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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사랑스런 별장지기  

번호 : 30     /    작성일 : 2003-09-30 [14:05]

작성자 : '코코'    


지은이/이도우
출판사/현대문화센터



이도우란 작가는 라디오 구성 작가라는(였다는?) 말을 들었다. 그래서인지 한 권으로 만들어진 책은 꽤 깔끔하고 담백한, 그러면서도 군더더기 없는 구성을 가지고 있다. 국내 로맨스 작가들의 가장 큰 단점이 바로 구성력에 있는 데 그렇게 보면 이도우란 작가는 앞으로를 기대할만한 존재이다.

눈에 튀거나 걸리적 거리는 부분이 없는 문장은 매우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또한 진부한 듯한 소재를 아기자기하게 표현한 부분에서도 큰 점수를 줄 수 있겠다. 나 또한 막힘없는 내용 전개에 숨한번 크게 내쉬지 않고 자연스럽게 읽어나갔다.


등반가이자 산악구조원인 아버지를 대신해 산장의 관리를 맡고 있던 다인에게 그 산장 주인의 둘째 아들이 찾아오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상헌은 왠지 그냥 두고 볼 수 없는 위태로운 남자였고, 본래 둘은 같은 대학에 다니고 있어 다인은 상헌을 종종 훔쳐본 경험이 있었다. 게다가 다인의 새어머니가 되실 분이 상헌의 친모이기에 다인과 상헌은 어찌보면 이미 정해진 인연이 있는 이들이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일지 상헌은 꾸밈없는 다인에게서 그리고 조용한 산장의 생활 속에서 그녀에게 끌리게 되고, 다인 역시 상헌의 상처를 알게 되면서부터 조금씩 그에게 마음을 주게 된다. 그러나 아버지가 돌아오고, 지병으로 인해 언제 생이 다할지 모르는 새어머니가 되실 분의 오랜 사랑이 아버지란 걸 알고 있던 다인은 상헌에게 이별을 고하게 되는데...


'의붓남매간의 사랑'은 그동안 일본 만화나 영화에서 혹은 온라인 속의 로맨스 소설에서 종종 등장하던 소재이다. 그만큼 충격적인 소재는 아니더라도, 의붓이라는 금지된 관계는 독자들로 하여금 애초부터 애틋함을 염두에 두게 만드는 장점이 있다. <사랑스런 별장지기>는 이러한 '애틋함'만을 차용하고 있다.

'금지된' 이란 어감이 주는 아슬아슬한 진행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물흐르듯 매끄러워 그들이 곧 이복형제가 될, 고로 세인들의 시각엔 불륜처럼 비춰질 여지를 작가는 처음부터 막고 있었다. 한술 더 떠 아예 이들의 사랑을 방해하는 아버지와 새어머니에 대해서 역시 면죄부를 주고 있어 이 4명의 미묘한 관계는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는데 있어 큰 갈등요소가 되지는 않는다.

이렇게 다수의 장점이 있어서인지 온라인 상으로 대다수의 평을 보면 이 책이 굉장한 호평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자, 그런데 왜 이 책은 단시적 호평으로 그치고 말았던 걸까? 또한 온라인에서의 호평에만 그치고 실제적으로 판매량에서 그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이유는 뭘까?(온라인상에서의 판매량을 보고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할 분들도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 온라인 판매량은 전체 판매량의 그 일부분일 뿐이다.)

국내 로맨스 소설에 대한 끊임없는 애정과 단점에 대한 너그러운 아량은 이미 물건너 간지 오래이다. 일관성 없는 캐릭터,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에피소드들의 난발, 게다가 허술한 구성력은 현재 국내 로맨스 소설들이 많은 질타를 받게 된 가장 큰 이유로 볼 수 있다. 반면 <사랑스런 별장지기>는 이러한 질타를 받지 않을 만큼 자연스런 구성, 일관성 있는 캐릭터, 적절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다. 때문에 부드럽게 내용이 진행된다.

근데 바로 이 부분이 최고의 장점이자 단점이 되어버렸다.

