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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야만인과의 결혼  

번호 : 33     /    작성일 : 2003-10-07 [13:57]

작성자 : '코코'    



지은이/윤경
출판사/도서출판여우



로맨스를 만드는 여자의 홈지기였던 (이)윤경 씨의 두 번째 출판작이다. <야만인과의 결혼>에 대해서 온라인상으로 읽지는 못했고 대신 꽤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대부분 호평이었고, 그래서 개인적으로 굉장히 기대를 한 작품이다.

책을 읽고나서 대표적인 로맨스 사이트들을 둘러보며 리뷰를 훑어봤다. 결론은 나와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은 별로 없다였다(오늘 다시 보니 슬슬 올라오고 있었지만). 한때 내가 참 많이 좋아했던 한 리뷰사이트에도 그럴싸한 호평이 올라와 있었다. 그래서 한참 고민했다. 내가 지나치게 엄격한 관점을 지니고 있는 걸까? 독자로써의 내 기대치가 너무 높은 것일까?

나름대로 아직도 독자의 입장을 많이 갖고 있다고 생각하는 편인데(왜냐하면 아직까지 글의 구성이나 내용보다는 읽을 때의 재미를 중시하니까 말이다) 의외로 이 작품에서는 현재까지의 대다수 사람들과 다른 견해를 갖게 되었기 때문에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글에 흡인력이 있다. 첫출간작인 <아다다의 사랑>에서도 느낀바 있지만 이 작품 역시 적은 분량으로 인해 속도감있게 진행되는 과정 속에 매우 빠르게 읽히는 글에 속한다 싶다.

또한 3년 전의 글을 현재의 느낌으로 수정하느라 꽤 많은 고심을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것만은 작가에게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는 바이다.

자, 이렇게 좋은 점은 있는 글이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남는 걸까?

작가가 후기에 언급했다시피 이 작품은 지극히 전형적인 로맨스 소설이다. 예전 하이틴 로맨스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순수함과 미모를 가진 여주가 돈많고 야만적인 남자로 인해 강제 결혼을 하게 된다. 일종의 계약 결혼인 셈이다. 계약 결혼은 흔하디 흔하다 못해 이젠 하나의 설정으로 확고하게 굳어져있다. 계약 결혼하면 의례 마음을 닫고 사는 여자와 그녀를 오랫동안 사랑했으면서도 눈치만 살피느라 사랑한다 말한마디 못하는 남주. <야만인과의 결혼>도 그렇다.

뻔한 패턴에. 결말 역시 뻔했다. 그게 로맨스를 읽는 맛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겠다. 또 그럼에도 우린 로맨스를 계속해서 읽어오지 않았냐 하시는 분들도 있겠다. 근데 그 내용을 빤히 알면서도 읽지 않을 수 없게 했던 할리퀸들은 최소한 그것을 썼던 작가 나름의 개성이 담겨 있었다고 기억한다.

<야만인과의 결혼>은 단문장에, 제법 능숙하다 싶을 정도로 매끈한 문체를 갖고 있다. 간혹가다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1인칭이 튀어나와서 탈인 것과 하오체로 끝나는 남주의 대사가 영 거슬려서 탈인 것 외에는 그나마 깔끔한 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게 문제다.

너무 깔끔해서 번역체와 같은 맛이 난다. 작가가 번역 소설을 오랫동안 읽어왔다는 걸 확실히 알겠더라. 또 린 그레이엄식 스타일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겠더라. 근데 읽고 난 후 남은 건 그게 다였다.

이 작품이 호평을 받았던 때가 몇 년 전이라는 걸 잠시 잊은 내가 실수라면 실수겠다. 당시 곧장 책으로 출간 되었더라면 지금과는 다른 감동을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지금은 확실히 아니다 말하고 싶다.

수박 겉핡기 식으로 엉성하게 넘어간 심리 묘사는 그렇다치고(익숙하다 못해 고정관념으로 굳어진 전형적인 계약결혼 소재의 오래 전에 출판된 글들 때문에 굳이 심리 묘사를 넣지 않아도 알아서 읽어내게 되니까), 일관적이지 못한 캐릭터(갑작스레 튀어나오는 1인칭 때문에), 작가의 색이 없는 내용들(다 오래 전 읽었던 내용들), 뜬금없이 튀어나오는 에피소드들(흔하다 못해 식상한 에피소드들), 이름은 한국인이나 그 묘사에 있어서 외국적 색체가 짙은 문장들, 개연성 없는 사건 전개 등이 정말 해도 너무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만일 이 글을 온라인에서 보았더라면 비평까지 할 생각도 들지 않았을 거다. 하지만 내 돈을 주고 내 시간을 들여 문장, 단어 하나 빼놓지 않고 읽고 또 읽었다. 하나의 책으로 나온다는 건 그만큼의 책임감을 갖게 된다는 거다. 온라인으로 공개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당당히 정가를 달고 나온 작품은 호평이든 악평이든 고스란히 받을 책임을 갖게 된다는 소리다.

작가에게 묻고 싶다. 오래 전에 완결된 글을 수정하느라 얼마 만큼의 노력을 기울였을지에 대해서는 대략 짐작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 심여를 기울인 만큼 쓴소리를 들을 각오는 되어 있냐고. 연재시 호평을 받았던 기억만으로 책을 출간하게 된 것은 아니냐고. 작가적 자존심을 건드리자는 게 아니다. 작품에 대한 책임의식-그 철저한 프로정신을 갖고 있는지에 대해 묻는 거다.

할리퀸의 전형성을 정서에 맞게 승화하고자 노력하려는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던 이 글을 읽고, 단지 할리퀸을 우리 나라 사람과 우라 나라 배경에 고스란히 대입한 것밖에 되지 않는 이 글을 읽고 난 정말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감동을 주는 로맨스를 읽었을 때 나오는 눈물이 아니라, 윤경이라는 작가가 보여줄 수 있는 작품 세계가 이것 밖에 되지 않는 걸까 하는 안타까움의 눈물이었다.

그녀의 글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그녀만의 독특한 무엇이 있다는 소리다. 그녀의 글을 통해 그걸 읽지 못한 건 비단 나뿐이었을까?




Junk 항상 한동안 비밀글로 해놓는데, 그 동안 기다리느라 거의 수명이 단축(?)되는 느낌이랄까. 지난번 '카리스마 여주' 때가 압권이었음. 이번에도 잘 읽었습니다. 이 책은 저도 읽었는데, 연재시 글을 못 봐서 비교는 못하겠고, 오래 수정하셨다면 내용을 좀 더 늘리셔도 되지 않았을까 싶더군요. 수정보완하신 거 치고는 너무 짧아서(보통은 길어지잖습니까) 작가님이 많이 바쁘셨나 보다 했죠. 2003-10-07 X

'코코' 분량은 상관없단 말이지. 분량이야 오로지 작가의 몫이라고 보니까. 내가 가슴을 쳤던 건 '전형적인'이란 말을 걸고 나왔음에도 전형의 껍질만을 둘러썼다는 느낌이 들어서야. 알맹이는 어디로 갔나...쩝. 2003-10-08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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