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수 762
제목 : [로맨스] 어린 그녀  
번호 : 11     /    작성일 : 2003-08-04 [23:51]
작성자 : '코코'    

지은이/이준희
출판사/대현문화사(2003년7월)


이준희의 두 번째 장편 소설이다. <깊은 사랑>으로 전형적인 할리퀸도 우리 나라 사람 입맛에 맞게 장편으로 나올 수 있다는 걸 보여주었다면, 이 글은 사랑이란 결국 육체적 접촉으로 인해 촉발된다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사실 이 글이 작가의 첫 글이며, 한때 프리첼에 연재되었던 글이고 전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는 이 글로 인해 결국 은빛야간비행이 닫히고 말았다는 후일담이 있다.

<깊은 사랑>에서 작가의 문체는 장문이기는 하나 도시적이었다. <어린 그녀>에서의 문체는 역시 장문이기는 하나, 과장되어 있고 겉멋에 치중해 있다.

예를 하나 들어보자.

"컴컴한 방은 어떤 구원의 빛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할 지옥의 심연처럼, 가늠할 수 없는 혼탁(混濁)의 진창처럼, 전혀 확보되지 못한 시야로 인해,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의 두려움을 조장하고 그녀의 공포를 한층 배가시켰다.(어린 그녀/p.23)"

작가는 이 문장 속에서도 수많은 수식어와 형용사 등을 사용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문장들이 내용과 딱히 걸맞지 않다는데 있다.

겉멋에 치중한 글은 읽는 걸 꽤 심란하게 만든다. 과하게 치장된 문장은 숨을 쉬기 곤란하게 하고, 글의 몰입도를 떨어트린다. 게다가 <어린 그녀>에 나오는 대부분의 문장이 장문이라 읽는 내내 힘이 딸리는 걸 느꼈다.

내용 역시 딱히 마음에 드는 게 아니다. 예전 할리퀸의 대표 작가의 글 중 <유니콘의 약속>이라는 것이 있었는데 그 설정과 매우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유사하다란 소리다, 같다는 게 아니라. 설정은 같을지라도 두 글의 구성은 어느 정도 틀리니까.

<유니콘의 약속>에서 육체적 접촉이 갈등의 해소로 쓰였다면, <어린 그녀>에서는 육체적 접촉이 갈등의 시작으로 쓰이고 있다.

대략적인 줄거리를 한번 살펴보자.

어린 여자를 아내로 맞이한 남자는 바람이 불면 날아갈까 불면 쓰러질까 그녀를 고이고이 모셔오던 중이다. 하지만 철없는 아내는 딴 남자와 바람을 피게 되고, 현장을 목격한 남편은 이혼은커녕 아내를 철저하게 응징한다. 부드러웠던 섹스는 거칠어지고, 여유로웠던 경제는 궁핍해진다, 아내에겐 말이다. 입맛 까다로웠지만 정작 음식은 할 줄 모르던 아내는 어쩔 수 없이 스스로 음식을 만들어 먹어야 했고, 넓고 풍족한 집에서 쫓겨나 비좁은 공간에서 남편의 감시를 받으며 살아야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굴한 여자는 결코 아니다. 나름대로 반항을 일삼으며 점차 남편이란 존재에 눈을 떠가고 마침내 그들 사이에 아이가 생기고, 갑자기 남편의 옛약혼자가 등장해 남펀에 대한 소유욕이 생겨나게 되고...


간단히 정리한 저 내용만으로 봐도 이 글이 고차원적이라거나 내면침착형 심리 묘사가 과다하게 사용될 필요성이 있는 글은 아니라는 걸 알 것이다. 그런데 문장들은 위의 예처럼이 대부분이다. 게다가 섹스신에서의 문장은 간결하고 직설적이다.

