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이미연
출판사/푸른터

일족인 슈란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경계를 벗어난 다이는 인간들에게 발각되고 만다. 그 중 한 사람이 그의 반려라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인간세상으로 쫓겨난 다이는 지혜와 진현을 찾아나서게 된다.
한편 우연히 도와주게 된 은빛 늑대를 잊지 못하던 지혜는 다시 그녀 앞에 나타난 다이의 아름다운 모습에 다시 한번 반하게 되는데...



현대를 배경으로 판타지를 교묘하게 섞어 꽤 흥미를 자극하는 소설이다. 늑대나 이리 등 맹수계의 동물들은 남성적 매력을 듬뿍 풍기는 아이템으로 대표되므로 이 소설의 주인공 다이가 '이리'라는 점 역시 꽤나 흥미를 자극했다.

어느날 문득 발견한 야생 동물이, 그것도 멸종 위기에 있는 동물이 눈앞에서 매력적인 남자로 변신한다고 상상해보라. 이 얼마나 스릴있고 짜릿한, 고전적 환상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변신의 능력이 있는 이색적인 종족과 사랑에 빠진다니...!! 로맨스로써는 두고 두고 써먹고도 남을 소재가 아닌가 싶다.

늑대과(科)가 인간으로 변신해 인간 여자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그 동안 소설이나 만화나 영화 등에서 얼마나 다양하게 사용해 왔는지 지금은 일종의 클리셰라고 볼 수도 있겠다. 클리셰는 장르 독자들에게 개개인 나름대로 익숙한 환상을 불러 일으키므로 소설에 더욱 감정 몰입할 수 있게 한다. 고로 작가가 아이템 하나는 기가 막히게 선택했다고 말하고 싶다.

자, 아이템은 좋은데 뭐가 문제일까? 왜 난 이 책을 굉장히 재미있게 읽지 못한 것일까?

<다이>는 판타지 로맨스이다. 판타지는 일단 기본적인 설정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판타지는 작가가 만들어낸 환상, 상상의 산물이므로 이를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 소설을 읽어나감에 있어 혼동이 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기본 설정을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신들이 어딘가에 살고 있다고 치자. 그런 소설이 있다고 치자. 그럼 작가는 소설 속에서 그 신들이 어떻게 인간의 눈에 띄지 않고 살아갈 수 있었는지, 또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이라던가 행동 양식 등에 대해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물론 전부 다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그러자면 한도 끝도 없을 터이고, 소설에서 그런 부분은 부차적이니까. 하지만 주인공을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소설 속에 등장시켜 이런 애가 있어, 얘가 주인공이야 라고 한다면 독자들은 어리둥절하다. 하물며 소설에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조차도 그 과거 설정이 있어야하는 법인데, 어찌 실제로 존재하는지 어떤지 모르는 개체에 대해 일말의 설명도 없을 수가 있단 말인가?

<다이>에서 '다이'란 이리족에 관한 설명은 그런대로 잘 그려져 있다. 자세히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개연성 있게 만들기 위해 작가가 노력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설명이 너무 평이하다는 거다.

다시 말하지만 <다이>는 판타지이다. 판타지 로맨스. 판타지는 그 동안 굉장히 다양하게 만들어져 왔다. 나름대로 덧붙이고 깎여 같은 소재라도 작가마다 독특한 뭔가로 흥미를 돋웠다. 그런데 <다이>는 작가가 그린 작가만의, 다른 비슷한 아이템을 사용한 판타지와 구별될만한 '판타지'가 없었다.

전설과 이미 익숙한 설화들을 적당히 버무려 이리족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뭔가 상상력이 극대화될만한 것은 없다. 좀 더 드라마틱하고 델리케이트하며 판타스틱한 것이 없다. 무성이었다가 짝을 만나 성분화된다든지, 전류가 흐른다든지 하는 것들은 다른 곳에서 이미 충분히 봤다. <다이>에 나타난 이리족이 클리셰나 다름없는 존재인 것처럼, 그 존재에 대한 것도 만화나 영화 등 다른 곳에서 익숙했던 설정들로 되풀이되고 있다.

