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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62
저자/이도우
출판사/북박스
사소한 규칙이라도 당연한 듯 지키며 살아온 한 내성적인 여자가, 처음으로 먼저 '내게 문을 열어주세요'하고 노트해보는 사랑 이야기.
한번 두드려봤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자 그녀는 얼른 없던 일로 하고 철수하려고 한다. 안 그래도 세상이 만만찮은데 어려운 사랑까지 보태고 싶지 않기 때문에... .
<사랑스런 별장지기>를 읽고 한눈에 반한 작가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글은 항상 소품과 같은 느낌이다. 커다란 사건도 없고, 과장된 갈등도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엔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다. 이도우 작가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참 따듯하게 바라본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비관하듯 절망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슬퍼하고 아파할 뿐. 아이러니 하게도 그로인해 독자들에게 더욱 애잔한 감동을 전달한다. 나는 그게 너무 좋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30대를 넘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둘만의 로맨스 보다는 이미 가치관이 고정되어버린 둘이 서로를 받아들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겪고, 또 다시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겪다보면 어려서와 달리 사랑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느즈막히 도다시 시작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무작정 감정에 빠지지 못한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한 걸음 떨어져 그 사람과 사랑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건 어쩌면 나이든 증거가 아닐까 싶다.
두려움에 혹은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탐색하고, 재보고,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그러면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버린다. 혹은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처럼 몇 년 간 해왔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길들여져 새로운 사랑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현대는 참 빠르다. 첫눈에 호감을 느껴 육체를 나누고, 지리멸렬한 감정 싸움이 싫어 적당히 즐기다 끝맺는 연인들이 많다. 물 속에 몸을 푹 담그지 않고 한 발만 살짝 담가 온기만을 느끼다 빼버리는 이들이 많다. 그 가운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일에 서툴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마음은 설래지만 그 설래임을 표현하길 두려워한다. 사랑한다 인정해버리면 사랑이라는 그 위험한 줄타기를 감행해야할 테니까.
그걸 잘 알면서도 여주인공 공진솔은 사랑에 관한 한 참 솔직하다. 낙산공원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이건이 다른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의 사랑은 그 나이에 비해 솔직했고 그래서 설정해둔 나이에 비해 순진하다 싶은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나에겐 되려 더 매력적이었다. 나라면 그런 순간에 그렇게 고백할 용기가 없으니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난 다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연애기피증>을 읽게 되었다. 두 작품은 비슷한 소재였고, 내겐 <연애기피증>의 여주인공 신이현의 태도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더욱 공감이 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사랑에 당당한 공진솔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큰 갈등도 없고, 서사적인 사건도 없다.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틱함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참으로 따스하고 인간적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혹시 이도우 작가는 요즘 일본 번역본을 많이 보는 건 아닐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본문에서 콤마를 지나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부사구나 주절, 종속절로 이루어진 문장과 같은 경우 작가가 의도한 바를 독자에게 충실시키기 위해서 콤마(,)를 사용한다. 굳이 이와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문맥의 흐름을 적당히 끊어주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잠시 다음의 문단을 살펴보자.
『산등성이에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의 은빛 물결은 막바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 키만큼 높은 억새밭을 헤치고 경사진 험한 길을 따라가는 산행은, 햇살에 빛나는 은빛 꽃술들에 뺨과 어깨를 연신 스쳐야하는 간지럽고도 기분 좋은 길이었다. 배낭을 메고서 시원시원하게 앞서가는 남자들을, 두 여자가 약간 쳐져서 뒤따라가고 있었다.
억새밭을 두 팔로 헤치며 얼마나 걸었을까. 선우가 내리막진 숲길을 따라 접어들었고, 잠시 후 일행은 소나무 숲 뒤로 수줍게 돌아앉은 낡은 귀틀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굵직하고 거친 통나무의 귀를 맞춰 엊갈리게 포개 놓은 벽.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듯 덜렁대는 문짝이 한눈에도 오래전부터 풍상을 겪으며 버텨온 집임을 알 수 있게 했다.』- p.256~257
위에서 진하게 표시한 ',(콤마)'는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았다.
"사람 키만큼 높은 억새밭을 헤치고 경사진 험한 길을 따라가는 산행은 햇살에 빛나는 은빛 꽃술들에 뺨과 어깨를 연신 스쳐야하는 간지럽고도 기분 좋은 길이었다."
이렇게 두어도 문장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는 매우 자주 이렇게 사용된 콤마가 눈에 띈다.
