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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조안 로스
출판사/신영미디어

조용하고 평화로운 애리조나 산간 지방에 위치한 위스키 리버. 하지만 이곳에도 금지된 욕망과 어두운 비밀이 가득하다. 상원의원의 부인 로라가 살해당하자 세상의 모든 시선이 위스키 리버로 모인다. 보안관인 트레이스는 로라의 동생인 마리아와 함께 범인을 찾아나서지만, 사건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져들고...
1996년에 쓰여졌으며, 번역 출간은 2003년 9월. 원제는 'Confessions'
표지가 인상적이다. 그러고 보면 요즘 신영의 표지는 나름대로 독특하면서도 꽤 심여를 기울인듯한 느낌이 든다. 문고판 할리퀸의 정형화된 디자인에 비해 장편은 신경을 많이쓴 티가 역력하다.
조안로스는 예전 <다시 찾은 유언장>으로 접한 바가 있다. 이것도 미라문고 중 하나인데, 그때는 그렇게 재미있다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그런, 약간은 지루한 내용이었었다. 그래서 할리퀸으로 나온 그녀의 소설에 그다지 관심을 두지 않은 게 사실이다. 또 <고백>이 나왔을 때도 특별히 읽고 싶다는 생각은 안들었다.
이렇게 예전엔 어땠다라고 말하면 이제 슬슬 눈치를 챘겠지만, 그렇다. <고백>, 이 글은 꽤나 재미있게 읽혔다.
물론 산만한 시점, 이런 스타일의 이야기면 의례 등장하는 정형적인 캐릭터들이 문제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내 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읽어갔다.
범인을 잡는 형식도 로맨스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단순히 추리를 통한 접근보다는 과학적 기초에 근거한 수사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남주가 강력계에서 뼈가 굵은 형사 출신이니 당연한 일이겠다. 과학 수사대도 나오고 하는 걸로 봐서 그동안의 살인 동기만을 따지던 스릴러 로맨스와는 확실히 다르다.
여주는 반항적인 10대를 보낸, 지금은 허리우드에서 성공한 부잣집 딸. 겉치례를 중시하고 권위적인 아버지에 대해 치를 떠니 지나치게 남성적인 남주와 만나자마자 불꽃이 튀고 만다. 피와 범죄에 넌더리 난 트레이스 역시 화려하고 저돌적인 마리아를 첫눈에 보자마자 껄끄럽게 여기는 것 역시 당연한 일이고.
조안 로스는 실제로 범죄 파일을 다룬 적이 있는 것 같다. 시체 안치소에 대한 묘사라던가, 트레이스가 형사나 수사 진행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면 작가가 아무것도 모르면서 TV나 소설에서 읽은 경험으로만 쓴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더 사실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가끔, 아주 가끔 국내작들을 읽다보면 '자료 조사에 지나치게 충실한' 소설을 접할 때가 있다. 어차피 나 역시 한정적인 경험만을 하고 있으니 어떤 한 분야에 대해 집중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글을 보고 있자면 그 자료 조사에 심여를 기울인 작가에게 박수를 보낼 때가 있다. 하지만 로맨스에서 중요한 것은 주인공들의 특별한 직업이라던가 특정한 분야에 대한 주석과도 같은 설명이 아니다. 그것들은 오로지 소재나 주인공 혹은 주인공들이 만날 수밖에 없는 필연을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러한 특정한 분야에서 특별한 직업을 가지고 특이한 만남을 가졌다고 해도 로맨스에서의 주는 주인공들의 변화이다. 만나서 오해하고 갈등하다 헤어졌지만 결국 오해를 풀고 해피해지는 것 같은 것들 말이다.
수천 수만 가지 자료조사를 했더라도,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공부를 했더라도 그건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 딱 한줄로만 표현될 수도 있는 거다. 매우 아까운 일이나 작가가 조사한 자료가 로맨스의 흐름을 방해한다면 그건 조사를 아니 하니만 못하다는 거다.
얼마 전에 나왔던 어떤 책에서도 작가가 엄청나게 자료 조사를 했음을 봤다. 하지만 그 소설은 로맨스였고 남자, 여자의 감정적 흐름이 거대한 사건에 묻혀 어설프게 흘러가 결국 재미가 없었다.
어떠한 글들에서는 작가가 독자들에게 무엇인가를 가르치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그건 작가의 욕심에서 비롯된 결과물이고, 정작 내가 원하는 로맨스적인 요소를 부차적으로 치부하고 말야 읽는 동안 꽤나 부담스럽다는 느낌을 지우기가 힘들었다.
<고백>을 읽으면서 이것도 자칫 사건에 남녀 간의 감정적 변화가 묻혀질지도 모르겠다 싶었지만, 의외로 조안 로스는 적절한 곳에 감정적 묘사를 안배해두었고 또한 섣불리 독자들을 가르치려하지 않는 듯 해 큰 부담 없이 술술 읽어내려갈 수 있었다. 지극히 현실적인 캐릭터에, 흥미를 돋는 사건 진행, 나름대로 심어둔 반전 등이 461페이지에 달하는 내용을 빠른 속도로 읽어가게 만들었다. 때문에 최근 읽은 번역서 중에 제일 나았다.
아, 한 가지 제일 아쉬운 점은 뒷부분에 가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는 과정이 몇 장 안된다는 점이다. 이건 요즘 대부분의 번역 로맨스가 그러하니 더이상 기대할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지만.
Miney 재미있을 것 같아요. 외국 로맨스 소설, 읽어본지가 오래되었는데. 오래간만에 읽어볼 마음이 생깁니다. 2003-11-25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