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junk paradise
- 라운지
- 자유게시판
글 수 1,868
어제 토요일. 외출할 일이 생겨서 버스를 타고 갔다가, 지하철을 타고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집근처 역사는 항시 조용하고 사람도 드물었기에 겉보기에는 큰 변화를 느끼지 못한 상태였죠.
버스카드를 지하철 역사내에 있는 자동충전소에서 자주 충전하기에 기계 앞에 카드를 놓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4월14일자로 매표소가 폐쇄되었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더군요. 그 옆에는 지하철노조가 매표소를 다시 열게 해달라는 호소문을 붙여놨고요.
그러고 보니 충전소 옆 매표소는 불이 꺼진 상태였습니다. 초등학교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만이 자동매표소 앞에서 어떻게 표를 뽑아야하는지 우왕좌왕하고 있었고요.
알림글을 읽는 동안 모자를 쓴 한 할아버지가 지나갔습니다. 주황색 모자에는 안전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습니다.
잠시 후 한 할머니가 나타나 매표소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표를 뽑으면 안되지 하며 호통을 치시더군요. 자주색 자켓을 입고 친절봉사 등의 띠를 두른, 지하철 역사 내에서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공시된 안내문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와 안전을 위해 매표소를 폐쇄하고, 매표소 직원 대신 안전요원으로 대체하므로 표는 자동발권기를 이용해주십시오."
자동발권기 앞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봉사요원인 할머니가 뭔가를 가르쳐주시는 듯했지만, 저조차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시더군요. 아이들에게는 더욱 이해못할 설명이었겠죠. 표를 다 뽑고 나서도 이거 맞는지 몰라서, 아이들의 얼굴은 불안해보였습니다. 아이들은 표를 들고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일단 할 일을 끝냈다 판단했는지 할머니는 뒤돌아서서 매표소 앞에 놓아둔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마침 안내문구가 적힌 쪽이라 저는 "실례지만요..."라며 운을 뗐습니다.
나: "여기 안전요원이 어디있어요?"
할머니: "뭐?"
나: "이 안내문에 보면 매표소 닫고 안전요원 배치한다고 했는데, 그 안전요원이 어디있는 건가요?"
할머니: "요원? 잘 봐봐. 표는 저기서 찾는 거야."
나: "그건 아는데요, 제가 궁금한 건 요원이거든요. 요원이라는 건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표를 찾는 게 아니라 안전을 책임질 사람이 어디있냐고 묻고 있는 거거든요."
할머니 : "......"
나: "여기 젊은 사람은 없어요? 젊은 남자요."
할머니 : "저쪽에 있겠지."
나: "밑에서 왔는데 그런 사람 없던 걸요?"
할머니 : "......"
나: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뒤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혼잣말인양 말하시더군요.
"별 것도 아닌 걸 다 알려고 지랄이......"
순간 열이 확 치솟아올라서 돌아봤습니다.
"그런 건 알아야하는 거거든요?"
그래도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인지라 욕은 못하고 말았습니다만-_-
집에 돌아와 찾아봤습니다. 지하철 공사는 윤리경영을 모토로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도시철도 윤리헌장의 제일 첫번째가 바로 안전입니다.
"하나. 우리는 고객에게 안전하고 정확한 운행과 높은 품격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신뢰를 확보한다."
오늘 제가 겪은 일만으로도 저 문장에서 벌써 두 가지가 어긋났습니다.
'안전하고 / 높은 품격의 서비스'
이를 제공하지 못했으니 최소한 저에게는 신뢰 확보가 불가능하게 되셨습니다.
할머니는 모르셨겠지만, 전 안전이라고 써있는 모자를 쓴 할아버지를 봤거든요. 그 분이 혹시 매표소를 폐쇄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안전의식을 지니셨고, 부지불식간의 사고에 능숙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안전요원이신건가요?
당당히 외치는 '품격 높은 서비스'는 어디로 갔나요?
'요원'을 자동 매표기로 착각하시는 할머니가 하루에도 수 백명 수 천명 오갈 장소를 지키며 능숙하게 서비스하실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매표소 직원이 있었더라면, 아이들은 자동매표기 앞에서 한참을 헤매지 않았을 겁니다. 매표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거긴 얼마야, 얼마를 내면 된다고 설명해주섰을 테니까요. 친절하지는 못해도 아이들이 쉽게 표를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겠죠.
만일 한 할머니가 계단을 올라오시다가 넘어지거나 다치셨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매표소 직원이 있었다면 이 직원이나 공익요원이 달려갔을 겁니다. 지하철을 내리고 올라오는 곳 바로 앞에 매표소가 있으니까요.(참, 공익요원은 어디로 갔죠? 전에는 항상 보이던 공익요원의 청록색 제복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군요.)
