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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그린티  

번호 : 26     /    작성일 : 2003-09-16 [01:10]

작성자 : '코코'    



노라 로버츠의 1987년 작. 원제는 'Command Performance'



노라 로버츠의 작품 중 손꼽을 만한 것은 어둠 시리즈와 같이 스릴러가 가미된 로맨스일 것이다. <그린티> 역시 스릴러가 첨가된 작품이나, 먼저 이 글은 80년대 후반작임을 기억해야한다. 그녀의 근래 작 대부분은 이미 출간되어 있기에 아마도 아직 번역되지 못한 소설이 새롭게 등장한 것 같은데, 쓰여진 년도를 생각하지 못할시엔 작가가 퇴보하지 않았나 싶은 아쉬움이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사실 훨씬 후에 쓰여졌으나 우리 나라에 먼저 출간된 소설을 앞서 보고 이 글을 뒤에 본 사람이라면 그런 느낌을 들지 않을 수 없으리라.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글은 80년 대 후반 작품이다. 아직까지 할리퀸 적인 패턴이 고스란히 길들여져 있는 작품이 대거 쏟아지던 시대에 이 글이 쓰여졌다는 소리다.

그렇게 보면 <그린티>는 꽤 반향을 불러일으킬만한 글이었다 싶다. 스토리가 약간 드라마틱하면서도 깔끔하고, 항상 나 죽었소 엎드려 남주의 선처를 바라기만 하는 여주가 나오지는 않으니까. 게다가 왕자를 구하는 지극히 평범한 미국 처녀란 설정은 당시 여성-미국 여성들의 로맨스를 자극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린티>는 <시트러스>의 후작속으로 <시트러스>의 주인공의 동생이 남주로 나온다. 코르디나라는 (가상) 왕국의 왕자 알렉산더와 미국 재벌 둘째 딸이자 한 연극단의 단장인 이브. 그들은 만날 때마다 짜릿한 대결을 펼치고 서로 상대를 싫어한다고 하면서도 은근히 신경을 쓰고 있는 등, 둘은 이미 운명의 짝이라 설정해두고 있다. 이렇게 자신의 감정조차 숨긴 채 몇 년간 반목하던 둘이 다시 만나게 된다. 그 사이 <시트러스>에서도 등장했던 악당으로 인해 왕실은 또 한번 위기를 겪게 되고, 우리의 용감한 이브는 두려움 앞에서도 도망치지 않고 그녀의 사랑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지는데...

<그린티>에서는 악당의 끄나풀이 위기를 조성하고 그 끄나풀이 누군지는 읽다보면 금방 알게 된다. 적당히 의심이 갈만한 장면을 곳곳이 심어두었으니까.

이런 플롯의 허술함이야 그렇다치고, 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이 작품에서부터 노라 로버츠의 미래가 보였던 것은 아닐까 싶다는 거다.

끝까지 상대를 오해하며 전형적으로 흐르던 당시의 세태를 벗어나 각자의 감정을 인정하기까지의 번뇌와 상대에 대한 지나친 배려 등이 갈등을 조성하고, 또한 수동적인 여주가 아니라 능동적인 여주로써 톡톡히 한몫하는 이브란 캐릭터는 꽤 매력적이지 않을 수 없었다.

앞서 말한 어둠 시리즈와 그 후작 등에서 나타난 노라 로버츠의 여주들은 대부분 강하다. 외적으로야 연약 어쩌구 하며 설명해주지만, 내면은 그 어떤 남자들보다 강하다. 그걸 굳이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여주가 하는 행동 혹은 장면에서 독자들에게 인상 깊게 심어주고 있다. 그렇다고 남주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강한 건 아니다. 보호해주고 싶은 갈망을 불러일으키면서도 동반자로써의 든든함, 그 선을 분명하게 지키는 게 바로 노라 로버츠의 여주이다. <그린티>의 여주 이브 역시 그랬고.

그러한 점에 비춰볼 때 후에 그녀가 쓴 작품들의 시초가 된 것은 이 시점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던 거다.

노라 로버츠의 스릴러는 린다의 스릴러와는 색다른 맛을 느끼게 한다. 남주 역시 린다와는 많이 다르지만 그 나름의 매력은 분명 존재한다.

<그린티>에서 보여지는 남주와 여주는 노라의 주인공들이다 싶었고, 또한 뒤늦게 출판된 점이 매우 아쉽기만 했다. 조금 더 일찍 출판되었다면 그녀의 후속작이 더 빛을 발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다.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을 말하자면, 남주가 왕위를 물려받는 자리라는 건 알겠는데 그 자리에 대동하는 책임감이나 왕좌의 무거움이 그리 사실적으로 다가오지는 않았다는 거다. 왕자가 이브를 사랑함을 인정하면서 그녀를 유리벽에 가두고 싶지 않고 어쩌고 라며 독백을 하는 장면이 있었는데 흠, 글쎄? 왜 그 독백이 우습게만 읽혔을까? 이것도 서양과 동양의 가치관에 차이려나?

아쉬움을 말하는 김에 한 가지 더. 위기감을 한창 고조하고 나서 그걸 제대로 터트리지 못한 점. 가슴이 답답해 눈물이 나올락말락 하고 있었는데 결국 나오지 못한 채 허무하게 책을 덮었다. 이 점 진짜 아쉬웠다.

이랬든 저랬든 노라의 글은 읽을만 하다. 지나간 작품이 이 정도이니 근래의 작품은 더 재미있지 않을 수 없으리라. 조만간 그녀의 글들을 다시 한번 들춰봐야겠다.




Junk 노라도 린다도 전부 좋아합니다. 말씀대로 읽을 만 하거든요. 그리고 뭣보다 정크가 사랑하는 스릴러라는 점에서 더욱 귀중하죠. 항상 멋진 리뷰 감사드려요. 보물 같은 리뷰들입니다. 2003-09-16 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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