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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수 762
제목 : [로맨스] 바람의 딸
번호 : 34 / 작성일 : 2003-10-08 [02:03]
작성자 : '코코'
지은이/이금조
출판사/실천문학사
살펴보면 2001년 1월 13일에 <바람의 딸> 초판이 찍혔다고 되어 있다. 벌써 2년도 전의 글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이나 당시나 소문은 참 무성한 글이다 싶다.
이 글에 대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했으리라 본다. 나 역시 처음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더라란 리뷰와 함께 제1회 디지털 문학대상의 감성소설 부문 수장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척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로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으며 그날 바로 라면 국물에 밥말아 먹는 것처럼 단번에 후루륵 읽어버렸다.
혹시나 아직 이 글을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잠시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바람일족의 마지막 후손인 아리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혈족을 잇기 위해 첩첩산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다. 이때 거의 전멸된 바람일족을 찾던 진번태수 추우영에게 발각되어 끌려가던 중 유하에게 구출된다. 유하는 추우영의 뒤를 캐던 중이라 아리가 첩자는 아닐까 싶어 추궁하다 그녀를 범하고 만다. 그녀가 처녀임을 알게 된 유하는 한동안 그녀를 방치하다가 결국 참을 수 없는 목마름으로 다시 아라를 찾게 된다. 이때부터 유하는 아리에게 벗어날 수 없어 발버둥치게 되는데...
간단한 줄거리만을 봐도 자못 흥미롭도록 전형적임을 알 수 있다. 역사적 배경이란 설정으로 국내 독자들의 군침을 돌게 하지만 실 내용에 있어 이렇게 완벽하게 전형적일 수 있기도 힘들다. 등장인물들도 전형적이다. 무조건적 소유욕을 지녔고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표현되는 그러나 별로 카리스마 없는 남주, 이해할 수 없게 순진무구 그 자체의 여주, 지극히 단순한 권선징악적 패턴, 짧고 간결하게 넘겨버리는 사건 전개 등등이 할리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전형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이 글은 볼만하다. 왜냐면 일단 '재미'가 있다.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한다. 바로 이 점에서 난 <바람의 딸>을 성공한 소설이라 평가한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대다수 독자들은 골치 아픈 현실을 잊고 환상을 즐기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채 펼쳐지는 내용, 그리고 정해진 해피엔딩만이 그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 마치 일정한 무엇인가를 탐닉하듯 비슷한 분위기와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또한 비슷한 설정을 지닌 글을 선호하는 것이다.
사실 <바람의 딸>은 내용상, 설정상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할머니의 유언으로 임신을 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아리. 그러나 그녀는 유하에게 종속 후 계속해서 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큰 결심을 마음에 품고 내려온 것임에도 목표를 달성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다시 가야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만 하고 있다(이것이 남주와의 주요 갈등 요소가 된다). 그럴러면 왜 내려온 건지?
둘째, 정사신 묘사를 제외하면 본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사신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자주,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셋째, 여주 아리가 성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인물로 그려져 있으나, 그녀가 살았던 곳은 첩첩산중이다. 첩첩산중엔 많은 동식물들이 있었을 테고, 그렇다면 섹스란 단어를 모를 수 있겠지만 그 행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보다 성에 더 일찍 눈을 뜬다. 흔히 주변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짝짖기 행위를 자연스럽게 보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리는 물 한방울 손에 안묻히고 귀하디 귀하게 자란 아이가 아니라, 몸이 쇄하신 할머니 한분과 단둘만 살아왔다. 어린 아이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걸 할머니가 일일이 감독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다.
넷째, 장면 장면이 이미 번역 로맨스 소설에서 많이 익숙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표절이다 뭐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글 전체가 뻔한 장면 전개로 이어지니 작가만의 색을 찾기가 힘들단 소리다.
다섯째, 등장인물들의 관계 역시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했다. 번역 역사 로맨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위험에 빠진 여주, 이를 구출하는 남주, 여주를 보살피는 넉넉한 살집의 유모, 남주와 관계를 갖던 여조 등은 비단 외국 소설만이 아니고 <해적의 여자> 등에서도 자주 보았던 패턴이다.
