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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전(外傳)
1. 여우사냥
나는 사냥꾼이다.
아버지도 사냥꾼이었고 할아버지도 사냥꾼이셨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그러니까 아주 아주 오래 이어 내려온 가업을 잇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내 몇 대조 할아버지쯤 되는 조상께서 꽤 잘 나가는 사냥꾼이셨다고 한다. 그분께서 잡은 호랑이나 곰은 어떤 사냥꾼들은 좀처럼 잡기 힘든 것들이었다고 한다. 산골 어느 마을에 출몰하는 승냥이나 늑대를 마을 사람들의 청으로 잡아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명성은 높아져갔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유명세에 우쭐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본분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직업의식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사냥은 그의 낙(樂)이자 특기, 취미였으며 생계수단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양반이 흔치 않은 것을 잡아달라고 했다. 사례는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꼭 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처음 그의 의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원하는 사냥감이라는 것을 그는 한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들어보긴 했었다. 사냥꾼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떠돌던 그 '사냥감'에 관한 소문.
은빛 털은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은밀히 거래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소문만 무성한 그 사냥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사냥은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했다. 어떤 사냥꾼이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지만, 그건 더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냥꾼 일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그런 사냥을 하지 않아도 그와 그의 가족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명분이 생겼다.
그 사냥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의 동료가 그 제물로부터 목숨을 빼앗겼다.
그의 노모가 병석에 누웠다.
그의 어린 아들이 이름모를 병에 걸렸다.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서 왔다.
사냥을 의뢰한 양반을 찾아갔다.
구미호에게 아들을 잃은 양반은 원하는대로 돈을 주겠다고 했다.
양반은 그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그의 아들에게 산삼을 선사했다.
결정했다.
그는 이제 목숨을 걸고 사냥을 시작했다.
구미호의 습성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떠도는 소문을 모았다.
월식이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달이 빛을 잃을 때 그들은 가장 약해진다고 했다.
구미호의 구슬이 영험한 것도 알았다.
구슬을 가루로 빻아 약을 지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의 노모와 어린 아들을 생각했다.
밤마다 그는 구미호가 출몰한다는 산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그의 발 아래 천년묵은 구미호가 붉은 구슬을 토해내고 쓰러졌다.
그는 다시 유명해졌다. 짧은 시간에 구미호를 잡은 최초의 사냥꾼이 되었으며 이후로 그는 오직 여우만 잡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는 일생 그 어떤 사냥꾼 보다 많은 구미호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최후는 당연하게 구미호의 손아귀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심장은 구미호에게 받쳐졌고 그의 생명은 구미호 생명의 정수라는 홍주(紅珠)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래서 가루가 된 구슬을 넣은 약의 효험을 본 그의 어린 아들은 아비를 따라 여우사냥꾼이 되었다. 그의 아들에... 아들에... 아들들은 모두 선조를 따라 사냥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냥꾼이 되었다.
지금은 나 말고는 아무도 그것을 잡지 않는다.
사람들은 월광에 빛나는 그 은빛 털을 알지 못한다.
한 번 보기만 한다면 잊질 못할 것이다.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이다.
나는 구미호를 사냥한다.
2. 아홉 수
999번째 심장
사내의 동공이 급격히 확대된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
마디 마디가 하얗게 질린 손 위에 들려져 있는 저 것은 무엇?
팔딱거리며 움직이는 저 것이 심장이란 것인가?
끈적 끈적한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여자의 흰 손이 움켜쥐는 것은 사내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눈이 고양이눈처럼 가늘어졌다.
의식을 행하기에 깊은 밤은 아주 적당한 시간이다.
하루종일 소음에 묻혔던 제물의 울음 소리가 밤이 되자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뒤섞인 소음속에서 쥐가 찍찍거리듯 한 미묘한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미호는 신중히 귀를 기울인다.
으슥한 뒷골목
범죄의 현장
피냄새가 밀려든다.
인적이 드문 교외의 도로 한 곳에 차를 세운 사내 둘은 주위를 살피며 차에서 내렸다. 나즈막한 산을 끼고 도는 도로에 진입한 지 십여분 후.
미호는 그들의 시선이 미치치 않는 곳에서 그들의 하는 양을 관찰했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사내들은 무거워보이는 큰 자루를 뒷 트렁크에서 꺼내 도로 옆 수풀이 우거진 도랑에 굴려 밀어버렸다.
미호는 차를 서서히 몰아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문제있으세요?"
차창을 내리고 말을 건네는 미호를 바라보는 사내들의 눈동자가 음험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한 사내가 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 아, 네, 빳데리가 나갔는지 차가 갑자기 서버렸네요. 하하하"
다른 사내가 동료의 웃음을 알아차리고 말을 덧붙인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정비를 불러야하는데, 우리 둘다 핸드폰이 나가버려서요.흐흐"
"그러죠."
요염한 미소를 흘리고 차에서 내려서는 미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두 사내는 오늘부로 세상과는 작별할 것이다.
목이 마르다.
입안이 갈라질 듯 하다.
갈증이 인다.
그 어떤 물로도 해갈되지 않을 극심한 갈증이다.
