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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로맨스 소설과 감성 소설
번호 : 37 / 작성일 : 2003-10-12 [21:21]
작성자 : '코코'
왈가왈부 말들이 많다. 그 중에 감성소설과 로맨스 소설이 같냐 다르냐가 유독 내 시선을 끈다.
사실 로맨스 소설이란 장르가 우리 나라에 뿌리를 깊게 박기 시작한 것은 오래 되었으나 그동안 속칭 '빨간책'이란 딱지 때문에 속시원히 그 폭을 넓히지 못했던 아쉬움이 있다. 그 사이 감성소설이란 장르가 새롭게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반 문학에 몸담고 있던 작가들이 남녀 사랑이야기를 책으로 풀어놓기 시작하며 감성소설(연애소설)이라는 새롭지는 않으나 특이할만한 장르가 탄생된 것이다. 내가 최초로 읽은 감성소설은 양귀자 씨의 <천년의 사랑>이었다.
당시 중학교를 막 졸업했던 내게 오빠가 졸업선물로 준 소설로, 막 주가가 하락하고 있던 양귀자 씨가 이 소설로 인해 새롭게 주목받기 시작했다는 말을 나중에야 듣게 되었다.
<천년의 사랑>은 "지은이가 소설을 쓰기 시작한 지 17년만에 처음으로 내놓은 연애소설이다. 생후 2개월만에 버려진 고아 출신의 오인희와 청년 김진우의 사랑이 현실과 비현실, 차안과 피안을 넘나드는 시/공간적 확장을 통해 천년 전부터 예정되었던 영원한 사랑을 아프게 그리고 있다."고 소갯글을 첨부한다. 또한 이 소설은 언해피로 그 때문에 더욱 가슴을 아리게 했던 이야기로 기억한다.
<천년의 사랑>을 접할 즈음에 난 이미 할리퀸 로맨스의 전신인 하이틴 로맨스를 읽어오고 있었다. 작은 책 안에 담긴 외국인들의 뜨겁고 격렬한 사랑이 날 매혹시키기 충분했으며 이들의 사랑은 반드시 해피엔딩으로 끝나기 때문에 <천년의 사랑>과 이 하이틴 로맨스를 결부시킬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해피엔딩을 뺀다면, 두 장르 역시 남녀의 사랑을 전제라고 하고 있으며 주인공들의 사랑을 위협하는 수많은 난관에 봉착하지만 결국 그들은 서로의 사랑을 확인하는 과정을 반드시 거친다. 또한 요즘에 들어 많은 감성소설들이 점차 언해피보다는 해피로 끝내는 경향을 갖고 반대로 로맨스 소설이 언해피로 끝내는 경우도 있다. 때문에 결국 두 장르는 같은 거 아니냐란 말들이 오가게 된 것이다.
그러나 단언하건데, 내 생각에 두 장르를 분명 다르다. 구체적 예를 들어가며 몇 가지 다른 점을 이야기 해보도록 하겠다.
첫째, 로맨스 소설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바로 여주인공과 남주인공 즉 등장인물들의 사랑이 '맺어지는 과정'이다. 스릴러가 가미된 로맨스 소설 중 노라 로버츠의 <어둠의 약속>을 떠올려보자. 위험한 인물인 조나와 앨리는 피치못할 사정으로 인해 협심을 하게 되지만 결코 상대를 탐탁히 여기고 있지 않다. 그들은 분명 로맨스 소설의 주인공들임에도 서로의 감정을 확신하지 못하며 이야기가 진행되는 동안 그제야 사랑이란 감정을 인정, 발전시킨다.
감성 소설에서 중요시 여기는 것은 주인공들의 사랑은 영원 불멸한 것이므로 사랑이 맺어지는 과정보다는 그 사랑으로 인해 겪게 되는 '고뇌'이다. 하병무의 <남자의 향기>에서 주인공 혁수와 은혜는 사랑하는 사이며 이들의 사랑은 독자들에게 확실히 인식되어 있다. 그리고 이야기의 줄거리는 대부분 "한 여자만을 사랑해 자신의 온 생애를 건 한 남자의 파란만장한 인생"이다.
