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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리즈 칼라일
출판사/신영미디어
머서 후작부인, 킬더모어 여백작, 레지우드 여자작, 카로우 여남작, 그리고 던티스 여남작의 지위를 가지고 있는 레이디 머서는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편 머서 후작을 독살했다는 소문에 휩싸여 있었다. 그녀의 시동생 제임스 경은 그녀에게서 아이들을 빼앗기 위해 갖은 수를 쓰지만 번번히 실패한다. 제임스 경은 그러던 중 레이디 머서(조넷)이 비밀리에 아이들의 가정교사를 구한다는 광고를 내자 자신의 처조카
인 콜 앰허스트 대위에게 가정교사로 들어가라고 종용하는데...
원제는 A WOMAN SCORNED. 2000년에 쓰여졌으며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것은 2004년 8월이다.
이 책은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요즘은 이렇게 표지가 마음에 들거나, 뒷카피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번역 작품은 잘 읽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흰색에 무광택이라 때가 많이 타겠지만, 호박마차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신영은 종종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센스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은 리즈 칼라일의 '레이디스 앤 젠틀맨'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책날개에 보면 앞으로 두 권이 더 번역될 것 같은데, 일단은 그것들도 기대하는 바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에 큰 매력을 느꼈다는 건 아니다. 그저 크게 실망하지도, 그렇다고 매우 재미있게 읽은 것도 아닐 뿐.
책날개에 쓰여져 있듯 작가는 확실히 아가사 크리스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베일 속의 여인>은 일종의 추리 로맨스로 취급될 수 있겠는데 그 풀어가는 형식이 아가사 크리스티 스타일과 매우 닮아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해낸 인물 중에 미스 마플이 있다. 나이 지긋한 그녀는 근처에서 벌어지는 살인에 대해 직접 조사를 하거나 탐정처럼 단서를 찾아 다니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 사건을 풀어낸다. 이 책에서 마플과 닮았다는 인상을 받게 된 캐릭터가 있다. 그는 다음에 번역될 것 같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베일 속의 여인>에서 중요 조연인 델라코트 경의 어머니로 나오는 '레이디 델라코트'이다. 성격이나 외모가 닮은 것이 아니라 사건에 휘말려 있는 젊은이들이 깨닫지 못한 부분을 단지 '생각'만으로 단숨에 풀어낸다는 게 닮았다고 느껴졌다. 사실 미스 마플과 레이디 델라코트는 살아온 환경을 비롯해 모든 것이 정반대의 양상을 띄므로 이러한 접점이 오히려 더 잘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베일 속의 여인>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꽤 많은 추리 로맨스가 나왔다. 린다 하워드나 주드 데브루, 조안나 린지 등 많은 작가들이 추리 로맨스를 썼다. 게중에 꽤 잘 썼다 싶은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추리 로맨스를 표방하지만 매우 허접하다라 느낀 것들도 많았다. 권선징악을 굉장히 선호하는 장르가 바로 로맨스 소설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악랄한 범인은 그 악의를 감추지 못해 독자들에게 금방 정체가 탄로나고는 했다. 이 부분에 있어 <베일 속의 여인>은 다르다.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기 전까지 여주인공은 조넷은 조금 신경질적인 캐릭터로 느껴졌다. 남주인공인 콜이 별 것 아니다라고 치부할 정도의 일에도 그녀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비록 그녀의 남편이 눈앞에서 독살 당했고, 여러가지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고는 해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그녀의 과장되고 신경질적인 반응에 읽는 동안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난 후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이 이해가 된다. 또한 콜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 느낀 불길한 기운 역시 이해가 되었다. 곳곳에 암시를 심어두지만 정작 범인이 누군지 헷갈리게 하려고 했다면 작가는 성공한 셈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범인이 누군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정도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표방한 작품이라 그런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일 속의 여인>은 다시 보고 싶다는 갈망은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캐릭터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캐릭터가 불분명하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가 그동안 꽤 로맨스 소설을 읽어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곳이 있는데, 그건 남주인공 콜의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반복적인 설명이다.
솔직히 말해 재정이 열악한 남주인공은 은연중에 꺼리게 되고 만다. 일단 돈이 없는 남주인공은 아무리 잘생기고 멋있고 특출나다고 해도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작가는 이를 신경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콜에 대한 설명을 할 때마다 그가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또한 여주인공인 조넷에 대해 작가는 대담한 여인이라 말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그녀는 연약하고 신경질적이며 다혈질이라는 거다. 툭하며 울고, 쓰러지고, 비명을 지르는 그녀가 어떻게 냉정하고 대담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작가는 그녀를 대담하다라고 종종 묘사하고 있다. 사실 그녀가 대담한 부분은 러브신에서의 장면 뿐이었다.
