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이선미
출판사/시공사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잃고 미국인에게 입양된 근영이 친아버지를 찾기 위해 백학골에 나타난다. 신여성을 처음 대하는 백학골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눈빛과 심참봉 댁 큰도련님 심규용의 냉대 속에서도 근영은 특유의 발랄함으로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급기야는 고리타분한 청년, 규용의 마음까지 뒤흔든다. 한편 근영의 재산이 어머어마하다는 소문이 돌자 조용했던 백학골은 한바탕 소란이 일게 되는데…….




<모던걸의 귀향>은 시공사의 첫 로맨스 소설이다. 이미 많은 출판사가 선점하고 있는 장르에 뛰어들기 위해 이선미라는 작가의 작품을 잡은 건 안정적인 시도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신생출판사로써는 기존의 출판사들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기 위해 작품의 질 외에도 많은 부분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이 점에서는 조금 미흡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변형 판형은 성공적이다. 그렇지만 판형 외의 다른 부분은 기존의 로맨스 소설과 큰 차별화를 두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책 날개 부분의 문구가 기존의 것들과 다름이 없었다. 물론 이런 것으로 인해 작품의 질이 평가되는 건 아니지만, 이건 일종의 서비스라고 할까?

시공사는 이미 다양한 장르를 내본 노하우가 있고, 또한 판로 역시 탄탄하다. 그렇다면 시공사에서 출판되는 로맨스 소설은 로맨스를 즐기는 독자들만이 보게 되진 않을 확률이 높다. 일반 독자들에게 어필을 하기 위해서는 독특한 무엇인가가 있어야 한다. <모던걸의 귀향> 자체는 여성적인 감각이 물씬 풍기나 막상 같은 시기에 나온 책들과 함께 놓고 봤을 때는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그리고 책을 뒤적였을 때도 편집의 묘미가 확실히 드러나지 않아 예쁘다라던가 읽고 싶다란 욕구를 불러일으키진 못하더라. 이 점은 뒤늦게 이 장르에 뛰어든 시공사로써는 조금 더 보완을 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누구든 이 출판사에서 나온 로맨스 소설을 발견했을 때, 감탄사가 저절로 나올만 하고 또한 책장을 넘기면서 은연 중에 읽고 싶단 동기가 유발될 수 있도록 좀더 세심한 부분에 신경을 써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아아, 기대감이 컸던 만큼 아쉬움도 없잖아 있어 주저리 늘어놨는데 솔직히 이건 극히 개인적인 아쉬움일 뿐이고;;

자, 본격적으로 <모던걸의 귀향>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모던걸의 귀향>은 이선미 작가의 또다른 느낌이 물씬 풍기는 글이다. 난 이 글이 연재될 당시 온라인상으로 읽지 않고 출간되기만을 기다렸었다. <모던걸의 귀향>은 짧은 호흡을 가진 온라인으로보다는 긴 호흡을 가진 책으로 읽어야 제맛을 느낄 수 있겠다 싶었기 때문이다. 예상이 맞았다.

대한민국 역사상 근시대를 말할 때 현재의 사람들은 힘든 우리네 조상만을 이야기 하고 싶어한다. 독립운동이라든지 일제의 압박이라든지 하는, 마치 피끓고 서러운 무엇을 되새겨야 할 의무감을 지니기라도 한 것처럼.

물론 그 시대의 아픔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그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우리가 있으니까. 하지만 그 당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다 독립운동을 하고, 개벽을 위해 온몸을 불사르진 않았을 거다. 그때도 순박하게 일상을 살아가던 사람들이 있었을 거다. <모던걸의 귀향>은 바로 그때 그 사람들을 담아내고 있다. 난 이 점이 매우 좋았다.

그렇지만 <모던걸의 귀향>은 하나의 소설로 따지면 완성도가 높고 색다른 시각이라 칭할만 하다 할지라도 로맨스 소설로는 여러 부분에서 아쉬움이 생긴다.

이 작품은 독자들이 원하는 로맨스적인 느낌은 충분히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시대상 자체가 지닌 무게 때문인지 아니면 캐릭터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주인공들 간의 이야기가 조금 더 추가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당한 선에서 그치고 만다.

작품의 주요 골자는 '모던걸'이라는 여주인공을 바라보는 백학골 사람들의 시선이다. 더구나 여주인공과 상반되는 인물을 만들어 이를 극명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수천 수백 개의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보다 반대 성향의 캐릭터와의 대화로써 독자들에게 더 깊이 각인시킨다. 그 당시 사람들이 '모던걸' 근영을 어떻게 생각할지에 대해서.

이렇게 여주인공 근영에 대한 주변 사람들의 새로움, 놀람, 두려움, 거부감 등을 이야기하는데 주력하느라 남주인공인 규용과는 많은 장면을 할애하지 못하게 되었다.