둘째, 로맨스 소설에서의 주체는 여자이다. 이 여자가 한 남자와 사랑을 하는 과정을 독자들은 따라가게 된다. 라빌 스펜서의 <용서>에서 새라를 만난 독자들은 그녀가 그(노아)와 투닥거릴 때 가슴 아파하고, 그와 사랑을 속삭일 때 설레여 한다.
감성 소설에서 주체는 남자이다. 이 남자가 한 여자에게 지고지순한 헌신을 바치면서 갖은 고초를 겪는 과정을 독자들은 따라가게 된다. 김한길의 <여자의 남자>에서 독자들은 그가 다른 누군가와 그녀가 행복해하는 모습을 지켜볼 때 가슴 아파하고, 불행해진 그녀가 찾아와 잠시나마 여울지는 장면을 연출할 때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셋째, 로맨스 소설에서 작가의 환상을 대변하는 건 남자다. 주디스 맥노트의 <파라다이스>에서처럼 잘 생긴 건 기본이며, 처음엔 능력이 없더라도 결국 일대 부를 이루고, 또한 카리스마가 넘치며(이때의 카리스마는 여성들을 녹이는 주 요인으로 쓰인다), 완벽한 이상형으로써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이는 아마도 로맨스 소설을 쓰는 대다수의 작가가 여성인 점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여성인 작가는 여성적 시각에서 남자를 바라보며 서술하고 이를 통해 이상적인 남주상이 나타나게 된다. 비록 이것이 환상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대다수 여성 독자들은 이 환상에 지극히 만족한다. 반면 남성들은 이러한 환상적 남주상에 열등감을 느끼는 건지 로맨스는 여성들의 야설이라는 말로 전략시키는 걸 좋아하게 된 듯 하다.
감성 소설에서 작가의 환상을 대변하는 건 여자다. 이하인의 <국화꽃향기>에서처럼 "5월의 어느 날 등교길 지하철 안에서 은은하고도 담백한 국화꽃 향기를 가진 여자"를 만나 사랑의 열병을 앓는다. 단아하면서도 청초한, 순결하면서도 매혹적인, 아련한 향수를 지닌 듯한 등등의 여자에 대한 묘사어구가 감성 소설에 자주 등장한다. 이 역시 감성소설을 주로 쓰는 작가들이 남성이기에 가능한 일이 아닐까 한다. 물론 여성이 작가인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때에도 등장하는 여자에 대한 묘사는 남주의 시점에서 매우 매혹적으로 설명을 해주고 있다. '그'가 '그녀'에게 빠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확실히 표명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두 장르는 각기 전혀 다른 시각으로부터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사랑이 "매듭지어 지는 과정"과 그 사랑으로 인해 겪게 되는 "인생역정", 이야기의 주체가 되는 "여자"와 "남자", 그리고 작가 및 독자들의 이상형이 투영된 지독할 정도로 매력적이나 상반되는 성(性) 등은 로맨스 소설과 감성 소설이 분명히 다름을 나타내주고 있다. 때문에 로맨스 소설과 감성 소설은 다른 장르이다. 그럼에도 위의 사항들을 접목시켜 내가 보기에 감성 소설임에도 누군가 내 소설은 로맨스야 라고 말한다면 딱히 뭐라고 할 말은 없다(물론 아직까지 그런 일이 없더라. 만일 그런 경우가 생기면 그런 자세만으로도 그 작가를 존경할 거다).
