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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로맨스] 비의 이름  
번호 : 3     /    작성일 : 2003-07-16 [06:34]
작성자 : '코코'    

지은이/남이서
출판사/큰나무



오늘 끝낸 글은 이거다. 사둔 건 꽤 됐는데 많이 게을러진 터라 오늘에서야 이 글을 읽게 되었다.

스토리 라인은 간단하다. 각자 다른 이유로 결혼을 한 부부가 큰 갈등으로 인해 헤어지게 되고, 여주를 찾고 싶어하던 남주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해 그녀를 되찾는다는 내용이다.

문체는 담담하다. 특이할 것도 눈에 거슬릴 것도 없어 읽기 편했다. 남주가 여주를 사랑한다고 고백하는 장면도 적절히 넣어주고, 심리적 묘사도 적절히 반복해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루했다. 중반쯤 가니 작가가 숨겨놓은 것이 무엇인지 금방 깨닫고 말았다. 작가는 마치 대단한 비밀이라도 있는 듯 분위기를 잡았지만, 글쎄올씨다...

몇 가지만 짚어보자.


1.사건은 있으나 원인과 해결이 없다.

- 여주 혜수는 기구한 팔자를 지니고 있다. 병으로 앓던 어머니는 다들 지쳐갈무렵 지긋지긋한 인연을 끊고 하늘로 갔고, 남은 아버지는 상을 당한지 두 달만에 새어머니를 들인다. 새어머니에게는 아들이 둘 있는데, 그 중에 한 명이 혜수를 좋아한다. 이 남자가 주인공은 아니다. 단지 중요한 조연일 뿐. 정작 남주는 따로 있다. 남주는 억지로 결혼을 강요했고 여주는 집안 사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결혼을 했는데 결국 남주의 의심 때문에 아기까지 유산했고 이혼을 한 후-알고 보니 혼인 신고도 안했다- 혼자 외딴 지방에서 학교 선생을 하고 있다.

저 짧은 문장에서도 여러 가지 일이 있다. 그런데 저건 다 읽는 내내 내가 상상해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다. 작가는 전혀 설명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의붓오빠인 창혁에 대한 부분. 이 사람이 의붓오빠란 말은 단 한번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엔 남주가 의심하는 사람이 그저 다른 남자려니 했다. 복선을 깔아두기는 했지만, 복선을 깔았다면 뒷부분에서는 그걸 해결해줘야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작가는 아무 말도 없이 니들이 알아서 이해해라고 내버려 둔다. 게다가 남주가 결정적으로 의심을 할 수밖에 없었던 장면이 바로 창혁과 혜수가 호텔에 있는 장면인데, 그들은 왜 호텔로 갔는지 전혀 설명이 없다. 남주 진우는 친누나인 지희의 전화를 받고 그 호텔로 쳐들어간 건데, 지희는 그들이 호텔에 있다는 건 또 어떻게 알았나? 의문, 의문, 의문 온통 의문 투성이다. 이 장면만이 아니다.

진우가 혜수에게 결혼을 강요한 것도 나중에야 그 이유가 약간 나온다. 또한 혜수가 결혼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집안이 어려워 그걸 남주가 막아준다고 했고 또한 그녀가 아이를 가졌을지도 모른다는 거였는데 나중에 보면 남주는 불임이었다. 그래서 정작 여주가 아이를 가졌을 때 떼라고 한다. 말이 되는가? 아기를 가졌을지도 몰라서 결혼을 해야한다고 말해놓고 정작 그 자신은 불임이란다. 그래, 그럴 수도 있다. 여주를 갖고 싶어 몸살이 났으니 어떤 이유라도 붙여서 갖고 싶은 욕심은 이해하겠다. 그렇다면 그 이유를 작가는 설명을 해줘야했다. 읽는 사람이 혼란하지 않도록 사건의 원인과 그 해결 과정을 순차적으로 그려줘야한다는 거다.

순차적으로 그리고 싶지 않다면, 그것도 좋다. 앞부분에 많은 복선을 깔아두고 글을 진행시키면서 풀어나간다는 스타일도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진행시키며 새로운 복선 까느라 정신이 없었는지 작가는 앞 부분에 깐 복선을 명료히 설명도 안해주고 넘어간다. 어떤 건 나중에 가서 마무리 짖느라 급하게 몇 줄로 끝내고 말기도 하고 또 어떤 건 끝까지 안 나온다. 이는 분명 작가의 실수다.

작가는 그 글을 전부 알고 있다. 그의 머리 속에서 나온 것일 테니 주인공들의 심리와 어떤 일이 왜 발생했는지 잘 알고 있을 거다. 하지만 독자는 모른다. 독자는 주인공들의 발자취에 따라 내용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거다. 그 발자취를 한 걸음 한 걸음 정확하게 짚어주지 않으면 주인공이 왜 그랬던 건지, 거기서 왜 그런 생각을 했던 건지, 왜 그런 사건 때문에 힘들어하는 건지 몰라 종잡을 수 없게 된다.

작가 혼자만이 알고 혼자 풀어나가고 혼자 끝맺어봤자 독자에게 아무런 설명도 하지 못했다면 그건 실패라고 생각한다.


2.갈등을 심화시킨 장면을 반복하지만, 끝까지 그 개연성를 제시하지 못했다.

- 하나의 장면이 엄청나게 자주 반복된다. 예를 들어 앞서 말한 호텔신. 이 장면은 처음엔 여주의 시점에서 약간 진행되다가 뒤이어 남주의 시점에서 조금 더 진행되다가 하는 등 여러번 재생 반복해준다. 물론 처음엔 점처럼 시작했다가 나중엔 큰 원이 되는 식으로 진행시키나 단지 그 장면을 그려줄 뿐, 왜 그런 장면이 나온 것인지는 단 한마디도 없다. 이 소설 속에서는 이러한 예가 무수히 많다.

