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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안단테 안단테  

번호 : 27     /    작성일 : 2003-09-27 [00:49]

작성자 : '코코'    



지은이/권지니
출판사/눈과마음



그런데로 볼만한 줄거리, 지루하지만 무난한 설정, 설익었으나 풋풋한 느낌을 주는 문체, 부족한 느낌을 주나 귀여운 캐릭터 등등이 이 글을 읽은 다른 분들의 간단한 평이다. 대부분 그리 악평은 없고, 동시에 대단한 호평도 없었다. 한 마디로 무난하게 읽을만 한 글이라는 소리다.

일면 좋은 얘기일지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악평을 받는 눈과마음의 책이고 보니 이 정도면 괜찮다라고 평가받을만 할지도 모른다.

줄거리를 간략하게 살펴보자.

모란은 바이올리니스트로써 명성을 쌓았지만 이에 미련을 두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와 있었다. 제갈윤은 많은 여인들의 가슴을 설레게할 만큼 빼어난 외모에 카리스마 있는 분위기를 가진 고려호텔의 사장이었다. 이런 그들은 어려울 때 만나 우정을 쌓아온 아버지들의 계략으로 결혼에 이르게 된다.

사랑이 전제되지 않은 결혼 생활 속에서도 두 사람은 서먹함을 몰아내고 서서히 자신들만의 신혼을 즐기게 된다. 이 즈음 알콩달콩한 에피소드들이 추가되며, 음식 못하는 아내 대신 앞치마를 두른 제갈윤까지 나타나 점차 이들이 사랑을 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을 준다. 그러던 어느날...


대략적인 줄거리로는 흔한 패턴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앞부분에서 두 사람이 우연찮게 한 침대를 사용했고 이로 인해 결혼을 하게 되는 것이라던가, 결혼은 했으돼 섹스는 하지 않는다라던가 등등으로 볼 때 그동안 나온 로맨스 소설에서 의례 한 두번 정도는 써먹은 패턴이다 싶다. 그래서 일까?

무난하나 지루했다. 책을 읽는데만 해도 며칠이 걸렸다. 눈으로 글을 쫓으면서 머리 속으로는 계속 딴 생각이 들었다. 흔하디 흔한 전개, 뒷부분을 거의 다 예측할 수 있을 정도였다. 예측 중에 틀린 건 하나도 없다. 작가가 로맨스에 대해 많이 읽은 건 알겠다. 그러다 자신도 써보고 싶었다는 건 알겠다. 그렇다면 뭔가 자기 자신만의 것을 썼어야 하지 않는가.

글은 기술이 아니라 혼으로 써야한다는 말을 들었다는 작가 후기도 봤다. 순간 이것이 혼인가? 싶었다. 미안하지만, 혼은 아니었다. 글 한편을 완결하기 위해 노력했다는 거 알지만 부디 좀 더 노력해달라 요청하고 싶다. 글은 완결만으로 완성되는 게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작가 후기에 보면 이런 말이 있다.

[모란이와 윤이가 만들어 낸 AndanteAndante는 결혼한 사람들의 한결같은 말 때문에 생겨났습니다.
"연애는 환상이고, 결혼은 현실이다."
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은 결혼해서 연애를 하는 부부 이야기를 써보는 건 어떨까? 였습니다.]

즉, 작가는 계략으로 인해 결혼에 빠지는 과정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게 아니라(1%의 어떤 것 처럼), 계략으로 결혼에 빠졌던 낯선 타인들이 서로 이끌리게 되는 과정을 그리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인지 소설의 '기' 부분에서의 내용 전개는 엄청나게 빠르다.

앞부분에서 둘이 만나게 되는 과정은 설렁설렁 넘어가고(우연이 겹친다), 결혼하는 과정 역시 설렁설렁(단지 두어 줄로 그친다), 결혼하고 나서 어색한 몇 일을 보내는 것도 설렁설렁(한 페이지로 끝낸다) 하더니 내용의 반 이상을 차지하는 건 결혼 후의 에피소드들이다.

그런데 후기를 읽고 묻고 싶어졌다. 결혼하고 나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을 그려보고 싶었다면 굳이 둘이 만나게 되는 과정을 몇 쳅터에 걸쳐 설명해줄 필요가 있었냐고.