이것도 몹시 마음에 걸리는 게, 꿈많던 처녀에서 호색가이자 나이가 많은 남편과 억지로 결혼해 살아왔던 조넷임에도 불구하고 침대에서는 과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작가는 분명 남편이 그녀를 잔인해지도록 길들였다고 묘사했음에도 콜을 유혹하는 조넷은 전혀 잔인하지도 그렇다고 어떠한 거리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성들이 자신보다 기가 센 여자들의 우위에 서기 위해서 보통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육체적으로 콤플렉스를 심어주는 것이다. 즉, 아내에게 대놓고 혹은 은근히 스스로의 육체를 열등하게 느끼도록 만든다는 거다. 그 대표적 예로 오랫동안 아이가 없으면 그게 마치 아내의 탓인양 돌려버리곤 했다. 조넷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출산에 대한 열등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열등감을 심어줄 수 있는 미묘한 것들은 많다.
남편이 살아 있을 당시 조넷은 사교계에서 인기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으나 결코 쉽사리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명확하게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밀함을 공유할 애인이 있었다고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콜과 처음 잠자리를 함께 했을 때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베일 속의 여인>에 나오는 조넷 - 신통치 않은 정력을 가진 늙은 남편 밑에서 두 아들을 낳고 애인을 만들지 않은 채 살아가던 그녀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콜을 유혹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행위를 감행한다. 일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글쎄... 지금이었다면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이 현대였다면. 그렇지만 이 작품은 레전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자신의 육체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여인이 아니고서야 조넷처럼 대담하게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서문에도 쓰여있듯 "리즈 칼라일의 센슈얼한 러브 신"이 자극적이긴 했어도 그 자극성 덕분에 캐릭터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끈한 러브신이라 생각이 된다. 그저 자극을 위한 자극은 아닐까 싶은 거다. 만일 죽은 머서 후작이 비록 도덕적이지 못한 인물이기는 해도 잠자리에 있어서만은 조넷을 만족시켰다는 문장 한 줄만, 또는 훈련시켰다는 문장 한 줄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의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죽은 머서 후작은 난봉꾼에 타락한 귀족의 전형이었으나 침대에서는 큰 쓸모가 없었다라고 조넷이 회상하는 문구가 있다.
남자 주인공 역시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첫만남-정확히 말해 두 번째 만남- 이후 콜의 시점에서 회상을 하는 지문에 이런 게 있다.
『 시간이 흐르자 콜은 마음 속의 폭풍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눈을 떠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오는 늦은 오후 햇살이 넓은 참나무 바닥에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넷 로우랜드와 그녀의 사악하고 유혹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당면한 문제를 바라봐야 했다. 』
뭐가? 뭐가 사악했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 장면에 그녀는 '사악하고 유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단 말이다!
물론 전적으로 콜의 시점에서 볼 때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를 유혹했다고 느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다시 전 장면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녀를 '사악하다'라고 생각할 만한 장면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사악한 거냐고!(절규)
이렇게 막상 그려놓은 장면과 이를 설명하는 작가의 묘사가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읽는 내내 도대체 이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인지 헷갈려 죽을 뻔 했다. 캐릭터 자체가 파악이 안되는 가운데 그 캐릭터에게서 매력을 느낀다는 건 애시당초 그른 일이고.
어쨌든 약간 가볍고, 과장되고, 일관성이 떨어지는 점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작품이기는 해도 일단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다. 앞부분은 서툴고 두서없다 느끼게 되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흠. 그래서 다음에 나올지도 모를 Woman of Virtue를 일단 기대해보련다.
출판사/신영미디어

인 콜 앰허스트 대위에게 가정교사로 들어가라고 종용하는데...
원제는 A WOMAN SCORNED. 2000년에 쓰여졌으며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것은 2004년 8월이다.
이 책은 표지가 마음에 들었다. 사실 요즘은 이렇게 표지가 마음에 들거나, 뒷카피가 마음에 들지 않는 이상 번역 작품은 잘 읽지 않게 되는 것 같다. 흰색에 무광택이라 때가 많이 타겠지만, 호박마차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신영은 종종 이런 부분에서 굉장히 센스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 책은 리즈 칼라일의 '레이디스 앤 젠틀맨'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책날개에 보면 앞으로 두 권이 더 번역될 것 같은데, 일단은 그것들도 기대하는 바이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 작품에 큰 매력을 느꼈다는 건 아니다. 그저 크게 실망하지도, 그렇다고 매우 재미있게 읽은 것도 아닐 뿐.