한 장면을 여러번 그려주고 있으나, 중요한 것은 그 장면으로 인한 주인공들의 고뇌와 갈등만이 아니다. 그 장면이 왜! 어째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작가는 독자에게 설명할 책임이 있다. 그 일이 일어난 과정은 생략하고 그저 그런 일 때문에 얘네가 갈등하고 있어 라고 한다면...그건 설득력을 잃어버리고 심지어 이야기의 흐름 조차 맥없이 끊고 마는 일이 된다.


3.시간상 배열이 아닌, 의식의 흐름에 따른 배열로 이루어져 있으나 각각의 장면에 연결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 앞부분에서 여주와 남주가 처음 만나는 장면이 있다. 이 장면에서 남주는 여주를 처음 본 게 아니라는 결론을 유추할 수 있다. 남주의 독백에서 여주를 보았던 장면을 설명하고 있다. 그 이후 남주는 여주에 대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고, 그래서 사귀게 되는데 이 사귀는 장면은 한번도 안나온다. 게다가 여주가 유산을 했는데 유산을 하려면 둘이 섹스를 해야하는데도 불구하고 어디서 어떻게 섹스를 했는지에 대해서는 나중에 잠시 스쳐만 간다. 왜 그 장소에 갔는지, 왜 임신까지 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도 안나온다. 이것은 앞에서 지적했던 것과 일맥상통하는데,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작가의 스타일 때문인 듯 하다.

작가가 버지니아 울프를 좋아하는 것은 아닌지 궁금하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글을 진행시키는 것이 버지니아의 특징이다. 현재의 장면을 그리다가 주인공들이 과거의 장면을 회상하는 문장이 몇 개 나오는 등으로 주인공이 현재 왜 이렇게 고뇌하고 어려움이 처했는지 대한 힌트를 준다. 하지만 버지니아는 그래도 그 과거가 왜 일어나게 되었는지 대한 최소한의 설명은 해주고 넘어간다. 그러나 이 글의 작가는 그걸 잊고 말았다.

감정만, 오로지 주인공들의 감정만을 위해 몇 가지 장면을 설정해놓고 그걸 제대로 연결시키 주지 않은 채 토막 토막 맛만 보여주고 있으니, 독자 혼자 추리하고 해석하고 꿰어맞춰서 판단하란 소리인가? <비의 이름>은 추리소설이 아닌데 말이다. 그리고 추리 소설도 나중엔 다 해석 해주는 기본을 갖고 있다.


4.주인공이 이야기를 진행하는 것이 아닌, 주변인들이 진행시키고 있다.

- 로맨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주인공이다. 주인공들의 시점으로 만나고 갈등하고 헤어지고 다시 만나는 등으로 진행되어야 감정 이입을 할 수 있다.

언젠가 누군가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어떤 작가의 이혼에 관한 소설은 로맨스가 될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 이유인 즉슨, 남주인공이 조연에게 눌려버렸고 갈등을 해소하는 것도 조연이며, 마지막 에피소드까지 여주인공과 남주인공이 아닌, 여주와 남조의 종지부로 맺음지어져 이 글은 로맨스로 볼 수 없다는 거였다. 그 말에 어느 정도 공감을 하는 게, 아무리 많고 다양한 성격의 조연들이 나온다고 해도 로맨스에서 그들은 약방의 감초일 뿐, 정작 약이 되는 것은 두 주인공이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볼 때, <비의 이름> 역시 로맨스라고 하기엔 힘들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주인공은 그대로인데 이야기 진행은 온통 조연들이 펼쳐가기 때문이다. 조연으로 나오는 이들도 다양하다. 여주의 친구들, 친구의 남편이자 여주의 선배, 여주의 친동생과 의붓동생, 남주의 친동생과 친 누이 외에도 그들의 부모, 한번 나오고 마는 친구들까지 하여간 엄청난 조연수를 자랑한다. 이들 중에 남주 진우의 동생과 여주의 친구와 그 남편이 주인공들을 가운데 두고 자기네들끼리 이야기를 진행시킨다. 둘이 어떤 생각이고 어떤 상태인데 다시 합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며 둘은 내버려 두고 조연들끼리 짝짝꿍 하고 있다. 주인공은 가라는데로 가고, 오라는 데로 오기만 한다. 여주는 계속해서 유산 했던 것 때문에 아파하고 남주는 계속해서 여주를 다시 찾고 싶어 안달하는 게 다다.

보통 로맨스에서 여주가 소극적이라면 남주가 적극적으로 글을 이끌어간다. 이와 반대도 있고. 그런데 이 글은 주인공들이 아닌 조연이 여기 저기 포진되어 진행시키고 있다. 물론 해피엔딩을 위해 둘의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 가슴 깊이 감춰두었던 고백 같은 건 주인공들이 직접하기는 하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면 그것 역시 작가의 실수다라고 말하고 싶다.


산만한 구성에, 쓸데없이 반복되는 장면에, 명확하지 못한 이유 규명에, 주연보다는 조연이 설치니 글을 읽는 내내 집중이 되지 않아 힘들었다. 작가가 조금만 더 신경을 썼더라면 좋은 글이 될 수도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긴다. 나쁘지는 않은 글이다, 지루하고 산만한 대신 가끔 잔잔한 시를 읽는 듯한 문장을 발견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대적인 스타일의 변화를 꽤하지 않는 이상, 이 이상의 글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jewel 일주일 전에 빌려놓고 아직도 30장을 못넘어 가고 있는 소설이지 -_- <비의 이름> ... 참 문체는 잔잔하고 서정적이라 맘에 드는데 당최 집중이 200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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