앞부분에 군더더기를 넣을 게 아니라 프롤로그 이후 곧장 결혼으로 돌입시켰다면 어땠을까? 둘이 어떻게 결혼에 이르게 되었는지에 대해 굳이 앞에 넣어줄 게 아니라 곧장 결혼 생활로 들어가서 회상신이라던가 주인공의 독백으로 간단히 처리하는 건 어땠을까? 그럼 작가가 정작 쓰고 싶었던 '결혼 후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좀 더 길게-세밀하게 그릴 수 있지 않았을까?

아아, 그래. 어차피 장면 설정은 작가의 몫이고 또한 책이 완결되서 출판된 마당에 이런 말을 해봤자 소용없을 거다. 그걸 잘 안다. 알면서도 참...

그런건 대충 넘어가고 라도, 또 묻고 싶었던 게 있다. 이 역시 작가가 후기에 결혼하고 나서 사랑에 빠지는 사람들을 그려보고 싶었다는 문장을 읽고 나서 순간적으로 묻고 싶었다. 그 에피소드들이 진짜 사랑에 빠지는 과정이었단 말인가?

어제의 타인이 오늘 아내나 남편이란 이름을 달고 함께 살아야할 때, 그들은 꽤나 당혹스러웠을 거다. 거기다 서로에 대한 호감도 별로 없었고, 아니 반대로 첫만남에 껄끄러운 상대로 점수를 매겼는데 둘은 갑자기 결혼을 할 수밖에 없었단 말이다. 이런 주인공들이 서로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그걸 독자들에게 설득하기 위해서는 그 무엇보다 심리적 변화가 중요하지 않을까?

오늘 눈을 맞췄으면 내일은 손가락이 닿음에도 가슴 두근거리다, 모레는 은근슬쩍 상대의 손을 잡아보고 황홀경에 빠지나, 글피는 자신의 마음을 이해할 수 없어 그를 내치고, 다음 날엔 계속 그의 안색을 살피며 저 사람도 날 좋아할까 안할까 두려워하고, 그 다음 날은 따뜻한 손길 하나에 천국에 오르지만, 또 그 다음 날은 지나가는 말 한 마디에 지옥으로 떨어지는 등 주인공들이 사랑에 빠지는 과정을 세심하게 조명했어야 했다는 소리다.

물론 <안단테안단테>에서도 그런 과정이 그려져있긴 하다. 문제는 그게 대충, 단지 두어 문장으로 넘어가버린다는 소리다.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하기 위해서인지 주인공들의 감정은 어느 순간 훌쩍훌쩍 건너뛰기를 하고 있다. 어쩌면 이건 캐릭터에 일관성이 없음으로 인한 것일지도 모른다.

여주인공을 예로 들어보자.

처음의 모란은 가련하면서도 비장미가 넘지는 캐릭터였다. 어린 나이에 가까웠던 어머니를 눈앞에서 잃고, 피폐해진 아버지로 인해 외국으로 쫓기듯 나가 바이올린을 배우며 천재 바이올리니스트라 극찬을 받아 사방군데에서 러브콜이 쏟아지나 이유도 없이 한국으로 돌아온, 이른바 신비한 캐릭터였다. 더해 아름다운 외모에 주목 받는 것이 싫어 안경과 수수한 옷차림으로 외모를 감추기까지 하고 있다.

그러던 모란이, 윤과 처음 만나는 장면에서는 거칠 것 없이 당당하면서도 자존심 강한 캐릭터로 나온다. 아버지 호텔에서 열린 파티에서 바이올린을 연주하다가 무례하게 구는 손님의 콧대를 납짝하게 누를 정도로 과감하면서도 거침없다.

그러던 모란이, 아버지가 아프다는 소리에 군소리 없이 기절해버린다.

그러던 모란이, 가까워질 틈을 주지 않던 윤이 영양실조로 갑자기 쓰러지자 막무가내로 음식을 가져다 주던가, 과로하는 그를 회사에서 빼가던가 등등 마치 오랫동안 알아온 사이처럼 너무나 허물없게 나오고 있다.

그러던 모란이, 그와 에피소드를 겪으면서부터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 그 자체의 맑은 눈망울을 가진 사람으로 그려진다.

비장하고, 연악하면서도 강하고, 거침없어 보이면서도 순수하며, 보살펴주고 싶은 옆집 동생 같으면서도 여자로써 매력적인...갖출 것은 다 갖춘 여주인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한 안경을 벗으면 사람들이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기자기하면서도 동양적인 미를 갖고 있다. 완벽하다, 진짜.

