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라운지
- 리뷰
글 수 762
소설을 읽는 동안 여주인공인 공진솔에게 완전하게 감정이 이입 되었다. 한 순간도 그녀의 심정이나 행동이 이해되지 않은 적이 없었을 정도로. 그녀가 나와는 많이도 다른 사람임에도.
이건 피디를 좀 불편하게 의식하다가 어느 순간 호감을 품게 되고, 그 마음이 점점 깊어지는 그녀의 감정에 덩달아 전염이 되어, 음반 자료실에서 그녀에게 "당신, 시시해" 하고 말하는 건이 진심으로 섭섭했다. 비상구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읽으면서는 이건이 제발 좀 그녀의 마음을 빨리 알아 주기를, 그럴 리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별안간 그녀에게 사실은 나도 사랑했었노라고 그녀에게 고백해 주었으면 바랬다. 당연하게도 소설은 그렇게 성급하게 흘러가지는 않았고, 진솔의 마음을 모르는 이건이 조금은 찜찜한 채로 그녀와 화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그녀의 고백은 조금 후에 나온다.
일을 핑계로 이건의 본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진솔이 아침 식사 후 산책길에서 건에게는 깜짝인 고백을 한다. 그가 사실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오래는 아니지만 어쨌든 기다리겠다고.
"내 마음 들여다볼게요."
남자의 대답.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건은 이미 그녀를 많이 좋아하고 있고, 그의 생각보다 그녀의 자리가 매우 크다는 것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고 있는 나야말로 너무나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찻집에서, 진솔의 눈 앞에서 그녀도 뻔히 사정을 다 아는데, 오랫동안 그의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여자, 애리에게
"너 차라리 나한테 와라." 라고 하는 건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아니, 화가 났다는 건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무척 단단한 것으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제 정신이야?
계속해서 미쳐 날뛰는 건을 말리며 그녀가 소리친다.
"그러지 말라고요! 그만 하라고요! 내 앞에서, 당신이 어떻게 이래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당신이 ... 어떻게 이래요."
이번에는 조금 나즈막히.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나는 미칠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아파트 층계에서 그녀를 기다리리고 있다가 그녀에게 사과하는 건을 나조차 용서해 주고 싶지 않았다. 겨우 그까짓 말 몇마디로 어떻게 치유가 돼?
그리고, 궁금했다. 도대체 이 작가는 둘을 어떻게 화해 시키려고 그러지?
그와 함께 하던 프로를 그만 두고, 그러다가 아예 일까지 그만 두고, 그녀는 서울마저 떠나기 위해 시골집을 계약한다. 이사를 가기 이틀 전, 그녀와도 각별했던 건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문상을 간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한 밤 중에 눈물을 흘리는 그와 키스.
그녀는 서울을 떠나고, 건은 형이 있는 뉴질랜드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난다.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서울을 떠나 집을 이사한 것을 안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또 달아난 건가?
"아니에요. 내 꿈이었던 거 알잖아요. 시골에 마당 있는 작은 집. 당분간은 모아둔 돈 까먹으면서 살겠지만...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씁쓸하게 이어지는 건의 말.
"나 사랑하는 게 정말 힘들면 ... 사랑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한테 아무 위로도 못됐다는 거 아니까."
......
"도망가지만 말아요, 내 인생에서."
공진솔보다도 먼저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에게 우정으로도 안 되겠느냐고 절실하게 물었던 건의 마음이 사실은 이랬던 거구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진솔이 건을 이제 그만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진솔의 집으로 건이 찾아오고, 그를 그냥 배웅하고 말았던 그녀가 일순 안타까운 마음에 무작정 마을로 뛰쳐간다. 마을 어귀 플라타나스가 서 있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는 건.
"아직 안 갔네요."
"발이 안 떨어져서. 당신은, 왜 나왔어요."
"...붙잡으려고요."
이어지는 건의 고백.
"당신 말이 맞아. 나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고... 내가 한 여자의 쓸쓸함을 모조리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아.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는 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날 빈소에서, 나 나쁜 놈이었어요. 내내 당신만 생각났어. 할아버지 앞에서 공진솔 보고 싶단 생각만 했어요. 뛰쳐나와서 당신 보러 가고 싶었는데... 정신 차려라, 꾹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진솔은 차라리 눈을 꼭 감았다고 했을 때, 나는 책장을 가만히 덮었다.
아아, 어떻게 이런 감정이 들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얘네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그래, "현실의" 사람인데.
잔잔하고 조용한 언어의 강렬한 힘을 마음으로 실감했다.
