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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신데렐라 다이어리 #1
서른을 6개월 앞둔 어느 날,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은형아, 남자 꼬시는 법 좀 가르쳐줘라."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내가 깎아놓은 배를 먹으며 드라마를 흘금거리고 있던 은형은 뜬금없는 나의 말에 씹는 동작을 멈췄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속이 거의 다 비치는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이다. 잠들 때 속 갑갑한 것 못 참는다며 속옷은 이미 벗어놓은 터라 그 얇은 천 뒤로 알몸이 훤히 보였다.
그런 모습에 익숙한 나 자신도 남들이 보면 신기해하겠지만, 은형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겉옷만으로도 충격을 받는다. 한겨울에 미니스커트, 끈 없는 탑을 노브라로 입고, 검정색 망사스타킹을 신는다. 그리고 그 위에 일년 동안 적금을 들어 산 모피코트를 입는 것이다. 누가 봐도 쇼킹한 차림새다. 가끔 과하다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녀의 그런 대담함을 높이 평가한다. 그 과감함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남들 이목은 신경 쓰지 않고 뭐든 저질러버리는 성격의 그녀는 나에게 있어 경외와 질투의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성격의 은형을 놀래는 일은 참 드물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뭐든 심드렁한 친구였으니까.
"다시 말해 봐."
은형은 단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보는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도 불구하고, 방바닥을 굴러 리모콘을 찾아 쥐더니, TV를 껐다.
"어, 그러니까……."
'놀라지 않는 강심장' 은형이 뜻밖의 행동을 보이자 나는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은형은 아예 벌떡 일어나 앉아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지금 너, 남자 꼬시는 법을 물어본 거야?"
"어, 그러니까……."
"이 기집애!"
은형은 갑자기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너,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 구나!"
"어. 그게……."
보통 사람이 일년에 한 번씩 애인을 바꾼다고 하면, 은형은 평균 3개월에 한 번씩 애인을 갈아 치운다. 그리고 나는, 일년에 한번씩 짝사랑의 상대를 갈아 치운다. 은형은 그런 나의 바보 같은 짝사랑을 모두 지켜본 친구다.
"누구 꼬시려고?"
은형의 환하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혹시 여자 아냐?"
"남자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 맞아? 남자를 꼬시는 법 물어본 거야?"
은형은 의심이 채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 맞아. 남자 꼬시는 법."
은형은 벌떡 일어나 '오오'하는 괴상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침대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야, 정신 사납다."
그녀의 호들갑에 다소 자존심이 상했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남자 하나 꼬셔보지 못해 친구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어, 그래, 그래. 말만 해. 뭐든 대답해 줄게."
은형은 후다닥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반짝였다. 다소 과한 관심이 담긴 그녀의 눈빛에 나는 기가 질려 움찔했다.
나와 은형은 그렇게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 그러니까……."
뭘 물어봐야 하는 걸까?
그 순간 나는 나의 연애지식이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뭘 알아야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연애에 관해서는 백치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은형의 얼굴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음……."
나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음, 그러니까……."
"알겠어."
또다시 '음, 그러니까'를 반복하려던 찰나, 은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반짝거리던 눈빛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뭘 알아?"
"지금 내가 질문에 대답할 입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르쳐줘야 할 입장이란 거."
은형은 갑자기 한숨을 쉬며 시선을 거뒀다.
"어? 어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에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한담. 초보시절은 까마득하게 옛날인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 내라고……."
은형은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녀의 말 중에서 '초보시절'이란 말이 머릿속에 잔인하게 박혀버렸다. 초보. 초보라니. 내가 과연 이 나이에 초보의 연애 문법으로 그를 꼬실 수 있을까?
정말 가능할까?
"은형아."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중이니까."
"은형아."
"알았어. 기다려 봐."
"은형아."
"아따, 보채지 좀 말라니깐!"
은형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초보용이 아니라 전문가용 레슨이 필요해."
나는 감히 해도 될지 모를 질문이 목구멍으로 쑥 내려가기 전에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은형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웃고 싶은 건지, 울고 싶은 건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아."
한참 이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은형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반응 때문에 내 남은 자존심은 곧장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 '쩍'하는 소리를 내고 깨져버렸다.