책날개에 쓰여져 있듯 작가는 확실히 아가사 크리스티를 좋아했던 것 같다. <베일 속의 여인>은 일종의 추리 로맨스로 취급될 수 있겠는데 그 풀어가는 형식이 아가사 크리스티 스타일과 매우 닮아 있다.
아가사 크리스티가 창조해낸 인물 중에 미스 마플이 있다. 나이 지긋한 그녀는 근처에서 벌어지는 살인에 대해 직접 조사를 하거나 탐정처럼 단서를 찾아 다니지 않고, 가만히 앉아 '생각'을 해 사건을 풀어낸다. 이 책에서 마플과 닮았다는 인상을 받게 된 캐릭터가 있다. 그는 다음에 번역될 것 같은 작품의 주인공이자 <베일 속의 여인>에서 중요 조연인 델라코트 경의 어머니로 나오는 '레이디 델라코트'이다. 성격이나 외모가 닮은 것이 아니라 사건에 휘말려 있는 젊은이들이 깨닫지 못한 부분을 단지 '생각'만으로 단숨에 풀어낸다는 게 닮았다고 느껴졌다. 사실 미스 마플과 레이디 델라코트는 살아온 환경을 비롯해 모든 것이 정반대의 양상을 띄므로 이러한 접점이 오히려 더 잘 느껴진 것일지도 모르겠다. 아이러니 하게도 바로 이 점 때문에 <베일 속의 여인>에 대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꽤 많은 추리 로맨스가 나왔다. 린다 하워드나 주드 데브루, 조안나 린지 등 많은 작가들이 추리 로맨스를 썼다. 게중에 꽤 잘 썼다 싶은 것도 있었고, 어떤 것은 추리 로맨스를 표방하지만 매우 허접하다라 느낀 것들도 많았다. 권선징악을 굉장히 선호하는 장르가 바로 로맨스 소설이라 그런지 대부분의 악랄한 범인은 그 악의를 감추지 못해 독자들에게 금방 정체가 탄로나고는 했다. 이 부분에 있어 <베일 속의 여인>은 다르다.
범인이 누군지 알게 되기 전까지 여주인공은 조넷은 조금 신경질적인 캐릭터로 느껴졌다. 남주인공인 콜이 별 것 아니다라고 치부할 정도의 일에도 그녀는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곤 했다. 비록 그녀의 남편이 눈앞에서 독살 당했고, 여러가지 위험한 일이 일어났다고는 해도 도무지 납득이 가지 않는 그녀의 과장되고 신경질적인 반응에 읽는 동안 조금 짜증이 나기도 했다. 그렇지만 범인이 밝혀지고 난 후 그녀가 그럴 수밖에 없었음이 이해가 된다. 또한 콜이 그녀의 집에 들어가 느낀 불길한 기운 역시 이해가 되었다. 곳곳에 암시를 심어두지만 정작 범인이 누군지 헷갈리게 하려고 했다면 작가는 성공한 셈이다. 눈치가 빠른 독자라면 범인이 누군지 금방 깨달을 수 있을 정도긴 하지만.
아무튼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을 표방한 작품이라 그런지 이런 부분에 있어서 큰 점수를 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일 속의 여인>은 다시 보고 싶다는 갈망은 불러일으키지 못할 것 같다. 왜냐하면 캐릭터가 결코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단점이라면, 캐릭터가 불분명하다는 점일 것이다.
작가가 그동안 꽤 로맨스 소설을 읽어왔다는 걸 깨닫게 되는 곳이 있는데, 그건 남주인공 콜의 재정적인 부분에 대한 반복적인 설명이다.
솔직히 말해 재정이 열악한 남주인공은 은연중에 꺼리게 되고 만다. 일단 돈이 없는 남주인공은 아무리 잘생기고 멋있고 특출나다고 해도 뭔가가 부족하게 느껴진다. 아마도 작가는 이를 신경쓰고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다. 콜에 대한 설명을 할 때마다 그가 결코 가난하지 않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니까.
또한 여주인공인 조넷에 대해 작가는 대담한 여인이라 말하지만, 책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그녀는 연약하고 신경질적이며 다혈질이라는 거다. 툭하며 울고, 쓰러지고, 비명을 지르는 그녀가 어떻게 냉정하고 대담하다 말할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작가는 그녀를 대담하다라고 종종 묘사하고 있다. 사실 그녀가 대담한 부분은 러브신에서의 장면 뿐이었다.