여섯째, 대단하고도 뭔가 신비스러울 것 같은 바람의 일족의 능력. 뒷부분에 가서 이 능력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건 정말 김빠진 풍선꼴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는 뭔가 있어보이는 듯 그래서 숨기는 듯해 궁금증만 잔뜩 부풀려 놓고는 결국 보여준 능력이 그거밖에 되지 않다니...작가의 상상력 부족이다.
이렇게 완성도에 있어서 참 할 말을 잃게 만듬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딸>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철저한 상업주의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전형의 껍질을 둘러쓴 김에 그 전형성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로맨스 독자들이 맥을 못추고 녹아버리고 마는 결정적인 장면과 대사를 적절하게 배열해두었으며, 또한 적당히 악인을 만들어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했고, 나름대로의 갈등과 위험 요소를 양념으로 첨가해 읽는 맛을 주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이 특별하게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었다라고 평가하는 듯 하다. 만일 원초적인 재미만을 담은 글인 <바람의 딸>의 작가가 욕심을 내서 심도 깊은 인간의 성찰적 모습 같은 것들을 함께 담고자 했더라면 아마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한 글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Junk 동감입니다. 저는 꼭 소설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외려 어줍잖게 작가 자신도 잘 이해 못한 주제를 담으려 한 글보다는 차라리 철저히 재미를 추구한 글이 더 좋달까ㅡ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어야 하는 거겠죠. 재미만을 추구했다고 욕 먹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더군다나 장르문학인 걸요. 힘든 현실을 잊고 환타지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장르문학의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뭔가가 느껴진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요. 2003-10-09 X
피용 작가의 복식사에 대한 지식이 아깝다고 한탄한 글-- 작가의 지식은 어디로 가고, 삐리리만 남았는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로맨스 독자들은 삐리리가 많은 글을 좋아하더란-- 교훈을 남긴 책. 2003-10-09 X
'코코' 저기 복식사에 대한 지식이라뇨-_- 그건 자료 조사만 좀 하면 나오는 건데요;;; 게다가 틀린 것들도 있는데요;;; 2003-10-09 X
피용 작가의 전공을 말하는것임. 적어도 전공이라는데.... 좀 써먹지.. 했다는.. 2003-10-10 X
'코코' 그 그 분은 복식사 전공이 아니던데요^^;; 단지 패션디자인을 배울 때 배웠던 부분을 참고로 한 것이겠죠. 이건 아마도 대부분 가사(요즘 가사나 가정의 내용이 어떻게 바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거란 말이죠^^; 암튼 이랬든 저랬든 중요한 건 그래도 재미를 던져주고 있다는 거 아닐까 해요. 정크 말대로 작가가 특별한 의미를 주고 싶어 성공한 소설도 있다면 이렇게 단순한 재미로 성공한 소설도 전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2003-10-10 X
'코코' 그 점에서 <바람의 딸>은 성공한 로맨스 장르 소설이라는 겁니다. 단어와 문장을 어렵지 않게 배열하고 중간에 시점이 자주 흔들리기는 했지만, 일단 캐릭터가 일관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게다가 군더더기는 쳐내고 깔끔하게 진행시킨 점. 이런 부분이 흡인력을 만드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전 <바람의 딸> 같은 건 죽어도 못쓰기 때문에 그런 절제미(?)는 부러울 따름이죠;;; 2003-10-10 X
2월화 푸하~ 피용님의 말씀이 너무 웃겨요... ㅜ.ㅡ 2003-10-10 X
번호 : 34 / 작성일 : 2003-10-08 [02:03]
작성자 : '코코'
지은이/이금조
출판사/실천문학사
살펴보면 2001년 1월 13일에 <바람의 딸> 초판이 찍혔다고 되어 있다. 벌써 2년도 전의 글이라는 말이다. 그럼에도 지금이나 당시나 소문은 참 무성한 글이다 싶다.
이 글에 대해서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직접 읽었거나 이야기를 들었거나 했으리라 본다. 나 역시 처음엔 그런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더라란 리뷰와 함께 제1회 디지털 문학대상의 감성소설 부문 수장작으로 선정되었다는 말을 듣고 무척 읽어보고 싶었던 소설이었다. 그러다 우연찮은 기회로 이 책을 손에 넣게 되었으며 그날 바로 라면 국물에 밥말아 먹는 것처럼 단번에 후루륵 읽어버렸다.
