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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개 | 목차 | ||||||||||||
| 소개 |
| ★이 책은 나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말없이 고이 보내드리오리다. 가시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긴 어딜 가시려고! 흥! 3.93킬로미터(=10리)도 못 가서 네 차 타이어 펑크 나게 이미 조치를 취해뒀거든? 아마 밤길도 조심해야 할 거야.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네 우편물도 종종 분실 될 예정이고. 쿨한 척 고이 보내 줬다간 내가 먼저 화병에 걸려 죽지 싶으신 분들. 그 죽일 놈의 사랑에 처절하게 배신당한 짜증에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던 동지들에게 ‘그놈한테 복수하는 방법. 가슴이 후련해져서 두고두고 절대 그놈 생각 안 하는 방법. 오히려 그 생각만 하면 기분 좋아 죽겠는’ 그런 복수의 기술을 아낌없이 전수해드리고 싶은 소설 『보람찬 복수』. 믿었던 연인의 배신에 그만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린 여린 심성의 소유자 유재은은 헤어진 놈의 집을 털기로 한다. 놈이 이사가 버린 그 집에서 자칭 ‘복수의 대가’를 만난 재은은 진정한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기 위한 혹독한(?) 트레이닝을 시작하고, 우여곡절 끝에 헤어진 전 남친에게 해 줄 수 있는 가장 멋진 복수에 성공한다. 그러니까 그 멋진 복수가 뭐냐면, 그놈보다 백만 배 더 멋진, 훌륭한 아저씨와 새로운 사랑을 시작하는 것. 보란 듯이 그 아저씨와 천년만년 알콩달콩 깨를 볶는 것이다! 보람찬 복수 4*6판 |반양장 |448페이지 |값 9,500원 ISBN 978-89-91396-74-6(03810) ★지은이 고은상 완결작「나는 너의 진짜 이름을 알고 있다」와 미완결작「로망 이루다」가 있다. 현재는 다음 시놉시스를 쓰느라 고심 중이다. 인생은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다. 알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번번이 인생에게 배신당할 줄은 몰랐다. 아주 어릴 적엔 부모님이, 지금은 애인이 그랬다. 딱 5분 원망했을 뿐인데 그가 떠났다. 착하게 열심히 살아도 인생은 가장 필요한 사람을 한순간에 가져가 버린다. 그래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다. 마음대로 사는 것이다. 계획 없이. 착하지 않게. 이제는 자신에게서 더 가져갈 것도 없으니까. 가장 먼저, 헤어진 놈의 집을 털기로 했다. 실은 헤어진 게 아니라 차인 거다. 터는 것도 아니다. 준 걸 되돌려 받으러 가는 거다. 다만 집주인의 허락을 구하지 않았을 뿐이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그녀의 촌스러운 생각에 지나지 않을 뿐, 늘 그렇듯 인생은 심지어 짓궂기까지 하다. 우선 전 남친 집 잠입에는 성공하나, 발빠른 놈은 이미 이사를 간 후였다. 대신 자다 깬 낯선 아저씨 한 분과 조우한다. 도둑 주제에 놀라 기절을 하고 엉엉 울며 깨어나서는 그 아저씨의 위로에 감동까지 받는다. 전직 댄스 가수였고 자칭 ‘복수의 지존’이라는 이 잘생긴 아저씨, 복수의 기술을 전수해 주겠다며 두 팔을 걷어붙인다. 계획 없이 한번 살아 보겠다던 좀 전의 다짐이 무색하게, 낯선 아저씨의 부추김에 힘입은 그녀, 이름도 거창한 ‘복수 노트’를 만들기에 이르는데! 환상적으로 안 어울리는 복수 커플의 좌충우돌, 그들의 복수는 과연 뜻대로 보람찰까? |
| 목차 |