몇 년 전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러한 콤마를 즐겨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나로써는 그것이 원작자의 의도적 의도인지 아니면 번역자의 실수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된 바로는 이는 한 번역자의 서투름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왠지 콤마를 많이 쓰면 근사하다는 편견이 우리 뇌리에 박혀버렸나 보다. 무의식 중에 형용사를 난발하는 것처럼 콤마도 은연중에 많이 쓰이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목격한다. 특히 일본 문학에 심취한 분들인 경우 더더욱 그러했다.
굉장히 아쉽게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소담한 글이었다. 굳이 문장을 꾸미지 않아도 작가가 그려놓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읽혀졌다.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콤마는 되려 거치적 거렸다. 다음엔 부디 이런 아쉬움이 없을 이도우 작가의 더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출판사/북박스

한번 두드려봤지만 쉽사리 열리지 않자 그녀는 얼른 없던 일로 하고 철수하려고 한다. 안 그래도 세상이 만만찮은데 어려운 사랑까지 보태고 싶지 않기 때문에... .
<사랑스런 별장지기>를 읽고 한눈에 반한 작가다. 그녀의 새로운 작품이 나왔다는 말을 듣고 서둘러 서점으로 달려갔다.
그녀의 글은 항상 소품과 같은 느낌이다. 커다란 사건도 없고, 과장된 갈등도 없다. 그럼에도 읽는 동안엔 주인공과 함께 울고 웃는다. 이도우 작가의 주인공들은 세상을 참 따듯하게 바라본다.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비관하듯 절망하지 않는다. 그저 조용히 슬퍼하고 아파할 뿐. 아이러니 하게도 그로인해 독자들에게 더욱 애잔한 감동을 전달한다. 나는 그게 너무 좋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30대를 넘은 남녀가 만나서 사랑하는 이야기이다. 어쩌면 둘만의 로맨스 보다는 이미 가치관이 고정되어버린 둘이 서로를 받아들이며 세상을 살아가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다.
수많은 세월 동안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겪고, 또 다시 사랑을 하고 헤어짐을 겪다보면 어려서와 달리 사랑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게 된다. 느즈막히 도다시 시작된 사랑을 하는 사람은 무작정 감정에 빠지지 못한다. 누군가를 좋아해도 한 걸음 떨어져 그 사람과 사랑하는 자신을 보게 된다. 그건 어쩌면 나이든 증거가 아닐까 싶다.
두려움에 혹은 자존심 때문에 상대를 탐색하고, 재보고, 여러가지 조건을 따져보고 그러면서 적당히 현실과 타협해버린다. 혹은 이 소설의 남자주인공처럼 몇 년 간 해왔던,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감정'에 길들여져 새로운 사랑에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되어 버린다.
현대는 참 빠르다. 첫눈에 호감을 느껴 육체를 나누고, 지리멸렬한 감정 싸움이 싫어 적당히 즐기다 끝맺는 연인들이 많다. 물 속에 몸을 푹 담그지 않고 한 발만 살짝 담가 온기만을 느끼다 빼버리는 이들이 많다. 그 가운데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의 주인공들이 살고 있다.
그들은 사랑하는 일에 서툴다. 좋아해도 좋아한다 표현하기가 힘들다. 마음은 설래지만 그 설래임을 표현하길 두려워한다. 사랑한다 인정해버리면 사랑이라는 그 위험한 줄타기를 감행해야할 테니까.
그걸 잘 알면서도 여주인공 공진솔은 사랑에 관한 한 참 솔직하다. 낙산공원의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자신의 감정을 고백했다. 이건이 다른 여자를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음을 알면서도.
그녀의 사랑은 그 나이에 비해 솔직했고 그래서 설정해둔 나이에 비해 순진하다 싶은 면도 없잖아 있었지만, 그것 때문에 나에겐 되려 더 매력적이었다. 나라면 그런 순간에 그렇게 고백할 용기가 없으니까.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을 읽고 난 다음 비슷한 시기에 출간된 <연애기피증>을 읽게 되었다. 두 작품은 비슷한 소재였고, 내겐 <연애기피증>의 여주인공 신이현의 태도가 더 현실적으로 느껴졌다. 더욱 공감이 되고 말이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이 더 애잔하게 느껴진 걸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사랑에 당당한 공진솔의 모습이 너무나 부럽고 좋았던 걸지도 모르겠다.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큰 갈등도 없고, 서사적인 사건도 없다. 가슴 두근거리는 로맨틱함도 없다. 그렇지만 그들의 사랑은 참으로 따스하고 인간적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
혹시 이도우 작가는 요즘 일본 번역본을 많이 보는 건 아닐지 하는 궁금증이 생겨버렸다. 본문에서 콤마를 지나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말이다.