혹시나 아직 이 글을 접하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잠시 줄거리를 살펴보도록 하자.
바람일족의 마지막 후손인 아리는 할머니의 유언에 따라 혈족을 잇기 위해 첩첩산중을 벗어나 세상으로 나온다. 이때 거의 전멸된 바람일족을 찾던 진번태수 추우영에게 발각되어 끌려가던 중 유하에게 구출된다. 유하는 추우영의 뒤를 캐던 중이라 아리가 첩자는 아닐까 싶어 추궁하다 그녀를 범하고 만다. 그녀가 처녀임을 알게 된 유하는 한동안 그녀를 방치하다가 결국 참을 수 없는 목마름으로 다시 아라를 찾게 된다. 이때부터 유하는 아리에게 벗어날 수 없어 발버둥치게 되는데...
간단한 줄거리만을 봐도 자못 흥미롭도록 전형적임을 알 수 있다. 역사적 배경이란 설정으로 국내 독자들의 군침을 돌게 하지만 실 내용에 있어 이렇게 완벽하게 전형적일 수 있기도 힘들다. 등장인물들도 전형적이다. 무조건적 소유욕을 지녔고 카리스마를 지녔다고 표현되는 그러나 별로 카리스마 없는 남주, 이해할 수 없게 순진무구 그 자체의 여주, 지극히 단순한 권선징악적 패턴, 짧고 간결하게 넘겨버리는 사건 전개 등등이 할리퀸 저리가라 할 정도로 전형 그 자체다.
그럼에도 이 글은 볼만하다. 왜냐면 일단 '재미'가 있다. 철저하게 재미를 추구한다. 바로 이 점에서 난 <바람의 딸>을 성공한 소설이라 평가한다.
로맨스를 좋아하는 대다수 독자들은 골치 아픈 현실을 잊고 환상을 즐기기 위해 소설을 읽는다. 정해진 틀 안에서 정해진 채 펼쳐지는 내용, 그리고 정해진 해피엔딩만이 그들을 충족시킬 수 있다. 마치 일정한 무엇인가를 탐닉하듯 비슷한 분위기와 비슷한 캐릭터를 가진, 또한 비슷한 설정을 지닌 글을 선호하는 것이다.
사실 <바람의 딸>은 내용상, 설정상 많은 오류를 범하고 있다.
첫째, 할머니의 유언으로 임신을 하기 위해 산에서 내려온 아리. 그러나 그녀는 유하에게 종속 후 계속해서 산으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 큰 결심을 마음에 품고 내려온 것임에도 목표를 달성할 생각은 하지 않은 채 다시 가야한다고 되풀이해서 주장만 하고 있다(이것이 남주와의 주요 갈등 요소가 된다). 그럴러면 왜 내려온 건지?
둘째, 정사신 묘사를 제외하면 본 내용은 얼마 되지 않는다. 정사신이 그리 길지 않음에도 자주,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있다.
셋째, 여주 아리가 성을 전혀 모르는 순진한 인물로 그려져 있으나, 그녀가 살았던 곳은 첩첩산중이다. 첩첩산중엔 많은 동식물들이 있었을 테고, 그렇다면 섹스란 단어를 모를 수 있겠지만 그 행위를 전혀 모른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시골에서 자란 아이들이 도시 아이들보다 성에 더 일찍 눈을 뜬다. 흔히 주변에서 펼쳐지는 동물들의 짝짖기 행위를 자연스럽게 보며 자라왔기 때문이다. 게다가 아리는 물 한방울 손에 안묻히고 귀하디 귀하게 자란 아이가 아니라, 몸이 쇄하신 할머니 한분과 단둘만 살아왔다. 어린 아이가 산으로 들로 뛰어다니는 걸 할머니가 일일이 감독할 수 있는 것도 아닐테고 말이다.
넷째, 장면 장면이 이미 번역 로맨스 소설에서 많이 익숙한 것들로 채워져 있다. 표절이다 뭐다란 이야기가 아니라, 글 전체가 뻔한 장면 전개로 이어지니 작가만의 색을 찾기가 힘들단 소리다.
다섯째, 등장인물들의 관계 역시 전형성을 탈피하지 못했다. 번역 역사 로맨스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위험에 빠진 여주, 이를 구출하는 남주, 여주를 보살피는 넉넉한 살집의 유모, 남주와 관계를 갖던 여조 등은 비단 외국 소설만이 아니고 <해적의 여자> 등에서도 자주 보았던 패턴이다.
