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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에 기쁜 소식 하나.
쌀이 왔습니다!! ヽ(*´∀`*)ノ
이 기쁨을 누구와 나눠야 할까요... (그 전에 시골집을 몇 번씩 폭파해 버리려 생각했지만, 안하길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건 그런데...
어머님은 아직도 시골에 계십니다...
1. 어머님이 내려가신 것은 일요일. 쌀이 올라온 것은 월요일 저녁.
정말 사람을 보내길 잘했다고 생각될 정도로 빠른 일처리였습니다만... 전 쌀을 맞이하기 전에 잠시 뚜껑이 열렸더랬습니다.
한참 바쁜 월요일 오후 5시 경. 갑자기 다리가 떨리기 시작해서 전화를 받았더니.
어머님 : 얘. 쌀 도착했을 거야.
나 : 녀석이 받을 테죠.
어머님 : 그건 그렇고. (의미심장한 잠시간의 침묵이 있은 후) 얘. 잘 부탁한다.
나 : 엄마?
어머님 : 온천이 좋구나...
나 : 엄마. 엄마! 여보세요! 여보세...
무심히 끊긴 전화기에서는 뚜뚜 소리가 크게 울립니다. 그렇지만 바빠서 어머님께 전화 걸어서 따질 여유도 없었어요...
그리고 바쁜 것이 조금 정리되고 난 후 떠올린 기억 하나.
... 바뀐 외삼촌댁 전화번호, 까먹고 있다...
어쩜 이렇게 바보일까요...
어머님이 원망스러워서, 순간적으로 외삼촌댁에 자객을 보낼까 심각하기 고민했습니다만. 돈이 없어서 참아버렸군요.
... 8월에 아버지랑 싸우고 (부침개에 부추를 넣느냐 마느냐 하는. 어찌 보면 범우주적으로 사소한 문제였는데) 짐 챙겨서 나가셔서 추석 전전날에 돌아오셔놓고선...
한 달도 되기 전에 또 시골집에 가시는 것은 직무 유기에요 어머님!!
(그렇지만 집으로 들어와서 그득그득 쌓인 쌀자루를 보며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는...;;;;)
2. 그리고 화요일.
원래는 월요일 새벽에는 세탁기만 돌리고 그냥 잘 생각이었는데, 세탁기가 돌아가고 빨래를 널 동안 집안에 '모종의 일' 이 일어나 버려서 밤을 새버렸습니다. 이왕 그렇게 된 거, 오랜만에 쌀을 씻으며 행복한 기분으로 밥을 해서 우리집 남정네들을 먹이고 두 시간만 자자 싶어서 누웠는데.
30분도 안되어 전화벨이 울리잖아요... ㅠㅠ (이런 제길슨.)
나 : 시사 영어학원 다니고 있고, 사미사 일본어학원 다니고 있고, 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은 안하고 아무것도 안 사욧! (... 아침에 저희 '집' 으로 전화거시는 분은 저의 이런 멘트 듣게 되실겁니다...;;;;;)
아버님 : 저기 딸내미.
나 : ... 핸드폰 놓고 나가셨어요?
아버님 : 아니 그게 아니라...
나 : 그럼 지갑 놓고 나가셨어요?
아버님 : 아니 지갑은 있어.
나 : ... 그럼 보일러 틀어놓고 나가셨어요? 어쩐지 따뜻하더라...
아버님 : 끄고 갔다. 그런데 뭔가 잊은 것이 있는 듯 해서...
나 : 가스벨브도 잠갔고, 베란다 문도 잠갔고, 이 녀석 들어오면 문단속하고 청소하고 잘 건데요.
아버님 : ... 아들내미, 나갔냐?
나 : 예.
아버님 : ... 그 녀석 오늘 용돈 줘야 하는데. 점심값이 없을텐데...
나 : 하루 굶는다고 안 죽어요.
일어난 김에 청소기를 돌렸습니다. 여기까진 좋았는데 결국 잠이 쏟아져서, 걸레질은 뒤로 미루고 잠이 들었는데...
알바생 김군 : 누님. 누님.
나 : 시끄러.
알바생 김군 : 누님. 방 문 좀 열어 봐 (문 잠그는 것은 습관)
몽롱한 상태에서 어찌어찌 문을 열었는데, 한참 뒤에 누군가 몸을 더듬는 느낌이 듭니다... -_-
나 : 졸려. 비켜.
알바생 김군 : 어찌된 게, 방에 땡전 한 푼 없냐?
나 : 니 유리값 대느라 이번달 월급 써 버려서 돈이 없어. 차비 없으면 교통카드 가져가. 난 걸어갈테니까.
알바생 김군 : 교통카드로는 밥 못 사먹잖아. 일어나 바바.
... 반쯤 꿈나라에서 헤매고 있는 저에게 동생의 칭얼거림이 들릴리가 만무하겠죠...
게다가 전 생각 외로 예민해서, 일단 잠에서 깨면 적어도 한시간 정도는 다시 못 잡니다. 그런데 이 자식.
계속 발로 굴려가면서 괴롭히잖아요... ㅠㅠ (밤샜다구. 밤샜단말이다!!)
나 : ... 지옥으로 보내줄까?
알바생 김군 : 점심값이 없는 것이 지옥이야!
순간적으로 저는 부엌의 칼이 몇 자루 있나가 떠오르면서. 만약 동생을 죽이면 징역을 얼마나 살까. 를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없는 돈이 어디서 나온답니까. (엄니. 도대체 왜 이런 걸 낳으셔서 제 인생을 이렇게 만드셨나요...)
출근해야 할 텐데, 근 한 시간을 돈 내놓으라고 닥달을 하는 통에 눈이 벌개졌습니다. (그 뒤로 잠을 못 잔 것은 물론입니다.)
그리고 피곤한 몸을 이끌고 퇴근했더니만...
두 남정네가 라면 끓여서 술을 진탕 마시고는 싱크대에 술병까지 담가버렸군요... (아프지만 않으면 두고 봅시다.)
3. 그래서 오늘 아침에 출근할 때는 집에 있는 라면을 방으로 가져다 놓고 문을 잠그고는 냉장고 냉동실에 이런 쪽지를 붙였습니다.
다행히도, 라면은 끓여먹지 않았습니다만. 김치통을 엎어놓고는 치워놓질 않아서... ㅠㅠ
어머니. 제발 빨리 돌아와 주세요...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