부사구나 주절, 종속절로 이루어진 문장과 같은 경우 작가가 의도한 바를 독자에게 충실시키기 위해서 콤마(,)를 사용한다. 굳이 이와 같은 경우가 아니더라도 문맥의 흐름을 적당히 끊어주기 위해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 염두에 두고 잠시 다음의 문단을 살펴보자.
『산등성이에 드넓게 펼쳐진 억새밭의 은빛 물결은 막바지 절경을 이루고 있었다. 사람 키만큼 높은 억새밭을 헤치고 경사진 험한 길을 따라가는 산행은, 햇살에 빛나는 은빛 꽃술들에 뺨과 어깨를 연신 스쳐야하는 간지럽고도 기분 좋은 길이었다. 배낭을 메고서 시원시원하게 앞서가는 남자들을, 두 여자가 약간 쳐져서 뒤따라가고 있었다.
억새밭을 두 팔로 헤치며 얼마나 걸었을까. 선우가 내리막진 숲길을 따라 접어들었고, 잠시 후 일행은 소나무 숲 뒤로 수줍게 돌아앉은 낡은 귀틀집 한 채를 볼 수 있었다. 굵직하고 거친 통나무의 귀를 맞춰 엊갈리게 포개 놓은 벽. 금방이라도 떨어져나갈 듯 덜렁대는 문짝이 한눈에도 오래전부터 풍상을 겪으며 버텨온 집임을 알 수 있게 했다.』- p.256~257
위에서 진하게 표시한 ',(콤마)'는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았다.
"사람 키만큼 높은 억새밭을 헤치고 경사진 험한 길을 따라가는 산행은 햇살에 빛나는 은빛 꽃술들에 뺨과 어깨를 연신 스쳐야하는 간지럽고도 기분 좋은 길이었다."
이렇게 두어도 문장을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이 없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는 매우 자주 이렇게 사용된 콤마가 눈에 띈다.
몇 년 전 요시모토 바나나가 한참 붐을 일으키고 있는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작품에 이러한 콤마를 즐겨 사용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사실 일본어를 잘 모르는 나로써는 그것이 원작자의 의도적 의도인지 아니면 번역자의 실수인지 구분하지 못했다. 그런데 최근에 알게된 바로는 이는 한 번역자의 서투름이었다.
하지만 그 사이 왠지 콤마를 많이 쓰면 근사하다는 편견이 우리 뇌리에 박혀버렸나 보다. 무의식 중에 형용사를 난발하는 것처럼 콤마도 은연중에 많이 쓰이는 걸 요즘 들어 자주 목격한다. 특히 일본 문학에 심취한 분들인 경우 더더욱 그러했다.
굉장히 아쉽게도 <사서함 110호의 우편물>은 그럴 필요가 없을 정도로 소담한 글이었다. 굳이 문장을 꾸미지 않아도 작가가 그려놓은 이야기가 자연스레 읽혀졌다. 난데없이 튀어나오는 콤마는 되려 거치적 거렸다. 다음엔 부디 이런 아쉬움이 없을 이도우 작가의 더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댓글 '11'
마이니/님은 여성향을 즐겨 읽으셨지 않나요? 여성향의 초기작품은 대부분 보셨을 것 같은데... 모르긴 몰라도 그 중에 명작으로 꼽히는 번역물은 한 두 개 재미있게 보셨겠죠? 일단 자신이 재미있게 읽은 글은 은연중에 영향을 많이 주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후지미에서 한 부분,
"난 위를 쳐다본 채 인사하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흘끗 옆에 우뚝 솟은 전봇대의 머리끝을 쳐다본 건, 잊어버린 말을 찾는 것이었다. 찾는 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시다 상은 싱글거리며 나를 봤다."
등등 처럼 말입니다.
저도 이게 익숙해서 일본 번역본을 볼 때면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막상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에서 이런 콤마를 발견하게 되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랄까나요. 뭔가 위화감이 들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을 동원해도 좋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문장에까지 콤마를 난발한다는 건 좀;;;
암튼 좋은 작품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구요^^;
예를 들어 후지미에서 한 부분,
"난 위를 쳐다본 채 인사하는, 흔하지 않은 경험을 했다."
"흘끗 옆에 우뚝 솟은 전봇대의 머리끝을 쳐다본 건, 잊어버린 말을 찾는 것이었다. 찾는 게 있었는지 없었는지, 이시다 상은 싱글거리며 나를 봤다."
등등 처럼 말입니다.