여섯째, 대단하고도 뭔가 신비스러울 것 같은 바람의 일족의 능력. 뒷부분에 가서 이 능력이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데 이건 정말 김빠진 풍선꼴이 되고 말았다. 앞에서는 뭔가 있어보이는 듯 그래서 숨기는 듯해 궁금증만 잔뜩 부풀려 놓고는 결국 보여준 능력이 그거밖에 되지 않다니...작가의 상상력 부족이다.
이렇게 완성도에 있어서 참 할 말을 잃게 만듬에도 불구하고 <바람의 딸>이 인구에 회자되는 이유는 앞서 말했듯 철저한 상업주의적 소설이기 때문이다. 전형의 껍질을 둘러쓴 김에 그 전형성이 지닌 장점을 최대한 살리고 있다.
로맨스 독자들이 맥을 못추고 녹아버리고 마는 결정적인 장면과 대사를 적절하게 배열해두었으며, 또한 적당히 악인을 만들어 주인공들을 돋보이게 했고, 나름대로의 갈등과 위험 요소를 양념으로 첨가해 읽는 맛을 주고 있다.
때문에 이 소설이 특별하게 호평을 받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재미있었다라고 평가하는 듯 하다. 만일 원초적인 재미만을 담은 글인 <바람의 딸>의 작가가 욕심을 내서 심도 깊은 인간의 성찰적 모습 같은 것들을 함께 담고자 했더라면 아마 이도저도 아니게 어정쩡한 글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Junk 동감입니다. 저는 꼭 소설에 의미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외려 어줍잖게 작가 자신도 잘 이해 못한 주제를 담으려 한 글보다는 차라리 철저히 재미를 추구한 글이 더 좋달까ㅡ 이런 글도 있고 저런 글도 있어야 하는 거겠죠. 재미만을 추구했다고 욕 먹을 필요는 없다고 봐요. 더군다나 장르문학인 걸요. 힘든 현실을 잊고 환타지의 세계로 빠질 수 있는 것, 그것이 장르문학의 장점이 아닌가 합니다. 물론 뭔가가 느껴진다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요. 2003-10-09 X
피용 작가의 복식사에 대한 지식이 아깝다고 한탄한 글-- 작가의 지식은 어디로 가고, 삐리리만 남았는가? 아무리 아니라고 해도 로맨스 독자들은 삐리리가 많은 글을 좋아하더란-- 교훈을 남긴 책. 2003-10-09 X
'코코' 저기 복식사에 대한 지식이라뇨-_- 그건 자료 조사만 좀 하면 나오는 건데요;;; 게다가 틀린 것들도 있는데요;;; 2003-10-09 X
피용 작가의 전공을 말하는것임. 적어도 전공이라는데.... 좀 써먹지.. 했다는.. 2003-10-10 X
'코코' 그 그 분은 복식사 전공이 아니던데요^^;; 단지 패션디자인을 배울 때 배웠던 부분을 참고로 한 것이겠죠. 이건 아마도 대부분 가사(요즘 가사나 가정의 내용이 어떻게 바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시간에 배울 수 있는 기초적인 거란 말이죠^^; 암튼 이랬든 저랬든 중요한 건 그래도 재미를 던져주고 있다는 거 아닐까 해요. 정크 말대로 작가가 특별한 의미를 주고 싶어 성공한 소설도 있다면 이렇게 단순한 재미로 성공한 소설도 전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2003-10-10 X
'코코' 그 점에서 <바람의 딸>은 성공한 로맨스 장르 소설이라는 겁니다. 단어와 문장을 어렵지 않게 배열하고 중간에 시점이 자주 흔들리기는 했지만, 일단 캐릭터가 일관성을 지니고 있거든요. 게다가 군더더기는 쳐내고 깔끔하게 진행시킨 점. 이런 부분이 흡인력을 만드는 거라고 하더라구요. 사실 전 <바람의 딸> 같은 건 죽어도 못쓰기 때문에 그런 절제미(?)는 부러울 따름이죠;;; 2003-10-10 X
2월화 푸하~ 피용님의 말씀이 너무 웃겨요... ㅜ.ㅡ 2003-10-10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