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미학을 두 번째 정도 읽었을 때, 나는 그때 어렴풋하게나마 이 책의 장점을 알 것 같았다. 인생미학, 주로 사랑이야기가 가볍게 써 지는 로맨스의 제목으로는 무겁다. 책을 다 읽고 나는 습관처럼 책 끝에 작가의 말까지 읽었다. 작가는 어떤 마음으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건지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내가 작가가 하려는 말을 잘 이해하며 읽은 건지 궁금하기도 하고.
이교는 집 근처 공원 벤치에 앉아 있다가 곤란한 처지에 있던 앞 못 보는 영을 만나서 도움을 준다. 근처에는 영이 지내는 복지원이 있었고, 이교는 영의 천사 같은 미소를 잊을 수 없어서 그 곳을 일부러 지나치기도 했었다. 그리고 또 다시 그 곳을 지나가는데 더 이상 복지원에 영이 머무를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이교는 충동적으로 영을 자신이 보호하겠다며 데리고 와 버린다. 같이 지내면서 이교와 영은 누구 한 사람이 나머지 한 사람에게 일방적으로 희생하거나 돌봐 주는 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돌봐주는 관계가 된다.
인생미학을 읽었을 때, 나는 영화 ‘연애의 목적 (한재림 감독, 2005)’과 이상은의 ‘기나긴 여행’이라는 노래도 생각났다. 분위기는 틀리지만, 인생미학과 연애의 목적, 기나긴 여행에서 하려는 메시지가 어쩜 같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 연애의 목적에서의 한재림 감독은 상처 받은 사람들, 완벽하지 않은 사람들 둘이 만나 서로의 상처를 위로하며 사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노래 기나긴 여행에서는 아무리 힘들더라도 삶은 아름답고 찬란하다고 가수 이상은이 노래했었다.
인생미학에서도 정이원 작가는 이교의 입을 빌어 이렇게 말한다. “나한텐 말이야, 결핍된 부분이 아주 많아. 만약에 그 말대로 네가 정말 이 세상에 덤처럼 나왔다면 그 덤은 딱 내가 모자라는 만큼을 메울 그런 모양이 아닐까.” 또 영의 마음을 통해서도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어딘가에 분명 빛을 머금고 있을 세계 속으로 한 발짝을 숨죽여 떼어 놓습니다. 이제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어질 새로운 길 새로운 인생을 걸어갑니다.” 라고.
인생 미학에서는, 만 서른을 넘긴 덤덤하고 차가운 성격의 남자가 화자로 등장하여 자신의 감정을, 상황을 말하면서 대부분의 이야기를 전개해 나갔다. 보기에 불편하고 이해 못할 난폭한 카리스마가 아니라, 캐릭터 그대로의 담담한 필치와 많이 절제된 감정묘사로 보이지 않은 많은 느낌을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고, 반대로 표현은 잘 안 하지만 감수성이 예민한 영의 입장을 중간중간 말하는 방법으로 소설은 진행되었다.
물론 보는 독자에 따라서 이교가 갖는 영에 대한 감정이 동정이 아닐까, 어떻게 사랑으로 변하는지 의문이 들고, 그 과정에 대한 감정적 흐름에 대한 설명이 약한 것이 조금 단점으로 비춰 질 수도 있겠지만 정이원 작가가 하고 싶었던 의도를 생각한다면 과감히 생략되어도 될 부분이라 생각된다. 때로는 감정에 대한 표현이 넘치는 로맨스라는 장르에서 이 정도로 절제된 감정 표현의 소설은 도리어 조금은 당황스럽고 익숙하지 않아서 조용한 곳에서 집중하고 읽지 않으면 중요한 감정선을 놓쳐 버릴 수도 있다는 단점이라면 단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여타의 가벼운 로맨스에서 찾아 볼 수 없는 인생에 대한 작가적 견해가 깊이 있게 다뤄지는 로맨스 소설이다.
* 그냥 그 전에 써 놓은 거 올려 놓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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