요즘 들어 가끔 두 장르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작품이 종종 등장하기도 한다. 언해피이고, 여성보다는 남성적 시각에서 서술된 묘사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로맨스 소설이라 타이틀을 걸고 나오는 책이 있는 반면, 남녀의 사랑이야기에 초점을 맞추고 해피엔딩이면서도 감성소설이란 타이틀을 걸고 나오는 작품들이 있다. 이건 아마도 그 작가의 마인드가 어디에 치중하고 있나를 나타내는 증거가 아닐까 한다.
앞서 말했듯 아직까지 로맨스 소설은 우리 나라에서 크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 장르이며 때문에 자신이 로맨스 소설을 읽는다, 혹은 쓰고 있다는 진실을 밝히고 싶어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장르의 구분이 모호하니 로맨스를 쓰고도 로맨스라는 타이틀이 아닌, 감성 소설로써 인정을 받고 싶은 욕심을 가진 작가들 역시 분명 있으리라 본다. 그들의 욕심을 탓하자는 건 아니다. 단지 같은 로맨스 소설을 쓰는, 또한 아직도 로맨스 소설을 즐겨 입는 입장으로써 이 장르에 대한 부끄러움을 지니고 있는 분들에 대해 참으로 안타깝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감성소설이고 로맨스 소설이고 모두 다 문학이라는 한 장르에 포함되는 형식일 뿐이다. 추리 소설이고, S.F고, 판타지고, 환상문학이고 간에 모두 소설이라는 형식을 빈 창작물이라는 소리다. 단지 각 장르가 추구하는 이상이 틀리며 또한 즐기는 이들이 틀릴 뿐이다. 그러니 사람들의 시선이 껄끄럽다고 해서, 아직도 그런 애들 같은 취미를 갖고 있냐는 질타가 부끄럽다고 해서 스스로가 즐기는 장르를 부디 모욕하거나 무시하지 말았으면 한다.
작가의 입장으로써, 자신의 글이 로맨스가 아니라고 사람들이 말한다면 '저에게는 이게 바로 로맨스랍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자신감이 있었으면 한다. 로맨스 소설을 쓴 걸 부끄럽게 여겨 대신 거창하게 감성소설이라 코맨트를 달아서 조금이라도 이미지를 상승시켜볼까 싶다면 아서라. 작가가 로맨스인지 감성인지 확실한 구분을 짖지 못한다면 읽는 독자들도 헷갈려 이것도 저것도 아닌 에매한 글로만 받아들이게 된다.
또한 독자의 입장으로써, 로맨스가 다 그렇고 그런 거 아니냐는 말 좀 하자말자. 로맨스는 다 그렇고 그렇더라도 그렇고 그런 와중에 독특하며 새롭고 신선한 시각이 분명 들어있다. 문법적, 편집적 그런 세밀한 부분을 이제야 따지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일부 몰지각한 혹자들은 로맨스가 다 거기서 거기다란 말로 자기 얼굴에 침뱉기를 하고 있다.
조금쯤은 당당해지자. 지금은 로맨스 소설이 무엇인지 모르는 이들이 많지만, 우리 스스로가 조금씩 토대를 쌓고 개척하다보면 언젠가는 자랑스럽게 로맨스 소설 매니아라고 말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까. 부디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바라며, 난 오늘 밤도 내가 좋아하는 로맨스 소설을 읽을 생각이다.