숨쉬기마저 곤란할 지경의 갈증은 단지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을 뿐인 건조함이다.
산 중에서 심장하나를 해치운 미호는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한 그녀를 향한 공격적인 기운이었다. 기운을 감지한 미호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해. 흔적이 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미호가 떠나고 얼마 후 쐐액-소리와 함께 화살이 하나 나무에 꽂힌다.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활을 쥔 사냥꾼 창영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냉정한 얼굴로 미호의 흔적을 더듬었다. 차가운 광기를 가진 창영의 눈이 어둠속에서 안광을 발했다. 예민한 코가 벌름거려 사냥감의 냄새를 찾아냈다. 나무에 꽂힌 화살을 뽑고 활에 다시 그 화살을 시위에 걸어 팽팽히 당겼다. 창영의 시선 끝과 뾰족한 화살촉의 지향점이 일치하고 시위를 당기는 창영의 손에 힘이 주어졌다. 창영은 한 순간 호흡을 정지시켰다.
탕!
명쾌한 음을 산중에 퍼뜨리면서 화살이 목표를 향해 꼬리깃을 보이며 어둠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만히 서서 화살의 소리를 쫓던 창영은 무뚝뚝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화살은 목표를 빗나가 다시 나무에 박혔다.
쏘아놓은 화살을 향해 가던 창영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어버렸다.
툭.툭.
머리위로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낭패다.
비가 사냥감의 흔적을 덮어줄 것이다.
창영은 침을 탁 뱉었다.
그의 인상이 좀더 험악해졌다.
오늘도 놓치다니...
그의 사냥감은 정말로 운이 좋은가 보다.
1. 여우사냥
나는 사냥꾼이다.
아버지도 사냥꾼이었고 할아버지도 사냥꾼이셨다.
내 아버지의 아버지의 아버지의.....
그러니까 아주 아주 오래 이어 내려온 가업을 잇고 있는 셈이다.
그 옛날,
내 몇 대조 할아버지쯤 되는 조상께서 꽤 잘 나가는 사냥꾼이셨다고 한다. 그분께서 잡은 호랑이나 곰은 어떤 사냥꾼들은 좀처럼 잡기 힘든 것들이었다고 한다. 산골 어느 마을에 출몰하는 승냥이나 늑대를 마을 사람들의 청으로 잡아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의 이야기가 널리 퍼지게 되었고 명성은 높아져갔다. 그렇다고 그가 그런 유명세에 우쭐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그의 본분을 잊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는 단지 직업의식에 충실했을 뿐이었다.
사냥은 그의 낙(樂)이자 특기, 취미였으며 생계수단이었다.
그런 그에게 어느 양반이 흔치 않은 것을 잡아달라고 했다. 사례는 원하는 대로 해주겠다며 꼭 잡아줄 것을 부탁했다. 그는 처음 그의 의뢰에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그가 원하는 사냥감이라는 것을 그는 한번도 잡아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소문은 들어보긴 했었다. 사냥꾼들 사이에서 심심찮게 떠돌던 그 '사냥감'에 관한 소문.
은빛 털은 아는 사람 사이에서만 은밀히 거래된다고 했다.
처음에는 거절했다.
아무리 돈을 많이 준대도 소문만 무성한 그 사냥감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 사냥은 목숨을 걸어야한다고 했다. 어떤 사냥꾼이든 자신의 목숨을 걸고 사냥을 하지만, 그건 더 위험하다고 했다. 그리고 사냥꾼 일평생 한 번 보기도 어려운 것이라고 했다.
그런 사냥을 하지 않아도 그와 그의 가족은 충분히 먹고 살 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 그에게 명분이 생겼다.
그 사냥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다.
그의 동료가 그 제물로부터 목숨을 빼앗겼다.
그의 노모가 병석에 누웠다.
그의 어린 아들이 이름모를 병에 걸렸다.
모든 악재가 한꺼번에 겹쳐서 왔다.
사냥을 의뢰한 양반을 찾아갔다.
구미호에게 아들을 잃은 양반은 원하는대로 돈을 주겠다고 했다.
양반은 그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그의 아들에게 산삼을 선사했다.
결정했다.
그는 이제 목숨을 걸고 사냥을 시작했다.
구미호의 습성에 대한 자료를 모았다. 떠도는 소문을 모았다.
월식이 그들에게 가장 위험한 시간이라는 것을 알았다.
달이 빛을 잃을 때 그들은 가장 약해진다고 했다.
구미호의 구슬이 영험한 것도 알았다.
구슬을 가루로 빻아 약을 지으면 죽어가는 사람도 살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그의 노모와 어린 아들을 생각했다.
밤마다 그는 구미호가 출몰한다는 산으로 들어갔다.
마침내 그의 발 아래 천년묵은 구미호가 붉은 구슬을 토해내고 쓰러졌다.
그는 다시 유명해졌다. 짧은 시간에 구미호를 잡은 최초의 사냥꾼이 되었으며 이후로 그는 오직 여우만 잡는 사냥꾼이 되었다.
