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198
처음 오리엔테이션을 할때..그 녀석을 처음 본건가.
어디에선가 본듯하다,하는 생각을 했지만. 그녀석 가슴위 명찰의 이름도 전혀 낯설었고 여중 여고를 나온 내가 알만한 남자후배도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했다. 그녀석은 성실했고 놀기도 잘했으며 얼굴도 제법 괜찮게 생겼기 때문에 1학년 녀석들은 그 녀석을 보고 서로 찜했다 하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렇게 3월 4월. 난 어느새 그녀석의 존재를 잊어버렸던 것 같기도 했다. 내가 과사무실을 자주 간것도 아니었고 기껏해야 일주일에 두번이나 세번 정도였기 때문에. 별로 마주칠 일도 없었던 듯하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상하게 그 녀석이 눈에 띄기 시작한 것이었다. 항상 밥을 먹는 식당에서라든가, 수업들으러 가는 구름다리위에서라든가, 커피를 마시며 애들과 떠드는 휴게실이라던가. 모두 일상적인 곳이었기 때문에 그 녀석이 눈에 띄일 때면 그러려니 하곤 했다.
눈에 많이 띄는 1학년생이다 하면서.
한 두번 밥사달라는 그녀석과 같은 1학년 두어명을 같이 밥사주기도 했다.
신나서 밥사달래던 때와 달리 그 녀석은 머 먹을거냐는 질문에 쭈볏쭈볏 대답도 잘 못하였고, 막상 내가 대신 시켜준 덮밥을 먹을때도 그저 끄적끄적했을 뿐이다. 다른 애들은 모두 전부 정신없이 먹고 있는데도 그러며 자기것은 먹지도 않은 채 내가 먹고 있는 돈가스의 과일이라든가 샐러드를 먹고 싶단듯 쳐다보았고 난 그녀석의 눈길을 보고 '먹어'라고 말해버렸던 거 같다.


그런데 어느날이었다.
유일하게 1학년 녀석들과 같은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자리에 앉아 음료수를 뽑아 온다는 찬양이를 기다리고 있었을 때 털썩 누군가옆에 앉았다. '머 사왔어?' 하며 고개를 드니 찬양이가 아닌 그녀석이었다. 머 할말이 있나 했더니 그녀석은 나를 쓰윽 보더니 털썩 책상에 엎드려버린다. 곧 찬양이와 그녀석이 항상 함께 다니는 1학년 후배가 들어온다. 그러고는 찬양이는 아무말도 없이 그 후배와 함께 앉아버리는 것이다. 나를 보며 씨익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는 말이다. 뭐야. 속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지만. 곧 교수가 들어오고 선생님이 들어오셨기 때문에 그냥 앉아있었다. 잠시 후 나른한 햇살에 잠이 온다. 졸립다. 이럴때 찬양이는 꼬집어서라도 깨워줬는데.졸리다. 그런데 갑자기 볼이 왠지 축축한 기분이다. 그 녀석 쪽을 보니 그 녀석 나를 향해 침으로 풍선을 날리고 있다. 황당한 녀석을 다 본다. 주위에서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교수님의 눈빛도 심상치가 않다. 불안해진다. 나 그녀석을 째려본다. 하지 말라는 눈빛으로 말이다. 그 녀석 전혀 굴하지 않는다. 그 순진한 듯한 미소를 띄며 그 녀석 그 행각(?)을 계속한다. 찬양이와 1학년녀석은 재밌다는 눈빛이다. 앓느니 죽지.
나 결국 교수의 시선을 피해 나와 버린다. 왠지 얄미운 그 녀석 꼴보기 싫다.
찬양이도 강의실에 있고 혼자 나와 버린 나는 갈곳이 없다.

"따라라 라라라라 따라라 라라.."

핸드폰이 울린다. 알 수 없는 1학년 녀석의 행동에 기분이 나빠진 나. 누가 술마시잔 이야기였음 좋겠다 싶다. 딱히 술마시자고 할 사람은 없음에도 더구나,오후 3시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신윤흽니다"

그리 좋진 않은 목소리.

"어디에요?"

처음 들어보는 목소리다.

"누구세요?"

"나에요 윤희누나.해명이"

그 녀석이다. 제길. 이녀석이 오늘 왜이래.

"왜?"

"어디에요?"

대답 안하면 이녀석 계속 물을 기세다..

"구름다리로 가고 있어"

"그래요. 잠깐만 기다려봐요. 같이 가요"

"오늘 왜 그래? 나한테 뭐 할 말 있니?"

말이 없다. 잠시 아무말이 없다. 왠지 휙휙 바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여보세요."

윤희는 바보처럼 핸드폰을 멍하니 바라본다. 이 녀석 오늘 미쳤나봐.

"누나."

갑자기 그 녀석의 말이 커진다.

"윤희 누나. 누나."

대답을 안하자 그녀석의 말소리가 커진다.

"듣고 있어."

"누나."

