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이선미
출판사/파란미디어


지환에게 있어서 국향 가득한 그 집은 돌아가고픈 고향이자, 그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얻고 싶은 특별한 장소였다. 국향 가득한 집으로 다시 들어가기 위해 그가 택한 것은 수연이다. 그 집과 수연은 지환에게 있어서 뗄 수 없는 '하나'였다.

어린 동생에 대한 집착은 양부모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욕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구로 인해 국향 가득한 집에서 가장 사랑받는 대상을 욕심내게 된 것은 당연한 일 일지도 모른다. 지환은 본래부터 동생이 친동생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형제로써 머물 수 없다면 그녀를 연인으로써 차지하고 말겠다 결심한 것 또한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게 지환이 수연에게 갖는 애증은 단순한 '사랑'이란 차원을 넘어서고 있다.

이처럼 복잡미묘한 감정을 잘 이끌어낸 작품은 실로 보기 드물다. 대부분의 로맨스 소설에 등장하는 '집착하는 남주인공'은 특별한 이유 없이 여주인공에게 집착한다. 그렇지만 지환은 아니다. 그의 집착은 개연성과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바로 이 부분 때문에 '감정의 단순함'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지환이 크게 매력적이지 못 할 것이다.

지환은 <광란의 귀공자> '마리'와 같다. 마리의 또다른 버젼이 지환이다. 이선미 작가는 그 동안 '변화'에 초점을 맞췄는데, 이번의 경우 '성장'을 이뤄냈다. 변화에서 성장을 이끌어낸 것이다. 일면 그게 뭐 어려워서? 라고 의문을 갖는 이가 있을지도 모르나, 솔직히 어렵다. 내가 쓴 한 소설에 등장하는 캐릭터를 다른 소설에 고스란히 '복사'하지 않고 '진화'시킨 채 등장시킨다는 건 정말로 어렵다. 전 소설의 느낌이 남지만, 그보다 좀 더 세심하고 설득력 있게 그린다는 건 말이다. 그리고 바로 그 점 때문에 지환의 지독한 집착에 대해 완전히 공감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거다.

<국향 가득한 집>을 읽은 이들 중에는 아마도 실망했다, 이선미 작가의 최악의 작품이다란 말을 하는 사람도 분명 있을 것이다. 그들에게 있어 사랑의 차원을 넘어서는 지환의 심리가 결코 공감될 수 없을 테니까.

로맨스 소설 독자들은 보수적이다. 실생활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로맨스 소설만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무결한 정도를 걷길 원한다. 주인공의 감정에 조금의 흠집이라도 있는 경우, 혹은 주인공이 순도 높은 사랑의 결정체를 완성하지 못할 경우, 그 대상이 남자가 되든 여자가 되든 공감하지 않는다. 그리고 지환의 '사랑'은 결코 순도가 높다 할 수 없기에 지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선미 작가 특유의 설득력으로 독자를 이끌고 가니 보수적인 독자로써는 공감하지도 비난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다. 작가는 잔인했다.

마음껏 미워하지도 못 하게 하고, 마음껏 사랑하지도 못 하게 하니 이 얼마나 잔인한가? 게다가 이 <국향 가득한 집>은 작가 스스로가 평하길 정형을 쓰기 위해 노력했음이라 했으니 잔인함은 도를 넘는 듯.

단순함에 길들여진, 또한 그것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지환'이란 캐릭터의 감정은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때문에 수연과 지환이 사랑을 완성해서 끝나는 설정이 아니라, 지환이 국화 같은 어머니에게 받아들여지는 과정까지 중요시 여기는 설정을 사람들은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제목이 <국향 가득한 집> 임에도. 제목에서 모든 것을 암시하고 있음에도 말이다.

보통의 사람들은 그 '국향'이 수연이라 생각했을 것이다. 남주인공에게서 중요한 것은 여주인공이지, 그녀를 둘러싼 모든 것이란 사고 방식을 납득하지 못할 테니까.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일인가? 바로 그 점 때문에 지환의 '집착'이 설득력을 지녔다는 게 말이다.