그는 일생 그 어떤 사냥꾼 보다 많은 구미호를 잡았다.
그리고 그의 최후는 당연하게 구미호의 손아귀에서 이루어졌다.
그의 심장은 구미호에게 받쳐졌고 그의 생명은 구미호 생명의 정수라는 홍주(紅珠)의 일부분이 되었다.
그래서 가루가 된 구슬을 넣은 약의 효험을 본 그의 어린 아들은 아비를 따라 여우사냥꾼이 되었다. 그의 아들에... 아들에... 아들들은 모두 선조를 따라 사냥꾼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사냥꾼이 되었다.
지금은 나 말고는 아무도 그것을 잡지 않는다.
사람들은 월광에 빛나는 그 은빛 털을 알지 못한다.
한 번 보기만 한다면 잊질 못할 것이다.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사냥꾼이다.
나는 구미호를 사냥한다.
2. 아홉 수
999번째 심장
사내의 동공이 급격히 확대된다.
그는 자신의 눈을 믿을 수가 없다.
마디 마디가 하얗게 질린 손 위에 들려져 있는 저 것은 무엇?
팔딱거리며 움직이는 저 것이 심장이란 것인가?
끈적 끈적한 피로 붉게 물들어가는 여자의 흰 손이 움켜쥐는 것은 사내의 심장이었다.
그리고 여자의 눈이 고양이눈처럼 가늘어졌다.
의식을 행하기에 깊은 밤은 아주 적당한 시간이다.
하루종일 소음에 묻혔던 제물의 울음 소리가 밤이 되자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낸다. 뒤섞인 소음속에서 쥐가 찍찍거리듯 한 미묘한 소리를 찾아내기 위해 미호는 신중히 귀를 기울인다.
으슥한 뒷골목
범죄의 현장
피냄새가 밀려든다.
인적이 드문 교외의 도로 한 곳에 차를 세운 사내 둘은 주위를 살피며 차에서 내렸다. 나즈막한 산을 끼고 도는 도로에 진입한 지 십여분 후.
미호는 그들의 시선이 미치치 않는 곳에서 그들의 하는 양을 관찰했다.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사내들은 무거워보이는 큰 자루를 뒷 트렁크에서 꺼내 도로 옆 수풀이 우거진 도랑에 굴려 밀어버렸다.
미호는 차를 서서히 몰아 그들에게로 다가갔다.
"무슨 문제있으세요?"
차창을 내리고 말을 건네는 미호를 바라보는 사내들의 눈동자가 음험하게 움직였다.
그리고 한 사내가 보다 빠르게 반응한다.
"?? 아, 네, 빳데리가 나갔는지 차가 갑자기 서버렸네요. 하하하"
다른 사내가 동료의 웃음을 알아차리고 말을 덧붙인다.
"좀 도와주시겠습니까? 정비를 불러야하는데, 우리 둘다 핸드폰이 나가버려서요.흐흐"
"그러죠."
요염한 미소를 흘리고 차에서 내려서는 미호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하는 두 사내는 오늘부로 세상과는 작별할 것이다.
목이 마르다.
입안이 갈라질 듯 하다.
갈증이 인다.
그 어떤 물로도 해갈되지 않을 극심한 갈증이다.
숨쉬기마저 곤란할 지경의 갈증은 단지 시간만이 해결해줄 수 있을 뿐인 건조함이다.
산 중에서 심장하나를 해치운 미호는 어떤 기운을 감지했다. 최대한 감추려고 노력한 그녀를 향한 공격적인 기운이었다. 기운을 감지한 미호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져야해. 흔적이 남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미호가 떠나고 얼마 후 쐐액-소리와 함께 화살이 하나 나무에 꽂힌다.
현대와 어울리지 않는 활을 쥔 사냥꾼 창영이 어둠속에서 모습을 드러냈고 냉정한 얼굴로 미호의 흔적을 더듬었다. 차가운 광기를 가진 창영의 눈이 어둠속에서 안광을 발했다. 예민한 코가 벌름거려 사냥감의 냄새를 찾아냈다. 나무에 꽂힌 화살을 뽑고 활에 다시 그 화살을 시위에 걸어 팽팽히 당겼다. 창영의 시선 끝과 뾰족한 화살촉의 지향점이 일치하고 시위를 당기는 창영의 손에 힘이 주어졌다. 창영은 한 순간 호흡을 정지시켰다.
탕!
명쾌한 음을 산중에 퍼뜨리면서 화살이 목표를 향해 꼬리깃을 보이며 어둠속으로 순식간에 사라졌다. 가만히 서서 화살의 소리를 쫓던 창영은 무뚝뚝한 인상을 일그러뜨렸다. 화살은 목표를 빗나가 다시 나무에 박혔다.
쏘아놓은 화살을 향해 가던 창영은 갑작스레 걸음을 멈추어버렸다.
툭.툭.
머리위로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했다.
낭패다.
비가 사냥감의 흔적을 덮어줄 것이다.
창영은 침을 탁 뱉었다.
그의 인상이 좀더 험악해졌다.
오늘도 놓치다니...
그의 사냥감은 정말로 운이 좋은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