즉, 섹스신 외의 문장들은 내용과 맞지 않아 심각한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 글이 첫글이라서 아마도 이러한 실수가 생긴 것 아닐까 한다. 하지만 <깊은 사랑>에서는 굉장히 할리퀸적인 문체였던 것으로 보아, 작가의 현재 문체는 처음 글을 쓸 때와 많이 달라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출판하기로 하고 수정을 했을 때 글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파악해 문장을 다듬었어야 했다.

일개 독자로써 지나친 간섭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직접 읽어보길. 화려한 수식어와 형용사와 별 의미도 없이 첨가된 한자를 보게 된다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내용이 고전적이라거나 혹은 깊은 사색을 필요로하는 글이라면 또 모른다. 그러나 이 글은 자유분방한 아내와 고지식하면서도 맹목적인 남편의 사랑을 그리고 있다. 또한 섹스신에서의 문장은 매우 적나라하다. 이에 발맞춰 다른 문장들 역시 심플하게 표현했더라면 극히 현대적이며 도시적인 분위기를 그릴 수 있었을 것이다.

솔직히 내용 역시 그리 마음에 드는 건 아니다. 적당히 구색을 짜맞추기는 했지만, 여주가 바람을 핀 이유에 대한 정당성을 끝까지 부여하지 못했다. 작가는 나름의 이유를 내세우기는 했지만, 독자들에게는 그 이유가 와닿지 않았다.

이는 구성에서의 문제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바람을 핀 원인의 해결이 글의 클라이막스라 아닌, 남편의 의도적인 외도를 아내에게 목격하게 함으로써 적당히 해결되도록 해버리고 만 것이 실수라면 실수란 소리다. 첫장면이 아내의 외도로 꽤 주목을 받을만한 것이었다면 도대체 아내는 그렇게 대단한 남편을 갖고 왜 외도를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 작가는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런데 작가가 한 설명이라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하게 된, 선천적으로 화려한 성격의 여주기 때문에 결혼 생활이 답답해 그냥 바람이나 쐬려고 다른 남자를 만나왔다는 거다. 어렵게 살려낸 기업을 경영하느라 밤낮을 잊으면서도 아내라면 벌벌 떠는 대단한 남편을 가진 여자가 겨우 그런 이유로 바람을 폈다는 거다.

이런 이유라면 여주는 절대 환영을 받지 못할 것이다. 현재 사회적인 분위기를 감안해서라도 절대, 절대 환영 받지 못한다.

여주에 대해 말했더니 우리 어머니 왈, 배가 불러서 그런다더라. 죽어라 몸굴려서 돈벌어봐야 그런 쓰잘데없는 생각은 안할 거라고.

아마도 남주가 그런 의도로 여주를 좁은 집에 살게 하고, 음식을 직접 하게 하는 등을 시킨 것 같지만 그 표현에 있어서 여주는 일말의 고생도 하지 않았으니 읽는내내 진짜 때려주고 싶어 혼났다. 진짜로.

아아, 아무튼 읽는 동안 머리 복잡하고 마음이 심란했던 글이었다. 한쪽에 밀춰두고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볼까 지금은 좀 사양하고 싶은 심정이다.




Jewel // 저 어린그녀 글 -_- 한글 맞아 ? 무슨말인지 당최 -_-;;  2003-08-05

Junk // 하하하; 공감이 가네요. 책을 읽지는 않았지만... 2003-08-05

Miney // 헛... 찔립니다 찔려요... 한자어투라니... 저기 마이니 방에 가믄 엄청 많은데...;; 2003-08-07

'코코' // 한자어투가 문제가 아니라 남용되었기 때문이죠. 적절하게 넣어준 한자는 오히려 글을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고, 일반적인 뜻이 아닐 때 사용된 한자는 적절하게 활용된 것이지만, 여기서는 굳이 사용할 필요가 없는 곳에까지 한자가 ()로 들어갔다는 게 눈에 거슬린 거랍니다. 저 위의 예문에서도 혼탁이라는 단어는 대부분 알고 있는 단어가 아닐까 싶네요. 200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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