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 읽기 전 주의할 점 : 스포일러 있음.

1972년, 베트남 전쟁의 막바지, 200명의 부대원 중, 혼자 살아 남은 혼바우 전투의 생존자 최태인 중위(감우성)는 악몽에 시달리며 괴로워한다. 그러나 그의 본대 복귀 요청은 철회되고, CID 부대장(기주봉)은 그에게 비밀 수색 명령을 내린다.
72년 2월 2일 밤 10시. 이날도 사단본부 통신부대의 무전기엔 "당나귀 삼공..."을 외치는 비명이 들어오고 있다. 6개월 전 작전 지역명 '로미오 포인트'에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18명의 수색대원들로부터 계속적인 구조요청이 오고 있었던 것. 그 흔적 없는 병사들의 생사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물
                            을 확보하는 것이 이번 작전의 목표다.
                            3일 후, 좌표 63도 32분, 53도 27분 _ 로미오 포인트 입구. 어둠이 밀려오는
                            밀림으로 들어가는 9명의 병사들 뒤로 나뭇잎에 가려졌던 낡은 비문이 드러
                            난다.
                            不歸! 손에 피 묻은 자, 돌아갈 수 없다!!! 7일간의 작전, 첫 야영지엔 10명의
                            병사가 보이고... 그러나 이제 하루가 시작되고 있을 뿐이다.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나로써는 올해 절대 놓치고 싶지 않은 영화 중 하나였다. 특히 한국군이 가장 명렬히 싸웠다고 전해지는 베트남전이 배경이라 더욱 흥미를 가졌다. 개인적으로 말해서 우리나라 사람처럼 무서운 인종은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부분은 온화하고 수동적인 셈이지만, 전쟁 같은 극단의 상황에 처했을 때는 인간이 보여줄 수 있는 최대의 잔혹함을 선보이는 게 바로 한국인이라 생각한다. 평상시 부드러운 사람이 일단 화를 내면 진짜 무서운 것처럼 말이지.

영화로 돌아가서, <알 포인트>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영화 제목 '알 포인트'가 베트남전 당시 실재했던 군사 지역명인 '로미오 포인트(Romeo Point)'의 줄임말인 것처럼 군인들이 실종되었던 장소에서 계속 무전이 송신되어 왔었던 적이 있다고 한다. 그 무전을 받는 군인은 진짜 무서웠을 것이다. 이렇게 소재만으로 본다면 꽤 흥미롭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결론부터 말하자면, 영화는 실패했다.

공포도, 그렇다고 전쟁의 잔혹함을 고발하는 것도 아니다. 감우성이란 배우를 전면에 내세웠고, 전쟁 호러 무비를 표방하지만 전쟁틱하지도 호러틱하지도 않았다. 배경만 그럴싸 했을 뿐 알맹이는 쏙 빠져있다.

전쟁 영화의 가장 큰 목적은 전쟁으로 인한 잔혹성, 되풀이하지 말아야할 인간의 어리석음을 이야기하는 등이 아닐까? 전쟁을 찬미하기 위한 전쟁 영화는 결코 환영받지 못할 테니까.

<알 포인트> 역시 전쟁으로 인한 한 억울한 인간의 원혼이 군인들을 죽음으로 이르게 한다는 스토리이다. 이 역시 전쟁의 잔혹성, 두번 다시 이러한 전쟁을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심어주려는 목적도 있었을 수 있겠다. 그렇지만 영화는 어느 순간 흔하디 흔한 귀신물로 변해버린다.

영화가 끝나고 나서 참 허탈했다. 기대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형평없는 시나리오였다.

미스테리식으로 군데군데 암시를 던져두었지만, 정작 해결된 것은 두어 가지에 그치고 말았다. 뭐냐...

가장 이해할 수 없는 건 바로 흰아오자이를 입은 여자의 등장. 실로 기괴스럽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공포의 원흉은 그녀라고 결론지을 수 있겠는데, 감우성이 이끈 수색대가 처음 그곳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왜 갑자기 총을 난사한 것인가? 손에 피가 묻은 사람은 살아 돌아갈 수 없다는 규칙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 그래서 총을 쏘았다? 귀신이? 너무 억지스럽지 않은가? 차라리 실제로 벌어졌던 것처럼 수색대 중 한 명이 그녀를 사살해버렸다면 또 모른다. 하지만 잔혹하기로 유명한 당시의 한국군 9명 중 그 누구도 그녀를 죽이지 못했다. 결국 하사가 나섰지만, 감우성이 맡은 중위가 그만 두라고 명령해 죽이지 못했다. 감우성은 왜 말린 것인가? 해답은 끝까지 안나온다.

또한 사실 그녀는 귀신인데, 첫장면에서는 매우 '인간'답게 상처 입고 피흘리며 신음한다. 감우성과 눈을 마주치자 슬쩍 의미심장하게 웃은 것을 빼고는 전혀 귀신답지 않다.

