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395


"일어날 것 없네."

적월이 몸을 일으키려는 환자에게 조용히 말했다. 몸의 절반은 붕대로 덮여있는 환자는 눈을 감았다.

"면목 없습니다 수장님."

비혈이 눈을 감은 채로 웅얼거렸다. 감정 없는 목소리로 웅얼거리고 있는 비혈의 팔을 적월이 잡았다.

"물을 쓰는 자라고 했던가?"
"예. 보세요."

일족의 치유사 중 하나인 해련이 말했다.

"붕대를 갈아도 갈아도 끝이 없습니다. 긴급한 수혈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적월은 비혈의 몸 절반을 덮고 있는 선홍빛 붕대를 바라보았다. 처음에는 흰 빛이었을 붕대는 이제는 핏빛을 띄다 못해 핏물을 머금으며 끊임없이 피를 토해내고 있었다. 붕대를 감당하지 못한 핏물은 침대를 적시며 한켠에 놓여진 양동이로 떨어졌다.

"피는?"
"아직은 괜찮습니다. 비축해 놓은 것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대로라면 미이라 상태로 남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알겠네."
"차라리... 이 대로 사냥당하게 해 주..."

적월은 피투성이가 되어 죽음을 바라는 비혈을 바라보며 고개를 저었다.

"이런 일로 유능한 전사를 잃고 싶지는 않아. 해련."
"네."
"케인이 루아리와 함께 와 있어. 아마 어머님을 만나 뵙고 있을 테니 연락을 취해 두게."
"루아리라고요?"

해련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았다.

"알겠습니다.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비혈이 눈을 깜박였다. 붕대가 감기지 않은 눈에서 피와 눈물이 섞여 방울졌다.

"정말. 면목이..."
"회복이 되어 주면 돼. 루아리 정도라면 자네의 출혈은 막아 주겠지."
"죄송. 죄송합니다. 알았어야..."

적월은 피투성이의 붕대 위로 비혈의 팔을 쓰다듬었다. 비혈이 눈을 깜박이며 팔을 움직였다.

"무리하게 움직이지 말아. 한 사람의 전사도 아까울 지경이니까. 그리고 빨리 회복되는 것이 서로에게 좋겠어."
"네?"
"이런 짓을 할 수 있는 자가 몇이나 될 것으로 보나?"

적월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지어졌다. 비혈은 눈을 크게 떴다가 다시 감았다. 수장은 뭔가 감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안심이었다.

"저에게. 기회를."
"알고 있어."

적월이 부드러운 손길로 비혈의 붕대가 감기지 않은 팔을 두드리며 조용히 말했다. 이렇게 당했으면, 똑같이 당하게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 그리고 비혈은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는 전사였다.
비혈이 편안하게 눈을 감은 것을 확인한 적월은 아홍에게 몸을 돌렸다.

"랑우는?"
"회복실로 옮겨졌습니다. 반혈 모계의 순혈이다 보니 자체 회복력이나 치유력이 월등하니까요."
"회복실에 들르고 싶군."
"알겠습니다."

회복실로 가는 복도를 걸으며, 아홍이 조용히 물었다.

"짐작 가시는 곳이라도?"
"건물의 1/3 이상을 완전히 부서뜨리면서, 자신과 겨루는 자에게 저런 잔인한 술수를 쓸 수 있는 물을 다루는 자는 얼마 없지."
"그렇다면?"
"비혈조차 움직임을 봉쇄하지 못했어. 게다가 랑우나 비혈, 둘 다 전투력이나 모습을 알지 못하는 자라고 했을 때에는 후보가 더 줄겠지."

아홍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모퉁이를 돌았다. 적월이 한숨을 쉬었다.

"네 짓이니 형을 받으라고 말할 수 있는 증거가 적어서 유감이야. 랑우나 비혈 둘 중 하나라도 얼굴을 보고 확인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적월이 회복실의 문을 열며 말했다. 문이 열리는 소리를 들었는지 랑우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수장님."
"괜찮네."

일어서려고 하는 랑우를, 적월이 어깨를 눌러 자리에 앉혔다. 민망한 듯, 랑우가 잠시 저항하다 침대에 누웠다.

"죄송합니다."
"괜찮네."

적월이 랑우의 손을 잡으며 중얼거렸다. 랑우의 팔은 자상으로 엉망진창이었다.