작가 후기에 소설의 시초는 꿈이었다고 한다. 이리에 대한 꿈. 그 꿈 때문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다이>는 확실히 여주보다 남주의 캐릭터가 더 잘 그려져 있다. 두 번째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다이>가 판타지 로맨스이긴 해도, 배경은 현대이다. 그렇다면 현대에 불쑥 끼어든 이질적인 존재에 대한 (소설에 등장하는) 평범한 사람들의 반응은 당연히 '현실적'이어야만 했다.

소설은 허구이지만, 그 속에 등장하는 존재가 '인간'일 경우 소설을 읽는 현실의 인간은 어디까지나 현실을 밑바탕에 두고 시작된 작가의 상상을 따라가는 거다.

전혀 다른 존재, 다른 별 - 완전히 판타스틱한 배경이라면 상관없을 것이다. 하지만 소설의 배경이 현실이라면 - 우리가 두 다리로 딛고 사는 이 지구라면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 '현실적인 반응'을 보여야하는 거다.

만일 현대가 소설의 배경인데 자동차가 갑자기 하늘을 날아다닌다면? 바로 옆집에 사는 것같은 사람이 주인공인데 이 사람이 아무렇지도 않게 텔레포트를 하고 특별한 설명도 없이 사람들이 그걸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이상하지 않겠는가? 지금 당장의 현실에 그런 사람이 옆집에 살고 있다면? 지인이라면? 보통의 사람으로써는 당연히 놀랍고 조금은 두렵지 않겠는가?

아쉽게도 <다이>에 등장하는 여주인공 지혜의 반응은 비현실적이었다.

'다이'는 이리다. 요즘 야생 이리가 출몰한다는 건 대단한 사건이다. 보통의 사람이 그 야생 이리를 눈앞에서 목격했다면 두려움과 혼란을 느꼈을 거다. 여주인공 지혜처럼 그렇게 쉽사리 '다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물론 그녀가 주인공이고 다이와 연관이 되기 위해, 또한 그녀의 성격이 야생 이리 따위는 두려워하지 않는 거라면 할 말은 없다. 작가가 그렇게 설정했다는데 뭐라고 하겠는가? 그러나 그런 설정이라면 일단 설득력이 있어야 했다. 이러한 의문을 품지 않도록 충분히 설득력있게 썼어야만 했다는 거다.

여주인공 지혜는 다이를 예외로 하고 다른 존재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독립적이었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 그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독립적으로 살아온 인격체이다. 그러던 와중에 새로운 존재 '다이'를 알게 되었고, 그에게는 뭐든지 다 베푼다.

지혜가 다이의 처지를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 했다면 어느 정도 설득력 있었다. 하지만 그건 아니다. 만일 지혜가 다이에게서 두려움을 느끼다가 서서히 극복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면 이 또한 어느 정도 설득력 있었겠다.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이처럼 아이템은 참 좋았는데, 이야기가 꿈인 듯 명확하지 않아 책을 두서없이 읽게 되었다. 마치 우리의 꿈 안에서 벌어지는 그 어떤 일이라도 우리 자신은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는 것처럼 난감할 정도로 몽롱한 이야기였다. 지혜는 작가의 분신이나 다름없으므로 이질적인 존재 '다이'를 작가는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이긴 쉬웠겠지만, 그러한 꿈을 꾸지 않은 나는 '다이'란 존재를 쉽게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동시에 내 꿈이 아니기에 지혜의 반응에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이질적 존재인 다이에 관한 설명도 너무 익숙하다. 그래서 결국 내가 좋아하는 판타지 로맨스임에도 불구하고 판타지로써의 매력도 로맨스로써의 매력도 느낄 수가 없어 참으로 아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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