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지은이/유하인
출판사/신영미디어

5년간의 기다림. 그러나……

첫눈에 반해서 결혼한 은진.
그러나 다른 여자를 가슴에 묻은 남편은 아무리 기다려도 그녀를 돌아봐 주지 않는다.
마침내 은진은 그와 만난 지 2,000일이 되는 날 예준을 놓아주기로 결심하는데…


이 글은 신영미디어 홈페이지에서 꾸준히 연재되었던 것으로 네티즌들의 투표 방식을 통해 당선작에 들어갔다고 들었다. 그만큼 연재시 큰 인기를 얻었다고 알고 있다. 그런데도 막상 책으로 나왔을 때 썩히 좋은 평을 듣지 못하고 있다. 왜일까?

난 이 글을 온라인으로 읽어본 적이 없다. 한데 책을 접하자마자 어디선가 읽어봤다고 느껴졌다. 그건 아마도 소재 때문일듯 하다. '정략결혼으로 남편만을 오로지 해바라기하는 아내'같은 소재는 흔하디 흔하니까 말이다. 최근에도 두어 작품을 온라인을 통해서 읽은 적이 있다. 그 전엔 수도 없이 많았었고.

흔한 소재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건, 그만큼 독창적이어야한다는 부담감을 안고 시작하는 것과 같다. 소재에서는 이미 진부해져 있으니 소위 글발로나마 커버를 해야할 터이다.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단 한 번만이라도>는 이 부분에서 실패했다.

소설은 문장과 대사로써 주인공들의 심리상태를 표현하는 창작물이다. 그런데 이 소설은 각 쳅터마다 본문과 어울리지 않는 일기가 튀어나와 날 무척 당혹스럽게 했다.

글 속에서 은진이라는 주인공은 차분하고 여성적인 인물이다. 일명 현모양처형. 하지만 일기를 빌어 표현되는 주인공은 마치 십대소녀를 방불케해 일치되지 않는 캐릭터처럼 느껴지게 만들었다. 현실적으로 일기란 그 사람의 가장 적나라한 부분을 나타낸다고 보기 때문에, 5년간의 답답한 결혼 생활 동안 은진이 변한 만큼 일기 역시 변했어야하지 않을까싶다. 한 남자를 맹목적으로 사랑할수밖에 없었던 꽃다운 20살의 처녀가 아니라, 자신을 냉대하는 남편에 순종하면서도 나름대로 자아실현을 하고 있던 25살의 유부녀로 말이다. 본문에서 성장한듯 그려져 있었음에도 일기에서의 유치함이 결국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마저 유치하게 만들어버렸다.

일기의 형식을 빌어 주인공의 심리상태를 이야기하고 싶었던 점은 알겠지만, 그 형식이 자칫 본문의 이미지를 흐리게 만들 경우 그건 실패의 한 요인으로 지적될 수 있다.

프롤로그에 정략 결혼이 싫어 가출한 동생에 대해 의견 대립을 하고 있던 남편과 시아버지의 대화를 엿듣게 된 은진. 5년간 그녀를 건드리지 않은 이유를 깨닫고 그때부터 남편을 떠날 준비를 한다. 그래서 각 쳅터는 천 몇 백 몇 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이 제법 독창적이면서도 실패의 한 원인으로 보인다.

앞서 말했듯 정략결혼, 마음을 열지 않는 남편, 그를 사랑하다 절망하는 아내...그런 이야기들은 너무 흔타. 소재자체에서 이미 진부함을 깔고 시작한다면 장면이나 심리적 전환 과정에서 독창성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되도록 짧고 드라마틱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는 것이 낫다. 그래야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다. 즉, 누구나 다 알고 누구나 다 읽어왔던 이야기를 가지고 기가막힌 반전이나 드라마틱한 구성을 만들지 못할 바에는 애시당초 욕심을 버린 채 정형만을 살리며 재빠르게 끝냈어야 했다는 소리다. 쳅터마다 남은 날을 일일이 다 세고 있지 말고.

이 글이 가장 큰 실패의 원인으로는 섬세하지 못한 심리묘사를 언급해야한다. 아내는 이미 그를 사랑하고 있으니 한쪽으로 밀춰두고,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와 육체적 관계를 맺기까지 했던 남편의 심리. 아마도 독자들은 이 부분에 가장 큰 흥미를 가지고 책을 집어들었을 거다. 첫사랑을 잔인하게 내친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아내에게 쏟아붓고 있던 남편. 그 남자가 아내를 색다르게 바라보면서 서서히 자신만의 감정을 깨달아가는 과정을 보고 싶어서 책을 선택한다. 그런데.

<단 한 번만이라도>에서의 남편은 뜬금없이 아내를 의식한다. 뭐 그래, 그럴수도 있다. 살다보면 어느 순간 익숙하게 생각했던 사람의 뜻밖의 모습을 볼 때도 있으니까. 그럼 말이다, 사람은 고민하게 되지 않나? 내가 왜 저 사람한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되는 걸까? 머리 속이 복잡해지면서 마구마구 고민을 하지 않나? 근데 왜 이 글에서의 남편은 고민은 하돼 그 고민이 고민 같지 않게 보인 걸까?

아마도 그건 심리적 변화가 매끄럽지 않아서일 것이다. 작가는 나름대로 남편의 심리와 행동에서의 변화를 그려주고 있지만 그게 각 쳅터마다 저 혼자 외따로 도는 느낌이 들었다.