"비혈 형님은 괜찮으십니까? 부상이 심하시다고 들었습니다만."
"회복될 기미가 보이네. 그건 그렇고, 잠시 상의를 벗어 보겠나?"
"알겠습니다."

랑우는 순순히 상의를 벗고 모로 누웠다. 엄청난 자상이 난 랑우의 등을, 적월이 찬찬히 살폈다.
작고 섬세한 상처는 아무렇게나 새겨진 듯 했지만 실은 깊고 확실하게 패어 있었다. 엉망이 된 등의 작은 상처를 꼼꼼히 살피던 적월은 인상을 찡그렸다.

"담당 치유사에게 꼼꼼히 살필 것을 명해 두겠네."
"그러시지 않으셔도."

사양하려는 랑우에게 적월은 딱딱하게 말했다.

"자네를 위해서야. 회복 후기가 위험할 테니까. 아홍."
"예. 수장님."
"담당 치유사가 휴화 였던가?"
"맞습니다."
"담당 치유사를 휴화에서 유루로 바꾸도록 해. 그리고 매일매일 상태를 체크해서 나에게 알리는 것을 잊지 않도록 당부해 둬요."
"예."

회복실을 나오며, 적월이 인상을 찡그렸다. 확신이 갔다. 하지만 증거는 없었다. 수법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밀어붙이기에는 그들의 배경이 만만치 않았다.

"아홍."
"예."
"헌원의 소재를 알아봐 줘요."
"어떤?"
"해어 장로님의 아들인 헌원의 소재를 알아봐 줘요."
"알겠습니다."

수장의 작은 사무실에서, 적월은 인상을 찡그리며 서류를 바라보았다. 평소 그에게 유난히 감정이 좋지 못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수장으로 즉위했을 때에 있었던 작은 소동 외에는 아무 일도 벌이지 않고 있었기에, 마음놓고 있었던 것이 잘못이었다.

"그렇게까지는 보지 않았는데."

그저 약간 비딱한 시선을 가졌거니, 생각했었다. 일족의 안위를 위협할 정도로 마구잡이로 행동할 자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적월은 복잡해지는 머릿속을 정리하기 위해 깊은숨을 쉬며 서류에 얼굴을 묻었다.



"뭐야?"
"그러니까 잠시 몸을 피하는 것이 좋겠어."
"젠장. 여우 같은 자식."

헌원이 인상을 찡그리며 탁자를 내리쳤다. 원목으로 만들어진 탁자는 큰 소리도 내지 않고 조용히 쪼개졌다.

"성질 부릴 게 아니잖아."
"너야말로 짜증 내지 마."

주영은 자신의 오빠를 바라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약간은 만족감에 차 있던 얼굴이 일그러지고, 눈은 짜증과 의아함으로 빛났다.

"내가 생각하기엔, 탐색 능력을 사용할 줄 아는 대부분의 동족에게 명령을 내리지 않았을까? 이번에 꽤 엿 먹였으니까."
"아아."

헌원이 빙긋 웃었다.

"즐거웠지."

혈액원을 깨부쉈을 때의 짜릿함을 떠올리며, 그가 미소를 지었다. 주영은 직접 나서지 말라고 했었지만, 적월의 코를 납작하게 해 줄 기회를 그냥 구경만 하고 앉아있을 그가 아니었다. 살풍경해서 이용할 만한 것이 무척 적었는데도 불구하고, 그는 몇 개의 가로수만으로도 충분히 혈액원의 주요 기관들을 박살내며 즐겼다.

"어쨌건 잠시 동안은 어디 피신해 있는 것이 좋겠어. 설영이나 나머지 동료들에게는 내가 알려둘게."
"알겠다."

뒤돌아 나가는 주영의 손에서 뭔가가 부서졌다.

"쳇."
"무슨 일이지?"
"술이 깨졌어. 아까워 죽겠네."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것을 바라보며 주영이 투덜거렸다. 눈앞에서 아끼던 전사가 죽어 가는 것을 보면 더 약이 오를 지도 모른다며, 쓸데없는 짓을 하지 말라던 오빠를 설득해서 약간 장난을 쳤었다.
제대로 먹혔다면 지금쯤은 잘 구워진 마른 노가리처럼 말라 비틀어져 있을 텐데.
아쉬움을 삼키며 주영이 핏물을 발로 밟아 문댔다. 핏물이 떨어진 자리에서는 희미하게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술 때문에 들킨 건 아니냐?"
"설마 그럴 리가? 이 정도는 중급 이상이면 다들 하는걸."