| 1. 복수의 지존을 만나다 2. 복수의 태초에 무지개가 있으니 3. 복수 제자, 글 선생 되다 4. 복수 지존, 제자에게 혹하다 5. 무지개 타고 온 복수 지존, 시푸르딩딩하게 위장하다 6. 복수 no.1: 타이어 죽이기 7. 흔들리는 복수 8. 복수 no.2: 외로울 땐 날 불러 주세요 9. 복수, 핑크빛으로 물들다 10. 복수 no.3: 출장 복수 11. 복수도 식후경(食後景) 12. 복수, 길을 잃다 13. 복수 no.4: 입맞춤, 복수는 이제 그만 14. 안녕, 복수 15. 당신의 빤스는 영원히 나의 것 16. 그래도 영원한 복수, 세상의 모든 적과 싸우며 에필로그 “다 울었어?” 대답할 기운조차 없어, 재은은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남은 담배 다 없애고 컵 찾으러 다닐 동안이니까,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됐네. 이젠 팽겨서 울고 싶어도 못 울걸?” “이제 안 울어요.”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짠 재은은 안고 있던 쿠션을 내려놓았다. 몸을 일으키던 재은은 통증 때문에 몸이 동그랗게 말아질 정도다. 소파에 엎드려서 울었더니 고개와 등이 뻣뻣했다. “이거나 마셔라.” 승현은 보험회사 이름이 박힌 촌스러운 분홍색 컵을 내밀었다. “감사합니다.” 한 모금 마시던 재은은 깜짝 놀랐다. 물이 아니라 술이다. “우리 집엔 액체라곤 술뿐이라 어쩔 수가 없다. 그래도 비싼 발렌타인이니까 꾹 참고 먹어.” “……네.” 평소라면 쓰고 맛도 없는 술이라며 거들떠보지도 않았을 테지만, 지금은 그냥 마시기로 했다. “어이, 천천히 마셔. 이게 보리찬 줄 알아?” “뭐, 이것도 계속 마시니까 괜찮네요.” 재은은 다 마신 플라스틱 컵을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네가 오늘 술이 받는 모양이다?” “네.” 날이 날이니만큼 술이 달게 느껴진다. 재은은 촌스러운 분홍 컵을 잠시 바라봤다. “더 줄까? 아, 잠깐. 오해하지 마라. 널 어떻게 해 보려고 술 먹이고 이런 거 아니니까.” 술병을 손에 쥔 승현이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런 생각 안 했어요.” ‘울기 전까지는 좀 했지만요.’라고 덧붙이려다가, 재은은 고개만 저었다. “안돼 보이고 짠해서, 위로 차원에서 주는 거라고. 어쨌거나 손님은 손님이니까, 대접은 제대로 해야 될 것 같아서.” “감사합니다.” 밤손님도 손님은 손님이니까. 재은은 고개를 꾸벅 숙였다. “그런데 그 영 어쩌고 하는 놈이 애인이지?” “애인……이었어요.” 재은은 잠시 망설이다가 단호하게 말했다. “알았어, 전애인. 근데 왜 무섭게 눈을 부릅뜨고 그래? 그러니까 그놈이 아무 말 없이 널 찬 거지? 아직도 그런 애들이 있네. 촌스럽게.” “아니에요. 말은 했어요. 그런데 너무 갑작스럽게라…….” 또 눈물이 차올랐다. 재은은 울지 않기 위해 눈에 잔뜩 힘을 줬다. “또 울어? 눈물이 아깝다. 그만 울고 이거나 더 마셔.” 승현이 재은에게 아예 술병을 건네줬다. “납득할 만한 설명을 해 주고 그랬으면 억울하지도 않은데, 그냥 그만 만나자고 하더니…….” “그리고 딴 여자한테 갔다고?” “네. 내년에 결혼까지 하려고 했는데…….” 재은은 소매로 눈물을 훔쳤다. 말하고 나니 더 슬프고 비참하다. “완전 사기 아니야! 정말 촌스러운 놈이네.” “촌스럽지 않아요. 아주 반듯하게 생겼단 말이에요. 보여 줄까요?” 재은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한쪽에 들어 있던 영준의 사진을 승현에게 보여 줬다. 승현은 테이블 너머로 사진을 받아 들고는 한동안 들여다봤다. 재은은 지금의 상황에 헛웃음이 나왔다. 성범죄의 피해자가 될 뻔한 처지에서 벗어난 지가 얼마나 됐다고, 재은은 낯선 사람을 이웃사촌인 양 대했다. 승현도 도둑이 될 뻔한 재은을 스토커로 오해했다가, 지금은 다시 선배라도 되는 양, 재은의 실연 얘기를 들어 주고 있었다. “생긴 거 봐라. 아주 샌님처럼 생겼네.” 