저도 이게 익숙해서 일본 번역본을 볼 때면 당연히 이렇게 나와야한다고 생각하는 편이지만, 막상 우리나라 사람이 쓴 글에서 이런 콤마를 발견하게 되면 왠지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든다랄까나요. 뭔가 위화감이 들죠;;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그 어떤 것을 동원해도 좋지만, 굳이 그럴 필요가 없는 문장에까지 콤마를 난발한다는 건 좀;;;
암튼 좋은 작품임은 두말할 나위도 없구요^^;
여성향을 즐겨 읽...;; ㅠ.ㅠ 저는 그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제 이미지가 그렇게 굳어지다니, 슬퍼요. 흑흑; 실은 여성향, 돈 주고 산 적은 한 번도 없는데.(물론 사고 싶은 생각이 든 적은 몇 번 있지만요;) 국내 여성향을 주로 봅니다만, 그건 로맨스물과 달리 소재가 그리 현실적이지 않아서 좋아요. 반대로 아주 현실적인 부분도 있고... 로맨스물과 아주 다른 방향에서 읽는 욕구를 만족시켜 주죠. 바꿔 말한다면, 로맨스에서 만족시켜 주는 부분들을 여성향에서는 찾을 수 없다는 말도 됩니다. 제가 생각하기에는 이 점이 여성향의 한계인 거 같아요.
일본 여성향 쪽은 국내물과 색다른 느낌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그것들이 제 머리 속에서 몇 몇 국내물을 뛰어넘지는 못하더군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인 듯. 그리고 후지미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여름의 소금 쪽이 더 나았어요. 좀 더 '일본'을 느끼게 해준달까... 일본의 글들을 그리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가 드러나는 쪽의 글들을 좋아해요. 전에 대구에 사시는 ㄷ님과도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그 일본문학의 묘하게 안개 낀 듯한 심리적, 서정적(;) 분위기가 영 몸에 익질 않습니다.
흠, 여기까지 읽어보니 역시 쉼표의 남발이네요. ^^; 개인적으로 저도 글에서 쉼표를 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자기 글에선 왜 쉼표를 찍고 싶은 건지. 쯧. 일단 주어가 바뀌는 곳에만 쉼표를 친다, 라고 결심은 하고 있는데 쉽질 않네요. 방금처럼 작은 따옴표를 쳐야 하는 부분에서 쉼표를 치는 것이 편해서 쓰는 경우도 있고. 역시 곤란하군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ㅎㅎㅎ ^^;
일본 여성향 쪽은 국내물과 색다른 느낌이 있어서 재미있게 읽기는 했습니다만, 그것들이 제 머리 속에서 몇 몇 국내물을 뛰어넘지는 못하더군요.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취향의 문제인 듯. 그리고 후지미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여름의 소금 쪽이 더 나았어요. 좀 더 '일본'을 느끼게 해준달까... 일본의 글들을 그리 많이 읽진 않았지만, 그 나라의 독특한 문화가 드러나는 쪽의 글들을 좋아해요. 전에 대구에 사시는 ㄷ님과도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저는 그 일본문학의 묘하게 안개 낀 듯한 심리적, 서정적(;) 분위기가 영 몸에 익질 않습니다.
흠, 여기까지 읽어보니 역시 쉼표의 남발이네요. ^^; 개인적으로 저도 글에서 쉼표를 보는 것은 별로 좋아하질 않는데 자기 글에선 왜 쉼표를 찍고 싶은 건지. 쯧. 일단 주어가 바뀌는 곳에만 쉼표를 친다, 라고 결심은 하고 있는데 쉽질 않네요. 방금처럼 작은 따옴표를 쳐야 하는 부분에서 쉼표를 치는 것이 편해서 쓰는 경우도 있고. 역시 곤란하군요. 좀 더 주의를 기울여야...ㅎㅎㅎ ^^;
가끔 넷에 연재되는 소설들 중에 콤마가 많이 들어간 것들을 볼 수가 있죠. 그 분들이 전부 다 일본 소설을 좋아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죠. 어떤 분은 여성향을 좋아할 수도 있구요. 또 어떤 분은 둘 다 읽어본 적이 없음에도 콤마를 자주 사용할 수도 있구요. 그리고 어떤 분은 자신이 전에 읽은 넷상의 로맨스 소설에서 콤마가 자주 사용된 것이 마음에 들어 자신의 글에서도 자주 사용할 수도 있는 거겠죠. 혹은 앞의 이유가 전부 다 포함된 사람도 있을 수 있구 말이죠. 이처럼 영향을 받아서, 버릇처럼, 의식적으로, 무의식적으로 등등 콤마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는 다양할 겁니다.
