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저자/쥬디스 던컨
출판사/신영미디어

사춘기 시절의 열정으로 원하지 않은 임신을 하게 된 칼리는 학창시절 내내 그녀를 줄곧 사랑해왔던 데렉에게 의지하게 된다. 용서와 사랑의 진정한 의미를 알고 있는 데렉은 부서진 인형처럼 절망하고 있는 칼리의 깨어진 꿈을 그러모아, 그녀와 결혼하고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의 책임을 떠맡아 주는데...





원제는 'Better Than Before' 1992년 작이며 2002년 9월에 우리 나라에 번역되었다.

당시 쥬디스 던컨은 생소한 작가였다. 생소한 작가치고는 그 문장의 유려함에 감탄해마지 않았던 기억이 있다. 번역자의 강력 추천으로 읽기 시작했는데, 약간의 우려를 뛰어넘어 꽤나 마음에 들었었다. 그리고 리뷰를 위해 다시 한번 읽으니 그땐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보게 되었다.

보통의 로맨스 소설과 달리 <사랑>은 결혼에 이르는 사랑을 이야기하는 게 아니고 이미 정략적으로 결혼한 사람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이야기하는 것도 아니다. 어쩌면 미국에서는 흔했을지도 모를 상황을 두고, 무엇이 진정한 사랑인지 풀어나가는 굉장히 섬세한 소설이다. 그러나 이 섬세함이 지나쳐 지루하다란 평가를 받기도 한다.

초반 도입부분이 특히 그렇다.

소설의 본격적인 갈등은 아주 예전부터 내재되어 온 셈이니 과거사를 열거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이 과거사 열거가 자칫 지루함을 줄 수도 있는 패턴이다.

초반을 잘 넘기면, 독자들 머리 속엔 데렉과 칼리의 미묘한 감정 상태, 케빈이란 등장인물이 가지고 올지도 모를 파장, 데렉과 칼리에게 큰 딸 스테이시가 얼마나 큰 부분인가 하는 것들을 인지하고 본격적인 내용에 접어들게 된다. 때문에 앞부분은 소설을 이해하는데 있어 굉장히 중요하다. 만일 혹자가 뒷부분부터 읽는다면 앞의 전제들을 놓쳐 <사랑>의 내용이 그저 결혼하지 오래된 사람들의 그런저런 이야기라고만 평가하게 될지도 모를 일일 정도로 말이다.

문제는 과거사 설명이 너무 앞부분에 치우쳐 있다는 거겠다. 그것도 얼마 되지 않는 시간 동안 말이다.

그들의 20년 과거사는 칼리가 시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동안, 그리고 케빈의 동창회 참석 편지를 읽고 충격에 사로잡혀 혼돈 속에 빠져있는 과정 속에 줄줄이 나열되어 있다. 그래서 이 부분이 지루해 대충 넘긴 독자들에게는 결국 본 내용에서 주인공들의 심리적 상황이 그리 크게 와닿지 않게 되는 것이다.

솔직히 소설의 설정 자체가 드라마틱을 기대하는 독자들에게는 별반 매력을 주지 못한다. 열정적인 사랑을 하는 것도 아닌, 벌써 십 몇 년 동안 결혼생활을 한 부부의 사랑이라니... 극도로 환상적인 장르의 경향으로 볼 때 독자들의 상상력을 제한하는 설정이다 하지 않을 수 없다.

이렇게 설정 자체가 제한적인데다가 도입 부분의 구구절절한 과거사 나열, 작가 특유의 섬세한 묘사 등은 일면 지루함을 느끼게 한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재미있다.

아직까지 흔하지 않는 설정, 심리적 개연성, 지극히 현실적이면서도 작가 나름의 풍부한 환상이 소설 전체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또 그 문장 표현력은 얼마나 단촐하면서도 섬세한지 반하고 말았다.

수많은 외국 작가들을 가지고 굳이 틀을 만들어보자면 쥬디스 던컨은 라빌 스펜서와 쥬디스 크란츠의 중간쯤될지도 모르겠다. 현실에 있을 법한 이들을 주인공으로 하여 이들을 매력적으로 살리는 것은 라빌 스펜서의 재능이고, 어디까지나 장르적 성향에 충실해 환상적인 사건을 접목시키면서도 독특한 매력을 갖고 있는 것은 쥬디스 크란츠라 생각하는데 쥬디스 던컨은 그네들의 단점을 보완하고 장점에 충실한 작가 중 한 명이라 보기 때문이다.

아직 이 소설을 읽어보지 않은 분들이라면 한번 정도는 읽어보는 것도 좋을 듯 싶다. 강한 인상을 주지는 않지만, 현실적이면서도 거미줄 같이 세밀한 심리 묘사에 푹 빠져들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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