아서라, 주제에 무슨 남자를 꼬시냐. 내가 생각하기에도 얼토당토않은 일인데, 은형이라고 다르랴. 괜히 물어봤어. 저렇게 무시당할 걸.
"야, 됐…"
'그냥 물어본 거야. 신경 쓰지 말아.'라고 말하려는 찰나, 내 앞에 있는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6월. 어제까지만 해도 5월이었는데. 아마 은형이가 뜯은 모양이다. 6월, 7월, 8월... 이제 2003년은 6개월 남았다. 그리고 나의 20대도.
6개월.
20대의 마지막.
그리고 그 6개월이 지나면, 나는 서른.
잔치 따위는 단 한 번도 즐겨보지 못한 이 주현정의 이십대는, 그렇게 가게 되는 것이다.
순간 사랑다운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이십대를 넘기는 것보다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비웃음을 사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미 그녀는 나의 어리석음을 수 십 번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면 이건 발전이요, 진보요, 현명함인 것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무리란 거, 알아. 근데 상대가, 상대가 좀……."
나는 머뭇거렸다.
"선수야."
은형의 얼굴에 갑자기 진지함이 어렸다. 진지함이 아니라면, 아마 호승심일지도.
"선수?"
"응, 선수."
시선을 돌리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 그리고 곧이어 은형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은형은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유혹, 연애, 섹스, 헤어짐. 이런 것들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한 은형의 사고방식보다는 화성인의 사고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테니까. 적어도 화성인은 같은 은하계에 있지 않은가?
"가능해?"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절실하게 들렸다.
은형은 나를 흘끔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고스톱에서 말이야."
"갑자기 왜 고스톱이야?"
"꾼이 제일 무서워하는 상대는 초짜들이야."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섹스광들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상대는 처녀고,"
"뭐?"
나는 얼굴이 벌게졌다.
"마찬가지로 선수들이 제일 기피하는 상대는,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랑스럽고 무모한 초보들이지."
"아."
알 듯 모를 듯한 그녀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다음 말에 뭔가 해답이 있을 거란 기대를 걸고 침묵을 지키며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불친절하게도 아무 말도 없이 혼자 해죽거렸다. 뭔가 즐거운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견디다 못해 답을 재촉했다.
"뭐?"
신나는 상상을 내가 훼방한 건지, 그녀는 금방 뚱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하다는 거야, 불가능하다는 거야?"
"휴."
은형은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불가능?"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정아, 난 널 믿어. 넌, 나 믿어?"
오호라. 남자 꼬시는 법이 우정을 담보로 걸 정도의 비급이란 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진실한 대답은 안다. 표은형, 나는 네가 꾼이란 걸 믿는다.
"어."
은형은 갑자기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찰싹 쳤다. 그리고는 진지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럼, 내 말대로만 해."
"잉?"
"내가 작전을 짜고 지시를 할 테니, 넌 내 말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어, 근데……."
은형은 나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작전 들어가기 전에 적에 대해 알아야지. 지피지기 백전백승! 주현정. 그 사냥감에 대해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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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
@ㅜ.ㅡ@
제이리.
신데렐라 다이어리 #1
서른을 6개월 앞둔 어느 날, 나는 일생일대의 결심을 했다.
"은형아, 남자 꼬시는 법 좀 가르쳐줘라."
바닥에 배를 깔고 누워 내가 깎아놓은 배를 먹으며 드라마를 흘금거리고 있던 은형은 뜬금없는 나의 말에 씹는 동작을 멈췄다.
그녀는 늘 그렇듯이 속이 거의 다 비치는 하늘하늘한 잠옷 차림이다. 잠들 때 속 갑갑한 것 못 참는다며 속옷은 이미 벗어놓은 터라 그 얇은 천 뒤로 알몸이 훤히 보였다.
그런 모습에 익숙한 나 자신도 남들이 보면 신기해하겠지만, 은형을 아는 사람들은 그녀의 겉옷만으로도 충격을 받는다. 한겨울에 미니스커트, 끈 없는 탑을 노브라로 입고, 검정색 망사스타킹을 신는다. 그리고 그 위에 일년 동안 적금을 들어 산 모피코트를 입는 것이다. 누가 봐도 쇼킹한 차림새다. 가끔 과하다 싶을 때도 있긴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녀의 그런 대담함을 높이 평가한다. 그 과감함이야말로 나에게 가장 결핍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서라면 남들 이목은 신경 쓰지 않고 뭐든 저질러버리는 성격의 그녀는 나에게 있어 경외와 질투의 대상이다.