재은은 혀를 차며 사진을 흔들고 있는 승현에게서 사진을 잡아채, 다시 지갑에 넣었다. “무슨 말을 그렇게 해요? 아주 바른 사람인데. 지적으로 보이고.” 재은은 영준의 안경 쓴 모습에 처음 반했던 때가 생각났다. “바른 애가 딴 여자한테 가려고 애인을 차? 바른 애들은 한길만 가지. 이런 애들이 직업은 꼭 의사나 변호사더라.” “우와, 어떻게 알았어요? 변호산데.” 재은은 승현의 짐작이 맞자 너무 신기했다. “사진 보니까 딱 나오네. 그런데 아직도 그놈 사진을 갖고 다녀? 버려. 당장 버려! 그런 놈들은 절대 안 돌아와. 와도 널 이용해 먹으려고 다시 오는 거지.” “아저씨가 어떻게 알아요?” 입에 담배를 물고 삐딱하게 말하는 승현이 미워, 재은은 따지듯이 물었다. “너, 내가 춤췄다고 무시하는 거지?” “에? 아니요! 그거랑 무슨 상관이에요?” 재은은 승현의 뚱딴지같은 질문이 이해가 가지 않아 얼굴을 찡그렸다. “아, 미안. 댄스 가스 출신이라고 무시당해서 말이야. 하여튼 나이 먹으면 다 알게 돼. 너도 나이 들어 봐라.” “나이 안 들어도 미리 알면 좋겠어요.” 미리 알았더라면 조금은 덜 슬펐을까? 재은은 술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럴 순 없더라고. 후회하고, 미쳐 죽고, 그래도 소용없어. 시간이 지나야 되는 거지.” 도 닦는 선인처럼, 승현은 위를 올려다보며 한숨을 쉬었다. “얼마나 많이요?” “모르지, 그건. 사람마다 다 다르고. 그런데 그놈이 아무리 설명을 잘해도, 너는 그랬을 거야.” “뭘요?” “힘들었을 거라고. 그놈에 대한 감정이 여전히 있는데, 그만 하자고 해서 끝내질 것 같아?” 절대 끝낼 수 없겠지. 아무리 합당한 이유를 댄다 해도, 결국 재은에겐 들으나 마나, 물으나 마나 한 얘기였을 것이다.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냐고요.” “물론 또 다른 사랑에 빠지면 어쩔 수 없는 거지. 그 새로운 사랑이 진실하다면.” 승현은 재은이 들고 있던 술병을 가져가서 자신의 잔에 따랐다. “그건 진짜 알고 싶지 않아요.” 영준이 그 여자를 진짜 사랑하는지 따위는 알고 싶지 않았다. “알면 열라 짱나니까?” “무슨 아저씨 말투가 그래요?” 재은은 승현이 쓰는 단어를 듣고 킥킥 웃었다. “아저씨 말투는 이래야 한다고, 그런 거 있어? 하여튼 잊어라, 그놈.” 재은은 승현의 말하는 품새가 낯설지 않은 게, 혹시 그녀 자신과 같은 실연의 길을 걸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아저씨는 이런 경험, 조금 있으신가 봐요?” “전혀! 어딜 봐서 그렇게 보이냐? 차면 찼지.” 물고 있던 담배를 뱉어 낸 승현은 주먹을 허공에 쥐며 발끈했다. “그럼 아저씨도 그런 ‘당장 버려야 되는 부류’라고요?” 동지 의식을 느꼈던 재은은 갑작스런 배신감에 술병을 쥐고 일어섰다. “난……, 아니야! 지금 그걸 던지려고?” “아, 아뇨. 그러니까 아저씨가 제대로 얘기를…….” 험악한 눈빛의 승현을 보고, 재은은 조심스럽게 자리에 앉았다. “어린애들이 알면 다치는 얘긴데, 해 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승현은 소파에 몸을 누이며 기지개를 켰다. “저, 성인인데요.” 심각한 상황에서 거들먹거리는 승현을 보며, 재은은 커다란 한숨을 삼켰다. 생각이 깊은 것처럼 보이다가도 또 얕은 사람처럼 보이니, 정말 알 수 없는 사람이다. “내 얘기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 연예인 출신이다 보니, 사생활을 함부로 공개할 수가 없어서 말이야. 네가 이해해라. 그런데 뭐 하려고 그놈 집엔 다시 온 거야?” “물건 챙기려고요.” 재은은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이 집에 들어서기 전엔 아주 나쁜 짓을 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다지 나쁜 것 같지 않았다. 이보다 더 나쁜 짓을 하고 싶었다. “그거 업계 용언데? 직업이 그런 건 아니지?” “아니에요. 전 가업을 잇고 있어요.” 