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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소설] 연애
번호 : 56 / 작성일 : 2003-12-02 [02:16]
작성자 : Junk
하도 말이 많아서 서점에서 대충 훑어보고 편집의 극악스러움이 도저히 정식 출판물이 아닌데다, 별로 흥미가 가지 않는 내용이라 그냥 덮었다.
이번에 서점에 신간을 사러갔다 허탕치고 대여점에 갔더니, 이미 부지런녀들이 다 빼갔더라. 이미 나온 지 꽤 된 덕분에 얌전히 책꽂이에 꽂혀 있는 이 책을 한번 '제대로' 보기로 하고 빌려 왔다.
초반부는 그럭저럭 잘 읽혔다. 물론 세간에서 말하는 그 엄청난 편집에도 불구하고 글을 그리 못 쓰는 작가도 아니요, 나름대로 매력이 있었기에 그럭저럭 넘어갔다. 문제는 중반부부터다. 별로 진행되지 않고 도돌이표 맴돌듯 반복되는 내용에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삐리리가 야하다, 노골적이다, 말들이 많은데 그런 건 잘 모르겠다. 다만 사건은 거의 없이 수시로 삐리리만 하는 거, 그것만은 사실인 것 같다. 아무리 삐리리가 좋다지만 같은 패턴이 계속 반복되면 사람을 질리게 만든다. '연애'가 그랬다.
게다가 나로서는 이 소설이 전혀 신선하지 않았던 것이, 이 소설의 내용이라던가 인물 구도는 일본의 Ladies Novel이라는 장르에서 볼 수 있는 전형적인 그것이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서도 가장 낡은 패턴. 미안한 말이지만 솔직한 느낌이다.
Ladies Novel이라는 장르는 일본판 국내 로맨스라고 할 수 있다. 일본에는 할리퀸/실루엣/미라 시리즈 등이 출판되기는 하지만, 일본 작가들이 '로맨스'라는 이름을 걸고 출판하지는 않는다. 대신 그들에게는 레이디스 노블이 있다.
레이디스 노블은 국내 로맨스와 흡사하면서도 다르다. 섹스에 대해 대단히 개방적인 일본이기 때문에 여성들의 연애, 결혼, 섹스 라이프, 그 외의 자아성취에 관한 고민을 담백하고 깔끔하게 한 권의 문고본에 풀어내는 소설이다. 성에 대한 표현도 대단히 거침없으며, 삐리리 묘사도 아주아주 현실적이고 대담하다. 연애는 레이디스 노블을 많이 닮았지만, 사실 레이디스 노블만큼 거침없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내가 별 자극을 받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덧붙이면 레이디스 노블은 짧은 분량이더라도 여성의 고민을 나름대로 심도 깊게 다룬다. 연애는 어차피 로맨스가 아닌 '연애'소설이라고 작가 분께서 말씀하셨기 때문에, 나는 비슷한 느낌을 가진 이 소설에서도 삐리리 외에 여성의 자아에 대한 고민도 찾을 수 있기를 바랐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런 건 없었다. 고민하는 척 하면서 모든 갈등을 삐리리로 푸는 얄팍함만이 존재할 뿐.
바로 그 점이 웬만하면 한 큐에 대개의 소설을 다 읽어내는 나를, 소설 200페이지를 채 넘기기 전에 탈진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꾸역꾸역 참아내며 읽어갔지만, 안타깝게도 기대는 보상받지 못하고 The End.
분명히 말해두지만 독자들이 못 썼다, 문장이 안 된다고 비난할 만큼 빈약한 글은 아니다. 문장은 오히려 솔직하고 강렬해서 독자를 끌어들이는 흡입력을 갖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안에 담겨 있는 고민이었다. 작가의 고민이, 전혀랄 만치 느껴지지 않았다. 하다 못해 독자들에게 혹평을 받고 있는 '별의 운명'조차도 어느 정도는 내게 작가가 뭘 말하고 싶은지에 대한 고민을 느끼게 해 주었건만.
소설에 무슨 놈의 고민이냐, 의도가 꼭 느껴져야만 소설이냐고 말한다면 할 말이 없지만. 차라리 이 글이 확실한 오락소설이었다면 나는 이런 말을 하지 않았을 거다. 연애는 유감스럽게도 '고민'을 혀끝으로 건드려만 놓은 느낌의 작품이었다.
'코코' 내가 이 책을 읽고도 리뷰를 올리지 못한 이유. 뒷부분 몇 장 남았거든. 도저히 안읽히드만. 진짜 못쓴 글은 아니거든. 그런데 구성은 영 아냐. 로맨스 틀을 깼다는데, 주인공이 4명인 것과 우유부단한 여주, 통통한 남주가 나오면 틀을 깬 것일까? 이해 불가능-_-;; 아, 그리고 혀보다는 뭉툭한 '엄지 손가락'으로 슬쩍만 건드려놓은 것 같음. 헐~ 2003-12-02 X
Junk 이게 왜 주인공이 넷이죠? 전 둘이라고 생각했는데ㅡ; 2003-12-03 X
'코코' 조연에게도 공감하지 않으면 안될 것 같은 타당성을 부여해주니까. 결국 악인은 없드만. 네 명의 시점이 되돌이표로 보여지는 장면이 압권이었음. 그래서 내겐 주인공이 4명인 게야-_- 2003-12-03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