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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화] 서양골동양과자점  

번호 : 31     /    작성일 : 2003-09-30 [16:04]

작성자 : Junk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을 읽은 건 사실 딱 두 종류 뿐. '서양골동양과자점'과 '의욕 넘치는 민법'. 원래 그 계통 만화는 거의 보지 않으며, 꾸준히 보는 작가는 이마 이치코 정도다.

각설하고.

처음에는 그 허접한 배경이 성에 차지 않았다. 이 작가 정말 정성 없구만. 그렇게 생각했다. 그게 이 사람 매력이에요! 라는 AT님의 말도 이해하지 못했다.

어쨌든 인기 있는 작품은 다 이유가 있는 법이어서, 그 허접 배경과 어중간한 데생과 펜선에도 불구하고 어느 새 정신없이 읽어가는 자신을 발견하고 있더라.

그런데.

나는 요시나가 후미의 작품을 읽으면, 항상 마음이 불편하다. 그것은 사실 역설적으로 독자를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작가의 역량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하다. 그녀의 작품이 별 거 아니었다면 내 마음을 불편하게조차 만들 수 없었을 테니까.

그녀의 작품이 나를 불편하게 하는 이유는 캐릭터 때문이다. 까놓고 말하자. 나는 그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캐릭터들을 질투한다. 왜? 그들은 너무 강하다. 웃고 울고 화내며 감정에 충실하지만 그 자체가 그들의 강인함을 증명해 주는 징표인 것이다.

요시나가 후미의 캐릭터들은 대개 세속이나 타인들의 시선과는 거리가 멀다. 자기 내키는 대로 행동하는데도 강한 매력을 갖고 있어서 주변인들과 독자들을 가볍게 끌어당긴다. 그것부터가 질투가 난다.

서양골동양과자점.

마음에 상처를 지닌 다치바나는 그럼에도 사랑을 제외하고 일반적으로 보통 사람들이 이루기 힘든 걸 가뿐하게 손에 거머쥐는 남자다. 게다가 그런 만큼 또 가볍게 손에 쥔 걸 버리는 초연함까지 갖고 있다. 나라면 절대 그렇게 못한다. 절대!

전 복싱 챔피언이었던 칸다는? 망막박리 판정을 받고 잠깐 울기는 하지만 첫번째 좋아하는 걸 계속하는 게 불가능하므로 두번째 좋아하는 걸 한다며, 나라면 열심히 땅을 파고 있을 그 시간에 벌써 새로운 인생의 길에 의심 없이 발을 디딘다.

오노. 다치바나에게 고교시절 차였던 기회를 발판으로 삼아, 자신의 마성(-_-)을 깨달아 버리는 무서운 남자. 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사악한 사람.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다. 게다가 연애 때문에 간 프랑스에서 일류 제빵사가 되어 돌아오다니!

치카게. 더 이상 말을 말자. 진짜 강한 사람은 이 사람이다. 이렇게 대책없이 착해도 되는 걸까. 세상에 때묻지 않고 이렇게 순진해도 되는 거냐는 말이다. 아무리 만화라고 해도 그렇지.

세속에 더럽혀지고, 타인들의 시선에 어쩔 수 없이 휘둘리며 내내 방황만 하다가 시간을 다 버리는 약하디 약한 나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캐릭터들. 물론 각자 상처가 있지만, 그 상처조차도 그들에게는 낭만. 대개의 사람에게는 구질구질함이 될 터일 상처가 말이다.

동계통 작가들 중 차라리 몬치 카오리처럼 '이건 환타지야, 그러니 읽고 있는 동안만은 맘껏 즐기렴?'이라던가, 이마 이치코처럼 소재는 범상치 않되 인물들은 동질감을 느낄 만큼 평범하던가, 야마다 유기처럼 소재도 인물도 평범하면서 읽고 나서 후련한 내용이라면 편하련만.

요시나가 후미는 캐릭터도 내용도 지독한 환타지인 주제에, 그럼에도 묘하게 이런 사람들이 있을 것 같은, 있으면 좋겠다는 느낌까지 준다. 게다가 삐딱한 나 같은 독자는 있다면 너무 얄미울 것 같다는 생각까지 하게 만들고, 덧붙여 한동안 작가를 원망할 정도의 여운까지 남긴다. 여기서 끝내다니 너무해!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게 맞는 엔딩인 걸. 꽉 짜여진 구성인 걸.

정말 말하기도 입 아프지만, 난 절대 이 작가 주인공들처럼 초연하게 살지 못한다. 이렇게 강해질 수 없다. 본질이 타고나야 그것도 가능한 거다.

작가 본인은 어떨까? 만일에 그녀 본인이 그녀의 캐릭터들과 닮았다면 한번쯤 꼭 만나보고 싶다. 만나서 '사부!'하고 외치며 무릎을 꿇을 지도.

암튼 만화를 읽으면서, 캐릭터 땜에 열등감에 젖어 본 적은 또 없는 것 같다(-_-).



P.S
일기장에 썼던 거지만 그나마 리뷰(그냥 리뷰;) 같아서 올립니다. 다음엔 기필코 로맨스 리뷰를!



피용 저 작가가 70년생이랍니다. 그래서인지, 웬지 친밀감과 동시에 비슷한 연배임에도 저런 글이 나오다니..하는 경외감까지...;;; 나를 들끓게 합니다. 2003-09-30 X

홍랑 저는 이것을 드라마로만 봐서...보는 내내, 저 저 아름다운 케잌이라니~!!! 계속 입맛만 다셨다는. 2003-10-02 X

홍아 여름 코미케에서 요시나가상의 작가패러디본이 나왔는데 (지난번에 이은 앤티크본 완결)결국은 치카와 오노상이 이루어진다는..;;정크님의 리뷰를 보며 동인녀가 아님에도 너무나 동인스러운(;;)해석에 고개를 끄덕였지요(역시 모든 여자들은 동인녀의 피가 흐르고 있는가?!!)제일 사악한 오노상이 가장 용감하고 강한 치카를 차지해버리고 가장 불쌍한 타치바나 낙동강 오리알마냥;;어째 이리 불쌍하게 하는지ㅜ_ㅜ 2003-11-09 X

홍아 제목..무려..[악마같은 남자]...ㅜㅅㅜ 2003-11-09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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