소리가 무척 가깝게 들린다. 열발짝도 안되는 거리에 그녀석이 걸어오고 있다.
약간은 헉헉대며.

"누나 그거 알아요? 우리가 처음 만난게 오리엔테이션때가 아니란거?"


한 번이었지만 난 그녀를 주욱 기억하고 있었다. 이제 4년째. 그녀의 눈빛이 좋았다. 딱 한번이었을뿐인데. 그녀의 눈동자와 나의 눈동자가 마주친 기억은.
그 기억은 내 뇌리에 깊숙히 박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가 나보다 2살이나 많다는 것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되지 않았다. 그녀를 처음 본 곳은. 어렸을때부터 친한 새울이 녀석의 집에 갔을때였다. 더운 여름이었고 새울이 녀석과 나밖에 그녀석의 집에 없었다. 차가운 물에 샤워를 하고 옷을 챙겨 있고 있었을 때.
미처 위에 옷을 입기도 전에 문이 벌컥 열렸다. 난 새울이 녀석이 문을 열거라 생각하지 않았기에 문은 열려있던 참이다.

"뭐야."

하며 난 문쪽을 쳐다보았고. 순간 꺄악,하는 소리를 문을 연 누군가, 가 내질렀다. 곧 그소리에 새울인와 새울이의 누나 한울이가 달려왔다 그리고 소리를 지른 그녀는 한울이 누나의 친구, 라고 했다. 미안하다며 나를 보고 웃어주는 그녀와 시선이 부딪혔을 때 참 따뜻한 눈동자 색이라 생각됐다. 시원한 눈매에 검은 눈동자.사람이 사람에게 천눈에 반하는데 드는 시간은 단지 3초라고 했다.
하나.둘.셋.그 사이 난 그녀에게 푹 빠져버렸다.

"누나 그거 알아요? 우리가 처음 만난 거 오리엔테이션때가 아니라는 거?"

그 녀석의 말이 내 귓가를 때린다.그 녀석과 내가 만난 게 그때가 아니라고?
난 전혀 생각나지 않는데? 무의식중에 그말을 내뱉었나보다. 그녀석의 눈매가 굳어진다. 그런 그 녀석의 눈빛이 부담스럽다.

"먼저 가볼게"

라고는 뒤돌아서버린다. 언제 만난 게 대체 뭐가 중요할까,라고 생각하면서.

그후로 그녀석은 며칠 보이지 않는다.항상 먹는 식당에서도, 매일 지나가는 구름다리에서도, 하하호호 떠드는 휴게실에서도. 그리고 묘하게 그녀석이 누나를 만난게 오리엔테이션이 아니라고 한 그날부터 묘하게 그녀석을 찾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깨달아버린것이다.
항상 먹는 식당에서 매일 지나가는 구름다리에서 음료수 마시며 떠드는 휴게실에서 그녀석을 만났던 건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게 내 5월이 가고 있었다

무신경한 그녀. 하긴 벌써 거의 3년이니까 잊어버렸대도 할말이 없긴 하다.
하지만 냉정하다. 누구에게나 다 친절한 듯 보이지만....실은 한 없이 냉정한 그녀. 친한 사람도 그 찬양이 선배밖에 없는 그녀. 한울이 누나말에 의하면 고3때 사고를 당했었다고 했다. 큰 교통사고였고 그때 아버지를 잃었다고. 그후로 크게 변한 건 없지만 그녀는 시험을 볼 수 없었고 재수를 했다고.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인지 웃는 모습을 볼 수 없다고.했다. 같은 학교로 오려고 얼마나 애를 썼는지. 이 학교는 원래 공부 하는 사람들이나 오는 대학이었고 더구나 그녀가 선택한 과는 그중에서도 또 높은 과였다. 내가 뭐땜에 그렇게 공부한건데. 대학생이 되어 그녀앞에 당당하게 나서고 싶었다. 고등학생 교복을 입고 그녀앞에 서며 왠지 비웃을 듯 쳐다 볼 그녀의 시선이 싫었다. 그녀앞에선 2살어린 동생이 아니라 당당하게 남자이고 싶었다.
그런데 다 무슨 소용이람 그녀가 날 기억 못하는데.
이왕 이렇게 되어버린 거 처음부터 시작한다 생각하고 열심히 그녀의 사랑을 얻어야겠다.


그 녀석이 며칠째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고 말해준 건 찬양이었다.
그게 뭐, 하고 냉정하게 말해보았지만 은근히 걱정이 돠는 것이었다. 사람의 마음이란. 전화나 해볼까 하는 마음이 슬며시 마음속에서 고개를 들더니 어느 순간 핸드폰을 누르고 있는 것이었다.
Rrrrrrrrrr.
이윽고 그녀석의 목소리가 들린다.

"오해명입니다."

왠지 기운없이 들리기도 한다.

"여보세요?"

"누구세요?"

내 목소리를 못알아보는 건 당연하지 뭐,하면서도 왠지 섭섭하네.

