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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62
저자/수지똥누나
출판사/청솔B&C

(본래 뒷카피는 저것이 아니지만 심각할 정도로 마음에 안들어 대충 한번 만들어보았다. 출판사들이여. 부탁하건데, 부디 뒷카피 정도는 어떤 내용인지 짐작 좀 가게 써달란 말이다.)
수지똥누나는 닉네임이다. 이 작가의 전작은 일명 DDR 시리즈라 불리고 있었다. 본명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처음엔 이채은, 그 다음엔 김랑으로 벌써 4여권에 달하는 출판을 한 경험이 있다.
한창 할리퀸이 잘 팔리던 때 즈음이었을 것이다. DDR 시리즈에 대한 공방이 치열했던 것으로 안다. 결론이 어떻게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작가는 더이상 출판을 하지 않았고 어느새 잊혀져간 사람들 중 한 명이 되어가고 있었다. 그러다 김랑이란 이름으로 DDR 시리즈 중 하나를 추가 보완한 <지상에서 가장 황홀한 키스>를 재출간했다. 그 얼마 후 <월든가 형제들의 사랑>이라는 시리즈가 나왔다.
서두가 길어진 김에 조금 더 하자. 인구에 회자되던 DDR 시리즈를 구해 읽었었다. 글쎄, 나로써는 그렇게까지 터부시할 필요는 없지 않나 싶었다. 정형적인 할리퀸을 우리 나라 주인공으로 해서 쓴 것이지만, 그래도 정형의 알멩이는 잘 간직하고 있는 것 같았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정형이란 이름을 걸고 나왔다면 정형의 장점을 속속들이 배도록 만들던지 아니면 정형을 비틀기 위해 노력하던지 둘 중 한 가지를 가져야한다고 본다. DDR 시리즈는 그런 시각으로 볼때 '읽을만 한' 글이었다. 때문에 이번 작도 자못 기대가 컸었다. 그런데 첫권을 들고 읽어가는 동안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고 말았다.
여기서 첫권이란 말그대로 Ⅰ권이다. 동우에 대해서가 아닌 월든가 형제의 맏형인 진우의 이야기. 한 장 한 장 넘기는 동안 DDR 시리즈에서 보여주었던 철저한 상업주의적 색체는 어디로 가고 남은 것은 그 껍질뿐인 듯 싶었으니.
문장은 장문으로 바뀌었다. 구어체보다는 문어체적인 문장에 장문으로 바뀌기까지 했으니 산만했다. 문장에서 작가의 독특함을 눈씻고 찾으려 해도 찾을 수가 없었다. 문장을 잇는 조사가 대부분 '…고'이다. '…고'는 모음으로 끝난 체언에 붙는 조사로써 '두 가지 이상의 사실을 대등하게 벌여 놓는 뜻을 나타내는 대등적 서술격 조사'이다. 문장을 잇기 위해서라면 굳이 '…고' 만을 쓸 필요는 없다. '…면서', '…이나', '…지만' 등등 다양하다. 그럼에도 온통 '뭐뭐 했고'로 이어지는 문장을 보건데 처음엔 단문으로 썼다가 장문으로 고친 것은 아닐까 한다. 조금 무리수였다. 어쨌든 전체적으로 할리퀸적인 번역체와 비스무리했다. 아참, 게다가 삽심대 남자가 낯선 여자에게 "하오체"를 쓴다(예전엔 모르겠지만 요즘은 이렇게 쓰지 않는다고 알고 있다).
소재로는 DDR 시리즈보다는 정형을 탈피한 듯 여겨지지만, 내용 전개에 있어서는 만나자마자 감정 잡고, 키스하고, 옥신각신하다, 결혼한다는 극히 정형적 패턴을 따르고 있었다.
시점이 엄청나게 흔들린다. 남주 시점이 나왔다가 몇 문장 밑에서 여주 시점이 나오다 다시 남주 시점, 여주 시점 등등 번갈아가며 나오기도 한다. 중간 중간 조연들의 시점도 빠지지 않는다. 사실 시점의 흔들림은 많은 글에서 볼 수 있다. 굳이 로맨스가 아니라도 쉽게 찾을 수 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시점은 예를 들어 영화상으로 카메라 앵글에 해당해 관객의 시선이 따라가는, 즉 글에서는 독자의 눈이 따라가는 매개체가 되므로 되도록 일정한 패턴을 유지시켜 주는 게 바람직하다. 카메라 앵글이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고 상상해보자. 그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술취한 듯 어지러울 것이다.
잠시 삼천포인데 이걸 잘 이용한 게 <돌이킬 수 없는> 이라는 프랑스 영화다. 독특하면서도 기발한, 강간에 대한 혐오감을 극도로 불러일으키는 영화였다. 아쉽게도 <월든가 형제들의 사랑>은 독특하지도, 기발하지도, 사회상을 고발하는 글도 아니었다(2권에서는 학대를 당한 아동심리에 대한 깃털만큼 가벼운 고찰이 담겨있긴 했지만).
