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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을 써둔 것은 사실 오래 전이나 지금에서야 문득 생각나 올립니다. 뭐 특정한 작품에 대한 반론이나 이의제기는 아니며 그냥 다들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해서 올리는 것이란^^;;; 확실히 예전에 썼던 거라 문맥이 어색한게 많은데도 불구하고 수정하기 귀찮다는 단 한가지 이유로 걍 올립니다;;***
요즘 우리는 소설에서의 '소재'를 흔히 입에 담는다. 하지만 대부분은 소재가 무엇을 뜻하는지에 대해서는 인지하고 있으나 막상 정확한 설명을 요구하면 말문이 막힐 것이다. 또한 소재의 범위는 어디까지일까?
※ 소재(題材)[명사]
1. 어떤 것을 만드는 데 바탕이 되는 재료.
2. 예술 작품의 재료가 되는 모든 대상 - ¶도시 생활을 소재로 한 소설
작가가 하나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주제'가 필요하다. 이 주제를 뒤받침 해주는 것이 바로 '소재'이다. 주제가 커다란 틀이라면 소재는 이 틀을 떠받들고 있는 초석이면서 동시에 안을 가득 채우고 있는 내용물이다.
소재란 말 그대로 소설의 재료가 되는 모든 것이다. 소재는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돌멩이 하나가 될 수도 있고, 뜬구름 잡기식 허상도 소재가 될 수 있다. 작가는 소재에서 주제를 얻어 작품을 만들어낼 수도 있으며, 주제를 가지고 소재들을 이용해 소설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또한 한 작품에서 소재는 단 하나만으로 표현될 수도 있으며, 반면에 다양한 소재가 등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소재란 글을 구성하는 제일 작은 단위에서부터 가장 큰 단위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가 넓다.
소재에 대해 더 쉽게 예를 들어, 어떠한 한 가지 음식을 놓고 볼 때 그 음식을 이루고 있는 기본 양념, 재료 등이 소재로써 의미를 갖는다. 하나의 음식을 이루고 있는 재료- 파, 마늘, 양파, 감자 등등이 소재고, 이 소재를 잘 배합해서 만들어진 맛, 그것이 바로 주제이다.
이처럼 많은 소재들 중에 어떤 하나의 특정한 소재란 하나의 창작물을 구성하고 있는 일부분이다. 다시 음식으로 예를 들어 '감자탕'이란 음식에서 감자는 중요하면서도 결국 그 '감자탕'을 구성하는 일부분이란 소리다. 감자 외에도 더 많은 재료들이 이 음식이 맛을 내도록 만들고 있다. 때로 재료가- a.소재가 작품에 어울리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작가의 욕심으로 사용될 시엔 심각한 부작용을 초래하기도 한다(예로 미역국에 양파를 넣는다던가). 이는 소재를 단순히 자극에 치중해 차용하였으며 주제에 부합되는가 안되는 가에 대한 심도 깊은 고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반대로 b.주제를 표현하기 위해 사용한 소재가 보편타당성에만 치중한 셈이면 주제는 거창하나 그 표현 방법에 있어 부적절한 작품이 될 것이다.
보편타당성이란 일반적으로 누구나 긍정할 수 있음을 뜻한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이러한 보편타당성은 보수주의적 관념이 지배적인 로맨스 소설에 매우 뿌리깊게 박혀 있다. 로맨스 소설을 보수주의적이라 말하면 코웃음을 치는 이들도 있겠으나, 그동안 읽어왔던 로맨스 소설들의 결말은 '반드시 남녀의 결혼으로 이루어지는' 이라는 보수주의적 가족관을 표방하고 있으며, 또한 '사랑의 울타리' 안에서 인간적 갈등과 고민을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다양화되어가고 있는 현대에 있어 이처럼 보수주의적 성향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장르 문학은 없다. 그리고 한 명의 남자와 한 명의 여자가 구성체로서 가족을 이루고 아이들을 낳아 건강한 인격체로 키우는 결과를 제시하는 로맨스 소설은 사회적 규범에서 볼 때 가장 이상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때문에 로맨스 소설에서 보편타당성에 어긋나는 소재가 등장할 시엔 많은 독자들이 분노를 금치 못한다.
강간은 나쁘다. 이는 보편타당한 진리이다. 육체적으로 약한 자에 대한 학대는 금해야한다. 이 역시 보편타당한 진리이다. 하지만 로맨스 소설에 있어서 강간과 육체적 학대는 종종 쓰여오고 있는 소재들 중 하나이다. 도덕적으로 올바른 장르를 즐기던 독자들에게 이러한 소재를 사용하는 소설이 제시될 때, 그 파급효과는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 다음의 문장을 살펴보자.
"창작에서는 우선 소재(題材)가 있고 이것이 주제(主題)에 부합되게 플롯을 구성하여 작품이 완성된다."
앞서 말했듯 소재란 그 글의 초석이자 구성이다. 하나의 작품에서 단 한가지 소재만을 사용하는 예는 수필로 들 수 있으며, 소설은 대부분 수많은 소재를 가지고 최종적으로 주제를 제시하고 있다. 로맨스 소설에서의 주제는 사랑이다. 완벽한 해피엔딩. 대다수 그것이 주제이다. 이 '완벽한 해피엔딩'에 그 도달하기 위한 과정은 무수히 많다. 그 과정을 구성하는 것이 바로 소재이다.
그렇다면 로맨스 소설에서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이르기 위한 과정에 있어서 보편타당하지 못한 소재를 썼다면, 그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
단순히 자극을 위해 특정한 소재를 사용하였다면, 이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예시한 a에 입각한 작품들이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독자들의 시선을 끌기 위해 터무니없는 소재를 사용하였다면 일명 '돼지 목에 진주목걸이'보다 더 부조화를 이룰 것이다. 소재로 인해 그 글을 부각되었겠지만 결국 소재주의를 벗어나지 못한 작품이 될 것이고 작품의 완성도에 있어서는 언급할 하등의 가치도 없다 치부된다. 자극을 위한 자극은 소설의 목적을 벗어나도 크게 벗어난다 보기 때문이다.
반대로 b처럼 독자들의 시선을 의식해 설정해둔 캐릭터와 플롯에 비해 너무나 평이한 소재를 사용할 시엔 마찬가지로 작품에서의 완성도가 떨어진다. 자신이 창조한 창작물이 비난받는 것을 즐기는 작가는 없으리라. 대부분-특히 온라인에서의 작가들은 실시간으로 반응을 체크할 수 있는 편이라 이러한 비난에 더욱 민감하다. 설정과 플롯이 보통의 소재로는 표현의 한계에 부딪친다고 해도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비난받을 만한 소재를 피하려 노력하기만 한다면, 비난은 면하지만 작품 자체의 완성도는 상쇄된 셈이다.
단순히 자극을 위한 것이 아니면서도 보편타당성에 어긋나지 않을 만큼 소재를 잘 활용하는 작가는 아직까지 드물다. 특수성과 타당성 사이에 아슬아슬하게 외줄타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하지만 지금도 많은 작가들이 끊임없이 장르의 한계성을 타파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자극을 위한 자극이 아닌 적절한 소재 활용이 보이는 작품을 접할 때면 장르의 발전을 목격하는 것 같아 개인적으로 매우 흡족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