지하철 공사는 안전을 이유로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 캠페인을 두줄서기 캠페인으로 조정했습니다. 이유는 '에스컬레이터의 잦은 고장의 원인이 한줄서기로 비롯된 것이며 이는 선진국에서도 인정한 사항이다. 고객의 안전을 위해 두줄서기로 바꿔야한다'였죠. 뭐 한때 한줄서기를 캠페인할 때도 선진국 운운하더니 그 문구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지하철 내부를 지나오는 동안 변화는 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텅비었던 통로에 간이 벽이 설치되고, 점포임대문의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더군요. 전화번호와 함께요.
점포를 임대하게 되면 수익이 생기겠죠? 매표소를 닫았으니 인원감축으로 인해 수익이 생기겠죠? 할머니, 할아버지를 저렴한 인건비로 혹은 무료봉사로 활용하니 전보다 손해는 덜 보겠죠?
전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서비스요원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라서 안전요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표소 직원이 있고, 공익요원이 있고, 할머니 봉사요원이 있고, 할아버지 안전'보조'요원이 있었더라면 저의 어제는 전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될 뿐입니다.
하지만 제 바람과 달리 현실은 이렇습니다. 매표소 직원, 공익요원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형광등만 켜둔 역사를 할아버지 안전요원과 할머니 서비스요원만이 지키고 계십니다.
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제 하루 지하철 공사가 표방하는 '안전과 품격높은서비스'를 아주 치떨리게 경험하고 왔습니다-_-
며칠전 정부에서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발빠르게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죠. 공적인 부분에서 실효성이 있는 공기업이라고 해도 반드시 민영화를 추친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상수도사업 민영화, 한국전력 민영화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 중에 지하철 공사 역시 빠질 수가 없을 겁니다. 공사측의 주장에 따르면 매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으니 아마도 민영화 사업 중에 제1순위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나라꼴 참 잘 돌아가는 군요-_-
버스카드를 지하철 역사내에 있는 자동충전소에서 자주 충전하기에 기계 앞에 카드를 놓고 잠시 주변을 둘러보던 중이었습니다.
그때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4월14일자로 매표소가 폐쇄되었다는 안내문이 적혀 있더군요. 그 옆에는 지하철노조가 매표소를 다시 열게 해달라는 호소문을 붙여놨고요.
그러고 보니 충전소 옆 매표소는 불이 꺼진 상태였습니다. 초등학교 정도로 보이는 아이들만이 자동매표소 앞에서 어떻게 표를 뽑아야하는지 우왕좌왕하고 있었고요.
알림글을 읽는 동안 모자를 쓴 한 할아버지가 지나갔습니다. 주황색 모자에는 안전이라는 글씨가 박혀 있었습니다.
잠시 후 한 할머니가 나타나 매표소 앞에서 떠나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그렇게 표를 뽑으면 안되지 하며 호통을 치시더군요. 자주색 자켓을 입고 친절봉사 등의 띠를 두른, 지하철 역사 내에서 자원봉사나 아르바이트를 하시는 분 같았습니다.
공시된 안내문의 내용은 대략 이러했습니다.
"더 나은 서비스와 안전을 위해 매표소를 폐쇄하고, 매표소 직원 대신 안전요원으로 대체하므로 표는 자동발권기를 이용해주십시오."
자동발권기 앞에서 아이들은 여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습니다.
봉사요원인 할머니가 뭔가를 가르쳐주시는 듯했지만, 저조차도 알아듣지 못할 말을 하시더군요. 아이들에게는 더욱 이해못할 설명이었겠죠. 표를 다 뽑고 나서도 이거 맞는지 몰라서, 아이들의 얼굴은 불안해보였습니다. 아이들은 표를 들고 한참을 그 앞에서 서성거렸습니다.
일단 할 일을 끝냈다 판단했는지 할머니는 뒤돌아서서 매표소 앞에 놓아둔 의자에 앉으셨습니다. 마침 안내문구가 적힌 쪽이라 저는 "실례지만요..."라며 운을 뗐습니다.
나: "여기 안전요원이 어디있어요?"
할머니: "뭐?"
나: "이 안내문에 보면 매표소 닫고 안전요원 배치한다고 했는데, 그 안전요원이 어디있는 건가요?"
할머니: "요원? 잘 봐봐. 표는 저기서 찾는 거야."
나: "그건 아는데요, 제가 궁금한 건 요원이거든요. 요원이라는 건 사람이라는 뜻이잖아요. 표를 찾는 게 아니라 안전을 책임질 사람이 어디있냐고 묻고 있는 거거든요."
할머니 : "......"
나: "여기 젊은 사람은 없어요? 젊은 남자요."
할머니 : "저쪽에 있겠지."
나: "밑에서 왔는데 그런 사람 없던 걸요?"
할머니 : "......"
나: "알겠습니다. 그럼 수고하세요."
뒤돌아서려는데 할머니가 혼잣말인양 말하시더군요.
"별 것도 아닌 걸 다 알려고 지랄이......"
순간 열이 확 치솟아올라서 돌아봤습니다.