그래서인지 이런 성격의 은형을 놀래는 일은 참 드물다. 자신과 관련된 일이 아니면 뭐든 심드렁한 친구였으니까.
"다시 말해 봐."
은형은 단 한 편도 놓치지 않고 보는 드라마가 방영 중인데도 불구하고, 방바닥을 굴러 리모콘을 찾아 쥐더니, TV를 껐다.
"어, 그러니까……."
'놀라지 않는 강심장' 은형이 뜻밖의 행동을 보이자 나는 내심 당황하고 말았다.
은형은 아예 벌떡 일어나 앉아 내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았다.
"지금 너, 남자 꼬시는 법을 물어본 거야?"
"어, 그러니까……."
"이 기집애!"
은형은 갑자기 환한 얼굴로 소리쳤다.
"너, 이제야 정신을 차리는 구나!"
"어. 그게……."
보통 사람이 일년에 한 번씩 애인을 바꾼다고 하면, 은형은 평균 3개월에 한 번씩 애인을 갈아 치운다. 그리고 나는, 일년에 한번씩 짝사랑의 상대를 갈아 치운다. 은형은 그런 나의 바보 같은 짝사랑을 모두 지켜본 친구다.
"누구 꼬시려고?"
은형의 환하던 얼굴이 갑자기 굳었다.
"혹시 여자 아냐?"
"남자야!"
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정말 맞아? 남자를 꼬시는 법 물어본 거야?"
은형은 의심이 채 가시지 않은 눈빛으로 물었다.
"그래, 맞아. 남자 꼬시는 법."
은형은 벌떡 일어나 '오오'하는 괴상한 감탄사를 연발하면서 침대 주변을 뱅글뱅글 돌았다.
"야, 정신 사납다."
그녀의 호들갑에 다소 자존심이 상했다. 나이 서른이 다 되도록 남자 하나 꼬셔보지 못해 친구에게 그런 질문을 하다니.
"어, 그래, 그래. 말만 해. 뭐든 대답해 줄게."
은형은 후다닥 내 앞에 다소곳이 앉아 눈을 반짝였다. 다소 과한 관심이 담긴 그녀의 눈빛에 나는 기가 질려 움찔했다.
나와 은형은 그렇게 몇 초 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음. 그러니까……."
뭘 물어봐야 하는 걸까?
그 순간 나는 나의 연애지식이 실로 어처구니가 없을 정도로 형편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뭘 알아야 하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연애에 관해서는 백치와 다름없다는 사실을.
내 얼굴을 뚫어져라 바라보는 은형의 얼굴은 가까이 다가오고 있는 것처럼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지나치게 반짝거리는 그녀의 눈동자에 괜스레 얼굴이 화끈거렸다.
"음……."
나는 시선을 돌려버렸다.
"음, 그러니까……."
"알겠어."
또다시 '음, 그러니까'를 반복하려던 찰나, 은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반짝거리던 눈빛은 어느새 평정을 되찾고 있었다.
"뭘 알아?"
"지금 내가 질문에 대답할 입장이 아니라, 처음부터 가르쳐줘야 할 입장이란 거."
은형은 갑자기 한숨을 쉬며 시선을 거뒀다.
"어? 어어……."
차라리 다행이었다.
"에휴. 도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한담. 초보시절은 까마득하게 옛날인데 그걸 어떻게 기억해 내라고……."
은형은 그 자리에 벌러덩 누워버렸다.
그녀의 말 중에서 '초보시절'이란 말이 머릿속에 잔인하게 박혀버렸다. 초보. 초보라니. 내가 과연 이 나이에 초보의 연애 문법으로 그를 꼬실 수 있을까?
정말 가능할까?
"은형아."
"가만히 있어 봐. 생각 중이니까."
"은형아."
"알았어. 기다려 봐."
"은형아."
"아따, 보채지 좀 말라니깐!"
은형은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초보용이 아니라 전문가용 레슨이 필요해."
나는 감히 해도 될지 모를 질문이 목구멍으로 쑥 내려가기 전에 내뱉어버리고 말았다.
은형의 표정이 이상하게 변했다. 웃고 싶은 건지, 울고 싶은 건지 도무지 가늠하기 어려운 표정이었다.