하지만 술수의 잔혹함 때문에 정작 사용하는 자는 적었다. 특히 적월이 수장이 된 다음부터는 잔인한 기술의 사용을 엄금하고 있었기에, 술 때문에 들켰을 가능성도 꽤 되었다.

"그걸 의심하는 것보다, 협력해 주는 쪽을 좀 의심해 보는 게 어때? 뭔가 이상하잖아. 지금까지 꼼짝도 안 하다가 갑자기 이런 식으로 적극적으로 나오다니."

주영이 꽥 소리를 질렀다.

"그 쪽에 대해서는 염려할 거 없어. 너보다는 훨씬 더 믿음직 하니까."

덜렁거리면서 여기저기 흔적을 남기는 말괄량이보다는, 그 쪽이 훨씬 더 믿을 만 했다. 지금까지 주는 정보들은 틀린 적이 없었고, 혈액원 습격 때는 경비들의 경계를 흐트리고 내부의 주요 기관의 약도까지 확실하게 보내주었다.
얼굴 한 번 제대로 본 적 없었지만, 정보만은 알짜였기 때문에 당분간은 믿을 만 한 상대였다.

"아 참, 이것도 받았어."
"음?"
"이건 직접 전해달라는 쪽지와 함께 왔던걸."

작은 봉투를 받은 헌원의 옆에서, 주영이 호기심을 품고 얼쩡거렸다. 헌원이 무섭게 째려보자, 주영이 어깨를 으쓱했다.

"아. 알았어. 그렇게 무섭게 째려 볼 필요는 없잖아. 어쨌든 다른 동료들에게 알리고 올게."

주영이 나가자 헌원은 단단하게 봉해진 봉투의 입구를 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내용은 간단했다.

'요즘 그가 노리는 듯 한 먹이입니다. 어떠세요?'

그리고 사진이 한 장.

"호오."

헌원은 사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단발머리, 깔끔하면서도 절도 있는 옆모습 게다가.

"여자잖아."

이미 사냥해서 피를 빠는 일은 50년도 전에 그만 둔 적월이다. 그런 적월이 사냥감을 쫓는다면 이유는 다른 데 있을 것이다.

"재미있군."

헌원의 입가에 묘한 웃음이 걸렸다. 조용히 사진을 봉투에 넣은 그는 자리에서 일어서서 짧은 메모와 함께 사진이 든 봉투를 다른 봉투에 넣고 봉했다.

"좋아. 이것도 재미있겠군."


그럭저럭 2장 시작입니다.

다음편은 일요일에 올라갑니다.





댓글 '6'

정은

2004.09.30 01:12:29

.. 여기서 끊어버리시는 건 왜애? 왜애~~~!!!!
.. 시험때문에 날짜 가는게 고역인데, ciel님 글 때문에 시간이 빨리 가길 바래야 겠군요.

mirage

2004.09.30 09:44:38

연휴뒤의 즐거움이군요.
이제 여주인공의 위험과 남주인공의 날뛰는 모습을 볼수있는건가요?
두근두근두근~~~

joung

2004.09.30 10:48:11

일요일이요~....기다림은 넘 힘들어요.....하지만 기둘리겠습니다...꼭~~!!!!

minhA~*

2004.09.30 20:00:50

우웃^0^...너무 재미있어여... 호호호... 일요일까지 기다리겠습니다...

엄용준대학생26살

2009.11.03 20:39:13

보내세요 그래도 좋은할까요 떠얺습니다 꼭 실링비혈 멤버 꽃보다여자 함수정22살 언니
마음을 보세요 정말 다시 너는다 사랑한다 연예인 파워댄스 춤추 감동
미세요 진짜 놀랑운대화스타킹 도전 비혈 언니 보고싶네요 파이팅

함수정언니

2010.03.22 20:15:09

보내세요 그럲는더 실링비혈 멤버 보고싶네요 맔수었이요 좋아요 팬
서올 보세요 반갑하고 많따는다 김동 댄스 보내세요 사과는하고 좋아요 여자친구 패워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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