재은은 자세를 가다듬더니 무릎을 꿇고 앉았다. 가업 얘기만 나오면 이상하게 경건해지곤 한다. “전통 수호자?” “그건 아니고요. 출판사 직원이에요.” “뭐라고? 출판사?” 소파에 반쯤 누워 있던 승현이 출판사란 말에 반색을 하며 일어났다. “네. 조부님이 하시는 출판사요.” 재은의 조부인 유형근 사장이 경영하는 80년 전통을 자랑하는 출판사다. “넌 무슨 담당인데?” “저는 편집…….” “혹시 소설?” 재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승현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주로 학술 서적을 하고요, 소설은 가끔요.” “흠……. 알았어, 좋아.” 승현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좋아했다. 그 모습을 보던 재은은 아무래도 승현이 조금은 어딘가 이상하단 결론을 내렸다. 물론 재은을 위로해 주는 좋은 아저씨의 모습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담배에, 술에, 행색은 초라하기만 한데, 저 안 입은 듯한 바지 좀 보라지. 재은은 연예인들의 세계에 대해선 아는 게 없었지만, 보이는 것만큼 멋진 직업은 아닐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재은의 조부처럼은 생각하지 않았다. 재은의 조부는 ‘딴따라’라 부르며 연예인에 대해 매우 부정적이었다. 재은이 드라마나 가요 프로그램이라도 볼라치면, 호통을 치기 일쑤다. “아저씨?” 재은은 자신만의 세계에 빠져 있는 승현을 불렀다. “응? 아, 무슨 얘기 하다 말았지?” “제가 여기 온 이유요.” “맞아, 그랬지. 그놈을 죽이러?” “아니요! 제가 산 거 다시 가져가려고요. 갑자기 돈이 아깝단 생각이 들잖아요. 내년에 결혼한다고 혼수 장만하는 것처럼 샀는데, 괜히 샀어요! 이제껏 사 준 선물도 죄다 돌려받고 싶은데……, 이거 너무한 거죠?” “아니, 아니, 절대 아니야! 젓가락 한 짝까지 몽땅 돌려받아야지. 그런데 돈이 궁해?” 재은의 편을 열렬하게 들던 승현이 슬쩍 물었다. “아니요. 왜요? 궁하게 보여요?” 재은은 자신의 옷차림을 내려다봤다. 오늘은 좀 궁하게 보인다. 반짝이는 검정 옷을 입었어야 했다. 그리고 장갑도 가죽장갑을 끼고 왔으면 달라 보였을 텐데. “그래도 ‘드~으럽고 치사하니까 먹고 떨어져라.’ 그런 말은 안 하게 생겼어.” 승현이 조금은 건방진 말투로 말했다. “그거 빈티 난다는 뜻이죠?” 말하고 보니 빈티가 왕창 흐르는 것 같다. 재은은 한숨을 내쉬었다. “럭셔리는 아니라는 거지.” “저, 오리지널 럭셔린데.” “푸하하하! 뭐라고? 취한 거 아니야?” 재은은 팔을 치켜들고 술병을 흔들어 보았다. 아직도 많은 양이 남아 있어서, 술이 묵직하게 출렁거렸다. “아니요. 이런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요, 아저씨가 너무 무시하니까 어쩔 수 없이 한마디 해야겠어요.” 재은의 조부께서는 겸손과 겸양을 알아야 한다고 누누이 강조했지만, 오늘은 힘든 날이니까 모른 척하기로 했다. “뭔데?” 소파에서 엎어져 웃던 승현이 고개를 들었다. “저희 외할머니가 현금 부자시거든요. 돈이 장난 아니게 많다고요. 아, 실수했네. 어디 가서 돈 있다고 티 내지 말라고 했는데.” 재은의 외할머니인 송 여사는 사채로 돈을 번 부자였다. 하지만 유 사장은 ‘돈으로 일어난 자는 돈으로 망한다.’며 송 여사를 싫어했다. 송 여사한테서 용돈을 받거나 선물을 받아도 유 사장은 재은을 책망했다. 재은은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송 여사를 매우 좋아했으며, 그녀의 과한 애정 방식도 나름대로 이해했다. 재은은 거의 매일 송 여사 집에 들러서 안부를 확인했고, 틈날 때마다 문자를 주고받았다. “그러니까 너희 외할머닌 큰손이시고, 너희 할아버진 출판사 사장님?” “네. 