이도우님의 경우는 제가 생각하는 이유지 저 윗 중의 이유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는 직접 물어본 적이 없으니 저도 모릅니다. 영향을 받아서인지, 버릇인지, 의식적인 건지 모른다는 거죠.
하지만 굳이 일본 번역본을 자주 접한 건 아닐까 한 것은 알게 모르게 그런 분들이 많다는 걸 최근 들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 외로 요시모토 바나나가 인기가 있더군요^^; 물론 이도우님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단 한번도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마이니님의 경우도 솔직히 제가 임의로 생각하는 거지 그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마이니님은 여성향을 읽었음을 종종 이야기 하곤 하셨죠. 주변에 여성향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시구요. 그럼 당연히 콤마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 중 그게 포함된다 싶어지지 않을까요?
솔직히 마이니님 글에서는 지나치게 사용된다는 느낌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만,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것도 일종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닐까 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니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하시면 됩니다. 굳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으셨는 듯^^;
그리고 여성향을 좋아한다고 다른 작품을 아예 안 읽는 건 아니잖습니까? 혹시 누군가가 여성향에 편중한 글읽기에 대해 뭐라고 한 건가요? 흠.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저도 일 년에 몇 달은 한 장르를 집중적으로 편식하는 편이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뭐든 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니;;;)
물론 글을 쓰는 입장에서 탐독하는 장르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자신이 쓰는 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좀 곤란하겠죠. 만일 그걸 잘 제어할 수만 있다면 뭘 읽든 그거야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레 찔려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자자, 당당하게 삽시다~!
(근데 왜 얘기가 여기까지 흘렀냐-_-;;;)
이도우님의 경우는 제가 생각하는 이유지 저 윗 중의 이유 중 무엇에 해당하는지는 직접 물어본 적이 없으니 저도 모릅니다. 영향을 받아서인지, 버릇인지, 의식적인 건지 모른다는 거죠.
하지만 굳이 일본 번역본을 자주 접한 건 아닐까 한 것은 알게 모르게 그런 분들이 많다는 걸 최근 들어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생각 외로 요시모토 바나나가 인기가 있더군요^^; 물론 이도우님이 요시모토 바나나의 작품을 단 한번도 읽지 않았을 지도 모르지만 말이죠.
마이니님의 경우도 솔직히 제가 임의로 생각하는 거지 그게 전부는 아닐지도 모른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마이니님은 여성향을 읽었음을 종종 이야기 하곤 하셨죠. 주변에 여성향을 좋아하는 분들도 많으시구요. 그럼 당연히 콤마를 자주 사용하는 이유 중 그게 포함된다 싶어지지 않을까요?
솔직히 마이니님 글에서는 지나치게 사용된다는 느낌을 받은 바가 없습니다만, 본인이 그렇게 말씀하셔서 그것도 일종의 원인이 되는 것 아닐까 라고 말씀드린 겁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제 생각이니 아니라면 아니다라고 하시면 됩니다. 굳이 추가로 설명을 덧붙일 필요는 없으셨는 듯^^;
그리고 여성향을 좋아한다고 다른 작품을 아예 안 읽는 건 아니잖습니까? 혹시 누군가가 여성향에 편중한 글읽기에 대해 뭐라고 한 건가요? 흠. 그럴 수도 있는 거 아닌가요? 저도 일 년에 몇 달은 한 장르를 집중적으로 편식하는 편이니 그것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는데요^^;(뭐든 본인의 입장에서 생각하기 마련이니;;;)
물론 글을 쓰는 입장에서 탐독하는 장르의 영향을 너무 많이 받아서 자신이 쓰는 글에까지 영향을 미친다면 그건 좀 곤란하겠죠. 만일 그걸 잘 제어할 수만 있다면 뭘 읽든 그거야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지레 찔려하실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요. 자자, 당당하게 삽시다~!
(근데 왜 얘기가 여기까지 흘렀냐-_-;;;)
일본어는 원래 컴머가 많죠. 띄어쓰기가 없기 때문에...^-^; 번역할 때 적절히 빼주어야 하는데 김난주님이 번역한 <키친> 같은 경우는 그걸 그대로 놔두는 바람에 호흡이 끊기는 느낌마저 들었습니다.
한글은 컴머에 특별한 법칙이 없기 때문에 쓰기가 어렵습니다. 외국처럼 받아쓰기 훈련에서 컴머나 문장부호까지 익히도록 가르치면 좋을 텐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