근래 막을 내린 <여름 향기>를 기억해보자. 잔잔하면서도 맑은 이미지의 이 드라마는 예전 <가을 동화>, <겨울 연가>의 연속작이라 한다. 세련된 영상미, 이미지를 전달하는 대사들, 게다가 애틋함이 묻어나는 등장인물들의 관계가 <사랑스런 별장지기>와 일맥상통하고 있다.

<가을 동화>와 <겨울 연가>는 꽤 인기를 끌며 막을 내렸다. 그런데 <여름 향기>는 위의 두 작에 비해 그리 큰 반향을 얻지 못했다. 영상미로 본다면 <여름 향기>가 더욱 세련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왜일까?

생각하기에 <여름 향기>는 시청자의 다양화된 입맛을 맞추지 못한 듯 하다. 물론 당시 동시 방영된 타 방송국의 드라마에 밀린 것도 있겠지만, 그 전에 첫방송 부터 <겨울 연가>, <가을 동화>에서 보여주었던 감각적인 컷들이 <여름 향기>에 와서는 이미 식상해져버린 것이 된 탓도 적지 않다. 사회적 분위기도 한몫을 한다. 요즘 전체적으로 음울한 사회적 분위기 탓에 과장된 표현 기법이 오히려 색다른 시각적, 감각적 재미를 주고 있다는 평이다.

시청자들은 항상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여름 향기>는 흔한 소재를 감각적 영상미로 승부하려 했으나 앞서 나온 드라마에서 이미 선을 보인 셈이고, 소재적 진부함을 극복하지 못해 결국 실패의 잔을 마시게 되었다. <사랑스런 별장지기>가 그러한 이유로 일면 재미있다는 평을 받으면서도 결과적으로 대박의 꿈을 실현하지 못한 축에 속한다(작가가 전달하고자 하는 '감각적'과 때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감각적'은 확실히 차이가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뭐든 대박이 되려면 시대적 운도 따라야한다는 거겠지).

'의붓남매'에 대한 소재는 앞서 말했듯 이미 대다수의 (로맨스)독자들에게 있어 금지된 소재에서 벗어난지 오래다. 외려 더욱 자극적으로 소재들이 판을 치고 있는 실정이다. 지지리 욕을 먹을 거라 예상했던 <달을 몰다>가 그리 큰 이슈로 자리 잡지 못한 채 끝난 것을 단적인 예로 들 수 있겠다.

게다가 만일 이런 자극적일만한-그러나 어느 정도 진부해져버린 소재를 사용할시 시선을 끌려면 구성에 있어서 자연스러움보다는 파격적인, 그러면서도 적당히 복선을 깔아두는 편이 더 나았을 것이다. 동시에 매끄러운 문체보다는 작가만의 개성이 담뿍 담긴 독특한 문체가 더 어울리지 않았을까 싶다.

문체, 문체 하는데 본래 사람들은 문체에 대해 솔직히 그리 구애받지는 않는다. 이건 그 내용과 문체가 적당히 어울리고 있을 경우에 그렇다는 소리다. 만일 문체는 현대적이나 배경 설정이 과거라면, 독자들은 어딘가 어긋난듯한 느낌을 지우지 못해 소설 자체에 이입을 하지 못한다. 대사만 눈으로 쫓아 내용이 어떤 것인지 줄거리를 암기하는 걸로 그치게 되고 정작 작가가 말하고자 했던 사랑엔 도통 정신을 집중하지 못한다. 반대로 소재는 흥미로울만 하나 문체가 너무 다듬어져 있다면, 예를 들어 번역체적 문체로 도배되어 있다면 이 역시 매끄럽게 읽히기는 하지만 정작 내용에 있어서는 독자들에게 더 깊은 감동을 줄 수 있는 여지를 막아서게 되는 것이다. <사랑스런 별장지기>는 후의 경우다.

단문으로 적당히 호흡을 끊어주면서 약간의 급박한 느낌을 실어두었더라면 어쩌면 이 소설은 더욱 맛깔나는 글이 되지 않았을까...하고 아쉬워한다.