이 완벽함에 인간미가 가려져 버렸다. 캐릭터에게 너무나 많은 장점을 부여하느라 그녀는 허공에 둥둥 뜬 인물상이 되어버렸다. 작가의 손끝에서 그때그때 놀아나는 꼭두각시가 된 채 읽는 나에게는 무엇하나 매력적인 면을 발견하지 못한 캐릭터가 되어 버렸다.

이러니 감정적인 변화마저 뚜렷하지 않았다. 쳅터마다 달라지는 캐릭터니 쳅터마다 다른 감정을 갖게 된다. 게다가 쳅터 안에서 조차 주인공의 감정은 들쑥날쑥 거린다.

낯선이나 다름없는 그에 대한 조심감은 한번도 찾을 수 없는 듯 허물없이 굴 때는 언제고, 바로 몇 줄 밑으로 가면 그와는 아직 거리감이 있다는 둥의 독백은 왠말이냐.

아, 정말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었다. 공중부양을 한 채 떠다니는 주인공들과 감정들은 진행되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곳으로만 흘러가고 있으니 이 소설은 그저 단어와 에피소드의 나열, 그 뿐이었다.

또한 번역체적인 말투, 예전에나 많이 사용됐을 범직한 문체가 거슬린다. 동시에 의성어들이 항상 "하하, 크큭, 호홋" 으로 끝나 굉장히 눈에 거슬렸다.

특이할만한 것은 앞부분에서 나온 남녀의 아버지들이 머리를 모아 둘을 결혼시키기로 한 것. 그 장소가 욕쟁이 할머니 집이라는 것, 또한 친구들의 우정이 숯불에 고기가 익을 때 피는 매케한 연기와 술 한잔에 딱 어울린다는 것. 그러나 이들은 주인공이 아니다.



한 마디 더) 로맨스 소설에서 심심찮게 볼 수 있는 게 있다. 한동안 왈가왈부가 많아 요즘은 찾기 힘들지만 아직도-최소한 이 소설에서는 그게 나온다.
윤과 모란이 결혼할 수밖에 없던 이유. 의도하지 않았으나 한 침대에 있던 장면을 모 스포츠 기자들에게 발각 될 순간이었다. 고려호텔의 유능한 후계자이자 사장이 여직원과 다른 호텔에서 잠을 자는 장면이 발각되면 그(혹은 그녀)의 명예가 실추될 거라는, 그래서 신문 지상을 통해 사생활이 노출될 위기에 처한 상류계층 사람들이 오명을 피하기 위해 결국 결혼을 선택 할 수밖에 없다?
미안하지만, 그런 일은 없다. 외국에서야 상류계층 사람들의 사생활이 파파라치들에게 군침도는 먹잇감이겠지만 우리 나라에서는 연예스포츠 신문 한 귀퉁이를 차지하기도 힘든 일이다. 그런 거 때문에 결혼을?
지금으로써는 있을 수도 없는, 말도 안되는 소리다. 현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면 최소한 그 정도의 기본 지식은 있어야하지 않을까 싶다. 꽃의 효능이라던가 모란에 얽힌-독자가 잘 모를 것 같은- 이야기들을 난 이만큼 알아라고 하듯 나열하기 전에 말이다.



Junk 음... 읽어봐야겠다. 요즘 느끼는 건, 설사 그 작품이 허접하다고 해도 한번 봐야겠다는 겁니다; 보고 나는 이런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 하고 자기자신을 정돈할 필요가 있는 것 같아서. 2003-09-27 X

'코코' 이봐이봐. 쓰디쓴 질타 날린 나보다 당신이 더 너무한 거 같아-_-;; 2003-09-27 X

Junk 허걱, '허접'하단 건 위 소설을 말한 건 아닌데... 하여튼 뭐든지 읽고 생각해 봐야겠단 거야요; 2003-09-27 X

'코코' 허접 때문이 아니라, '보고 나서 실수를 하지 말아야지'가 결정타인 듯. 뭐 나도 뭐든지 다른 이들의 평보다는 글을 읽고나서 직접 평가하는 게 최선이라고 보니까^^ 2003-09-27 X

Miney 실지로 글을 보면 배우는 건 많은 것 같아요. 아... 책 봐야 하는데...ㅜㅜ(집안일도 말아먹으면서 책도 안 보는 요즘;;) 2003-09-27 X

jewel 오늘 읽었음. 먼가 로맨스 구도에서 벗어난듯한 느낌 ? 기승전결에서 전이 없고 승만 있는 느낌 ? 먼가 현실에서는 절대 일어 날수 없는 꿈의 세계인 느낌  2003-10-10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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