이도우 작가는 정말 잘 쓴다.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로맨스 소설이라면 공식처럼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에 한 번도 못 겪을 굉장한 사건들이나 미화되고 과장 되기 십상인 섹스씬 따위 없어도 무슨 상관이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잘 쓴다. 마음이 얼마나 깊길래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겉멋으로 갖다 붙인 게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느껴지게끔 쓸 수 있을까, 감탄한다.
아마도 이도우 작가의 글이 나와 코드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스러운 별장지기 때는 코드가 잘 맞는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일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이건 피디를 좀 불편하게 의식하다가 어느 순간 호감을 품게 되고, 그 마음이 점점 깊어지는 그녀의 감정에 덩달아 전염이 되어, 음반 자료실에서 그녀에게 "당신, 시시해" 하고 말하는 건이 진심으로 섭섭했다. 비상구 계단에 쭈그리고 앉아 울고 있는 그녀를 읽으면서는 이건이 제발 좀 그녀의 마음을 빨리 알아 주기를, 그럴 리는 없고 그래서도 안 되는 일이지만 별안간 그녀에게 사실은 나도 사랑했었노라고 그녀에게 고백해 주었으면 바랬다. 당연하게도 소설은 그렇게 성급하게 흘러가지는 않았고, 진솔의 마음을 모르는 이건이 조금은 찜찜한 채로 그녀와 화해하는 것으로 끝을 맺고, 그녀의 고백은 조금 후에 나온다.
일을 핑계로 이건의 본가에서 하룻밤 신세를 진 진솔이 아침 식사 후 산책길에서 건에게는 깜짝인 고백을 한다. 그가 사실은 다른 여자를 사랑하고 있는 것을 알면서, 오래는 아니지만 어쨌든 기다리겠다고.
"내 마음 들여다볼게요."
남자의 대답.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건은 이미 그녀를 많이 좋아하고 있고, 그의 생각보다 그녀의 자리가 매우 크다는 것을 제 삼자의 입장에서 글을 읽고 있는 나야말로 너무나 잘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랬기 때문에 찻집에서, 진솔의 눈 앞에서 그녀도 뻔히 사정을 다 아는데, 오랫동안 그의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여자, 애리에게
"너 차라리 나한테 와라." 라고 하는 건에게 너무나 화가 났다. 아니, 화가 났다는 건 정확하지 않을 것이다. 무척 단단한 것으로 머리를 세게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아니, 어떻게 이럴 수가 있지, 제 정신이야?
계속해서 미쳐 날뛰는 건을 말리며 그녀가 소리친다.
"그러지 말라고요! 그만 하라고요! 내 앞에서, 당신이 어떻게 이래요!"
그리고 다시 한 번.
"당신이 ... 어떻게 이래요."
이번에는 조금 나즈막히.
그녀의 심정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 나는 미칠 것처럼 마음이 아팠다.
아파트 층계에서 그녀를 기다리리고 있다가 그녀에게 사과하는 건을 나조차 용서해 주고 싶지 않았다. 겨우 그까짓 말 몇마디로 어떻게 치유가 돼?
그리고, 궁금했다. 도대체 이 작가는 둘을 어떻게 화해 시키려고 그러지?
그와 함께 하던 프로를 그만 두고, 그러다가 아예 일까지 그만 두고, 그녀는 서울마저 떠나기 위해 시골집을 계약한다. 이사를 가기 이틀 전, 그녀와도 각별했던 건의 할아버지가 세상을 떠났고, 그녀는 문상을 간다. 그리고 버스 정류장, 한 밤 중에 눈물을 흘리는 그와 키스.
그녀는 서울을 떠나고, 건은 형이 있는 뉴질랜드로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떠난다. 그가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그녀가 서울을 떠나 집을 이사한 것을 안 그가 그녀에게 말한다.
"또 달아난 건가?
"아니에요. 내 꿈이었던 거 알잖아요. 시골에 마당 있는 작은 집. 당분간은 모아둔 돈 까먹으면서 살겠지만... 잘 살 수 있을 거예요."
그러자 씁쓸하게 이어지는 건의 말.
"나 사랑하는 게 정말 힘들면 ... 사랑하지 말아요. 내가 당신한테 아무 위로도 못됐다는 거 아니까."
......
"도망가지만 말아요, 내 인생에서."
공진솔보다도 먼저 내 마음이 흔들렸다. 그녀에게 우정으로도 안 되겠느냐고 절실하게 물었던 건의 마음이 사실은 이랬던 거구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이때부터 진솔이 건을 이제 그만 받아 주었으면 좋겠다 생각했다.
