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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나를 사랑한 스파이  

번호 : 35     /    작성일 : 2003-10-12 [02:58]

작성자 : '코코'    

지은이/갤런 폴리(Gaelen Foley)
출판사/큰나무


2001년 작. 원제는 'Lord of Fire'

갤런 폴리의 글은 <프린세스>로 처음 접했었다. <프린세스>는 어센신이라는 가상의 나라에서 펼쳐지는 왕족들의 사랑 이야기 연작 중 하나 있다. 이 후로도 <프린스 차밍>, <해적과 프린스> 등이 우리 나라에 번역 출간되었다.

그녀의 글은 조금 지루한 면도 없잖아 있지만, 작가의 리듬감있는 문장에 이끌려 대부분 빠른 속도로 읽어내려가게 된다(여기엔 번역가의 몫도 중요했으리라 본다). 이 작품 <나를 사랑한 스파이>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야기는 이미 식상하다 싶을 만큼 자주 악인으로 등장하는 나폴레옹이 패배한 후 엘바에 갖혀지내던 1814년 런던에서부터 출발한다. 불행한 과거를 가진 쌍둥이 중 동생 루시언은 형 데미언과 달리 전쟁에서 스파이로 활동한 경험이 있다. 때문에 자신은 다른 이들과 달리 신사적 전쟁을 치룬 것이 아닌 암흑에서 암암리에 활동했으나 그 진가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는 일종의 열등의식을 지니고 있다. 그러던 중 데미언과 자신 사이에서 수작을 부리고 있던 여자를 데리고 특별한 여흥이 벌어지는 자신의 별장에 가게 된다. 그 여자는 미망인으로 아들은 시누이에게 맡기고 자신은 런던 등지에서 파티를 즐기며 살아가고 있었다.

그 여자의 시누이 앨리스는 조카가 아파 엄마를 찾자 직접 캐롯을 데려오려고 루시언의 별장으로 간다. 이곳에서 그녀는 루시퍼의 환생인듯 보이는 루시언을 만나게 되는데...


별장에서 벌어지는 비밀스런 파티는 꽤 다이나믹하면서도 자극적인 묘사로 이루어져 있다. 설정상으로는 각국의 첩보원들을 초청한 후 입을 가볍게해서 정보를 빼낸다는 것이 이 파티의 취지인데, 사실 그럴싸하지만 실제로 소득은 별로 없는 듯 보인다. 그저 주인공을 극적으로 만나게 하기 위한 장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는 듯 하다.

번역 로맨스에서 자주 등장하는 설정대로 둘은 만나자마자 육체적으로 끌리게 되고, 특히 루시언은 그녀가 아니면 자신의 긴장을 풀지 못하리라는 좀 지나치다 싶은 단정으로 앨리스를 별장에 가두고 유혹을 한다. 앨리스 역시 순결한 처녀라 설정되어 있음에도 그의 유혹에 한치의 두려움도 없이 자연스럽게 굴복하고 만다.

예전에 처녀인 주인공이 유혹을 받을 때면 그 행위에 대한 두려움을 갖지만 최근엔 행위에 대한 두려움은 커녕 오히려 호기심을 갖는 주인공들이 자주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이것이 일종의 유행인 듯 하다. 그런데 너무 전형적인 설정도 그렇지만 이를 극복한다고 천편일률적인 경향을 보이는 것도 좀 그렇다.

또 루시언이 앨리스에게 외면을 받을까봐 자신이 첩보원이라는 것을 숨기는데, 그 이유도 딱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 역시 아마도 그동안 나왔던 소설에서 첩보원인 남주가 대부분 멋진 남자로 꾸며져 나왔던 것에 대한 반발인 듯 한데 그럼에도 반발이 반발답지 않게 여겨져 주요 갈등이 된 이 부분에서 헛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그리고 앨리스의 새언니인 캐로에 대한 마무리도 딱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치 완벽한 해피엔딩으로 이끌기 위한 어거지 같았다.

그 외에도 이젠 지겨울 정도로 흔한 권선징악 패턴, 뻔한 진행 등이 눈에 거슬리지만, 어쨌든 이 글은 읽어줄만 했다. 깔끔한 문장에 적당한 위기, 적당한 악인들의 등장, 그리고 주인공들 간의 밀고 당기기가 말 그대로 적당 적당 했다. 깊은 감동까지 받지는 못했지만 심심할 때 가볍게 읽힐 작품인듯 하다. 주인공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보는 게 아니라, 옆에 맛난 간식거리를 챙겨두고 배깔고 누워 단번에 휘리릭 읽을만하단 소리다.

아참, 그런데 나폴레옹은 진짜 나쁜 놈이기만 했었을까? 예전 조선왕조의 광해군이나 연산군에 대한 평가가 그들을 실각시킨 이들의 시각에 지필되었기에 역사적으로 많이 왜곡된 면이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폴레옹은 유럽인들에게 있어 그들의 자존심을 심하게 손상시킨 인물이다. 대부분의 미국 백인들은 그 유럽인들의 후손이고. 아직까지 번역된 로맨스 소설은 거의가 백인이 쓴 글이다. 그래서인지 로맨스 소설에 나오는 나폴레옹은 항상 나쁜 놈, 적, 없애야할 악인으로 나오는 건 아닐까 싶다.

물론 나폴레옹이 정복자로써 많은 인명을 살상했으므로 굳이 있는 사실을 비틀자는 건 아니지만, 가끔은 나폴레옹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이는 역사 로맨스 소설도 읽고 싶다는 게 내 욕심이라면 욕심이겠다.



2월화 유럽에 원래 민족이나 국가의 개념이 딱히 없었는데, 나폴레옹 이후로 생겨났다 합니다. 나폴레옹은 프랑스 혁명의 이념을 유럽 각국에 전파한다는 명목하에 각국을 침략하였는데 (소련처럼), 그 전쟁을 겪으면서, '저 나라는 프랑스, 우리나라는 000' 이런 식으로 자기 정체성이 강화된거죠. 나폴레옹은 전술의 달인이었다고 하고, 용병술이나 사람 대하는 법이 매우 뛰어났다고 합니다. 카리스마가 대단했다고요. 코 앞에선 누구라도 경배하게 되는 그런...; 2003-10-12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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