말하자면 심리적 변화가 A-B-C-D-E 등의 순으로 나열되어야한다고 보자. 그런데 <단 한 번만이라도>에서는 A가 시작되어 다음 B로 연결되는 게 아니라 D가 튀어나왔다가 뒤늦게 B로 갔다가 다시 A가 되더니 어느 순간 E가 되어 있는 둥 이랬다 저랬다 왔다갔다 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C가 빠져있기도 하고.

사실 인간의 심리적 변화란 유전적 요인과 환경, 개인적 경험들로 인해 천태만상이므로 이렇게 일반론화하기는 힘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글에서 굳이 이런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심리변화를 탓하지 않을 수 없었던 건, 은진을 처음 만났을 때 아직 감정을 만들지도 않았던 남자가 5년 뒤 아내를 여자로 인식하자마자 '아, 맞아. 난 그때부터 그녀를 사랑하고 있던 거야'라고 중얼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부분에서 확 깼다.

로맨스 소설의 정형 중 하나는 아무리 나쁜 남자라도 독자들이 납득할수밖에 없는 공감을 제시해주는 거라고 본다. 여주를 두고도 딴 여자와 바람을 피는 남자라도 그럴수밖에 없다는 이유를 달아주지 않는다면 이 남자는 천하의 못된 놈으로 치부되고 만다. 하지만 '본래 얘가 얘를 좋아했는데 이래서 어쩔 수 없었던 거야'라고 묘사를 해주면 독자들은 '그럼, 그렇지' 하고 좋게 넘어가고 만다. 그만큼 남주에 대한 독자들의 시선도 정형에 길들어있다. 아마 그래서일 것이다. <단 한 번만이라도>의 남주도 뜬금없이 아내에게 목매달고 본래 좋아했던 거야라고 독백하고만 건.

이처럼 정형적인 소재에, 정형적인 심리에, 정형적인 개연성까지 버무려 놓았으니 이 글은 참말로 정형적으로 느껴지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게다가 정형이 스피디하게 넘어가지 않고 질질 늘어지고 있어 읽는 동안 가슴만 답답하게 만들고 말았다.

마지막으로 언급하고 싶은 것은 흔하디 흔한 소재만큼이나 흔한 장면 설정. 어디선가 한번쯤은 봤을 법한, 어디선가 여러번 읽었을 법한 장면들로 책은 가득차 있다.

주인공의 심리와 주요 갈등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장면의 설정이 매우 중요하다. 그 장면이 '왜' 여기 나와야하며, 그 장면으로 인해 '어떤 갈등이 야기되는가' 이 점은 작가들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필요가 있다.

그냥 생각나는데로 글 가는데로 무조건 이야기를 만들어가는 게 아니라, 글의 진행에서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장면을 설정하고 그 안에서 주인공의 심리를 조금씩 변화시켜야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단 한 번만이라도>는 이 점에 있어서 전혀 고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예를 들어 남편을 떠나기로 결심한 아내는 여행을 제의한다. 이런 갑작스런 여행은 국내 로맨스 작품에서 흔하게 볼 수 있다. 이 여행이라는 것도 흔하디 흔한 제주도였다. 몇 달 전에 읽었던 같은 소재의 글에서도 갑자기 제주도로 여행을 갔다. 온라인작은 너무 많으니 열거를 피하고 출판작에 한해 살펴만 봐도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는 주인공들은 참 많다. <단 한 번만이라도> 역시 그 패턴을 따라 '제주도'로 '여행'을 간다.

솔직히 제주도라는 게 뜬금없었지만 더 뜬금없게 보인 건 왜 그때 하필 '여행'을 가야했던 것일까 이다. 한창 갈등이 고조되고 있는 판국인데 둘은 여행을 떠나, 여기서 또 흔하게 오해를 하고 만다. 이건 굉장히 주관적인 관점일지도 모르겠지만, 이 책의 주인공들은 그때 여행을 떠나기 보다는 평범한 일상 속에서 조금 더 세밀한 심리적 갈등을 지속했어야했다. 뜬금없이 제주도로 여행을 떠나 또 뜬금없이 남편의 첫사랑을 만나 오해를 하지 말고 말이다.

아아, 이 부분도 진짜 할 말이 없더라. 왜 하필 그 첫사랑도 제주도로 와있는 걸까? 그래서 왜 하필 그 호텔 앞에서 은진과 마주쳐야하는 걸까? 우리 나라가 그리 크지 않게 느껴지더라도 실제로 돌아다녀보면 엄청나게 넓은 나라라는 걸 다들 모르는 걸까? 아주 친한 친구라도 그 장소에서 그렇게나 우연히 마주치기란 몹시 힘든 일이란 말이다. 그것도 은진이 남편을 떠나기로 확실히 마음을 굳히게 할 정도로 중요한 장면을 그런 우연의 난발로 대충 때우고 말다니.

사실 이 글 전체의 갈등 요소인 남편의 냉대도 어찌보면 결혼식날 우연히 첫사랑 이야기를 해준 친구 때문이기도 하지만...많은 우연이 겹치면 결국 필연이라는 소리인가? 그렇게 생각해야만 하는 것인가?


Miney 역시 글 쓰기란 어렵습니다. 정말 감정이입을 될 만큼의, 그러면서도 딱 필요한 길이의 심리 묘사란, 참 어려워요. 절감 중.  2003-11-12 X

위댓글쓴독자 참 예리하시고 정확한 리뷰....잘봤습니다. 2003-11-12 X

Lian 예리하고 재밌는 리뷰, 잘 읽었습니다.  2003-11-12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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