진솔의 집으로 건이 찾아오고, 그를 그냥 배웅하고 말았던 그녀가 일순 안타까운 마음에 무작정 마을로 뛰쳐간다. 마을 어귀 플라타나스가 서 있는 길에서 담배를 피우며 생각에 잠겨 있는 건.
"아직 안 갔네요."
"발이 안 떨어져서. 당신은, 왜 나왔어요."
"...붙잡으려고요."
이어지는 건의 고백.
"당신 말이 맞아. 나 그렇게 대단한 놈 아니고... 내가 한 여자의 쓸쓸함을 모조리 구원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아. 내가 옆에 있어도 당신은 외로울 수 있고, 우울할 수도 있을 거예요. 사는 데 사랑이 전부는 아닐 테니까. 그런데..."
"그날 빈소에서, 나 나쁜 놈이었어요. 내내 당신만 생각났어. 할아버지 앞에서 공진솔 보고 싶단 생각만 했어요. 뛰쳐나와서 당신 보러 가고 싶었는데... 정신 차려라, 꾹 참고 있었는데..."
"갑자기 당신이 문 앞에 서 있었어요. 그럴 땐, 미치겠어. 꼭 사랑이 전부 같잖아."
진솔은 차라리 눈을 꼭 감았다고 했을 때, 나는 책장을 가만히 덮었다.
아아, 어떻게 이런 감정이 들게 만들 수 있을까. 나는 얘네들과는 아무 상관 없는 그래, "현실의" 사람인데.
잔잔하고 조용한 언어의 강렬한 힘을 마음으로 실감했다.
이도우 작가는 정말 잘 쓴다. 이 사람의 글을 읽고 있노라면 로맨스 소설이라면 공식처럼 나오는, 대부분의 사람은 평생에 한 번도 못 겪을 굉장한 사건들이나 미화되고 과장 되기 십상인 섹스씬 따위 없어도 무슨 상관이람, 생각이 들 정도로 그렇게 잘 쓴다. 마음이 얼마나 깊길래 이런 분위기를 만들 수 있을까, 어떻게 이런 말을 겉멋으로 갖다 붙인 게 아니라 정말로 진심으로 느껴지게끔 쓸 수 있을까, 감탄한다.
아마도 이도우 작가의 글이 나와 코드가 일치하기 때문일 것이다. 사랑스러운 별장지기 때는 코드가 잘 맞는다 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소설을 읽으면서는 "일치"라고 생각이 들었다.
댓글 '8'
굉장히 능수능란한 작품입니다. 이 만큼 감수성이 예민한 글은 달리 찾아볼 수 있지만, 그 감수성을 이 만큼 능숙하게 풀어낸 글은 극히 드문 것 같습니다. 작가의 감성과 재능과 노력의 삼 박자가 갖춰졌기 때문이겠죠.
리앙님의 경우에는 코드가 일치했기 때문에 좋았다고 하셨지만, 제 경우에는 자신이 이런 글에 대단히 약하기에(혹은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죽 읽혔을 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솔직한 기분으로 한 수 배우고 싶은 분이랄까.
또한 독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신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해,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이도우 님 자신을 글에 표현하고 독자들이 그것에 공감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덧붙여 작품 전체를 통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며 제가 이제까지 읽었던 로맨스 소설 베스트 남우조연상을 드리고 싶은 캐릭터인 이필관 옹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던 작품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감으로는 분명히 모델이 따로 있을 거라 생각되는군요^-^
P.S 릴리님께 책을 선물한 사람이 저랍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앞으로도 종종 선물할게요~
리앙님의 경우에는 코드가 일치했기 때문에 좋았다고 하셨지만, 제 경우에는 자신이 이런 글에 대단히 약하기에(혹은 별로 관심이 없었기에) 죽 읽혔을 때 굉장히 놀랐습니다. 솔직한 기분으로 한 수 배우고 싶은 분이랄까.
또한 독자의 입맛에 맞추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독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노력하신 흔적이 느껴졌습니다. 다시 말해, 독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이도우 님 자신을 글에 표현하고 독자들이 그것에 공감하게 만드는데 성공했다는 기분이 듭니다.
덧붙여 작품 전체를 통해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이며 제가 이제까지 읽었던 로맨스 소설 베스트 남우조연상을 드리고 싶은 캐릭터인 이필관 옹을 만날 수 있어서 기뻤던 작품이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의 감으로는 분명히 모델이 따로 있을 거라 생각되는군요^-^
P.S 릴리님께 책을 선물한 사람이 저랍니다. 재미있게 읽으신 것 같아 기쁩니다^-^ 앞으로도 종종 선물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