또한 시점의 흔들림과 지문에서의 평이함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데 한몫을 했다.

처음엔 작가에 대한 기본 지식 없이 글을 읽다가 마치 시나리오를 보는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이도우 작가는 라디오 구성 작가였다는 거다. 생각하건데 아마도 드라마 구성 작가에 대한 꿈이 작가에게는 아직 남아있을 듯 하다.

시나리오와 소설에서의 지문은 어느 정도 차이가 있다. 소설은 독자가 글로 읽어 등장인물의 행동에서 상상의 여지를 갖게 하나, 시나리오는 영상으로 보여지는 장르이기에 표현상으로 등장인물의 세세한 감정까지 설명해줄 필요가 있다. <사랑스런 별장지기>의 지문은 대략 이러한 시나리오적 기법을 벗어나지 못했으며, 또한 남주와 여주, 여조, 남조 등 모든 등장인물의 각각의 생각을 표현해 주느라 시점이 굉장히 산만해지고 말았다.

차라리 모든 인물에 대한 심리를 조명할 것이 아닌, 조금 절제해 여주가 보는 시각에서의 남주의 행동을 그린다거나, 조연들의 시각에서 주인공들의 심리를 그려냈더라면 더욱 괜찮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시점의 흔들림은 요즘 나오는 대다수의 로맨스 소설에서 찾아볼 수 있는 관계로 더이상 입아프게 단점으로 지적하기도 힘든 일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이러한 부분을 보강했더라면 더욱 괜찮은 작품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 때문에 굳이 언급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이라면, 클라이막스에 있어 두 주인공간의 애절한 장면이 더 추가되었으면 하는 것이다. 이건 독자로써 지나친 요구일지도 모르지만, 잘 나가다가(독자를 긴장으로 이끌다가) 갈등 요소가 해결되는 가슴 절절해야할 장면의 분량이 적은 듯 싶더니 갑자기 조연으로 시점으로 옮겨지면서 끝을 냈다. 막 클라이막스에 이르러 펑하고 터지려던 내 가슴은 순간 푸시시 김빠진 탄산꼴이 되었다. 솔직히 그 장면에 있어 작가는 더이상 할 말이 없기는 했다.

요즘들어 남주의 시점을 통한 남주의 심리상태를 속속들이 보여주고 있는데 이것은 우습게도 정작 중요한 갈등 해소 장면을 급히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계기가 되고 있다.

예전 하이틴 로맨스를 읽어왔던 분들은 동감할 것이다. 말도 안되는 억지 오해와 갈등들이 판을 치는 걸 알면서도 우린 계속해서 하이틴 로맨스를 탐독했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가서 여주에게 사랑을 고백하며 자신이 왜 그때 그랬었어야 했는지에 대해 진솔하게 고백하는 뒷부분이 우리의 심장을 강타했기 때문이다. 그걸 보려고, 그 맛을 느끼려고 뻔한 이야기들을 계속 읽어왔던 것 아닐까?

물론 장편 로맨스 소설에서 오로지 여주의 시점만으로 글을 풀어간다는 건 작가로써 꽤 힘겨운 일이다. 그러나 <사랑스런 별장지기>는 장편보다는 중편에 해당하는 듯 여겨지며 만일 이 작품이 여주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다가 마지막에 가서 남주의 시점을 등장시킨다면 그건 진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하고 상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이러나 저러나 나로써는 오랜만에 나름대로 좋은 글 한편을 읽었다. 사실 읽은지는 오래 되었지만 리뷰를 이제와서 쓰게 된 이유가, 하고 싶은 말은 많은데 그게 무엇인지 정리를 하느라 한동안 고심을 했기 때문이다. 그 사이 몇 번 다시 이 글을 읽었던 건 두말할 나위도 없고.

이도우 작가의 또 다른 이야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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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 공부는 하고 있어. 단지 뭔가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이 아직 멀었다는 느낌이 들어서. 글이라는 거 쓰면 쓸수록 어렵더라구. 쩝. 2003-10-01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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