사실 클리셰가 완전히 없진 않다. 양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주 재료의 맛을 살리는 앙념 역할 말이다. 근영과 규용의 줄다리기는 적당히 고소하고, 적당히 새콤하다. 이 적당히가 문제라면 문제겠다.

이선미 작가의 작품에서 한번 정도 끝간데 없이 무너지는 캐릭터를 보고 싶은 열망을 개인적으로 지니고 있다. 그게 주인공이든 조연이든 상관없다. 작품에 등장하는 누구든 상관없다. 처절할 정도로 무너져버리기만 하면 되니까. 책을 덮고나서 진짜 미웠어 라고 꼽을 수 있는 사람 한 명이면 되니까.

작가들에게는 나름의 약점이 있다. 절대로 넘지 않는 선이 있다. 이선미 작가에게는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운 악인이 없다는 거라고 본다. 작가는 매번 변화를 추구하지만, 그 변화들 속에서도 악인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왜 그럴까?

생각하건데, 그건 작가의 성향에서 기인한 것이 아닐까 싶다. <모던걸의 귀향>에서 근영의 어머니 달래를 범한 이를 끝까지 알려주지 않고 막연하게 끝을 냈다. 대상이 없으면 미워할 수가 없다. 실체가 없으면 감정을 이끌어내기 곤란하다. 물론 후기에 써있듯 한 여성의 불행을 섣불리 담아낼 수가 없었다 말하고 있지만, 난 그 불행으로 인해 근영이란 존재가 태어났다는 점에서 단순히 불행이라고만 생각하지 않기에 매우 아쉬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모든 결과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과정이 아무리 참혹해도 어떤 시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바라보느냐에 따라 느낌은 제각각 다를 것이다. 이선미 작가는 불행을 불행으로만 받아들이지 않게 만드는 재능이 있다. 만일 다른 작가가 <모던걸의 귀향>을 썼다면 아마도 엄청나게 아프고 힘든 글이 되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 소설은 이선미란 작가의 손에 의해 탄생했기에 힘든 설정을 그리 힘들지 않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게 그녀의 재능이다. 그리고 그녀가 이를 충분히 활용했으면 한다.

<모던걸의 귀향>은 재미있다. 마치 근대적인 신문학을 접하는 듯한 문체, 개성적인 캐릭터, 소설의 흐름에 정확히 맞아떨어지는 에피소드 등이 소설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한다. 배경이 일제강정기임에도 시대적 암울함보다는 그 시대를 살았음직한 사람들의 냄새만을 맡을 수 있다.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채 하고자 하는 이야기에만 포커스를 맞췄으니, 솔직히 작품을 읽고 나선 어떻게 리뷰를 할 것인가 감이 안잡혔다.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걸 표현할 방법이 없더라. 그만큼 구멍을 찾을 수 없는 작품을 선사한 작가에게 아낌없는 갈채를 보낸다.

자, 다음엔 어떤 이야기를 보여주실 건지?

댓글 '1'

2월화

2004.05.22 22:17:29

항상 변신하는 작가.. 라고 말은 들어왔음. 내가 읽어본 선미언니의 글은 아라사의 서우여, 경성애사, 광란의 귀공자... 인데

음... 광란 읽을때.. 확실히 글을 잘쓰는 작가다, 글을 많이 읽은 사람은 글읽는 재미를 느끼며 읽겠구나. (어떤 글의 쾌감같은)
벗뜨, 글을 적게 읽어본.. 그러니깐 소설에서 글읽기의 재미에 치중하지 않는 독자들은 -더구나 로맨스 장르의 기대치를 갖고있는- 재미가 덜하겠다 싶었어요.

역사쪽 전공인 친구가 있는데, 역사전공의 독자들도 역사 소설을 읽을땐.. '역사'가 아니라 '소설'을 기대하면서 읽는다고 하더군요.
확실히 글도 쓰고 책도 꽤 읽은 편이어서 문학적 재미(?)도 나름 맛보고 싶을때가 있지만, 분명히 제 개인 취향은 잘 쓴 글보다 엉망이어도 재미있는 글이 좋더군요.
그래서... 아라사와 경성에서 느꼈던 '조금만 더' 쳐 올려 준다면 좋았겠더란 부분이 (매력을 느낀) 광란에서 다른 장점으로 바뀐걸 보고.. 작가로서는 대단하다, 나중에 큰 그릇을 써낼수 있을 것 같다 싶었지만, 독자로서는 아쉬웠다는.
모던걸 리뷰들을 읽으면 아마 제가 읽는다면 이번에도 잘쓴 글이라는 감탄과 더불어 독자로서의 아쉬움을 느낄것 같네요.
그래도 광란보다 알콩달콩한 부분이 재밌을것 같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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