편집은 정말 한숨이 나올 정도이다. 청솔 B&C가 어떤 출판사인지는 모르겠다. 이채은 씨가 그동안 다음 카페에서 활동했던 것으로 따져보면 대략 N소설을 위주로 출판했던 회사인듯 하다. 편집 상태를 보아 짐작하건데 제대로 된 편집인을 두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여기서 또 잠시. 제대로 된 편집인이란 도대체 무엇인지 짚고 넘어가자.
편집인이란 대략 원고를 다듬고 고치는 작업을 하는 이들을 말한다. 예전에는 원고지에 쓰여진 초고를 빨간색으로 밑줄 그어가며 작가들에게 글쓰기 방법을 가르쳤다 한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워드문서로 작성한 글을 받아 그 상태로 수정할 부분을 짚어준다. 다른 색으로 밑줄을 긋거나 혹은 빨간색으로 구성이 어긋나는 부분에 대해 의견을 첨가해준다. 어떤 편집자는 전체적인 구성뿐만 아니고 나이나 날짜 등 작가가 미쳐 보지 못하고 지나간 세밀한 부분까지 수정을 가해주는 편이다. 습작을 많이 한 작가일수록 이런 과정이 짧지만, 처음 글을 써보는 작가는 아마도 긴시간 동안 수정의 과정을 거쳐야하는 게 정석이다. 편집자와 최종 수정을 한 후 다시 교정자의 손에 거쳐 문법이나 어휘가 맞지 않는 문장은 깔끔하게 고쳐지는 게 일반사다. 아니, 과거형이다. 일반사였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다. 왜냐하면 만일 그 출판사가 로맨스만 출판하는 출판사라면 못해도 한 달에 3권을 찍어야 회사가 돌아간다. 게다가 몇 년간 경험을 쌓은 편집자를 따로 두게 되면 월급이 만만치 않게 든다. 이런 저런 이유로 최근에 뛰어든 소규모 출판사들은 편집 과정을 기피하게 되고, 일정량 판매되는 장르라면 굳이 그런 과정을 거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독자들의 손에 한 권의 책이 쥐어졌을 때, 인터넷으로 올려졌던 대로인 경우가 다반사가 되었다. 물론 작가 나름의 수정을 가하긴 했겠지만, 자신의 글을 스스로가 평가한다는 건 생각 외로 어려운 일이다(정말 그렇다. 차라리 남의 작품 리뷰를 쓰는 것이 낫지, 자신의 글에 대해 리뷰를 쓰라면 절대 못 쓴다-_-;). 이런 작가들이 스스로 가한 수정만을 가지고 인쇄를 한 후 적당히 포장해 독자들 앞에 내놓았으니...한때 붐을 일으켰던 판타지가 최근처럼 전멸하다시피 되어버린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와서, 아무튼 <월든가 형제들의 사랑> 역시 제대로 된 편집자를 통해 제대로 된 수정 과정을 거치지 못한 채 나온 듯 하다. 그 점이 심히, 심히, 심히 씁쓸하다. 그리고 만일 그런 편집인이 없다면 최소한 쳅터를 구분하는 방법이라도 잘 아는 사람이 원고를 편집문서에 앉히는 작업을 했어야했건만, 그 조차도 없었다.
1권을 읽고 2권은 차마 읽지 못한 채 한동안 책꽂이에 그대로 꽂혀 있었다. 그러다 읽을 책이 바닥나고 말자 혹시나 싶어 <월든가 형제들의 사랑Ⅱ>를 집어들었다. 후르륵 넘어가는 책장을 보며 혹시나는 역시나란 만고의 진리를 다시 한번 체득했다. 예전 DDR 시리즈가 차라리 더 나았다. 그때는 철저하게 할리퀸적 재미라도 실어내고 있었으니 말이다.
덧) 이 글은 3권까지 나왔지만, 각권은 할리퀸 시리즈처럼 세 형제들 이야기를 따로 따로 싣고 있기에 굳이 연결해서 볼 필요는 없다. 한 권씩만 봐도 대충 모든 걸 파악 가능하다.
덧2) 얼마 전 주문했던 책이 드디어 오늘 도착했다. 할리퀸 한 권을 포함해 총 8권! 한 일주일은 행복할 거다T^T
jewel 행복하겠다. 다만 그 행복이 부디 읽고 난 후까지 계속되길 ... 2003-12-27 X
jewel 덧 2에 대한 이야기임! 2003-12-27 X
정크 일단 닉이 수지똥누나...라니, 왠지 좀...-_-; 저도 아직까지 편견 내지 선입견을 벗어날 수 없는 인간인가 봅니다. 2003-12-29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