돈 있는 티는 졸부나 내는 거라고, 외할머니가 항상 겸손하고 있는 척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런 건 가만히 있어도 은은하게, 은근하게 풍기는 거라고요.” 재은이 차분하게 사실을 말하는데도 승현은 계속 웃기만 했다.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나 보다. “하여튼 돈 있게는 안 생겼어.” “그거 좀 나쁜 건데.” 지용이 재은에게 빈티 난다는 소릴 자주 했었는데, 그땐 무시하고 지나쳤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 봐야겠다. 최소한 보통은 되어야 하는데, 빈티라니. “아니지, 그건 절대 나쁜 게 아니야. 누가 돈 때문에 널 속이고 그럴 일은 없잖아.” “그렇죠.” 맞는 말이다. 재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누가 네 돈 때문에 사랑한다고 거짓말할 일도 없을 테고, 또한 돈 때문에 너한테 매달릴 일도 없을 테고……. 근데 내가 지금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냐? 에잇, 그만 하자.” 기분 상했다는 듯이 승현은 옆에 있던 쿠션을 던졌다. “돈 때문에 누가 아저씨 배신했어요?” 보기와는 다르게, 승현도 어수룩한 시절이 있었나 보다. 아니면 꽃뱀한테 걸린 적이 있거나. “아니! 그럼 나한테 죽지. 이 직업이 겉으로 보기에만 화려하지, 돈도 별로 못 벌어. 나야 부모님 잘 만나서 이렇게 놀고먹지. 이런 시답잖은 얘기 말고, 그 흉악범 얘기나 계속해 봐.” 펄펄 뛰며 심한 부정을 하는 승현을 보며, 재은은 승현에게도 감추고 싶은 과거사가 있는 게 아닐까 짐작했다. “어디까지 했더라? 아, 맞다. 그래서 저는 물건을 돌려받으려고 왔어요. 다 제 돈 주고 산 거니까요.” “그런데 도둑질하는 걸로 말고, 제대로 된 걸로 그놈한테 불을 질러야지. 내가 알려 줄까?” “뭘요?” 재은은 무릎걸음으로 소파까지 걸어갔다. “그놈한테 복수하는 방법. 네 가슴이 후련해져서, 두고두고 절대 그놈 생각 안 하는 방법. 오히려 그 생각만 하면 기분 좋아 죽겠는, 그런 거.” 누워 있던 승현이 가부좌를 틀고 앉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게 있어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다. 재은은 풀어진 단추를 무시하고 승현을 바라봤다. “그럼. 내가 춤만 춘 게 아니라고.” 또 춤 얘기를 하는 승현이지만 재은은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대롱대롱 달린 단추도 무시했는데, 춤은 진짜 아무것도 아니다. “알려 줘요!” 재은은 극복하고 싶었다. 모든 걸 잊고 새롭게 출발하고 싶었다. 더 이상 울고 싶지 않았다. 바보 같은 자신을 동정하고 싶지도 않았다. “흠……. 그런데 술도 부족하고, 또 안주도 없고…….” “주방 싱크대 문짝에 24시간 식당 전화번호 붙어 있어요.”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해결할 수 있다. 요리에 그다지 소질이 없는 재은은 배달 음식점 스티커를 싱크대 안쪽에 여러 개 붙여 놨다. “그런데 말이다. 이 아저씨가 지금 돈이 한 푼도 없으니, 은은하고 은근하게 돈 있는 전통의 수호자님께서 쏘시는 건 어때? 내가 기술 전수해 주마.” 승현이 고개를 쑥 내밀고 부탁했다. “좋아요.” 재은은 몇 달 만에 처음으로 기분이 좋았다. 그런 훌륭한 기술을 배우는데, 술이나 안주가 없으면 안 되지. 제대로 배워서 천년만년 기분이 좋아질 테다. “좋아, 가자!” “아저씨.” 주방으로 향하던 승현을 재은이 불러 세웠다. “왜?” “그 전에 부탁이 있어요.” 꼭 말해 주고 싶다. 더구나 저런 좋은 기술을 가르쳐 준다니, 재은도 도움이 될 한마디를 해 줘야지 싶다. “뭔데?” “그 바지, 잘 입어 주실 순 없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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