"아."
한참 이상한 표정으로 날 바라보던 은형의 입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희미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그녀의 반응 때문에 내 남은 자존심은 곧장 바닥으로 곤두박질쳐서, '쩍'하는 소리를 내고 깨져버렸다.
아서라, 주제에 무슨 남자를 꼬시냐. 내가 생각하기에도 얼토당토않은 일인데, 은형이라고 다르랴. 괜히 물어봤어. 저렇게 무시당할 걸.
"야, 됐…"
'그냥 물어본 거야. 신경 쓰지 말아.'라고 말하려는 찰나, 내 앞에 있는 달력이 눈에 들어왔다.
6월. 어제까지만 해도 5월이었는데. 아마 은형이가 뜯은 모양이다. 6월, 7월, 8월... 이제 2003년은 6개월 남았다. 그리고 나의 20대도.
6개월.
20대의 마지막.
그리고 그 6개월이 지나면, 나는 서른.
잔치 따위는 단 한 번도 즐겨보지 못한 이 주현정의 이십대는, 그렇게 가게 되는 것이다.
순간 사랑다운 사랑 한 번 못해보고 이십대를 넘기는 것보다는 가장 친한 친구에게 비웃음을 사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이미 그녀는 나의 어리석음을 수 십 번 목격하지 않았던가. 그에 비하면 이건 발전이요, 진보요, 현명함인 것이다.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무리란 거, 알아. 근데 상대가, 상대가 좀……."
나는 머뭇거렸다.
"선수야."
은형의 얼굴에 갑자기 진지함이 어렸다. 진지함이 아니라면, 아마 호승심일지도.
"선수?"
"응, 선수."
시선을 돌리고 뭔가 생각하는 표정. 그리고 곧이어 은형의 얼굴에는 사악한 미소가 떠올랐다.
"흐음, 그렇단 말이지?"
은형은 한 손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듯했다.
그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나는 전혀 알 수가 없다. 유혹, 연애, 섹스, 헤어짐. 이런 것들을 머리가 아니라 온몸으로 체득한 은형의 사고방식보다는 화성인의 사고방식을 연구하는 것이 훨씬 수월할 테니까. 적어도 화성인은 같은 은하계에 있지 않은가?
"가능해?"
전혀 의도하지 않았는데, 이 질문은 생각보다 훨씬 절실하게 들렸다.
은형은 나를 흘끔 쳐다보며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고스톱에서 말이야."
"갑자기 왜 고스톱이야?"
"꾼이 제일 무서워하는 상대는 초짜들이야."
그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섹스광들이 제일 골치 아파하는 상대는 처녀고,"
"뭐?"
나는 얼굴이 벌게졌다.
"마찬가지로 선수들이 제일 기피하는 상대는, 상처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랑스럽고 무모한 초보들이지."
"아."
알 듯 모를 듯한 그녀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나는 다음 말에 뭔가 해답이 있을 거란 기대를 걸고 침묵을 지키며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불친절하게도 아무 말도 없이 혼자 해죽거렸다. 뭔가 즐거운 생각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나는 견디다 못해 답을 재촉했다.
"뭐?"
신나는 상상을 내가 훼방한 건지, 그녀는 금방 뚱한 표정을 지었다.
"가능하다는 거야, 불가능하다는 거야?"
"휴."
은형은 대답대신 한숨을 내쉬었다. 답답하다는 표정이 역력했다.
"불가능?"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현정아, 난 널 믿어. 넌, 나 믿어?"
오호라. 남자 꼬시는 법이 우정을 담보로 걸 정도의 비급이란 건가?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있는 진실한 대답은 안다. 표은형, 나는 네가 꾼이란 걸 믿는다.
"어."
은형은 갑자기 양손으로 자신의 뺨을 찰싹 쳤다. 그리고는 진지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쥐었다.
"그럼, 내 말대로만 해."
"잉?"
"내가 작전을 짜고 지시를 할 테니, 넌 내 말대로만 하면 되는 거야."
"어, 근데……."
은형은 나의 말을 채 듣지도 않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자, 작전 들어가기 전에 적에 대해 알아야지. 지피지기 백전백승! 주현정. 그 사냥감에 대해 말해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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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ㅜ.ㅡ@
제이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