'코코' 쓰다보니 어째 넋두리가 되었습니다-_-;;; 쩝. 나중에 더 수정 보완하겠습니다;;; 2003-10-13 X
jewel 모아서 '로맨스강의 노트' 라는 책을 내야 할것 같다.. 감동~.. 코코교수님~ 2003-10-13 X
Junk 이 언니 독심술 하나? 어떻게 내가 이 주제로 좀 써달라고 요청해야지... 하면 그 글이 딱 나오지? @@ 2003-10-13 X
Miney 제겐 '감성 소설'이란 단어 자체가 아직 불명확하다고 생각해요. 로맨스 소설이라고 하면 어느 정도 코드가 알려져 있고 그 한계가 어디냐, 이런 질문도 나오고 하는 반면, 감성 소설에 대한 논의는 아직 적다고 생각하거든요. 아마 '국화꽃 향기'라던지의 남녀 작가가 다 쓸 수 있고. 남녀의 애잔한 사랑을 그린 소설을 그렇게 부르지 않나 싶은데, 아직 용어 정리도 되지 않는(제 생각입니다만) 말에 대해 우열을 따진다는 게(로맨스<감성)저는 이상합니다.; 2003-10-17 X
'코코' 한 때는 감성소설>로맨스 소설 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많이 바뀌었죠. 여긴 출판계 불황도 한몫했습니다. 로맨스 소설은 대여점만 들어가도 일정량 팔리는 장르니까요. 거기에 비해 다른 소설들은 많이 바닥을 치는 셈이죠. 그래서 전 지금의 상황이 더 허탈하답니다. 감성소설이고 로맨스 소설이고 다 같은 소설이며 또 각 취향의 차이에 따라 분류된 것이라 알고 있는 저에겐 말이죠. 상업적 이해에 따른 자의적구분...그건 지금 누가 하고 있는 겁니까 대체. 2003-10-17 X
'코코' 아, 그리고 감성소설은 애정사가 과하게 들어갔다는 관계로 문학계에서는 썩 달갑지 않은 장르로 인정받고 있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적당히 신파적일 요소를 첨부한 글들은 다 감성소설로 취급하죠. 아마 감성소설을 좋아하는 분들한테는 이게 꽤 컴플렉스였을 겁니다. 로맨스 소설이 감성소설 축에도 끼지 못할 때처럼 말이죠. 그렇다고 해서 이제와 태도를 달리한다는 건...좀 우습죠. 2003-10-17 X
Miney 그렇죠. 저'상업적 이해에 따른 자의적 구분'이 저는 참 문제라고 생각해요. 지금 경우에는 (독자들이 알기엔)로맨스 소설을 쓰고 있던 분들 중 일부가 감성소설작가라고 불리길 원한다는 것인데, 그분들의 입장이야 정확히 알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같은 대중문학 테두리 안에서 감성소설이 낫다고 생각(로맨스작가로 불리기 보다는 감성작가로 불러주세요...하는 태도가 그걸 의미하지 않나 싶습니다만)하는 것이 저는 좀 이상해요.; 2003-10-17 X
'코코' 맞아요. 저도 그거 진짜 이상해요. 왜 로맨스 소설이라고 말하지 못할까요? 예전만큼 적당적당한 글만 나오는 것도 아니잖아요. 사실 전 제가 감성소설이라고 판단했어도 당사자가 로맨스 소설을 쓴 것이라고 말한다면, 내용상으로도 그런 코드가 조금 담겨있다면 그 사람은 로맨스 소설을 썼다라고 하고 싶습니다. 매니아 중에 라빌 스펜서를 싫어하는 분들이 많은데 전 라빌 스펜서도 좋아한다구요. 정말 안타까운 일들입니다-_- 2003-10-17 X
미루 저역시 '상업적 이해에 따른 자의적구분' 이 부분이 고개를 젓게 만들어요. 작가가 스스로 감성소설을 씁니다.하면 할말이 없지만, 어떨땐 전혀 다른 장르처럼 또 어떨땐 원래 다 비슷비슷하지 않느냐, 같은거야..라는 식의 태도를 보이는 건 참..;; 아참, 라빌 스펜서는 저도 너무 좋아해요. 저에게 남자들도 상처나면 아파하고 울 수도 있는거구나.. 이성에 대한 이해력을 좀더 깊게 해줬던.. 절필하신 게 안타까울 뿐이죠.ㅠ.ㅠ 2003-10-17 X
푸시케 이거 원들어와보긴 했습니다만 무슨 언쟁이신지...근데 이건 알아요. 로맨스가 확고한 위치가 될때를 주인장님들이 만들어주십사.... 2003-11-08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