"혹시 윤희 누나야?"
이 녀석 왠 반말이냐. 그치만 목소리를 알아준다는 거. 왠지 사람 떨리게 만드네 저놈.

"어."

"히히. 죽어도 여한이 없네."

무슨소리야 갑자기?

"무슨 소리야 죽다니?"

"누나가 전화해주다니 감격해서 죽어도 소원이 없다고."
저런 닭살소리를 저렇게 자랑스럽게 말하다니.

"괜찮아? 아프대매?"

"히히..누나 목소리 들으니까 기운 난다. 누나 보고 싶다"

이 녀석. 전화 한 번에 맞먹는 기분이다.

"그래 잘 지내. 담에 보자."

아직은 그 녀석과의 무슨 관계를 갖고 싶지는 않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기분이 너무 좋아서. 누나가 싫어할 소리를 하고 말았다. 보고 싶다느니. 누나 목소리에 기분이 좋다느니. 내 실수였다.
하지만 어떡하냐. 너무 좋은 걸. 나 누나에게 미쳤나보다.

다시 그녀석이 주위를 얼쩡(?)댄다. 가끔 그 녀석 수업이 없는 건지 째는 건지.이제는 내수업 시간에 맨날 맨날 들어와 내옆에 앉아 나를 바라본다.
찬양이는 뇌물이라도 먹은건지 자리를 번번히 비켜준다.
나 찬양이테 버림받았다 ㅜ.ㅜ(난 버림받았어................-必勝- 그 녀석 얼굴이 철판인가보다. 주위에 많은 선배들과 교수들의 시선에도 아랑곳않는다. 난 저 녀석의 성적이 아주 궁금해진다. (찬양이 말로는 저 녀석 일학년 톱이라고 했다.)컴퓨터가 미친게 분명하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나도 미쳐가나보다. 그 녀석 무척  이뻐 보인다.

그녀를 빨리 나한테 넘겨오도록 만들어야 해. 라고 생각하는 나..
방법을 모르겠다. 2살 어리다는 것도 억울한데.
빨리 그녀와 밥을 먹고 음악을 듣고 차를 마시고 공부를 하고 수업을 들고 싶어진다.
이런게 사랑.........맞겠지?

그녀의 생일이다.
5월 11일. 내 생일을 반으로 나누면 딱 그녀의 생일이다. 내 마음을 반으로 나누면 딱 그녀의 마음이다.
아직은 그렇게 그녀. 내게선 조금 멀다.
아직은. 그녀를 내 곁으로 오게 할거야.
아니 내가 그녀곁으로 갈거다.

두리뭉실한 빨간 무언가가 기우뚱 기우뚱거리며 멀리서 걸어온다.
무슨 일일까하는 사람들의 시선이 그 빨간 무언가로 쏠린다.
점점 가까이 오는 그것.
사람이다.
빠알간 장미 몇개인지 세도 세도 하루는 잡고 세야할 것 같은 많은 장미들.
그녀, 장미가 불쌍하다고 생각된다.
이렇게 뙈약볕에 시들어가는 장미.
저 장미가 얼른 시원한 실내로 들어갔으면 하는 마음이다.
빨간 장미속에서 작은 얼굴이 살며서 옆으로 나왔다 들어간다.
앞이 보이지 않나보다 장미에 가려.
멀어서 얼굴은 보이지 않는다.
곧 수업이 시작된다.
찬양이가 장미꽃 이쁘다고 하며 일어선다.
수업을 들으러 주섬주섬 책을 챙겨 일어난다.
빨간 꽃무더기는 그녀와 찬양이를 스쳐간다.
그녀..커피를 두 개 뽑아 찬양이에게 건네고 총총 계단을 올라간다.
"누나.윤희누나."
그녀석의 목소리이다.
그런데 뒤돌아보는데도 그녀석 보이지 않는다.
"헤헷.누나.나 여깄지요."
하며 장미꽃사이에서 나온다.
잘 보니 장미는 생화가 아니라 드라이플라워다.
적어도 목마를 일은 없는 셈이다.
"누나 생일 축하해."
하며 꽃을 내민다.
미처 꽃을 받기도 전에.
그녀석의 입술이 내 입술에 와닿는다.
순간의 마주침. 서늘한 그 입술. 약간은 말라 있는듯한.
"누나 사랑해"
그 녀석이 귓가에 속삭여댄다.
귓가가 간지럽다.
나 왠지 심술궂어진다.
"뭐라고?"
해버린다.
"사랑해.윤희누나.사랑해."


그날 빨간 드라이플라워를 든 해명이와 윤희는
수업도 째고 커플링 하러 갔다, 는 그런 이야기.
인생은 생방송.우리도 기다려보자.
3초만의 눈맞춤.....그리고 길고긴 기다림 끝의 멋진 사랑을.





3년전에 쓴 거라면 변명이 될까요.
제가 지금 보니 너무 유치하군요 -_-;;;
3초 그 전의 이야기랑 분위기가 너무 틀리게 되버렸네요.
어쨌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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