이것도 몹시 마음에 걸리는 게, 꿈많던 처녀에서 호색가이자 나이가 많은 남편과 억지로 결혼해 살아왔던 조넷임에도 불구하고 침대에서는 과감하기 이를데 없었다. 작가는 분명 남편이 그녀를 잔인해지도록 길들였다고 묘사했음에도 콜을 유혹하는 조넷은 전혀 잔인하지도 그렇다고 어떠한 거리낌이 있는 것도 아니다.
남성들이 자신보다 기가 센 여자들의 우위에 서기 위해서 보통 사용하는 방법으로는 육체적으로 콤플렉스를 심어주는 것이다. 즉, 아내에게 대놓고 혹은 은근히 스스로의 육체를 열등하게 느끼도록 만든다는 거다. 그 대표적 예로 오랫동안 아이가 없으면 그게 마치 아내의 탓인양 돌려버리곤 했다. 조넷에게는 두 아이가 있었다. 그러므로 출산에 대한 열등의식을 심어주지는 못했을 거다. 하지만 그것 외에도 열등감을 심어줄 수 있는 미묘한 것들은 많다.
남편이 살아 있을 당시 조넷은 사교계에서 인기의 절정에 다다르고 있었으나 결코 쉽사리 잠자리를 허락하지 않았다고 했다. 명확하게 남편 외에 다른 남자와 동침하지 않았다고는 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은밀함을 공유할 애인이 있었다고도 하지 않았다. 실제로 콜과 처음 잠자리를 함께 했을 때도 굉장히 오랜만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베일 속의 여인>에 나오는 조넷 - 신통치 않은 정력을 가진 늙은 남편 밑에서 두 아들을 낳고 애인을 만들지 않은 채 살아가던 그녀가 아무런 거리낌이 없이 콜을 유혹하고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행위를 감행한다. 일말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글쎄... 지금이었다면 모르겠다. 소설의 배경이 현대였다면. 그렇지만 이 작품은 레전시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고, 자신의 육체에 대해 강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여인이 아니고서야 조넷처럼 대담하게 나올 수는 없을 것 같은데 말이다.
서문에도 쓰여있듯 "리즈 칼라일의 센슈얼한 러브 신"이 자극적이긴 했어도 그 자극성 덕분에 캐릭터의 상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화끈한 러브신이라 생각이 된다. 그저 자극을 위한 자극은 아닐까 싶은 거다. 만일 죽은 머서 후작이 비록 도덕적이지 못한 인물이기는 해도 잠자리에 있어서만은 조넷을 만족시켰다는 문장 한 줄만, 또는 훈련시켰다는 문장 한 줄만이라도 있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의아하지는 않았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죽은 머서 후작은 난봉꾼에 타락한 귀족의 전형이었으나 침대에서는 큰 쓸모가 없었다라고 조넷이 회상하는 문구가 있다.
남자 주인공 역시 이해가 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첫만남-정확히 말해 두 번째 만남- 이후 콜의 시점에서 회상을 하는 지문에 이런 게 있다.
『 시간이 흐르자 콜은 마음 속의 폭풍이 가라앉기 시작하는 걸 느끼며 눈을 떠 창문을 통해 부드럽게 들어오는 늦은 오후 햇살이 넓은 참나무 바닥에 비치는 것을 바라보았다. 조넷 로우랜드와 그녀의 사악하고 유혹적인 행동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고 당면한 문제를 바라봐야 했다. 』
뭐가? 뭐가 사악했다는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전 장면에 그녀는 '사악하고 유혹적인 행동'을 하지 않았단 말이다!
물론 전적으로 콜의 시점에서 볼 때 그녀가 의도적으로 그를 유혹했다고 느낄 수는 있겠다. 하지만 다시 전 장면을 아무리 살펴보아도 그녀를 잘 모르는 사람이 그녀를 '사악하다'라고 생각할 만한 장면을 찾아낼 수가 없었다. 도대체 뭐가 사악한 거냐고!(절규)
이렇게 막상 그려놓은 장면과 이를 설명하는 작가의 묘사가 전혀 어울리지 않으니 읽는 내내 도대체 이 캐릭터는 어떤 캐릭터인지 헷갈려 죽을 뻔 했다. 캐릭터 자체가 파악이 안되는 가운데 그 캐릭터에게서 매력을 느낀다는 건 애시당초 그른 일이고.
어쨌든 약간 가볍고, 과장되고, 일관성이 떨어지는 점이 곳곳에서 발견되는 작품이기는 해도 일단 어느 정도 재미는 있었다. 앞부분은 서툴고 두서없다 느끼게 되었지만 뒷부분으로 갈수록 조금씩 나아졌다. 흠. 그래서 다음에 나올지도 모를 Woman of Virtue를 일단 기대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