그녀는 군인들이 죽을 때마다 감우성의 눈앞을 스치고 지나찬다. 손목에 매단 방울을 짤랑거리며. 근데 그 방울은 나오고 또 나오고 또 나오더니 별로 큰 의미도 없이 어느 순간 없어져 버린다. 그녀의 손목에 매달린 방울이므로 결국 모든 일은 그녀 때문에 일어난 것이다라고 증명하고 싶었던 것 같은데, 그거 없이도 증명된다.

수수께끼는 또 있다. 처음 수색대가 출발할 때는 9명이었으나, 중간에 10명이 된다. 수색대원들은 자신들이 10명이라는 것을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어느 순간 그들은 누군가로부터 세뇌를 당한 것이다. 그렇다면 10-9=1명이 아주 중요한 키포인트가 될 수 있겠는데 이 1명은 처음에 굉장히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그리고 끝까지 왜 10명으로 만들어야 했는지 나오지 않는다.

또 수색대가 한 명씩 죽어갈 때마다 제3의 인물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듯한 화면이 나타나지만, 그것 뿐이다. 그 시선의 주인은 흰아오자이를 입은 묘령의 베트남 여인이었다. 그녀는 그냥 보고 있을 뿐이었다 - 이 부분에서 예전 광분했던 고스트쉽이 생각나더라. 그저 자극적이고 공포심을 불러일으킬만한 장면으로 짜집기하고 허무하게 끝을 맺은 그 영화가.

이처럼 감질나게 의미심장한 무엇들을 줄줄이 늘여놓았지만, 사람들이 무릎을 치며 '그렇군!' 하게 하는 것도 없고 소름끼치게 기가막힌 반전도 없었다. 차라리 감우성이 귀신이라면 내 대단한 반전이라고 호평을 하련만 싶을 정도로 말이다.

그리고 앞부분에서 갑자기 등장한 DHL은 또 뭔가-_-;; 그 당시에도 택배 서비스인 DHL이 있었나? 배경은 베트남전이면서, 코믹이 아닌 심각한 공포물이면서 갑작스런 DHL의 등장 장면은 거기서 영화를 후원하는 구만 하는 생각밖에 안든다(여기서 잠시 이거 코믹호러물이었나? 하는 의문도 들었다).

전쟁의 참혹함, 인간의 잔인함은 굳이 이런 시시한 공포 영화의 소재로 만들지 않아도 안다. 그것을 소재로 썼다면 더욱 심도 깊게 펼쳐놓던가. 이도 저도 아닌,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말고 말이다.

<알 포인트> 대단히, 대단히 실망스런 영화였다. 제목이 아깝다.


댓글 '2'

리체

2004.09.06 23:49:28

건축무한육면각체의 비밀...의 악몽이 떠오르는구려.(절규)
이것 역시 잘 나가다가 귀신물로 둔갑한..아쭈~ 허무한 영화였지.;
공포 영화가 제 값을 하려면..역시 치밀한 이유와 확답이 있어야 할 거 같아.
그것 아니면 절대로 답이 아닌..뭐 그런 거 말이예요.
근데 감우성은 왜 눈을 뒤집고 있는 게지?
지가 귀신도 아님서..;;

코코

2004.09.07 00:54:01

특이하게도 베트남 귀신의 빙의는 눈을 통해서거든. 마지막에 살아남은 사람 하나는 눈을 다쳐서 빙의되지 못해 살아남은 것이고. 감우성은 빙의되어 상대를 죽이고 싶지 않아(빙의되면 무조건 상대방을 죽이거든. 원혼이 된 귀신의 복수치고는 치사한 방법-_-) 눈을 다친 병장에게 자신을 겨누게 하고 총을 쏘도록 만들지. 저 소갯글에도 있듯이 영화초반에 나오는 비석엔 손에 피를 묻힌 사람은 돌아갈 수 없다고 하는데 병장은 눈을 다쳐서 손에 피묻히고도 돌아감. 허허허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MB
파일 제한 크기 : 2.00MB (허용 확장자 : *.*)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공지 리뷰방에 관하여 Junk 2011-05-11
262 현실속에서도 강빈을 보는 날이 과연... secret [2] 누네띠네 2004-09-10
261 '크레이지 뷰티풀' 을 보고... secret [1] 누네띠네 2004-09-09
260 [로맨스] 손수건에 실려온 오렌지 향기를 읽고... [2] 까만머리앤 2004-09-08
259 위층남자 음모론 ;;; [2] D 2004-09-06
258 [영화] 연인 [7] 말풍선 2004-09-06
» [영화] 알포인트 [2] 코코 2004-09-05
256 코코님 [8] 기쁜소리 2004-09-03
255 [로맨스] 다이 코코 2004-09-02
254 [연재글] 코코님 ㅡㅡ [7] 노리코 2004-09-02
253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2] 까망 2004-09-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