 돌아왔고. 그 후로는 새 엄마 이외에는 엄마라는 존재를
잊고 살았었다.
지금 옆에서 수진과 동생을 챙겨주는 새 엄마가 친 엄마보다는
더 없이 괜찮다고 생각하고 지내왔다.
그러나 2년전.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친 엄마가 어디서 그 소리를
들었는지 아빠가 들어 놓은 보험금을 중간에서 가로 챘다.
그 돈들을 찾기 위해서 뉴욕으로 왔건만... 지금 자신이 할 수 있는
일 들은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이였다.
#다음날 -
수진은 공항에 일찍 도착했다.
빨리 뉴욕을 뜨고 싶은 그녀만의 소망이 행동으로 나타났는지도 모른다.
이제 비행기 이륙 시간까지는 20여분이 남은 걸 알고 그녀는
톨게이트 안으로 몸으로 몸을 돌렸다.
“이제 비행기가 한국으로 접어 들었습니다.
모든 승객 분들께서는 안전벨트를 매셨는지 확인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어느 새 비행기는 한국으로 접어 들고 있었다.
그녀는 기쁨을 한 껏 얼굴로 들어내며 소리없이 웃었다.
한적한 시골마을의 병원에 도착한 수진은 택시에서 몸을 내렸다.
‘똑똑-’
하얀색 병실문이 조용히 열렸다.
병실 안에는 창문을 바라보고 있던 마른 여자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몸의 방향을 틀었다.
“엄마!”
수진은 병실문 앞에서 환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앞에서 노을을
등지고 있는 여자를 향해서 엄마라고 기쁜 목소리로 부르며 앞의 여자에게 안겼다.
그녀가 바로 수진의 새엄마였다.
그녀 또한 반가운 얼굴로 수진을 안아주었다.
수진은 엄마와 함께 노을을 등지고 침대에 앉았다.
하늘의 석양 빛이 서서히 하늘에서 사라지고 있는 동안 두 모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앉았다.
그저 눈이 마주치면 웃다가 마는 형식으로 마무리 지었다.
엄마는 아빠가 사고로 돌아가시고 나서 실어증 증상과 함께 우울증을
얻어서 시골의 한적한 요양원에서 지내고 있는 중이였다.
‘스르륵-’
하얀색 병실문이 소리없이 열리자 하얀색의 의사 가운을 걸친 여자가
병실로 들어섰다.
“언니!”
“유진아.”
새하얀 가운을 입은 여자가 수진을 보고 반가워서 웃으면서 수진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진도 그런 그녀의 손을 붙잡고 웃었다.
새하얀 가운의 여자는 수진의 동생인 유진이였다.
지금 막 인턴 생활을 끝내고 레지던트로 접어든 그녀는 이 병원에서도
젊은 의사 축에 꼈다.
늘 웃음을 얼굴에 달고 다녀서 인지 유진의 별명은 보름달이였다.
병원 복도에 두 사람의 그림자가 슬며시 비추어 졌다.
“이미 다 날린 모양이야. 손에 반지랑 목걸이가 주렁주렁.. 후, 생각하기도 싫다.”
수진은. 유진에게 뉴욕에서 생모를 만난 이야기를 해주었다.
화가 나는 수진에 비해서 유진은 왠지 모르게 무덤덤하게 수진의 이야기를
듣고서는 고개만 끄떡 거렸다.
그런 동생의 모습에 수진은 왠지 모르게 짜증이 났다.
“언니. 그렇게 돈에 목 메지마. 나도 이젠 돈 벌고 있잖아.”
“그래도... 지금 엄마가 병원에 계시잖아, 세월에 따른 보상이라도 해드려야지..”
수진은 한숨을 쉬고서 창 밖을 바라보았다.
어느 새 하늘에는 어둠이라는 존재가 하늘을 뒤 덮고 있었다.
“그러지 말고. 한 번 선 봐라.”
유진은 아직도 창 밖의 어둠들을 바라보고 있는 수진에게 넌지시 말을 건냈다.
“나. 이제 막 스물여덟이다. 얘는...”
“아니야. 언니도 나이가 찼어. 내가 소개해 줄께. 아주 젋은 남자야.”
수진은 그런 동생의 말을 흘려 듣는 듯.
다시 엄마가 계시는 병실로 가기 위해서 몸을 틀었다.
아직도 뒤에서는 선 보라고 소리치는 동생도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