"그런 건 알아야하는 거거든요?"
그래도 나이 지긋하신 할머니인지라 욕은 못하고 말았습니다만-_-
집에 돌아와 찾아봤습니다. 지하철 공사는 윤리경영을 모토로 경영을 하고 있습니다.
서울도시철도 윤리헌장의 제일 첫번째가 바로 안전입니다.
"하나. 우리는 고객에게 안전하고 정확한 운행과 높은 품격의 서비스를 제공하여 신뢰를 확보한다."
오늘 제가 겪은 일만으로도 저 문장에서 벌써 두 가지가 어긋났습니다.
'안전하고 / 높은 품격의 서비스'
이를 제공하지 못했으니 최소한 저에게는 신뢰 확보가 불가능하게 되셨습니다.
할머니는 모르셨겠지만, 전 안전이라고 써있는 모자를 쓴 할아버지를 봤거든요. 그 분이 혹시 매표소를 폐쇄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 안전의식을 지니셨고, 부지불식간의 사고에 능숙하게 대처하실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안전요원이신건가요?
당당히 외치는 '품격 높은 서비스'는 어디로 갔나요?
'요원'을 자동 매표기로 착각하시는 할머니가 하루에도 수 백명 수 천명 오갈 장소를 지키며 능숙하게 서비스하실 수 있다고 보시는 건가요?
매표소 직원이 있었더라면, 아이들은 자동매표기 앞에서 한참을 헤매지 않았을 겁니다. 매표하는 아저씨에게 물어보면 거긴 얼마야, 얼마를 내면 된다고 설명해주섰을 테니까요. 친절하지는 못해도 아이들이 쉽게 표를 살 수 있도록 도움을 줄 수 있었겠죠.
만일 한 할머니가 계단을 올라오시다가 넘어지거나 다치셨다고 가정해봅시다. 이때 매표소 직원이 있었다면 이 직원이나 공익요원이 달려갔을 겁니다. 지하철을 내리고 올라오는 곳 바로 앞에 매표소가 있으니까요.(참, 공익요원은 어디로 갔죠? 전에는 항상 보이던 공익요원의 청록색 제복도 오늘은 보이지 않았군요.)
지하철 공사는 안전을 이유로 에스컬레이터 한줄서기 캠페인을 두줄서기 캠페인으로 조정했습니다. 이유는 '에스컬레이터의 잦은 고장의 원인이 한줄서기로 비롯된 것이며 이는 선진국에서도 인정한 사항이다. 고객의 안전을 위해 두줄서기로 바꿔야한다'였죠. 뭐 한때 한줄서기를 캠페인할 때도 선진국 운운하더니 그 문구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만.
지하철 내부를 지나오는 동안 변화는 또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텅비었던 통로에 간이 벽이 설치되고, 점포임대문의가 적힌 종이가 붙어있더군요. 전화번호와 함께요.
점포를 임대하게 되면 수익이 생기겠죠? 매표소를 닫았으니 인원감축으로 인해 수익이 생기겠죠? 할머니, 할아버지를 저렴한 인건비로 혹은 무료봉사로 활용하니 전보다 손해는 덜 보겠죠?
전 많은 걸 바라지 않습니다. 할머니가 서비스요원이라고 무시하는 건 아닙니다. 할아버지라서 안전요원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매표소 직원이 있고, 공익요원이 있고, 할머니 봉사요원이 있고, 할아버지 안전'보조'요원이 있었더라면 저의 어제는 전과 다르지 않았을 거라 생각될 뿐입니다.
하지만 제 바람과 달리 현실은 이렇습니다. 매표소 직원, 공익요원은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전기료를 아끼기 위해 최소한의 형광등만 켜둔 역사를 할아버지 안전요원과 할머니 서비스요원만이 지키고 계십니다.
네, 참으로 대단하십니다.
어제 하루 지하철 공사가 표방하는 '안전과 품격높은서비스'를 아주 치떨리게 경험하고 왔습니다-_-
며칠전 정부에서는 공기업의 민영화를 발빠르게 추진하겠다는 발표를 했죠. 공적인 부분에서 실효성이 있는 공기업이라고 해도 반드시 민영화를 추친하겠다고 굳게 다짐하듯 말했습니다. 의료보험 민영화, 상수도사업 민영화, 한국전력 민영화 기타등등 기타등등. 그 중에 지하철 공사 역시 빠질 수가 없을 겁니다. 공사측의 주장에 따르면 매해 막대한 손해를 보고 있으니 아마도 민영화 사업 중에 제1순위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나라꼴 참 잘 돌아가는 군요-_-
그러고 보니 몇 달 전부터 제대로 뉴스를 본 적이 없는 거 같아. 보면 속 터지고 화나는 일들 뿐이었으니까. 앞으로 남아 있는 날들을 생각하니 새삼 눈앞이 캄캄하구만-_- [11][01][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