아쉬운 점은 있다. 수연의 임신에 대한 설정은 내용상 필수불가결한 요소였으나 정신이상자에게 사고를 당하는 설정은 조금 작위적이었다. 물론 당시 지환이 갈등하고 있는 상황이긴 했으나, 지환의 갈등을 종식시키기 위해 굳이 그런 설정을 쓸 필요는 없었다. 이 부분은 작가가 너무 정형을 의식한 것 아닐까 싶다.

어쨌든 이 글을 읽고 나서 난 전율했다. 이토록 지독하게 읽는 이를 농락하는 작가는 없을 거다. 그리고 누구나 다 아는 정형을 이토록 독특하게 엮어나가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국향 가득한 집>을 읽다보면 딱 정형이라 느끼게 된다. 그럼에도 전혀 정형 같지가 않다.

읽는 내내 감정 이입되어 속된 말로 '죽을 뻔 했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2권 266쪽. 쇼핑하느라 다리가 부은 것 같다 하니 길바닥 한 가운데서 무릎을 꿇고 앉아 수연의 다리를 주무르는 지환. 이 장면이 계속 머릿속에서 맴돈다.

호평을 받든지 혹은 악평을 받는지 간에 <국향 가득한 집>에서 이선미 작가의 역량을 난 다시 한번 깨닫고 만다.



댓글 '4'

쟈넷

2004.11.07 02:04:43

전 연재로 보기만 했습니다. 해외배송을 해야 하는데 책값이 한국돈으로 5000원정도 더 들어서 망설이고 있었는데, 구입하고 싶네요. 연재시마다 전 여주때문에 분통이 터졌는데, 코코님의 리뷰를 보면서 책을 읽으면 더 깊은 맛을 느낄거 같습니다.
이선미님의 책은 모던걸의 귀향밖에 보지 못했지만 작가님에 대한 매력은 충분히 느꼈답니다.
그리고 코코님 리뷰는 군더더기가 없어서 참 좋습니다. 좋으면 좋고, 싫으면 싫고 제겐 그렇게 느껴지거든요. 제가 동감하든 안하든간에요.
은근히 파라다이스에서 국향에 대한 리뷰가 나오길 기다렸답니다.

코코

2004.11.07 15:34:18

책으로 보신다해도 다시 분통이 터지실지도;;; 며칠 전에 몇몇 분들과 국향에 대해 간략하게 토론?을 한 적이 있었는데요, 대부분은 수연을 좋아하지 않더군요. 하지만 저하고 어떤 남자 분은 사랑스럽다는데 의견을 같이 했답니다^^; <- 참고로 하시고;
리뷰에서도 좋고 싫은 게 확실히 느껴진다니... 지 성격은 역시나 누구 못 주는 군요;;

스폰지밥

2004.11.30 14:42:48

저도 연재때는 여주 별루 맘에 안들었는데, 출간작에서 보니 안그렇더라구요.
연재때는 아~ 미운 여주.. 했었는데 말이죠...^^;;;
출간작에서는 수연 나름의 사정으로 이해가 되더라구요..
연재때는 여주의 거부가 잘 이해가 안되었었는데 말이죠.. (연재 끝까지 볼 수 없었어서 그랬는지모르겠지만요)

저도 최고의 장면으로 부은 다리 주물러 주는 부분하고..
귀여워서 기억에 남는 장면은 그들의 2세가 나올때.. 소리듣고 맞추기 놀이.. 헤헤
태하 나오는 부분 여러번 읽었습니다.. 넘 귀엽.. ^^
전 그동안 이선미님 글 보면서 역시.. 이선미님이다.. 이런 느낌 별로 못받았었는데요..
글을 잘쓰신다는 생각은 늘했지만요..
국향보면서.. "역시" 했습니다..^^

Jewel

2004.11.30 21: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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